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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誠의 의미

LIFESTYLE

‘정성’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진짜 정성스러움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마음이 있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고, 그나마 그 마음조차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요즘의 세태를,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하고 사는 것들을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생겼다. 지인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다이아나 강 대표가 이번 달 <노블레스>를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시나브로 전해지는 ‘정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두릅장아찌 · 뽕잎장아찌 · 산초와 밤 · 대추 · 은행 등을 플라스틱통이 아닌 도예가 김정옥 작가의 도자기 합에 넣었다. 보자기로 싸는 대신 합의 모양에 맞는 모시 천을 제작해 씌웠다. 윗부분만 씌우는 커버 덕분에 도시락 같은 느낌이 들뿐더러 집에 두고 먹기에도, 보관할 때도 좋다. 사각 합은 김정옥 도예 작가의 작품. 왼쪽에서 두 번째 놓인 연한 살굿빛 주머니는 태슬을 달아 마무리했다.

다이아나 강 대표는 직접 만든 무언가를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의 지인이라면 아마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에디터도 최근 몇 년간 받은 선물 중 그녀에게 받은 것을 정성 어린 선물로 손꼽고 싶다. 각종 견과류와 과일에 꿀과 시나몬을 넣어 재운 것을 직접 유리병에 담아준 선물, 집에서 손수 만든 음식으로 대접한 연말의 디너 테이블… 언뜻 평범한 듯 보이지만 받는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피어오르는 건 다름 아닌 남다른 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이아나 강 대표가 이번 테마를 위해 만난 이는 김인겸 씨다. 그녀는 예전에 이탤리언 레스토랑 비손과 한식당 물동이 등을 운영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맛과 분위기 모두 훌륭해 즐겨 찾던 레스토랑이라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아쉬워한 기억이 난다.

그녀와 그녀의 딸, 코넬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캘리포니아 CIA에서 요리를 배운 후 스타일링과 컨설팅 일을 하고 있는 3 Reasons의 한선희 대표를 청담동에 새롭게 마련한 작업실 겸 쿠킹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녀와 다이아나 강 대표는 명절이나 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부터 혼수와 예단을 포함한 결혼 문화에 이르기까지, 마음보다 물질이 앞서는 요즈음의 세태에 대해 얘기하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김인겸 씨는 외교관을 지낸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서로 주고받는 것을 즐기는 외국인의 선물 문화에 익숙했다. 선물의 크고 작음이나 얼마나 비싼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작은 선물을 하더라도 좀 더 세심한 정성을 들이고 싶었다고 한다. 같은 음식도 담는 그릇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처럼,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정성의 깊이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김인겸 씨와 다이아나 강 대표

“이를테면 명절이나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으레 선물로 주기 마련인 과일 바구니만 해도 그래요. 비싼 과일 바구니를 천편일률적으로 분홍 보자기에 싼 모습을 보면 안타깝더라고요. 흔히 보자기는 예단을 보낼 때나 쓴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마땅한 것이 없어요. 다른 포장지도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고요.”

그녀가 평소 지인을 위해 마련한 선물은 뭔가 달랐다. 생활 속 작은 소품도 예사로이 보지 않고, 뭐든 손수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아이디어를 더한 솜씨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충 쓰고 쉽게 버리는 포장지가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 후 남은 패턴 벽지를 활용해 포장하거나, 일반 종이 대신 전통 한지나 베틀에서 손으로 직접 짠 은은한 색감의 모시 천 같은 것을 이용해 세련되게 연출한다. 이때 국내 작가의 작품을 적극 활용한다. 평소 회화와 공예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보았다가 선물을 담는 도구로 사용하거나 회화 작품을 다양한 종이나 패브릭에 프린트해 색다른 포장지를 재창조하기도 한다. 공예문화진흥원에서 판매하는 안동 한지로 만든 작은 꽃 모양 브로치도 포장 박스 위에 달면 리본보다 훨씬 독창적인 디테일이 된다. 그녀가 하나씩 꺼내 보여줄 때마다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마음을 정성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이 이렇게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1 남해 유자로 직접 담근 차는 다이아나 강 대표에게 선물해 기쁨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녀가 구상해 팝아트 작업을 하는 최윤정 작가에게 레이블 제작을 부탁한 것으로 평범한 유리병이 한층 특별해 보인다.
2 김인겸 씨가 그녀의 딸 한선희 대표에게 주는 선물. 몇십 년 전 구입했거나 선물 받은 스카프를 이용해 백을 만들었다. 빈티지한 멋이 있을 뿐 아니라 어머니의 추억을 딸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유니크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3 김인겸 씨가 프랑스에 사는 이모에게 선물하기 위해 포장한 한국식 주전부리
4 한지를 붙여 마감한 선물 상자. 작가가 작업한 한국적 문양을 넣은 포장지로 싸서 띠를 두르니 색다른 느낌이 난다. 뒤편의 액자는 기하학적 프레임을 제작해 다양한 자투리 벽지를 붙인 것으로 멋스러운 아트워크 역할을 한다.

이 선물 포장이 특별해 보이는 데는 동서양의 미감을 절묘하게 한데 녹여내는 그녀의 감각이 한몫한다. 포장지로 이용한 한지 위에 이국적 패턴이 들어간 벽지를 덧대거나 포인트로 서양식 디자인의 태슬을 다는 식이다. 그렇게 완성한 선물은 특별히 멋 부리거나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단아하고 소박한 느낌임에도 남다른 품격이 전해진다. 내용물에 상관없이, 받는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며 준비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국가를 대표해 다른 나라를 예방할 때나 기업에서 외국의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날 때도 이런 것을 염두에 두면 좋겠어요. 외국인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우리 작가의 백자에 한식을 담아 내놓으면 저절로 한식 문화와 한국 도자기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네 정서를 담은 작은 선물 포장 하나로 문화 외교에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다이아나 강 대표도, 에디터도 깊은 공감을 표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직접 만들고, 선물의 내용물에 어울리는 포장의 매무새까지 생각하는 것. 언뜻 귀찮고 번거로울 수도 있고, 혹자는 ‘포장 따위’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잘 포장한’ 선물을 받아보면 결코 작지 않은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얇은 보자기 한 장, 작은 리본 장식 하나. 정성이란 그런 것이다. 때로 진심은, 그런 것으로 전달되는 법이다.

전통 소반, 도자기와도 잘 어울리는 선물 박스 포장

Gift Wrapping Sense
Fabric 보자기 대신 선물을 넣은 상자나 함의 형태에 맞는 천을 제작한다.
Wallpaper 벽지는 다용도로 활용 가능한 재료다. 패턴이 있거나 독특한 컬러의 벽지 자투리가 남았다면 뚜껑 윗부분만 덧대 장식적으로 활용하면 세련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Artwork 작가의 작품이나 전통 문양을 콜라주해 프린트한 포장지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선물로 완성해준다.
Ceramic Box 도자기로 만든 사각이나 원형 함은 특히 과일이나 반찬거리를 선물로 나눌 때 잘 어울린다. 도자기 자체로도 훌륭한 선물이 된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안지섭 컨트리뷰팅 에디터|다이아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