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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고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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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아티스트 릴리베트 쿠엔카 라스무센은 인종, 문화, 성, 정체성 등을 주제로 매번 관람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란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통해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릴리베트 쿠엔카 라스무센
Lilibeth Cuenca Rasmussen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Afghan Hound’는 검은 털로 만든 의상을 활용해 각기 다른 성을 표현한 퍼포먼스다.
ⓒ Anders Sune Berg

코펜하겐에 거주하며 북유럽을 기반으로 퍼포먼스와 비디오 작업을 하는 릴리베트 쿠엔카 라스무센(Lilibeth Cuenca Rasmussen)은 덴마크와 필리핀 혼혈로, 마닐라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덴마크로 이주했다.
작품에 상이한 두 문화의 차이를 드러내거나 인종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은 곧 그 자신을 둘러싼 배경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2006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전시한 비디오 작품 4점을 감상한 관람객이라면 아마 영상과 음악의 기괴한 만남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Holy Wood’는 필리핀의 종교의식을 담은 영상에 반종교적인 메릴린 맨슨의 음악을 사용해 이미지와 사운드의 불일치를 제시했다. 그녀의 라이브 퍼포먼스는 이보다 더 강렬하다. 가장 잘 알려진 ‘Afghan Hound’는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덴마크관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검은 털로 덮인 의상을 뒤집어쓰고 등장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시각적 압도감을 선사했다. 작업을 하면서 늘 다음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하는 릴리베트 쿠엔카 라스무센의 퍼포먼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중이다. 독특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기도 하고, 진흙 속에 장시간 죽은 듯 누워 있거나, 자신의 신체 곳곳에 전자장치를 붙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등 과감한 시도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직접적인 ‘퍼포먼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Gaia #1’를 공연 중인 릴리베트 쿠엔카 라스무센
ⓒ Natascha Thiara Rydvald

2013년 덴마크 왕립 극장에서 공연한 ‘Gaia #1’의 한 장면
ⓒ Hanne Budtz-Jørgensen

당신의 첫 번째 퍼포먼스가 궁금하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2005년에 작업한 ‘Absolute Exotic’이다. 아트 딜러인 비르기테 시르크호프(Birgitte Kirkhoff)가 자신의 갤러리 시르크호프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공연해보라고 제안한 것이 그 시작이다. 갤러리 옆에 있는 큰 차고에서 이벤트를 펼쳤고, 500여 명의 관중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 긴장되진 않았다. 그다음 해에 덴마크 국립 미술관에서 선보인 ‘The Ego Show in the X-Room’은 가사를 직접 쓰고 퍼포먼스를 위해 음악과 의상을 새롭게 만드는 등 여러 가지 구성 요소에 신경 썼는데 이 과정을 통해 스타일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당신의 퍼포먼스에는 다양한 의상과 재료가 등장한다. 주로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가? 퍼포먼스에서 의상은 관람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살아 있는 조각품이나 다름없다. 2007년부터는 비디오 작업을 부차적으로 하고, 퍼포먼스에 온전히 몰두했다. 자연히 공연 시간이 점차 길어졌고,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퍼포먼스 도중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쉽게 옮겨갈 수 있는 의상을 만들었다. 한 겹을 벗기면 또 다른 의상이 나오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한 평론가는 2008년 공연한 ‘Mis United’를 두고 ‘정체성 벗기기(identity stripping)’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내 퍼포먼스에 관한 완벽한 묘사라고 생각한다. 또 2013년 시작한 ‘The Gaia’ 시리즈에서는 퍼포먼스 현장과 연관된 재료를 사용했다. 예를 들면 ‘Gaia #1 Sorø, Denmark’에선 초크 파우더, 우유, 커피, 카네이션 등을 사용했고 ‘Gaia #2, Manila’에는 필리핀 북부의 피나투보 산에서 가져온 화산석을 비롯해 큰 수박과 바나나잎, 코코넛 껍질 등이 등장한다.

