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만들래?
독점은 여전히 한 개인 혹은 기업이 성장하는 강력한 방식이다. 그러나 즐거운 방식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지도 않는다. 유구한 성장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우리 시대는 이제 ‘같이’의 개념을 고민해야 한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곳이 있다. 그 모습이 예술 작품처럼 우아해 보였다.



Lineworks Workshop 라인웍스 공동 작업실
인테리어를 전공한 정석병과 문원호는 문래동에 사무실을 구하고 나서 생각했다. ‘여기 둘만 있으면 칙칙할 것 같아.’ 그들은 문래동에 살며 작업하는 작가들을 초대했다. 사무실을 아지트로 만든 것이다. “작가들이랑 놀고 싶었어요. 같이 뭔가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2015년 1월이었다.
라인웍스 워크숍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커다란 테이블 2개가 세로로 놓여 있다. 입주 작가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여럿이 공동 작업을 할 때 유용하다. 테이블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꺾으면 책상들이 있다. 그중 하나의 책상 위엔 아직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캔버스가 있고, 다른 책상 위엔 붓과 화선지와 필법 책이 놓여 있다. 이곳에선 각자 혼자 앉아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 “날이 추워서 요즘엔 작가들이 잘 안 나와요. 책상은 8개예요. 돈을 조금 받고 한 자리씩 드리는 거예요. 한 달에 15만 원이에요. 물건을 보관할 수 있게 캐비닛도 하나씩 드립니다. 저쪽에 있는 공구도 전부 사용할 수 있어요. 옥상도 맘대로 써도 되고. 도색 작업이나 먼지 나는 작업을 주로 해요.” 정석병이 말한다.
물론 테이블과 책상에서만 작업하는 것은 아니다. 라인웍스는 꽤 넓다. 소파, 2명의 젊은 주인 책상, 주방, 공구와 자재를 놓은 벽면 구석이 꽤 나란히 배치돼 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사람이 꾸민 곳답다. 공간과 공간을 구분 짓는 마음의 선이 없어서 이 안에선 누구나 자유롭게 다닌다. 커피를 마시고, 같이 점심을 먹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최근 만들고 있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희 둘이 작년에 건물 옥상에 파빌리온을 지었어요. 봄부터 계획한 일인데, 준비를 하다 보니 벽화도 있으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자주 오는 박미란 작가에게 말했어요. 같이 해볼래?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석병의 말을 듣고 나니 라인웍스를 감싸고 이루는 느슨한 결계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의무가 아니다. 아주 부드러운 어떤 것이다. 실내 벽 곳곳에 적힌 캘리그래피가 눈에 띄는데 이곳에서 한동안 작업한 박다솜 작가의 작품이다. 이것도 나름 컬래버레이션 아닌가?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이라 창으로 바람이 뭉텅뭉텅 들어온다. 라인웍스는 4층에 있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철을 가공하는 공장이 몰려 있다. 이 터는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곳이다. “봄이 되면 또 재미있어질 거예요.” 둘은 올해도 옥상에 설치물을 만들 계획이다. 가능하면 여러 작가와 같이. 그것이 이들이 문래동에 사무실을 차린 이유다. “상생과 소통을 통해 모두 같이 발전할 수 있는…”이라고 말하며 문원호는 웃었다. “거창한 소리죠. 그냥 자연스럽게 무엇인가 이루어질 거예요. 다들 같이 지내다 보면.” 작년 봄에 파빌리온과 벽화가 완성되었을 때 옥상에서 파티를 열었다. 여러 사람이 모였다.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바람에 경찰도 왔다. 뭐 어떤가.
