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국내 여행
저마다 다른 스타일로 국내 여행지에서 감동과 재미를 맛본 이들이 털어놓는 나만의 국내 여행 기술.
통영 서호시장에서 즐기는 식도락 여행, 셰프 오세득
통영은 남해를 오가는 고깃배들이 닿기 편한 길목에 있다. 1960년대엔 어장 아비가 넘쳐나던 수산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여전히(물론 그 규모는 줄었지만) 뱃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냄새가 그득하게 느껴진다. 통영에 가면 늘 어머니의 진실된 손맛을 경험할 수 있는 서호시장을 찾는다. 바로 시락국과 물메기탕이 있기 때문이다. 통영에서 잡은 맛 좋은 생선으로 육수를 내고, 집 된장과 무청, 시래기를 넣어 끓인 시락국은 먹는 방법이 따로 있지만(제피가루와 김가루, 부추무침을 넣어 먹는 것이 풍습), 잘 지은 밥을 말아 반찬을 고명 삼아 먹는 것만으로 금세 마음이 뻥 하고 뚫린다. 한편 시락국에 버금가는 것이 물메기탕. 사실 물메기는 예전엔 생김새가 못생겨서 잡아도 바다에 버린 생선이다. 하지만 이걸 탕으로 끓이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 통영의 푸른 바다만큼이나 맑은 물메기탕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마시면, 금세 구름 같은 보드라움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한데 이런 걸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어디냐고? 통영의 별미 복국을 파는 식당은 어디 한 군데도 빠지지 않고 다 물메기탕을 낸다. 그러니 통영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거든 어디든 들어가 한 숟가락 떠보시길.
따스한 남쪽 도시 통영의 해안 풍경
꾸덕하게 말린 물메기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물메기탕
강원도 내 맘대로 여행, 아나운서 김주희
국내 여행의 매력은 늘 마주하는 퇴근길이 아닌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올 초 그렇게 고속도로를 탔고, 도심엔 없는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여행지에 가겠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강원도를 목적지로 정했다. 강원도에서 처음 도착한 곳은 대관령 양떼목장. 초록의 신록이 넘실대는 여름 들판도 좋지만, 하얀 눈이 덮인 겨울의 양떼목장은 그야말로 <겨울왕국>의 실사판이었다. ‘대관령의 알프스’라는 이곳의 홍보 문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만이 간직한 아름다움은 알프스보다 친근하게 다가올 정도. 입구에서 입장권을 끊고 양들의 밥(지푸라기)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찬찬히 목장을 오르면 울타리에 기다랗게 늘어져 밥달라고 우는 양 떼를 맘껏 볼 수 있다. 올해는 특히 청양의 해라 그런지 양의 기운을 받기 위한 가족의 발길이 잦았다. 양떼목장에서 한껏 양들의 귀여움을 감상했다면 이번엔 설악산을 한번 올라보자. 입구에서 10분 간격으로 오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 봉우리에 오를 수 있는데, 눈앞에 펼쳐진 설악산 봉우리들의 병풍 같은 풍경은 언제 봐도 입이 쩍 벌어진다. 고려시대 산성인 권금성과 자그마한 암자 아래 솟은 800년 된 소나무 무학송. 그것을 그저 담담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웅장함과 경외감이 느껴진다. 강원도의 산과 들을 실컷 여행했다면, 다음 목적지는 바다다. 일요일 오전, 속초 앞바다에서 마주한 그 고요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치 말없이 있어도 편한 오랜 벗과 마주한 듯한 풍경. 속초 바다는 그저 ‘마주함’만으로도 끝없는 기쁨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강원도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결코 인위적인 게 없다. 올해는 강원도 같은 깊이 있는 자연풍경을 좀 더 자주 마주하기로 다짐한다.
산과 들, 바다를 한 번에 여행할 수 있는 강원도. 청양의 해를 맞아 양떼목장에 들르는 것도 좋은 여행 방법이다.
자작나무가 보이는 속초 들판
바다를 보는 양 인형 한 쌍
양떼목장의 양들
전국 콘서트홀 여행, 작곡가 류재준
연주회를 만드는 여러 요소 중 콘서트홀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가 쉽게 간과한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라 해도 자신의 연주가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는 법. 그간 가본 국내의 수준 높은 콘서트홀 몇 곳을 소개한다.
