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더하는 미술
공간을 미술 작품으로 채우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좋은 작품을 고를 안목이 없어서, 신경 쓸 시간이 없어서, 작품을 조화롭게 배치할 자신이 없어서. 오스트리아의 알렉산드라 섀퍼(Alexandra Schafer)는 이 점에 주목했다. 지난 2014년 아트 컨설팅 & 컨시어지 회사 벨베누아르 (Velvenoir)를 설립, 세계 각국의 클라이언트를 대신해 그들의 호텔과 리조트, 레지던스에 미술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공간에 알맞은 미술 작품을 배치하는 일은 심미성을 더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인테리어 회사 슈타잉거의 빈 쇼룸 전경.
벨베누아르는 아트 컨설팅과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아트 컨시어지’란 말을 잘 안 씁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트 컨시어지는 무엇인가요?
아트 컨설팅 회사는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수수료를 받고 투자가치가 있는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작품의 진위 감정 필요성 여부와 적정 가격대를 판단하고, 작품의 설치와 전시를 담당하기도 하죠. 하지만 벨베누아르는 그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바로 브랜딩과 마케팅 서비스죠. 벨베누아르의 클라이언트는 부동산 개발업자부터 호텔 오너, 인테리어 디자이너까지 다양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공간에 미술을 더해 심미적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그 공간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온·오프라인 홍보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트 컨시어지는 사후 관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이는 궁극적으로 클라이언트의 자산 가치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당신은 전문적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호텔 경영(hotel management), 이벤트 관리(event management) 같은 분야를 공부했는데, 어떻게 아트 컨설팅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나요?
미술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항상 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호주 시드니의 호텔 학교 ICMS를 졸업한 후 앨리스스프링스란 작은 도시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몇몇 원주민 미술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유니크한 작품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그 여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아트 컨설팅 회사는 많습니다. 그에 비해 고객은 한정적이고요. 사업을 구상하는 것과 실행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잖아요. 레드오션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선 어떤 확신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열정만으로 시작한 일은 아닙니다. 호텔 경영을 공부하고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공간을 감각적으로 꾸밀 줄 아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들에게 미술 전문 지식과 경험을 아웃소싱할 수 있다면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죠. 동시에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문 지식이 필요할 뿐 아니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디자이너와 소통하고, 한편으론 세계 각지에서 좋은 작품을 수급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협업의 개념을 생각해냈습니다. 벨베누아르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본사가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아트 컨설턴트를 영입해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1 올리비아 스틸(Olivia Steele)의 네온사인 작품 ‘Sold’.
2, 3 LA 베니스 지구에 위치한 레지던스 쇼룸 프로젝트 전경.
프로젝트는 보통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나요?
모든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와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이들의 요구 사항과 비전 그리고 현실적 예산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죠. 어떤 컨셉으로 공간을 꾸밀지, 무슨 작품을 어떻게 배치할지 수차례 아이디어를 공유합니다. 모든 사안이 결정되면 작품을 공수해 운송하고, 현장에 설치합니다. 세세한 업무는 현장에 나가는 아트 컨설턴트가 담당하고요. 그다음 단계는 첫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말씀드린 것처럼 마케팅과 브랜딩이죠.
클라이언트를 비롯해 여러 담당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죠.
현재 유럽과 미국, 중동 등 세계 각국에서 동시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차로 인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작년에 미국 LA에서 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LA와 오스트리아는 9시간 차이가 나거든요. 제가 하루 업무를 마칠 즈음에 LA에선 일이 시작되는 거죠. 마침 그 프로젝트는 2개월 만에 완료해야 했기에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됐고, 그 때문에 꽤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4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선 클라이언트와의 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
5 미술 작품과 가구가 어우러진 슈타잉거의 빈 쇼룸.
LA 프로젝트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LA 베니스 지구에 위치한 레지던스 쇼룸을 꾸미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저와 LA 지역을 담당하는 아트 컨설턴트 알렉산드라 레이(Alexandra Ray)가 담당했죠. 클라이언트와 계약했을 땐 건물이 거의 완공된 상태였고, 인테리어 컨셉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어요. 우리가 할 일은 그 컨셉에 맞는 작품을 찾는 거였죠. 우리는 베니스의 여유로운 현지 분위기에 맞는 작품, 예컨대 제임스 포셴(James Porschen)의 사진과 요시모토 히로코(Hiroko Yoshimoto)의 추상 회화, 페르난도 마스트란젤로(Fernando Mastrangelo)의 조각 등을 선정했습니다. 이를 공간에 적절히 설치했을 뿐 아니라 프라이빗한 이벤트를 주관하고, 공간을 홍보하는 역할까지 맡았죠.
부티크 호텔, 럭셔리 레지던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공간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를 것 같은데요.
호텔 프로젝트의 핵심은 투숙객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겁니다. 공간의 철학에 부합하면서도 차별화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해야 하죠. 이를 위해 비디오, 조각, 사진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선정하는 편입니다. 레지던스를 비롯해 부동산 개발업체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워요. 클라이언트마다 요구 사항이나 예산이 천차만별이니까요. 앨릭스 카츠(Alex Katz), 로이 릭턴스타인(Roy Lichtenstein), 앤디 워홀(Andy Warhol)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부터 떠오르는 신진 작가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제안합니다. 컨셉에 따라 이 둘을 적절히 섞을 때도 있고요.
공간과 미술의 조화를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기대한 대답이 아닐 수 있지만, 결국 클라이언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합니다. 흥미로운 건 수많은 작품을 보유한 컬렉터든, 이제 막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초심자든 그들의 취향은 이미 확고합니다. 다만 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 본인들도 잘 모를 때가 있죠. 그들이 사는 공간의 인테리어를 보는 것도 그들의 취향을 알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화이트 큐브가 아닌 장소에서 미술 작품을 마주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호텔과 같이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작품을 보고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 프로젝트는 성공한 게 아닐까요? 예컨대 우리는 작년에 인테리어 회사 슈타잉거(Steininger)의 빈 쇼룸을 꾸미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쇼룸에 설치한 작품 중엔 중국의 회화 작가 천핑(Chen Ping)의 것도 있었죠. 사람들이 모던한 공간에 매치한 이국적인 작품을 인지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제겐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벨베누아르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할 일이 많습니다. 아트 컨설턴트를 추가로 영입하고, 회사 자체의 아트 인벤토리도 늘려야 해요.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마케팅과 브랜딩을 담당하는 The V Agency, 클라이언트의 미술 거래를 담당하는 Blue Chip Art Brokerage 등 사내 부서의 역할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벨베누아르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겁니다. 미술에 관한 클라이언트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적이면서도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말이죠.

6 벨베누아르의 대표 알렉산드라 섀퍼.
7 프랑스의 사진작가 제레미 르누아르 (Jeremy Lenoir)의 작품 ‘Cadre’.
알렉산드라 섀퍼
잘츠부르크 호텔관광대학교(Institute of Tourism and Hotel Management – Klessheim, Salzburg), ICMS(International College of Management Sydney)에서 호텔 경영과 이벤트 관리를 전공했다. 2014년 아트 컨설팅 & 컨시어지 회사 벨베누아르를 설립한 이래,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