Info |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 4층, www.facebook.com/lineworks01



Hive Arena 하이브아레나
하이브아레나의 황혜경 공동 대표는 자신을 ‘커뮤니티 빌더’라고 소개한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사업을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고 나서 먼저 입주한 이들 중에 관심 분야가 맞거나 도움을 주고받을 만한 사람을 소개해준다. “관련된 전문 지식을 서로 나눌 수 있으면 일을 할 때 시행착오가 줄잖아요.” 이곳은 코워킹 스페이스, 즉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누구나 올 수 있지만 아무나 올 수는 없어요.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해야 해요.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거죠. 저는 ‘큐레이션’된 ‘커뮤니티’를 제공한다고 표현해요. 단순히 일할 공간이 필요한 거라면 꼭 여기 오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하이브아레나에는 IT를 기반으로 창업을 준비하거나, 창업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을 갖는다. 가벼운 술자리다. 새로 입주한 사람이 생기면 ‘번개’도 한다. 첨단 디지털 인력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역설적이고 재미있다.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강의도 열린다. “요즘엔 코딩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무 중심의 코딩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피터(Peter Bainbridge)는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잉글랜드 출신이고, 서울에 오기 전에는 치앙마이에 있었다. 그는 디지털 노매드다. 온라인 콘텐츠를 만든다. 랩톱 하나만 들고 다니면 세계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업무 형태가 보편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마련하는 게 스타트업 기업에는 부담스럽다.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은 나라에 가서 코워킹 스페이스를 사용하고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게 낫다. 특히 최근엔 발리가 디지털 노매드의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 여행지로도 좋고, 물가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이브아레나의 목표는 이미 사용 중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더 글로벌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거예요.” 당연히 이곳에선 IT업계의 첨단 흐름을 신속하게 알 수 있다.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공유한다. “이거 써봤어요? 미국에서 새로 나온 프로그램이에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지지하고 응원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이것이 하이브아레나에서 사람들이 꿈꾸는 것이다. 국경도, 나이의 장벽도 없다. 그런 사랑을 보통 위대하다고 하지 않나? 2014년 11월 문을 열었다.
Info |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303 502호, http://hivearena.com




COW & DOG 카우앤독
카우앤독에는 누구나 올 수 있다. 카페니까. 1층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뉜다. 한쪽에선 사람들이 집중해 일하고, 다른 한쪽에선 미팅을 한다. 집중해서 일하는 공간에는 대략 10m 길이의 테이블이 있다. 톱날처럼 생겼다. 팀 단위 혹은 혼자 앉아서 일한다. 오밀조밀 몰려 앉지만 앞에 앉은 사람과 마주 보지 않도록 설계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면’을 차지하고 앉는다. 전원 콘센트도 설치돼 있다. 배터리를 신경 쓰다 보면 일에 집중할 수 없으니까. 2층에 올라가 이 긴 테이블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장엄함이 느껴진다.
미팅 공간은 평범한 카페처럼 생겼다. 여기도 신기한 가구가 있다. 나무로 만든 상자 형태의 의자다. 일명 ‘테트리스’ 의자다. 하나씩 있을 땐 평범한 의자지만 하나 둘 합체하면 평상이 된다. 이 의자는 이곳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상황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것.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른바 ‘스타트업’은 각자 일하고 모여서 회의하고 다시 흩어진다. 수시로 이렇게 한다. 그렇다면 이제 독립된 회의실만 있으면 모든 게 완벽할 것 같다. 2층에 있다. 2인, 3인 규모의 회의실이 각각 있고 6인 규모의 회의실이 2개 있다. 무료다. ‘카우앤독’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예약만 하면 된다. 12인 규모의 회의실, 5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콘퍼런스 룸은 유료다. 하지만 비어 있을 때 잠시 들어가 회의를 한다고 해서 쫓아내진 않는다. 카우앤독에선 모든 게 자유롭다. 소셜 벤처와 사회적 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Sopoong’이 이곳을 운영한다. “임대료 문제로 고민하는 소셜 벤처나 사회적 기업이 많으니까, 그런 분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만들었죠. 같이 모여서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아요.” 카우앤독의 이은진 프로그램 매니저는 말한다. 하지만 저 위에도 적었듯 이곳에는 누구나 올 수 있다. 돈도 받지 않는다. 카우앤독은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 “자주 오는 팀이 있어요. 네 팀 정도. 문 열자마자 와서 집중적으로 일하고 6시가 되면 퇴근해요.” 진짜 사무실 같다. 물론 진짜 사무실이다. 우편물도 받을 수 있다. 카우앤독의 주소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사업자 등록을 할 때도 주소지가 필요하니까 요긴하다. 돕고 싶어 하는 카우앤독의 마음이 느껴진다.
