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노래한 시
텅 빈 곳을 응시하는 시인의 말. 거기서 탄생한 풍요로움.

옛 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 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_휜 밤백석
내 몸을 지나가는 빛들을 받아서 혹은 지나간 빛들을 받아서
가을 강처럼 슬프게 내가 이곳에 서 있게 될 줄이야.
_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 강처럼 문태준
울 밖으로 홍시들이 내려와 있어도
그걸 따갈 어린 손목뎅이들이 없는 마을,
가을걷이 끝난 古西 들에서 바라보니
사람이라면 핏기 없는 얼굴 같구나
경운기 빈 수레로 털털털, 돌아오는데
무슨 시름으로 하여 나는 동구 밖을 서성이는지
_가을 마을 황지우
One more cup of coffee for the road
One more cup of coffee ’ for I go
To the valley below
_One More Cup of Coffee Bob Dylan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접시꽃은 붉은 물이 들었다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_秋日微吟(추일미음) 서정주
찢어진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나는 떠났네.
나의 외투 또한 관념적일 뿐!
시신이여, 창공 아래를 걸어가는 나는, 그대의 충복이었구나.
오! 라, 라, 내가 꿈꾸었던 것은 눈부신 사랑이었으니!
_나의 방랑 아르튀르 랭보
가을에는 정말
스쳐가는 사람도 기다리고 싶어라
가까이 있어도 아득하기만 한
먼 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_가을에 아름다운 사람 나희덕
끝내 빈손 들고 돌아온 가을아,
종이 기러기 한 마리 안 날아오는 비인 가을아,
내 마음까지 모두 주어버리고 난 지금
나는 또 그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몰라.
_가을 서한 나태주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일러스트 최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