텍스트, 의상, 소품, 음악 등 퍼포먼스에 필요한 요소를 직접 제작하는가? 많은 부분에서 협업이 필요한 일인데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하다. 퍼포먼스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고,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일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팀은 아니다. 각 작품마다 컨셉에 따라 작곡가, 의상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등 각기 다른 사람과 작업한다. 나는 그들에게 내 머릿속에 개념으로 존재하는 작품의 컨셉을 해석하고 거기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하도록 한다.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이런 아이디어에 자극을 받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했으면 한다.

‘Body Compositions’는 관람객이 당신 몸에 부착된 장치를 누르면 소리가 나고 그것이 곧 사운드 퍼포먼스가 되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이처럼 관람객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기도 하는데, 사전에 작품 정보를 어느 정도 제공하는 편인가? 공연에 따라 다르다. 설명하는 것에 개의치 않지만 만약 관람객 참여를 이끌어내는 작업이라면 사전에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 게 낫다. 그래야 사람들이 작품을 볼 때 예기치 못한 장면을 통해 즉각적 인상을 받고 더 많을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공연한 ‘Mikado’는 무용수와 관람객이 함께 게임을 하는 형식으로, 관람객 참여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작품이었다. 그래서 퍼포먼스를 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가장 두려운 것은 ‘무반응’이다. 운 좋게도 ‘Mikado’를 처음 공연한 곳이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였다. 참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브라질 사람들 덕분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진행됐고, 에너지가 충만해져 진정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나는 자신을 내보이기를 망설이는 소심한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때 훨씬 예민해지는 편이다.

관객 참여가 중심인 퍼포먼스 ‘Mikado’의 2015년 리우데자네이루 공연
ⓒ Frederico Pellachin

마닐라에서 공연한 ‘Gaia #2’. 퍼포먼스에 지역적 특색이 드러나는 재료를 사용했다.
ⓒ Martin Vidanes

퍼포먼스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가 관람객에게 다른 의도로 전달되거나 혹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는가? 당신을 놀라게 한 관람객의 반응은 없었나?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많다. 2014년 코펜하겐의 니콜라이 아트센터에서 ‘Lucy’를 공연했을 때도 그랬다. 그곳에서 나는 5시간 동안 진흙 속에 나체로 누워 있었다. 관람객이 옆에서 촛불을 켜거나 점토로 형체를 만드는 식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나를 진흙 속에 묻기 시작했고, 숨 쉬지 못하게 얼굴을 덮어버릴 것 같았다. 결국 그 남자가 포기하고 진흙 더미를 내 얼굴 옆에 던져버렸는데, 그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예로 공공장소에서 ‘Mobile Mirrors’를 공연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웃으며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걸 느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Afghan Hound’를 선보였을 때는 4일 내내 수많은 관중이 몰렸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없는 퍼포먼스였지만 나는 그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런 영향력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Afghan Hound’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덴마크관에서 당신이 펼친 독특한 라이브 퍼포먼스는 개막일에 있었던 가장 강렬한 퍼포먼스로 꼽힌다. 이 퍼포먼스는 어떻게 구상했나? 당시 베니스 비엔날레 덴마크관의 전시 주제인 ‘Speech Matters’는 언론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 주제에서 영감을 받아 언론의 자유가 없는 국가에 사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다. ‘Afghan Hound’에서 나는 아프가니스탄을 상징하는 4명의 다른 페르소나를 내세웠다. 여기서 내 역할은 언어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성적 표상과 성 문제는 내 모든 작업에서 중요한 주제다. ‘Afghan Hound’에서 그 주제를 명확히 표현했고, 2012년 북유럽 사회의 남성성 억압을 다룬 ‘The Instrumental Man’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들이 경주하며 승부를 겨루는 아프가니스탄의 하운드 레이싱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의상은 검은 털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을 뜻한 것인가? 검은 털은 섹슈얼리티를 상징하고 남성, 여성, 크로스젠더 등 다양한 성별을 나타낸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조사하면서 ‘개 같은 인생’이라는 표현을 떠올린 순간이 있었다. 불행한 인생이라는 의미인데, 그 순간 아프간 하운드 레이싱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어떤 의상을 입어야 할지 확실해졌다.