여기선 한 달에 한 번 ‘혁신적인 수다’라는 토크쇼 형식의 강의가 열린다. 소셜 벤처,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어떤 사회문제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비즈니스 관점에서 해결하고 있는지 듣는다. “사회 혁신에 관심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주자는 취지예요. 예를 들어 ‘업사이클링’이라고 하면 업사이클링 분야에서 각각 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 분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거죠.” 이은진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나니 강의를 듣고 싶어졌다. 별로 관심이 없던 분야인데도. 카우앤독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눈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혁신을 이루었고, 그 역사를 기록 중이다. 2015년 1월 문을 열었다.
Info |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2길 20, www.facebook.com/cowndog



FABLAB SEOUL 팹랩 서울
팹랩 서울에서 ‘드론’을 만들 수 있다. 먼저 모터, 전선 등 재료를 산다. 주변에 전자 부품 파는 가게가 많아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자, 이제 만들어보자. 3D 프린터로 프레임, 즉 외형을 제작한다. CNC 밀링이라는 기계로 드론의 기판을 깎는다. 이게 회로다. 사온 재료를 끼운다. 끝. 의자도 만들 수 있다. 만들고 싶은 모양을 그린 후 CNC 라우터라는 기계에 의자 각 부분의 모양을 입력한다. CNC 라우터에 나무판을 올리면, 말 잘 듣는 기계가 똑같이 잘라준다. 조립만 하면 의자 완성. “작년 10월에는 커다란 집을 만들어서 전시했어요. CNC 라우터를 이용해 합판을 자른 후 조립한 거죠.” 팹랩 서울 황유원 연구원의 말이다.
이곳에는 13대의 보급형 3D 프린터, 2대의 레이저 커터, CNC 밀링, CNC 라우터, 산업용 프린터가 있다. 그 외의 각종 작업 공구도 구비하고 있다. 3D 프린터는 1시간 사용료가 3000원이다. 장비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워크숍도 열린다. “중학생부터 예순이 넘은 분까지 교육을 받습니다.” 마침 열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회로에 전선을 연결하고 있었다. “팹틴이라는 강좌가 있어요. 10대 학생들이 참여해서 각자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요. 내일이 발표회라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에요.” ‘직접 만들어보는 것은 우아한 경험이다’라고 나는 여기 글로 적을 수 있을 뿐이다. 그 아이는 직접 만든다. 멋있었다.
팹랩은 다른 세상 같다. 팹랩 서울은 대한민국 최초의 팹랩이고, 전 세계에 700개 정도의 팹랩이 있다. 그 모든 곳이 연결돼 있다. 실시간으로 직접 볼 수도 있다. 벽에 커다란 화면이 걸려 있는데, 다른 나라 팹랩의 내부를 촬영하고 있었다. “마이크로 부르면 대화도 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저는 연결돼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나라 팹랩에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면 그것을 저희도 해볼 수 있잖아요. 공유하면서 발전하는 거죠.”
팹랩 서울은 2013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우주인’ 고산 씨가 대표로 있는 기술 창업 지원 기관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운영하고 있다. 팹랩은 제작(fabrication)과 실험실(laboratory)을 결합한 단어다. ‘팹랩’이 되기 위해선 팹파운데이션이라는 기관과 협약해야 한다. “팹랩이 정해준 인스트럭터가 상주해야 해요. 모든 장비를 완벽히 다루면서 공학적 지식이 뛰어나고 위기 관리 능력도 갖추고 있죠.” 황유원 연구원이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한 외국인이 실내에서 드론을 조종하며 레이저 커터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프로메테우스가 저렇게 생겼을까’라고 생각하는데 황유원 연구원이 말을 이었다. “메이커톤이라는 콘텐츠도 개발해서 운영 중이에요. 메이킹과 마라톤을 합성한 단어예요. 무박2일 혹은 무박3일 동안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대회죠. 모르는 사람끼리 한 팀이 돼요. 인력 시장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고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이 자기 PR을 하면 서로 뽑아가는 거죠.”
이 대회는 유명해졌고, 여러 기업이 후원한다. 당연히 상금도 있다. 대회를 통해 만난 사람끼리 창업한 사례도 있다. 팹랩은 세운상가 5층에 있다. 세운상가는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다. 작고한 김수근이 지었다. 내부는 별다른 구조 변경 없이 보존했다. 오래된 건물 안에 첨단 디지털 장비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운동장만큼 커다란 3D 프린터가 생긴다면 팹랩 서울을 똑같이 하나 더 만들어야지.
Info |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세운상가 550호, www.facebook.com/fablabseoul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이우성(시인) 사진 김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