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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시 한 편

LIFESTYLE

서점에서 무심코 시집 코너를 서성이게 되는 계절, 가을. 국내 출판사 세 곳의 편집자들에게 직접 사심을 담은 ‘가을 시집’을 추천받았다.

허수경,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 2016) 
이 여름의 끝이 어디쯤일까, 지난달에 접어들었을 때까지도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공기가 ‘차다’ 느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허수경 시인을 찾았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늦었다. 시인의 부고를 들었던 6년 전 10월 초입은 내게 날짜보다 계절로 감각되기 때문이다. 가을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역에는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이 모두 있지만, 모든 계절은 내 혀에 “가을의 살빛”(「호두」)으로 닿고, 내 눈가에 “낙엽을 모아 태우던 시간”으로 매캐하게 “모여들어 자욱해”(「매캐함 자욱함」)진다. 그렇게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 혼자 오래 서 있는 시인의 옆에 나란히 마음을 두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는 일은 이 짧은 가을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만 같다. 바로 지금, 이 시집을 손에 들어야 하는 이유다.
-김필균 편집장,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문학동네, 2021)
가을에는 “초가을이면 무언가를 줍고 싶습니다. 빈손끼리 마주 잡는 일은 그만하고 싶습니다”로 시작되는 서윤후 시인의 시 「눈빛수련」을 떠올리게 된다. 어쩐지 유독 헛헛하고 적적해, 무언가의 존재감 혹은 온기를 느끼고 싶은 계절이기에. 그러다가도 부재가 전해주는 내밀한 고독을 살뜰히 간직하게 되기도 한다. “슬플수록 분명하게 자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되고 싶어서 상처를 애지중지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화자처럼. 그렇다면 결국 벽을 세우고 자기 자신 안에 갇히는 것 같지만, 그 끝에서 ‘바라봄’과 ‘줍기’를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은 마음의 벽 너머의 타인을 찾아내고 있는 듯하다. 실로 이 시가 수록된 시집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는 슬픔을 아프게 곱씹어온 이가 건네는 끈질기고 다정한 안부로 가득 차있다. 가을 응달에 부는 바람이 쌀쌀하다 느낄 때, 가을볕의 온기를 품은 이 시집을 품에 들여보길.
-이재현 편집자, 문학동네 편집부

이원, 『물끄러미』(난다, 2024)
가을엔 왜 시일까. 그렇게 물을 적에 문득 떨어지는 낙엽 한 장이 있다. 그 떨어짐의 천천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일, 못 닿은 것에 닿는 일. 그것이 곧 시를 읽는 일이기도 하겠다.  이원의 <물끄러미>엔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하루에 한 꼭지의 글이 실려 있다. 그중 시가 열한 편이지만, 시가 아닌 글도 있으니 이 책을 시집이라 불러도 좋을지 잠깐은 망설이게 된다. 다만 시 창작반 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시는 어디에서 오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별걸 다 신경 써” 하고 툭 내뱉은 고 황현산 평론가의 말에서 ‘시’라는 태도를 발견하고 위로받을 때 그 형식이 무엇이건 이 글들 모두 시 곁에 나란한 일상이자 시로 들어서는 입구임을 알게 된다.  이원 시인에게 『물끄러미』는 “간섭하지 않지만 거두지 않는 시선”이며 “열기도 냉기도 아닌 자연스러움”이라 한다. 가을이 그런 것처럼. 시를 읽는 우리의 시선이 그런 것처럼.
-김동휘 책임에디터, 난다 편집부

 

에디터 손지수(프리랜서)
사진 각 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