‘Being Human Being’에서 퍼포먼인 릴리베트 쿠엔카 라스무센이 진흙 속에 나체로 누워 있다.
ⓒ Frida Gregersen

2016년 5월에 공연한 ‘Body Compositions’. 몸에 전자장치를 부착해 신체를 하나의 기구로 삼은 작업이다.
ⓒ Frida Gregersen

퍼극장이나 공공장소 등 갤러리를 벗어난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종종 하는 편인가? 퍼포먼스가 열리는 ‘장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나는 화이트 큐브 밖에서 아주 많은 퍼포먼스를 했다. 최근에는 우리 동네에서 사전 공지 없이 ‘Mobile Mirrors’를 선보였는데 즐거웠다. 대지미술제의 일환으로 숲 속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는데,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다. 갤러리를 벗어난 이런 작업이 한편으론 위험하면서도 퍼포머로서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을 수용하는 계기가 된다.

퍼포먼스는 몸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순간은 없었나? 몇 번 있었다. ‘Lucy’가 내 퍼포먼스 중 가장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추운 11월에 5시간 동안 땅속에 있으면서 몸이 얼었고, 그날 이후 한동안 고생했다. 가만히 침묵 속에 누워 있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당신이 연기한 모든 캐릭터에 기본적으로 당신 자신이 반영되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캐릭터에 스스로를 투영하기도 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남겨두기도 한다. ‘Afghan Hound’에서 내가 노래하는 네 가지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지만 내 몸은 그들을 표현한다. 따라서 나는 덴마크-필리핀 혈통의 아티스트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춤추는 소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The Instrumental Man’의 경우, 여자가 남자를 표현함으로써 작품에 또 다른 층위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이 작품으로 젊은 남자 관람객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내가 남성들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느 예술 장르와 다른 퍼포먼스만의 장점이 있다면 뭘까? 퍼포먼스의 강점은 그것의 직접성이라고 생각한다. 대립적이고 직선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면서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매체다.

2013년 마닐라의 한 마켓에서 펼친 퍼포먼스 ‘Mobile Mirrors’
ⓒ Martin Vidanes

한 인터뷰에서 ‘정치인은 할 수 없지만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신이 예술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인가? 사회의 견고한 벽과 편견을 무너뜨리는 것? 예술은 사회의 균열을 보여줄 수 있고, 사회의 문제점과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예술이 급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공격적인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작업을 하는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규칙이나 주류에서 벗어나 주관적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느끼게 하는 도구가 바로 예술이다. 정치는 해결책과 해답을 가지고 있는 척하지만 예술은 그 어떤 해결책이나 결론, 해답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그저 새로운 질문을 던질 뿐이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업이 있는가? 당신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항상 동시에 여러 개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Octopada’ 프로젝트를 작업 중인데 이건 팔이 8개 달린 살아 있는 조각이자 주변 환경과 비슷한 색으로 변할 수 있는 생명체다. 대형 미술관, 공공장소, 아트 페어 등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서 이 생명체의 존재를 미리 알리지 않고 퍼포먼스를 하려 한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추구하는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미 꿈꾸는 작업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9월에는 200명의 댄서와 내가 강의하는 노르웨이 베르겐 예술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대규모 공연을 할 예정이다.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의 멋진 건축 작품과 소통하는 공연이다. 2017년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도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퍼포먼스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

 

ⓒ Frida Gregersen

릴리베트 쿠엔카 라스무센
덴마크-필리핀 혼혈로 1970년생이다.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를 졸업했고 2008년 모교에서 수여하는 에케르스베르 메달(Eckersberg Medal)을 받았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덴마크관에서 퍼포먼스를 했으며 그의 문화적 배경과 인종, 성 등을 주제로 꾸준히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현재 코펜하겐에서 작업하며 북유럽을 넘어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