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미래
세계적 위작 미술품은 대체 어떻게 감정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계속 등장할 위작 미술품은 또 어떻게 감정해야 하는 걸까? 미래의 감정에 필요한 어떤 과학적 . 인문학적 사고에 대해 알아봤다.
진품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위작 대우를 받아온 얀 페르메이르의 ‘버지널 앞의 젊은 여인’
미술 작품을 살 때 작품의 진위 여부는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의심스러워도 확인할 방법이 없고, 믿을 만한 곳에서 샀다 해도 그게 진품일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믿을 만한 갤러리에서 위작을 팔거나, 심지어 전문가가 모인 미술관에서 위작을 전시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위작 스캔들 중 가장 대표적 사례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얀 페르메이르의 작품에 얽힌 해프닝이다. 1945년 무명 화가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이 페르메이르의 위작을 만들어낸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며,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오랫동안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훗날 페르메이르가 세상에 남긴 36개 작품 중 하나로 밝혀진 ‘버지널 앞의 젊은 여인’의 경우 크기가 너무 작아(25×20cm) 진품 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1993년 소더비의 고전 작품 전문가 그레고리 루빈스타인(Gregory Rubinstein)이 처음으로 이 작품이 진품이라고 주장했고, 1995년부터 런던 대학 교수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전문가들이 종합적 검증을 거쳐 이 작품이 진품임을 밝혀냈다. 당시 이들은 페르메이르의 기존 작품을 낱낱이 분석해 일련의 ‘기준’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가령 ‘버지널 앞의 젊은 여인’의 진품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이들은 크기가 비슷한 페르메이르의 또 다른 작품 ‘레이스를 뜨는 여인’(23.9×20.5cm)을 가져와 비교했고, X-ray로 ‘버지널 앞의 젊은 여인’을 그린 캔버스와 구성 상태 그리고 씨실과 날실의 가닥이 몇 개인지를 진품 판별 기준으로 삼았다. 또 컴퓨터로 기존 작품을 스캔해 캔버스 천의 구조가 어떠한지도 파악했다. 이는 인간의 신체를 열 스캔했을 때 거대한 색채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일련의 과학적 검증 방식은 작품 표면의 유사성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속성을 통해 작품의 원작과 위작을 판별할 수 있게 했다. 결국 그레고리 루빈스타인과 그의 연구팀은 10여 년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버지널 앞의 젊은 여인’이 페르메이르가 평소 사용한 물감과 같은 물감으로 그린 것이며, 캔버스의 종류와 크기, 비율이 페르메이르의 다른 작품과 유사하다는 판단에 근거해 이 작품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야말로 과학적 검증과 인문학적 연구의 결합으로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단한 셈이다.
캔버스 등 작품의 구성 요소를 위작 판별의 기준으로 삼는 건 현대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데이미언 허스트의 스핀 페인팅 위작을 판별했을 때도 캔버스 천과 나무 틀이 첫 번째 의심 대상이었다. 플로리다 출신 목사 케빈 서덜랜드(Kevin Sutherland)는 악명 높은 위작자 빈센트 로프레토(Vincent Lopreto)에게 산 데이미언 허스트의 스핀 페인팅 위작을 소더비 경매에 내놓았다. 하지만 소더비는 목사가 내놓은 작품을 미심쩍게 여겨 데이미언 허스트의 스튜디오에 감정을 의뢰했다. 그러자 스튜디오는 작품과 함께 제시한 보증서가 자신들이 발행한 것이 아니며, 작품에 많은 결점이 있는 것을 근거로 위작으로 판명했다. 그들은 해당 작품의 캔버스 프레임이 매우 저렴한 제품인 데다 캔버스를 고정하는 방식이 다른 점, 그리고 자신들이 사용하는 인장과 해당 작품의 인장이 다른 점을 위작 판별의 포인트로 삼았다.
