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을 입다
멋스럽지만 쉽사리 집어 들기 어려운 가죽 의상. 가방과 신발만으로 이 멋진 소재를 경험하기엔 부족하다. 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3인이 가죽옷을 ‘제대로’ 입는 방법을 전한다. 자신감이 바탕이 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1 Saint Laurent by Hedi Slimane의 가죽 팬츠와 스웨이드 부츠, Hermès의 메도르 팔찌, Maison Martin Margiela의 블랙 라운트 니트를 입고 온 오석민 대표. 자신이 직접 만든 블랙 코트를 곁들여 도회적 룩을 완성했다. 2 H.R의 실버 뱅글과 Rolex의 에어킹은 그가 즐겨 착용하는 액세서리. 가죽의 글로시한 느낌과 메탈의 청량함이 잘 어울린다고. 3 Valentino의 심플한 스니커즈는 라이더 재킷과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4 그가 전개하는 Anotherman에서 선보이는 블랙 라이더 재킷
생각의 전환 오석민
“분명 남자에게 가죽 바지는 어려운 아이템이에요. 남들의 시선도 적당히 즐길 줄 알아야 하고요. 그래도 한번 입기 시작하면 그 매력에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는 어나더맨(Anotherma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오석민. 발렌시아가와 지방시의 VMD로 일하다 2년 전부터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해 많은 사랑을 받으며, 편집숍 쿤과 여러 백화점에 입점할 정도로 실력도, 규모도 커졌다.
인터뷰 시간. 가죽옷, 특히 가죽 바지의 매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했다. “어울리기만 한다면, 생각 외로 스타일링하기 쉬운 것이 가죽 바지입니다. 반짝이는 소재 덕에 다른 액세서리가 필요 없거든요. 매치할 아이템을 차분한 것으로 고르면 그걸로 끝이죠. 저처럼요.” 시선을 그의 몸으로 돌리자 스키니 팬츠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그랬다. 단정한 싱글브레스트 코트, 낙낙한 라운드넥 니트, 그리고 스웨이드 소재의 빈티지한 부츠를 매치했다. “여기에 좀 더 멋내고 싶다면 가죽 소재 팔찌나 스틸 소재 시계로 힘을 주세요. 쉽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가죽 팬츠를 소화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트레이닝센터를 찾는다. 물론 184cm의 훤칠한 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마스크가 가죽 팬츠를 소화하는 데 한몫하지만 말이다.
가을과 겨울에 손이 가는 가죽이라지만, 그에게는 계절에 제한이 없다. 동절기에는 라이더 재킷과 팬츠를, 더운 여름에는 얇은 가죽 소재로 만든 쇼츠를 입는다. “글로시한 가죽옷에 도전하고 싶다면 무릎 위로 올라오는 쇼츠를 추천합니다. 강해 보일 거란 걱정이 앞서겠지만, 가죽 사용이 절대적으로 작아 오히려 부담이 덜하죠. 스니커즈와 매치하면 경쾌한 룩이 완성될걸요.” 그는 이어 가죽 바지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팁을 전했다. 본인의 치수보다 한 단계 작은 걸 선택해야 한다는 것! 옷의 소재로 자주 사용하는 ‘양가죽’이 비교적 쉽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몸에 완벽하게 피트되는 것이 가죽의 매력인데, 축 늘어진 히프를 보는 것만큼 곤욕스러운 건 없어요. 처음엔 조금 불편하더라도 꽉 끼는 걸 선택해야 합니다.” 재킷 스타일링 노하우도 더했다. 할리데이비슨 오너가 아닌 이상 온몸을 가죽으로 감싸지 말고, 구두보다는 스니커즈가 더 잘 어울린다. 또 블레이저 형태 가죽 재킷은 피하라고 충고했다. 양질의 가죽으로 만들었다 한들 결코 고급스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가죽 바지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룩을 자연스레 소화하는 그의 모습에 ‘자신감’이 배어 있다.
1 3.1 Phillip Lim의 레더 스웨트 셔츠에 Céline의 미디 레더 스커트를 매치한 송지후 대표. 포인트 아이템으로 신은 레오퍼드 무늬의 록 스터드 힐 Valentino,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은 Cartier 2 블랙 컬러와 메탈 장식의 조화가 시크한 탕페트 백 Delvaux 3 심플한 룩에 즐겨 착용하는 과감한 디자인의 세르펜티 투보가스 브레이슬릿 Bulgari 4 뱀이 똬리를 튼 모양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링 Minetani 5 이번 시즌 가장 관심이 가는 아이템인 건축적 디자인의 사이하이 부츠 Alexander Wang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송지후
꽃집 아가씨가 예쁘다는 노랫말은 사실이었다. 수려한 외모, 화사한 미소로 촬영 스태프의 이목을 끈 송지후 대표는 서래마을에 위치한 플라워 숍, 드 테이블 플라워를 운영 중이다. 한국 무용을 전공한 그녀가 플로리스트의 길에 들어선 것은 순전히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미국 유명 플로리스트 케빈 리(Kevin Lee)의 저서를 통해 꽃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결국 LA 유학길에 올라 그에게 플라워 디자인을 배우며 플로리스트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만지는 그녀는 원래부터 패션, 인테리어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다. 무엇보다 예쁜 것이 좋고, 이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기에 지금 이 순간이 무척 행복하다.
