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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의 낭만

LIFESTYLE

각양각색의 애프터눈 티를 맛보며 봄날의 여유를 즐겼다. 그 달콤함과 향긋함에 매료된 시간.

크림치즈 멘보샤와 애플망고 샐러드, 춘권과 망고 스시를 올린 살라댕방콕의 살라댕 스페셜 3단 트레이.

산과 들에 연초록 새순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코끝을 간질이는 봄바람을 느끼며 걷고 또 걸었다. 청계천과 종로를 지나 운현궁으로 가는 길, 골목 안으로 오래된 한옥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낡고 퇴색한 대문에서 골목의 세월이 느껴지는 반면, 건물 사이사이에 들어선 작은 가게는 동네 풍경을 거스르지 않고 현대식으로 개조해 감성을 자극한다. 꼭 어딘가에 들어가지 않아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는 것만으로 운치가 느껴지는 익선동 골목에서 유난히 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곳을 발견했다. 모던 타이 레스토랑 살라댕방콕. 첫날엔 긴 줄을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 SNS를 통해 예약하고 나서야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이 이곳을 갈망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국적인 목제 가구와 녹색 식물로 가득 채우고, 중앙에 작은 풀장까지 만들어 방콕의 고급스러운 리조트에 온 듯한 분위기가 감돈다. 공간이 주는 힐링의 위력이 이토록 막강하다. 무엇을 시킬까 고민했으나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하나씩 시킨 3단 트레이가 이 집의 대표 메뉴. 살라댕 스페셜 3단 트레이는 영국의 애프터눈 티 세트를 태국식으로 각색한 것으로 크림치즈 멘보샤와 애플망고 샐러드, 각종 춘권과 망고 스시를 올렸다. 디저트 위주의 서양식 애프터눈 티와 달리 일종의 모둠 애피타이저 같다. 여기에 럼과 라임, 레몬그라스가 만난 새콤한 칵테일을 곁들이니, 싱그러운 열대 리조트에서 즐기는 망중한이 따로 없다.
영국의 애프터눈 티 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현지화를 통해 다양하게 변형 중이다. 19세기 영국 귀족 사회에서 시작된 애프터눈 티는 단순한 티타임이 아니라 차와 함께 간단한 디저트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담음새도 중요하게 여겨 3단 은 트레이에 스콘, 샌드위치, 케이크, 쿠키, 마카롱 등을 순차적으로 올리고 티포트와 찻잔, 접시 그리고 밀크 저그와 슈거 볼을 가지런히 세팅한다. 그러나 이런 관습을 깨고 중국이나 홍콩에서는 스콘이나 케이크 대신 딤섬과 함께 차를 마시는 얌차 문화로 발전했고, 국내에서도 태국식을 비롯해 일식과 중식, 한식을 넘나드는 동양적 애프터눈 티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 새로운 경험은 어디에서 가능할까? 그 궁금증에서 시작해 호텔과 카페를 돌며 애프터눈 티 탐방을 시작했다.

일식과 중식을 넘나드는 서울 웨스틴 조선 호텔 라운지 & 바의 오리엔탈 애프터눈 티 세트.

다음 날 나는 호텔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봄기운에 흠뻑 젖은 환구단이 아른거렸다.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서울 웨스틴 조선 호텔 라운지 & 바의 오리엔탈 애프터눈 티 세트를 기다렸다. 사진으로만 본, 대나무로 만든 2단 트레이는 화려하진 않아도 단아하고 정갈했다. 그리고 접시 위에는 차슈바오, 다마고야키, 주악, 증편, 녹차양갱과 팥양갱, 카스텔라 등 애프터눈 티 세트라고 보기에는 다소 창의적인 메뉴가 모여 있다. “이것부터 드시면 됩니다. 그다음엔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즐기면 되고요.”
직원은 대나무 도시락 하나를 더 내려놓으며 말했다. 안에는 갓 만들어 윤기가 도는 마키와 유부초밥이 몇점 들어 있었다. 매실과 시소, 오이가 들어간 우메시소마키, 고기와 버섯의 짭조름한 맛이 느껴지는 유부초밥은 나른한 오후에 밀려오는 출출함을 달래줄 요깃 거리로 충분했다. 그다음 1인용 무쇠 티포트에 우린 호지차를 한 잔 따르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차슈바오,다마고야키, 증편 순으로 본격적인 디저트 타임을 즐겼다. 많이 달 것 같아 마지막까지 남겨둔 양갱과 주악은 기분 좋은 단맛이 느껴지는 정도. 구수하고 떫은맛이 거의 없는 호지차는 달달하게 물든 입안을 중간중간 깔끔하게 중화해 달콤한 의식의 중재자 같았다.

