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을 잇는 조각 속 공간
건축가 출신 아티스트 두일리오 포르테의 집, 아틀리에 포르테는 그의 일상 공간을 담은 하나의 거대한 조각품이다.

정원에 놓인 두일리오 포르테의 슬레이프니르
밀라노 시내에서 리나테 국제공항을 향해 비아코렐리(Via Corelli)를 지나다 보면 그 길 한편 외진 골목 끝에 고독하게 서 있는 거대하고 낯선 목마 조형물을 마주하게 된다. 황량한 허허벌판에 섬처럼 자리 잡은 산업 지대에 등장한, 시대성과 지역성을 좀처럼 감지하기 힘든 이 목마를 어떤 여행객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이 목마의 중앙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그럴듯하다. 하지만 직접 이 조형물을 조각한 주인공이자, 그와 나란히 자리한 아틀리에에 거주하는 건축가 출신 아티스트 두일리오 포르테(Duilio Forte)가 밝히는 목마의 정체는 슬레이프니르(Sleipnir).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아버지 오딘(Odin)이 타고 다니던 명마다. 신화 속 슬레이프니르는 어떻게 현실에서 목마로, 그것도 북유럽이 아닌 이곳 밀라노에 안착하게 된 것일까?
아틀리에 포르테가 위치한 비아코렐리 산업 지대의 건축물양식. 공장처럼 일정하게 구축돼 있다.

붉은 나무 담장으로 둘러싸인 아틀리에 포르테. 스웨덴의 전통 오두막 형태를 본떴다
People: Duilio Forte
신화의 원형에서 현실의 영감을 찾다
두일리오 포르테는 1967년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하는 그는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한 이탈리아인이지만, 유년 시절부터 휴가 기간에는 어머니의 고향인 스웨덴의 숲을 찾으면서 남다른 정체성을 형성했다. 스웨덴의 풍부한 녹색 자연 속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들고 하늘에 별이 총총 떠오를 때면 어머니는 두일리오와 그의 형에게 북유럽의 신화를 들려주었다. 어린 두일리오는 전쟁의 승패를 관장하는 용맹한 신 오딘과 함께 전장을 누빈 세상에서 가장 빠른 말, 다리가 8개나 되는 전설 속 회색 명마 슬레이프니르 이야기에 순식간에 매료됐다. 인간이 사는 지상과 하늘 위 신의 세계는 물론 죽은 이들의 세계인 저승까지 누비며 온갖 괴물과 맞서 싸운 이 명마의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들은 그 어떤 신화의 내용보다 신비하고 강렬했다고. 이후 그는 줄곧 스케치북에 슬레이프니르를 그렸다고 회고한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며 슬레이프니르는 단순한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구현하고 싶은 대상으로 변했다. 그에게(물론 우리에게도) 익숙한 로마 신화 속 트로이 목마의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써, 슬레이프니르는 2차원의 스케치를 벗어나 3차원으로 구축한 거대한 목마 조형물로 실질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조형물을 구축하는 방식은 스웨덴에서 오두막을 짓는 전통 목공예 기법을 차용했다. 이 조형물을 제대로, 안전하게 짓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대학이 아닌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대학 건축과에 진학했다. 슬레이프니르가 신과 인간의 세계를 경계 없이 오갔듯 그 역시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화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북유럽과 남유럽 신화의 원형을, 과거와 현재를, 건축과 예술을, 기술과 공예를 하나로 아우르는 작업이었다. 이런 독특한 작품 세계로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밀라노 라 페르마넨테(La Permanente) 미술관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산 카를로 보로메오 대상을 거머쥐었고, 이탈리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했다.
아키조익 매니페스토 작품으로 채운 공동 작업실

각종 작품이 놓여 있는 아틀리에 복도
또한 그의 슬레이프니르는 목마에서 시작해 금속 등 다양한 공예적 소재를 접목, 점점 진화한 모습으로 2003년 스웨덴의 스투가 프로젝트(Stuga Project), 2008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등 국제적 건축·예술 행사에 초청받아 평지와 숲, 때로는 호수 위까지 그와 함께 종횡무진하며 거침없이 달려왔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09년, 두일리오 포르테는 고고학과 공상과학을 결합한 시대를 의미하는 아키조익(ArkiZoic)을 새로운 작품관으로 내세우며 성명서 격인 아키조익 매니페스토(ArkiZoic Manifesto)를 집필했다. 더불어 이제 그의 슬레이프니르는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산물이지만 가장 전통적이며 투박한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제작한 생명체로서 미래를 향해 진화하는 존재로 발전했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 철학이지만 실제로 작품이 시각적으로 쉽게 인지되고 장인적 공법, 사용자의 경험을 강화하는 측면이 시대적 관심을 끌면서 그의 활동 분야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미소니와 토즈 등 상업적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도 협업했으며, 현재는 밀라노 시의 후원을 받아 2015 밀라노 엑스포에서 아키조익 공원(ArchiZoic Park)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가상현실인 사이버 공간에서 그의 슬레이프니르를 비롯해 여러 아티스트가 구현한 전설 속 동물과 소통하는 지속 가능한 동물원 프로젝트로, 이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해체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다이닝룸. 슬레이프니르의 몸체를 활용한 컴퓨터 책상이 눈에 띈다. 조각과 컴퓨터와 의자를 일체형으로 만들었다.