하루의 일과를 꽃 시장에서 시작하는 그녀는 요즘같이 쌀쌀한 날씨엔 레더 팬츠를 즐겨 입는다. 여기에 편안한 맨투맨과 슬립온을 매치하면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이 완성되기 때문. “평소 과하게 꾸민 듯 보이는 스타일은 좋아하지 않아요. 직업적 특성상 몸을 움직일 일이 많기 때문에 캐주얼한 룩을 즐기는 편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편안한 스타일일지라도 갖춰 입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은 싫어요. 캐주얼한 아이템과 포멀한 아이템을 믹스 매치하거나, 독특한 디테일을 가미한 아이템으로 스타일에 힘을 줘요.” 특히 가죽 소재 옷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룩에 매치하면 텍스처 특유의 느낌이 스타일리시함을 더해주어 가장 즐겨 입는 아이템이다. “지금 옷장에 있는 가죽 재킷만 해도 열 벌은 넘어요. 10년 전에 산 버버리의 크림색 바이커 재킷을 지금도 갖고 있어요. 그뿐 아니라 레더 팬츠, 쇼츠, 스커트, 원피스까지, 가죽 소재로 만든 모든 아이템을 갖고 있다 해도 될 것 같아요. 가을과 겨울 시즌에는 가죽 없인 못 살 정도니까요.” 가죽 의상은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입을 수 있는 블랙, 화이트, 베이지, 그레이 등 무난한 컬러의 아이템을 구매하지만 여기에 독특한 디테일이나 디자인을 가미한 것을 선호한다. “오늘 입은 레더 스웨트 셔츠도 마찬가지예요. 얼핏 보면 블랙 컬러의 캐주얼한 아이템이지만, 앞면이 가죽 소재여서 독특한 느낌을 주죠. 슬리브의 지퍼 디테일은 트렌디한 감각을 더하고요.”
플라워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꽃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는 그녀. 스타일링의 기본은 다양한 제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즐기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1 Marni의 브라운 컬러 가죽 코트, Naked & Famous의 데님 팬츠와 Christian Louboutin의 프린지 부츠를 매치했다. 2 심플한 스퀘어 프레임 선글라스는 Creator 제품 3 컬러풀한 Marni 가죽 재킷으로 룩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4 깔끔한 가죽 소재 스니커즈는 Golden Goose Deluxe Brand 제품 5 Couronne의 쎄 콰트레 퀼팅 백. 클래식한 디자인은 데님 팬츠부터 슬림한 원피스까지 두루두루 어울린다.
컬러는 나의 힘 석정혜
간결할 것, 시간이 흘러도 멋스러울 것, 무엇보다 컬러가 주는 묘미를 담을 것! 뭇 여성에게 사랑받는 가죽 브랜드 쿠론의 석정혜 이사가 지켜온 패션 철학이다. “가죽 하면 흔히 터프한 바이커 재킷 혹은 블랙 아이템을 떠올리더군요. 개인적으로 이런 것은 전혀 선호하지 않습니다.” 오늘 그녀는 코쿤 실루엣의 너트 브라운 컬러 가죽 코트를 입었다. 선명한 색감으로 물들인 가죽의 매력에 푹 빠진 덕분에 옷장엔 형형색색의 가죽 제품이 즐비하다. “컬러풀한 가죽 의상은 여성스러워요. 무엇보다 터프하지도, 지나치게 사랑스러워 보이지도 않죠.” 가죽 의상이 자칫 ‘세 보일까’ 걱정하는 이들에게 석정혜 이사의 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여유로운 갈색 가죽 코트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동시에 아주 고급스러웠으니. “블랙 컬러만이 클래식의 정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컬러 팔레트의 범위만 넓혀도 훨씬 재미있는 스타일을 즐길 수 있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자연스레 청량하고 세련된 색감의 쿠론 백이 떠올랐다. 가죽 잡화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지라 가죽에 관해선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가 아닌가! “가죽을 만지는 게 제 일이잖아요. 브랜드를 런칭한 지 6년, 더욱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최근 쿠론 가방을 위한 소재를 단독 생산하며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그녀에게 좋은 가죽 제품을 선별하는 법을 물었다. “부드러운 질감은 당연하고 결정적으로 봉제 상태가 중요해요. 전 쇼핑하러 가면 물건을 안팎으로 뒤집어봐요. 직업병처럼요.(웃음)” 쿠론 가방에선 그 흔한 브랜드 로고도, 트렌드를 가득 담은 요소도 찾아볼 수 없다. 석정혜 이사 스스로 특정 브랜드의 심벌이나 시그너처를 투영하길 꺼리기 때문. 옷을 좋아해서 디자이너가 되었고 쇼핑도 즐기지만, 패션에 끌려다니고 싶진 않단다. 가죽 코트를 스타일링하는 방식 역시 간결하다. 선선한 가을에는 안에 반팔 티셔츠를, 조금 쌀쌀하다 싶을 땐 심플한 니트에 머플러를 두르는 정도. 하지만 소재의 특징을 정확하게 알고 입은 듯한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아마도 트렌드에 목매는 대신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룩을 오래도록 고민해온 덕분일 터. 여자들이 원하는 요소를 모두 갖춘 가방을 탄생시킨, 딱 석정혜 대표다운 스타일이다.
에디터 이현상 (ryan.lee@noblesse.com) 이혜미 (hmlee@noblesse.com) 한상은 (hans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