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猫의 세계
고양이의 세계에도 귀족은 따로 있다. 수많은 종의 고양이 중에서도 뛰어난 혈통을 자랑하는 고양이와 그들의 건강과 미모를 평가하는 유서 깊은 경연장, 캣 쇼에 대하여.
캣 쇼의 심사 현장

슈프림 챔피언을 달성한 페르시안 고양이
고양이를 ‘기른다’는 표현에 가끔 물음표를 찍고 싶을 때가 있다. 대체 누가 누구를 기른다는 건지, 그저 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 무심한 반려동물에게 과연 소유의 개념을 적용해 주인 행세를 해도 될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한없이 느리고 도도하게 어슬렁거리다 가끔 날렵하게 움직이며 마음을 쏙 훔쳐가는 미묘(美猫)의 행동과 자태를 보면, 어쩌면 우리가 고양이에게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을 위해 그저 길러지고 있는 척하는 요염한 연기에 말이다. 사람을 홀리는 고양이의 매력에 빠진 예술가도 많다. 요즘은 많은 작가가 영감을 얻는 존재로 가장 자주 언급하는 것이 작업실이나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고양이일 정도. 고양이에게 반한 사람, 애묘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행사가 있다. 바로 고양이 경연장인 캣 쇼다.
TICA에서 인정하는 63종의 고양이 모습이 담긴 포스터

캣 쇼에 참가한 고양이와 브리더
세계 최초의 캣 쇼는 1871년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대회는 아름다운 고양이를 뽑는 데 그치지 않고, 순혈종 고양이를 보존하는 목적도 아우른다. 그래서 캣 쇼를 주최하면서 고양이의 혈통을 등록해 관리하는 세계적 단체도 있다. 먼저 1906년 미국에서 비영리단체로 출발한 CFA(Cat Fanciers’ Association)는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협회. 설립 첫해에 공식적으로 캣 쇼를 개최했고 현재는 본부의 승인하에 전 세계에서 600여 개의 CFA 회원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또 하나의 협회는 1979년 역시 미국에서 설립한 TICA(The International Cat Association). CFA에 비해 훨씬 늦게 출발했지만 현재 국제적 규모나 활동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다만 혈통이나 계보에 관해서는 CFA가 상대적으로 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편. 예를 들어 TICA가 혈통을 인정한 고양이는 63종이지만 CFA는 42종만 인정하며, 각 협회가 주최하는 캣 쇼에서도 CFA의 심사 기준이 더 엄격하다고 알려졌다. 그 밖에도 몇몇 협회가 더 있지만 국제적으로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는 것은 CFA와 TICA다. 여기서 반가운 소식 하나. 한국에도 이 두 단체에서 라이선스를 받고 ‘캣 클럽’ 형태로 활동하는 단체가 있다. 1999년 한국 최초의 캣 클럽이 생기고 2003년엔 처음으로 캣 쇼를 개최하면서 그전까지 생소하던 캣 쇼나 애묘인의 문화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지금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에서도 연간 5~6회 이상의 캣 쇼가 개최되고 있다.
고양이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이를 ‘브리더(breeder)’라 하고, 브리더의 철저한 계획하에 번식이 이루어지는 곳을 ‘캐터리(cattery)’라 한다. 브리더가 협회에 소속되어 있어야 그의 고양이도 협회에 등록할 수 있는데 마치 사람의 주민등록증처럼 고양이에게도 품종과 이름, 나이, 오너 등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 등록증을 내준다. 한마디로 협회에 등록한 고양이에게 주어지는 혈통 증명서다. 또 협회에서는 이와 별개로 윗대의 정보와 캣쇼 수상 기록이 상세하게 기록된 가계도도 관리해 필요할 경우 발급받아 어떤 조상을 둔 고양이인지 확인할 수 있다. 브리더의 가장 기본적 역할로 혈통 보존을 꼽는 만큼, 브리더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브리딩하는 품종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 래그돌 종을 브리딩하고 있는 곽연정 브리더는 “무엇보다도 고양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각 종의 특징을 자세히 알고 유전적 결함을 배제해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브리더의 역할이다”라고 말한다. 캣 쇼의 심사 기준도 건강미와 함께 각 품종의 특징을 규정한 스탠더드를 얼마나 잘 갖췄느냐 하는 것. 페르시안의 경우 인형처럼 동글동글한 머리와 눈, 짧은 귀, 길고 풍성한 털, 짧고 단단한 몸통이 스탠더드다. 그리고 다른 종에는 없는 ‘우아함’이라는 평가 기준이 추가된다. 반면 아비시니언은 삼각형 두상과 아몬드형 눈, 가늘고 긴 몸통과 다리, 짧고 윤기 흐르는 털을 미덕으로 꼽는다. 재미있게도 품종에 따라 ‘애교’가 스탠더드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는데 스핑크스가 그렇다. 심사할 때 고양이가 긴장해 몸을 움츠리면 다른 종은 감점되지 않지만 본래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인 스핑크스에게는 그것이 스탠더드에서 벗어난 감점 요인이 되는 것이다.
화려한 혈통을 자랑하는 래그돌
사진 오신혜