파크 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에서 선보이는 꽃을 테마로 한 코리언 애프터눈 티 세트.

파크 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는 새롭게 단장한 이후 줄 곧 코리언 애프터눈 티 세트를 선보여왔다. 얼마 전까지 ‘딸기’가 주제였는데, 그사이 ‘꽃’으로 바뀌었다. 때마침 벚꽃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려 봄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들뜬 기분에 취해 향긋한 목련차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묵직한 기물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한옥 문살을 연상시키는 프레임에 층층이 사각 분청접시를 더한 한국적 디자인의 트레이. 더 라운지의 아이코닉한 3단 트레이는 이재원 도예가가 강남 도심의 빌딩 숲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 전통 무늬를 활용해 디자인한 것이다. 꽃 장식을 더한 증편과 애호박전, 히비스커스 레드 벨벳 케이크, 오렌지 블라섬 롤리팝, 맨드라미와 라즈베리를 곁들인 판나코타 등 화사한 꽃밭처럼 형형색색의 디저트가 그 안을 채웠다. 작은 트레이에는 벚꽃잼과 클로티드 크림, 딸기 고추장 에스푸마가 담겨 나왔다. “기호에 따라 곁들여 드시면 됩니다. 특히 딸기 고추장 에스푸마는 꼭 맛보세요. 숙성 딸기와 고추장, 육수, 크림을 조합해 만든 부드러운 무스입니다.” 그 맛이 궁금해 살짝 찍어 먹으니 처음에는 딸기 크림처럼 달콤하다 점점 고추장의 매콤함이 맛있게 감돈다. 애호박 전은 물론 의외로 스콘과의 매치도 훌륭했다.

오설록 1979의 제주 식자재를 활용한 애프터눈 티 세트.

아모레퍼시픽그룹 신본사 1층에 문을 연 오설록 1979는 한라산 도순 지역의 황무지를 녹차밭으로 개간하기 시작한 1979년을 모티브로 한 프리미엄 티룸이다. 브랜드의 전통과 진정성이 깃든 공간에서 제주 식자재를 활용한 애프터눈 티 세트를 선보인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곳의 애프터눈 티 세트는 매일 한정 수량 판매하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다. 내가 방문한 건 일요일 오후. 휴일이라 한산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거의 모든 자리가 차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애프터눈 티를 맛보겠다는 그들의 표정엔 설렘이 그득했다. 메뉴가 준비되는 동안 차를 고를 수 있게 도와준다. 마스터스 티, 퓨어 티, 블렌디드 티 등 총 24가지로 세분화한 티 리스트를 건네주었다.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내게 티 소믈리에는 몇 가지 차를 추천해주었고, 그중에서 중후하고 구수한 반발효차인 삼다연 후를 선택했다. 엷게 우린 차는 맑고 개운한 느낌이지만 구수하면서도 달달한 맛이다. 먼저 나온 비프파스트라미와 브리 치즈를 넣은 기정떡 샌드위치, 살라미와 생모차렐라가 들어간 바질 페스토 & 녹차 샌드위치는 식자재 본연의 신선한 맛을 강조했다. 특히 식기 전에 먹으라고 일러준, 살짝 토스트한 제주 기정떡 샌드위치는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좋았다. 대망의 3단 트레이는 전통적 먹거리를 재해석한 디저트로 가득했다. 앙버터 녹차 스콘, 유자 머핀, 사과 정과, 호지차 튀일 쿠키, 제주 우도 땅콩 타르트 등 모양도, 색감도 다채롭다. 엄밀히 따지면 제주 오설록 유기농 차밭에서 재배한 차를 활용해 만든 디저트들이다. 재료가 좋으니 맛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천천히,느긋하게 그 맛을 음미하며 마지막 디저트까지 맛보고 나니, 단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건강한 달콤함으로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박유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