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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르리 라파예트의 새로운 문화 공간

ARTNOW

문화 재단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의 새로운 공간 오픈 소식,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프랑스 메세나법의 힘.

마레 지구에 문을 연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

미술, 디자인, 패션을 아우르는 종합예술 실험의 장,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
파리 오스만 거리에 위치한 백화점 갈르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는 연일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의류와 액세서리, 식료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브랜드의 물품을 살 수 있는 쇼핑 천국이기 때문이다. 이 백화점의 문화 재단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Lafayette Anticipations)’의 새로운 공간이 지난 3월 파리의 예술 중심가 마레지구에 문을 열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가 과거 여학교로 쓰인 건물을 개조해 자연광이 비치는 U자 모양의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시켰다. 7층 건물의 내부에는 전시장을 비롯해 카페, 서점과 액세서리 부티크가 들어섰다.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은 그 이름부터 남다르다. 일반적 문화 재단에는 ‘재단’을 의미하는 ‘foundation’이란 단어가 붙기 마련인데, 이들은 ‘기대, 예감, 상상’이란 의미의 ‘anticipation’을 사용했다. 여기엔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은 재능 있는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그 결과물을 소개하는 창조의 장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힌 갈르리 라파예트의 상속자이자 문화 재단 대표 기욤 우제(Guillaume Houze)의 바람이 담겼다.

갈르리 라파예트의 상속자 기욤 우제.

기욤 우제는 파리의 현대미술 행사라면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 소문난 미술 애호가로 2013년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을 설립하기 전부터 다양한 예술 지원 사업을 벌여왔다. 그중 대표적인 활동이 파리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아트 페어 FIAC에 2009년부터 운영 중인 ‘라파예트 섹터(Lafayette Sector)’다. 자체 심사를 거쳐 선정한 신생 갤러리 10개에 부스비 할인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젊고 유망한 신생 갤러리 소속 작가를 FIAC에 소개하겠다는 속뜻이 담겼다. 또 그는 매년 갈르리 라파예트에 현대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2016년에는 양혜규 작가를 초대해 그녀의 작품으로 쇼윈도를 장식한 것은 물론, 백화점 중앙의 돔 건축양식 아래 한국적 이미지를 전사한 커다란 버티컬 블라인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6년 갈르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설치한 양혜규 작가의 작품.

3월 10일부터 4월 30일까지,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은 개관전으로 미국 작가 루츠 배커(Lutz Bacher)의 < The Silence of the Sea >를 택했다. 그녀는 사진, 조각,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인간의 권력과 폭력의 문제를 탐구해온 작가로, 전시에선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영상 작품을 공개했다. 관람객이 새 건축물과 작품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배려한 듯 전시장을 동영상과 음향으로 가득 채웠다.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의 전시와 행사는 갈르리 시파스(Galerie Xippas)와 프라크 샹파뉴-아르덴(FRAC Champagne-Ardenne)의 디텍터로 활동한 재능 있는 큐레이터 프랑수아 캥탱(Francois Quintin)이 담당한다. 앞으로 현대미술뿐 아니라 패션, 디자인, 무용 분야의 다양한 전시와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하니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의 향후 활동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루츠 배커의 개인전 < The Silence of the Sea > 전경.

문화 강국 프랑스의 힘, 메세나법
문화 재단을 설립한 건 갈르리 라파예트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메이저 유통업체 르클레르(E.Leclerc), 부동산 개발업체 에메리주(Emerige), 발렌타인 위스키와 앱솔루트 보드카를 생산하는 양조업체 페르노리카(Pernod Ricard) 등도 최근 몇 년 사이 문화 재단을 설립해 프랑스 미술계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케링 그룹의 설립자 프랑수아 피노(Francios Pinault), LVMH 그룹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의 미술관 건립을 비롯한 천문학적 투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해진 데에는 2003년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장자크 아야공(Jean-Jacques Aillagon)의 공이 컸다. 기업이 예술 지원 활동에 지출한 액수의 60%에 대해 총매출액의 0.5%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메세나법을 제정했기 때문. 덕분에 2004년 10억 유로(약 1조3000억 원)였던 문화 예술 분야 기부액이 2012년 30억 유로(약 4조 원)로 3배 정도 증가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프랑스에선 기업이 문화재를 사서 국가에 기증하거나 국가기관의 문화재 구매 비용을 지원하면 해당 금액의 90%를 세액공제하고, 전문가와 학생에게 빌려주기 위해 기업이 구입한 악기에 대해서도 60%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 프랑스의 메세나법에 자극받아 2013년 ‘문화 예술 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긴 했지만, 기업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 세제 혜택 부문이 개정되지 않아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
메세나법을 제대로 갖춘다면 기업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기업의 이미지 제고 효과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기업의 예술 지원은 기본적으로 미술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애정과 열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의 도약은 개인과 기업, 정부가 한마음이 됐을 때 이루어진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최선희(초이앤라거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