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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NS윤지 말고 연기자 김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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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갈증은 때론 인생을 변화시킨다. 20대에 느낀 갈증 덕에 그녀는 가수가 됐다. 30대의 문턱에선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기엔 어떤 전략이나 셈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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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 그녀를 봤다. 일요일 오후 지방 소도시에서 열린 행사장에서다. 해가 기웃했고 가랑비가 내렸다. 객석 양옆에 세운 부스들은 철수를 시작했고 관객들도 무리 지어 자리를 떠났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그녀가 무대에 섰다. 단출한 연출이었다. 스모그나 불꽃, 현란한 조명 없이(심지어 사운드도 열악했다) 백댄서 몇 명과 함께 무대를 채웠다. 객석 앞에 있던 터라 그 광경을 유심히 볼 수 있었다. 빗줄기는 점차 세지며 사선으로 쏟아졌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굴에 붙은 머리칼을 떼어내며 노래를 불렀다. 중력을 개의치 않는 듯 춤을 췄다. 난 그 장면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고 기억한다. 무대가 익숙한 것이 아니라 천연한 것. 그녀의 표정과 몸짓, 목소리가 그랬다. NS윤지는 무대 위에 서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이건 그녀의 천성과 관계있다. 본래 타고난 것이 무대와 맞았다. 그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했다.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았다. “남 앞에 서기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유행가나 안무를 연습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줬어요. 학예회나 장기자랑 같은 시간도 즐긴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니까 그런 것이 어색하거나 싫지 않았어요.” 사실 가수가 되는 것은 그녀의 옵션에 없었다. 노래와 춤을 좋아한 것뿐, 막연한 꿈조차 아니었다. 근력을 기르려 시작한 발레에 재미를 붙이며 전공은 자연스럽게 무용이 됐다. 무용수나 발레단 단원, 지도자, 선생님 등은 그녀가 떠올릴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이었다. 그러다 문득 갈증을 느꼈다. 같은 일상과 세상이지만 그녀가 변했다. 어떤 특별한 것을 원했다. 살면서 느낀 가장 강렬한 충동이었다. 갈증이 충동으로, 충동이 ‘가수가 되고 싶다’라는 구체적 문장으로 변한 뒤 그녀는 휴학하고 짐을 꾸렸다. 어떤 계획이나 믿는 구석 없이 한국으로 향했다. NS윤지는 그 무렵 마돈나의 오래전 인터뷰를 떠올렸다. “뉴욕에 왔을 때 나는 처음 비행기를 타본 것이었다. 주머니엔 단돈 35달러밖에 없었다. 그때 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살면서 내가 한 일 중 가장 용감한 일이었다.” NS윤지는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마돈나가 지었을 표정이나 생각을 상상했다. 그녀도 마돈나처럼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보다 설렘이 컸다.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 같은 건 없었어요. 오히려 데뷔가 가능할까 걱정이 많았죠. 단지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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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 들어오고 6개월 뒤 <머리 아파>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평균 7~8년씩 연습생 생활을 겪어야 겨우 그룹으로 데뷔하던 때였다. 여자 솔로 가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그녀는 표현하지만 당시 미디어는 그녀에게 ‘준비된 신인’, ‘여자 솔로 가수의 계보를 잇는 디바’ 등의 수식어를 붙였다. 어설프거나 어색하지 않은 몸짓과 눈빛, 자신감 넘치는 행동 덕분이었다. 엄밀히 말해 그녀에게 신인 시절은 없었던 셈이다. 가수로 그녀는 꽤나 주목받았다. 다소 거창한 의미의 약자 NS(New Spirit)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수가 그녀의 성공을 점쳤다. 화려한 외모와 긴 팔다리, 강렬한 눈빛과 탄탄한 안무까지. 엄정화나 김현정, 백지영을 잇는 여자 솔로 댄스 가수가 될 거란 예측이 많았다. 외적 요소만 좋았던 건 아니다. 그녀는 싱어로서도 매력적이다. 비음이 섞인 허스키한 보이스와 그루브가 느껴지는 리듬감은 EDM 기반의 그녀 노래에 썩 잘 어울렸다. 그녀의 또 다른 싱글 <마녀가 된 이유>나 박재범이 피처링한 같은 곡은 차트에서도 성공한 노래다. 그럼에도 가수로서 그녀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인터넷 유머 중에 ‘왜 뜨지 않는지 미스터리한 여자 가수 NS윤지’가 있을 정도다. 그녀는 발표 앨범의 전곡을 차트 1위부터 10위까지 올리거나 주말 예능에 겹치기로 출연한 적이 없다. 그것이 그녀의 실패를 뜻하는 걸까? NS윤지는 이제껏 14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차트 순위가 뒤바뀌고 연평균 50개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는 치열한 판에서 10년 가까이 여자 솔로 가수로 자리를 지킨 것이다. 그것은 요행이나 운, 근성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주목받은 만큼 성공하지 못한 것뿐이지 그녀의 가수 활동은 준수했고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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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난해에 8년 동안 사용한 NS윤지 대신 본명인 김윤지로 세상에 나왔다.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것이다. 그녀의 두 번째 갈증은 연기였다. 30대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배우가 되고 싶어 열병을 앓았다. 몇 번을 다잡고 추슬러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NS윤지는 새로 시작하는 것을 택했다. 천성이었던 무대를 내려오는 결정이 쉬웠던 건 아니다. “가수로서 아쉬운 부분도 많았어요. 이젠 우스갯소리로 ‘8년째 유망주 NS윤지입니다, 라고 이야기해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제 20대를 온전히 바쳤으니까. 행복했고 치열했어요. 연기에 무작정 덤벼드는 건 아니에요. 어려운 일이고, 감히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했어요. 다른 일이지만 가수를 하면서 제가 배운 것이 있거든요. 근성이나 에너지 같은 것.” 김윤지로서의 삶은 연습생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제로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매일 공부하고 작품을 보며 연기라는 실체에 다가서려고 노력 중이다. 스텝을 처음부터 다시 배운 것처럼 또박또박한 대사를 위해 발음과 발성부터 다시 시작했다. 스타로 살아온 8년을 지우고 가진 것 없는 연습생 김윤지로 되돌아간 것이다. 지난해 연말엔 작은 성과도 있었다. 상업 영화는 아니지만 독립 장편영화 (제목 미정) 로 자신의 첫 번째 필모그래피를 완성했다. 무대에 선 듯 초연하고 자연스럽게 ‘지호’라는 밝고 톡톡 튀는 20대 여자를 연기했다. 그때 자신감과 두려움을 함께 느꼈다. “연기자와 가수의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순간도 타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는 더욱 입체적이고 호흡이 길지만 크게 낯설진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메릴 스트립이나 하지원 같은 연기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닫게 됐어요. 아마 순탄치 않을 거예요. 많은 장애물을 만날 것 같아요. 그게 기대돼요.” 배우로서 김윤지의 무기는 밝은 에너지와 자연스러움이다. 화려한 외모와 달리 그녀는 꾸밈이 없다. 털털하고 수수한 민낯은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데 한결 수월할 것이다. 거기에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성실함, 그런 것이 김윤지를 하루라도 빨리 연기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 무기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최민석  스타일링 윤현진  헤어 이예슬(아우라)  메이크업 성혜(아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