왼쪽부터_ 지난봄 뉴욕 소더비 경매에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인 사진 속 ‘스핀’ 페인팅의 위작이 등장해 논란이 일어났다, 앞으로 중국 미술품 감정에 더 힘쓰겠다는 본햄스 아시아의 대표 콜린 시프
영국의 경매 회사 본햄스도 역대 최고 위작자로 알려진 그린헐(Greenhalgh) 가족의 범죄를 최초로 밝혀낸 정밀한 작품 감정으로 유명하다. 부모와 형제로 이루어진 이들 위작자 집단은 1986년부터 2006년 사이 고미술부터 고갱 등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작을 생산해 팔아넘겼다. 심지어 대영박물관도 그들의 위작을 알아보지 못하고, 기원전 600년 세나케리브 왕궁에서 출토됐다는 아시리아의 부조 한 쌍 일부를 구매하려 했을 정도다. 2005년 그중 하나가 본햄스에 위탁되었을 때 앤티크 컨설턴트 리처드 폴키너(Richard Falkiner)가 위작임을 단박에 알아보는 바람에 그린헐 가족의 20여 년에 걸친 위작 범죄는 막을 내리게 됐다. 폴키너는 단순히 ‘안목’으로만 그들이 내놓은 돌이 고대의 것이 아님을 알아냈다. 대영박물관에 있던 기존 컬렉션과 비교해 그것이 1991년 출판된 책 한 권을 참고해 만든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한편 본햄스는 위작 검증을 철저히 하기 위해 2011년 영국의 크랜브룩 대학, 크랜필드 대학과 체계적 협력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크랜브룩 대학의 고고학 및 과학 분석 분야 전문가 앤드루 쇼틀랜드(Andrew Shortland) 박사는 이와 같은 협력이 장기적으로 예술적 . 역사적 . 과학적 오브제로까지 발전해 미술품 감정의 의미 있는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최근 미술 시장의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미술,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왕실 도자기를 제대로 검증하기 위한 특별 조치다. 본햄스 아시아의 대표 콜린 시프(Colin Sheaf)는 이 프로젝트를 미술 시장에 과학수사(forensic science)를 적용한 대표적 사례로, 미술 시장에 몸담은 지난 30여 년의 역사 중 가장 대단한 변화로 평가했다. 국내에서 현재 미술품 감정은 주로 한국고미술협회나 한국화랑협회에 속한 갤러리 대표나 교수들이 맡고 있다. 산술적으로 100~200명 안팎의 감정가가 수백 . 수천 명의 작가와 수만 점의 작품 감정을 맡는다. 이는 상식적으로 절대로 부족한 수다. 또한 미술품 거래가 늘면서 진품 확인을 위한 합리성이 필요한데, 지금 국내 미술품 시장에서는 ‘과학’은커녕, ‘아니면 말고’ 식의 비합리적인 감정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2007년 박수근 작가의 ‘빨래터’ 위작 논란은 국내 미술품 감정 시스템의 부재와 총체적 난맥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내에서 과학적 감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술품 시장의 풍토부터 과학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사실 세상엔 아직 위작 미술품 분별에 관한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술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적 감정을 미술품 진위 판단의 ‘결정적 증거’로만 보지 않는 이유다. 한 예로 미술 작품 검증으로 유명한 미국의 아트 익스퍼츠(Art Experts)는 X-ray 촬영 등 과학적 실험에 이미 수만 달러를 지불하고도 여전히 작품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해 찾아오는 고객이 상당수라며, 미술 작품의 진위 판별이 종합적 과정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X-ray나 적외선 감지기 등의 과학적 수사 방법이 작품 검증을 돕는 첨단 기술인 것은 틀림없지만, 결코 ‘실험실’에서 미술의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순 없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과학적 분석 방법은 분명 작품의 진위 판명에 도움이 되지만, 그러한 분석 이전에 철저한 인문학적 검토에 따라 비교 대상과 범위를 선정해 미술품 진위를 판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과학을 등에 업은 인문학적 분석의 발전은 앞으로 미술품 수복과 감정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