서울의 콘서트홀은 예술의전당이 대표한다. 하지만 눈을 조금 돌리면 감탄할 만한 전문 공연장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의 강동아트센터는 유럽의 오페라하우스를 옮긴 듯한 우물 정 자형 객석 구조를 베이스로 뚜렷하고 명쾌한 음향을 자랑한다. 선사 문화 유적지를 보는 듯한 고즈넉한 디자인도 돋보이지만, 워낙 규모가 커(850석) 클래식은 물론 오페라, 발레, 콘서트 등 어떤 공연을 올려도 모양새가 난다.
맛과 멋으로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통영의 화룡점정은 단연 통영국제음악당이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오랜 결실이기도 한 이곳은 문화의 도시에 강력한 심장을 이식했다는 평가가 딱 어울린다. 바다를 배경으로 소담스럽게 자리 잡은 음악당은 다소곳한 처녀의 미소를 보는 듯하다. 장중한 음향과 어떤 장르를 가져와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건축적 구조는 현대음악제에 어울리는 강력한 무기다. 죽전에 위치한 용인포은아트홀도 주변 문화 시설 중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공연장 바닥에 스피커를 매립해 입체 음향을 극대화했고, 객석 바닥에도 우퍼 스피커를 설치해 웅장함을 높인다. 클래식전용 홀 사운드도 충실히 구현해낸다.
한편 대구시민회관콘서트홀에서 연주해본 연주자들은 주저 없이 엄지손가락을 든다. 옛 대구시민회관을 개·보수한 이곳은 안정되고 선명한 사운드는 물론 적당한 반향에 철저한 공연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한국 클래식 공연장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 피아노 상태부터 분장실, 연주자 알림 서비스까지 모자란 구석이 어떻게 하나도 없는지. 아마 한국의 공연장 지도는 대구시민회관 개축전후로 나누어 구분해야 할 듯하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국내 콘서트홀을 한번씩 여행해보는 것도 좋다. 그곳에 세계 수준에 뒤지지 않은 음향 설비가 있다.
통영국제음악당
강동아트센터
대구시민회관콘서트홀
담양 옛집 여행, 건축가 최준석
도시에서 쓸 일 없던 오감을 자연스레 열리게 하는 장소라면 일단 담양의 옛집들이 떠오른다. 담양 환벽당(環碧堂)에 가면 안내판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일상의 휴식과 세시가무와 유흥상경의 정취를 시적으로 승화시키며….” 휴식, 세시가무, 유흥상경이라,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놀고 먹는 느낌이 물씬 난다. ‘푸름으로 둘러싸였다’는 의미의 환벽당은 조선 중기 문인 김윤제의 학당. 흔히 동네서당이라 불리던 단출한 세 칸짜리 처소다. 하지만 나른하고 유유자적한 풍경 탓에 볕 좋은 봄날이면 하릴없는 처사들이 모여 술과 시, 풍류를 즐기기 딱 좋았을 집이다. 지척에 있는 식영정과 소쇄원을 패키지로 묶는다면 당시 은둔 선비들의 1·2·3차 코스가 아닐는 지. 놀기 좋은 집으로 치면 환벽당 옆 자미탄 개울 건너 언덕 위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息影亭)도 제격이다. <장자> ‘재물’ 편에서 차용한 가호로, 삶이 그림자처럼 볕에 이끌려 나왔다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인생 뭐 있느냐는 다소 허무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림자 너머 본질을 바라보자는 학습의 의지도 담겨 있다. 식영정은 또한 놀다, 공부하다 세월 보낼 요량으로 세운 집이라 담도 없고 문도 없다. 그러다 보니 집 안팎이 자연과 사람에게 모두 열려 글보다는 말이, 책보다는 술이, 머리보다는 가슴이 가까운 힐링의 공간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기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의 소쇄원(瀟灑園)은 집과 자연이 어우러진 힐링 그 자체. 기묘사화의 주인공 조광조, 그의 제자 양산보가 지은 별서 서원인데(요즘 말로 별장) 스승의 죽음에 충격받고 낙향해 평생 풍류를 즐기며 살다 갈 마음으로 만든 집답게, 눅진한 삶의 내음과 자연의 호젓한 기운이 500년 전집주인의 분위기를 그대로 자아낸다. 한편 ‘맑은 날 바람’ 같은 광풍각(光風閣)과 ‘비 온 후 밤하늘의 달빛’ 같은 제월당(霽月堂)은 초라한 집의 크기보다 수백 배 넉넉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는다. 담양엔 이렇듯 아련한 옛 기억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풍경으로 가득하다. 곧 광풍각 툇마루가 그리워지는 봄이 시작된다.
집과 자연이 어우러진 담양 소쇄원
소쇄원 뒤로 펼쳐진 푸른 대나무밭길
푸름으로 둘러싸였다는 의미의 환벽당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