위 래그돌의 5대 조상과 캣 쇼 타이틀이 기록된 가계도
화려하고 흥미로운 캣 쇼 현장
그럼, 경연장의 분위기를 살짝 엿보자. 캣 쇼의 규모는 출전한 고양이 수에 따라 심사를 진행하는 링(ring)의 수가 결정되고, 각 링에는 본부에서 나온 공인 심사위원이 있다. 만약 6링으로 진행하는 캣 쇼라면 모든 고양이가 여섯 번 심사를 받는 것. 링에서 각각 점수를 부여하고 순위를 매기며, 파이널에 올라갈 고양이를 선정하는데 파이널 출전 수도 규모에 따라 다르다. 참가 고양이가 많으면 페르시안, 래그돌, 메인 쿤처럼 털이 긴 장모종과 아비시니언, 브리티시 쇼트헤어, 아메리칸 쇼트헤어 등 털이 짧은 단모종을 나눠 심사하기도 한다. 캣 쇼가 열리는 시즌은 5월 1일부터 이듬해 4월 30일까지이며 챔피언 타이틀을 따는 데는 시즌 제한이 없이 누적 점수를 반영한다. 대회의 세부 규칙이나 심사 기준은 CFA와 TICA 등 개최 본부에 따라 다르다. 캣 쇼 공인 심사위원은 각 협회에서 요구하는 수십 가지 자격 요건을 갖추었다. 처음에는 캐터리로 등록해 브리딩 경력을 쌓고 그랜드 챔피언을 배출해야 하며, 이후 각 협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심사위원이 되기까지 보통 10년 이상이 걸린다. 그동안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인 심사위원을 찾기 어려웠지만 작년에 이선희 씨가 TICA 공인 심사위원이 되면서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캣 쇼 심사위원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순혈이 아닌 고양이는 캣 쇼에 출전할 수 없는 걸까? CFA 공인 클락인 한국고양이협회의 신정진 회장은 그런 고양이가 참가할 수 있는 분야가 따로 있다고 설명한다. 혈통이 등록된 4~8개월 고양이는 키튼, 생후 8개월 이상의 혈통이 등록된 고양이는 챔피언십, 그중에서도 중성화한 고양이는 프리미어십, 그리고 생후 4개월 이상이면서 혈통이 등록되지 않은고양이는 하우스홀드펫 분야에 출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 고양이로 알려진 코리안 쇼트헤어는 이 마지막 분야에서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것. 고양이를 기르는 것도 마치 유행처럼 인기를 얻는 종이 바뀌는데 10여 년 전에 페르시안이나 러시안블루가 사랑받았다면 요즘은 래그돌, 메인 쿤, 노르웨이 숲 등 덩치가 큰 거묘종이 인기를 얻는 추세. 물론 특정 종이 트렌드고 캣 쇼에 많이 나온다고 해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 이 유행을 타듯 새로운 고양이를 찾는 건 아니다.
캣 쇼가 처음 열린 때와 달리 오늘날의 캣 쇼는 단순 경연장에서 더 나아가 가구와 장난감, 식품 등 다양한 고양이 관련 상품이 함께 등장해 알찬 정보가 오가는 장소다. 그러므로 꼭 고양이를 기르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캣 쇼에 참가해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아름다운 고양이를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물론, 그러다 고양이의 매력적인 캐릭터에 반해 소위 ‘집사’의 길로 들어서는 건 한순간일 테지만 말이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