미팅 룸. 그의 집을 거꾸로 걸어놓은 듯한 천장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개인 공간인 세면대 앞 데커레이션
Space: Atelier Forte
작품과 함께 진화하는 핸드메이드 공간
두일리오 포르테가 구현한 현대적 목마 슬레이프니르는 8개의 다리를 사다리처럼 타고 올라가면 스웨덴식 사우나, 개인 작업실 등이 나타나는 일종의 건축물이다. 그 옆에 자리한 아틀리에 포르테는 건축 기술을 가미한 거대한 조각에 비유할 수 있다. 작업 공방과 사무실, 피자 화덕을 설치한 주방, 다이닝 공간, 창고, 사적 공간인 침실은 물론 인턴과 직원을 위한 기숙사까지 다양한 공간이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작은 문고리부터 가구, 계단, 바닥과 벽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는 것.
도면을 그리기 힘들 정도로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각 층과 방의 높이와 단차도 각양각색이라 공예적 방식으로 공간을 쌓아 올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투박하게 얼기설기 얽힌 나무와 철골 사다리, 두 팔로 감싸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가는 기둥, 지붕과 지붕을 잇는 아찔한 외나무다리 등 일반 건축물이라기보다는 <톰 소여의 모험>에 등장할 법한 독특한 장치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몇 번을 방문해도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들고, 그가 아니면 누구라도 종종 길을 잃고 마는 공간. “일종의 조각품이죠. 아주 사이즈가 큰. 건축과 조형물의 결합에 대한 실험정신의 발로입니다.”
아틀리에 곳곳에 숨어 있는 섬세한 목공예와 금속공예의 흔적을 살펴보면 그가 상당한 시간을 이 공간을 짓는 데 투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공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1998년 형과 함께 지금의 터로 이주해 건축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말한다. 아니, 절대로 완공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틀리에 역사 속에서 쉼 없이 변화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을 ‘인공물이지만 진화하는 생명체’로 구현하는 그가 아니던가. “작업 공간 역시 변화해야, 보다 엄밀히 말하면 변화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장담할 순 없을 것 같네요.”
지붕으로 향하는 계단. 파란색 문을 열면 이보다 파란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
경계를 허무는 공간 구성
두일리오 포르테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장치는 이곳을 방문한 이들에게 예기치 못한 공간적 경험을 선사한다. 동시에 오랫동안 잊고 지낸 유년기의 감수성을 새롭게 일깨운다.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스허르의 작품처럼 다소 엉뚱한 위치에 자리 잡은 아찔한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건물의 지붕을 의자 삼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아키조익 동물 조형물 속에 파묻혀 그들이 등장하는 컴퓨터 화면 속 게임을 즐기고, 캐비닛을 열고 비밀의 문을 통과하듯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등의 경험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방문객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적극적으로 이 공간을 탐험하고 싶어진다. 이는 최근 예술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펀 하우스 포멀리즘(Fun House Formalism)’(놀이공원을 찾은 듯 관람자에게 인터랙티브한 경험을 선사하며 활동적으로 예술품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 토마스 자라체노, 카르스텐 횔러가 대표 작가)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두일리오 자신을 비롯해 모든 방문객에게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슬레이프니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신화와 현실, 과거와 미래, 건축과 조각 등 대립적 요소를 아울러 ‘경계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개인으로 또 공동체로, 다채로운 동선
아틀리에 포르테의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변화무쌍한 동선이다.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을 유도하는 여러 갈래의 동선은 공동 공간으로 가는 시간을 길게 늘이기도, 혹은 혁신적으로 단축시키기도 한다. 사적 공간과 공동 공간 사이에 호흡을 고를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한 것. 곳곳에 설치한 작은 공간에서 쉬며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고, 직진 본능을 발휘해 단숨에 타인과 교류하는 공동 공간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이곳에는 두일리오 포르테의 사무 공간과 거주 공간이 함께 있고 어시스턴트, 학생 인턴이 상시 거주하며 외부 방문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업무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동시에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배려했습니다.” 또한 정원과 이어진 공동 공간은 확장된 야외 작업실 겸 사무실로, 때론 바비큐 파티장이나 피제리아로 변모해 다양한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이처럼 한정된 공간이 보다 넓은 범주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기능적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배치한 것은 건축가 두일리오의 일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자신을 닮은 르네상스 시대 의상을 입은 초상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던 두일리오 포르테는 과거 경계를 나눠 전문화하던 영역이 이제 다시 이 시대처럼 유기적으로 통합하며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간 지리적·문화적 경계와 물리적 한계가 사회의 인식과 기술 발전으로 흐려지고 있다. 더불어 고고학과 첨단 과학, 과거와 미래, 가상과 현실이 하나 되는 현상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이런 시대에 발맞춰 자신의 작업관도 변화, 진화해온 것이라고. 슬레이프니르는 신화 속 신비로운 존재로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이제는 현실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그의 말 중 ‘과거가 된 미래, 미래가 된 과거’라는 표현이 귀에 꽂혔다. 액자 속 초상화와 그의 실제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시공의 경계를 뛰어넘는 실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그의 예술관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미로 같은 공간을 떠올렸다. 삶의 공간을 품은 건축 같은 조각, 조각 같은 건축. 집은 그곳에 사는 그를 그대로 닮았다.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글 여미영(디자이너, D3 대표) 사진 Aurora di Girola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