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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작가를 보호하라!

ARTNOW

갤러리의 경쟁력은 뛰어난 작가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 소속 작가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작가·갤러리·컬렉터가 이루는 팀워크가 얼마나 튼튼한가에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작가와 갤러리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단단한가다.

1 메리언 굿맨 갤러리가 발굴한 에티오피아 출신의 젊은 작가 줄리 메레투 2 메리언 굿맨 갤러리 전시 전경 3 리손 갤러리 창업자 니컬러스 로그즈데일 4 리손 갤러리 전시 전경

갤러리가 수많은 아트 페어와 세계적 갤러리 사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그들만의 뚜렷한 작가군을 보여주는 것이다. 탄탄한 작가군을 구축하기 위해 갤러리는 그들이 선택한 작가와 긴밀하고 유기적인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은 둘이 함께한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며 함께 성장한 갤러리와 작가는 그 성공을 서로의 몫으로 돌릴 줄 안다. 이런 훈훈한 장면은 반드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갤러리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경기와 상관없이 탄탄하게 갤러리의 역량을 쌓아가고 있는 메리언 굿맨 갤러리(Marian Goodman Gallery)와 리손 갤러리 (Lisson Gallery)를 소개한다.

갤러리 중의 갤러리, 메리언 굿맨 갤러리
2013년 5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경합을 보인 에티오피아 출신의 젊은 작가 줄리 메레투(Julie Mehretu). 쉽게 이해되지 않는 추상적인 선이 어우러져 강렬한 조합을 이룬 그의 작품이 140만~180만 달러에 출품되어 최종가 46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젊은 작가의 작품이, 그것도 경매에 출품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이런 높은 가격대에 낙찰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옆에 앉은 딜러에게 이 작가가 누구고, 왜 이렇게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지 물으니, 예상외로 아주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메리언 굿맨의 작가니까요.” 메리언 굿맨(Marian Goodman)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갤러리스트이자 아트 딜러로 손꼽힌다. 작가와 컬렉터 사이에서 분주히 오가며 미술품을 판매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체구가 작고 목소리 또한 나직하고 부드럽다. 실제로 그녀가 직접 미술품을 판매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오직 갤러리 작가를 미술관 디렉터나 다른 갤러리스트에게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을 보여주며 작가의 철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그녀의 갤러리 비즈니스 룰이다. ‘아트 딜러’보다 ‘갤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메리언 굿맨이 여느 갤러리스트와 가장 다른 점은 ‘딜(deal)’을 판매나 이익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찾아내고 이에 도전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메리언 굿맨 전속 작가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미술계에서 언제나 이슈를 몰고 다닐 뿐 아니라, 그 때문에 예술계 인사들은 지인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늘 ‘메리언 굿맨 전시를 본 적이 있는지’ 서로 확인한다. 메리언 굿맨에게 현대 예술은 ‘대중의 눈높이를 뛰어넘는 곳’에 있어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메리언 굿맨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갤러리가 아닌 미술관급 전시다. 작가군도 미술관급 작가들이다.
2010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LA의 베테랑 작가 존 발데사리의 회고전을 열어 이목을 모았다. 그때 MoMA에서는 월드 스타인 가브리엘 오로스코의 커리어를 짚어보는 전시를 선보였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를 개최했고, 런던 테이트모던에서는 2012년 최후의 근대 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시를 열었다. 이들 모두 메리언 굿맨의 작가다. 이처럼 메리언 굿맨의 전속 작가 중에는 거물급도 있지만 아무리 이름을 들어도 생소하기만 한 신진 작가도 있다. 그들은 메리언 굿맨의 눈에 띄었다는 것만으로 흥분한다.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들은 작품가가 상승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을 눈여겨보고 인정하고 후원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걸 더욱 간절히 원한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 발굴 공장, 리손 갤러리
영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은 망설임 없이 함께 일하고 싶은 갤러리로 리손 갤러리를 꼽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리손이 최고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처럼 작가들이 함께하길 원하는 갤러리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 창업자 니컬러스 로그즈데일(Nicholas Logsdail)은 1967년 처음 갤러리를 시작할 당시, 미술계를 당혹시킨 동시대 작가들의 개념미술을 보여주는 개척 갤러리스트 중 한 명이었다. 시간이 흘러 많은 갤러리가 운영상의 문제로 초심을 잃고 방향을 바꾸었지만, 니컬러스 로그즈데일은 자신의 선택을 믿고 40년간 외길을 걸어왔다. 니컬러스 로그즈데일은 갤러리 오픈 후 작품 판매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상업적 목적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굴한 작가들의 커리어를 미술관, 미디어와의 관계를 통해 구축하는 데 힘써왔다. 그 때문에 유망한 예술가를 발굴하고 그들을 꾸준히 알리는 것은 리손 갤러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일 중 하나다. 장기적 안목으로 작가를 발굴, 작품의 퀄리티에 포커스를 맞춘 그의 갤러리 운영 방식 덕분에 초창기에는 실험적이고 난해하기만 하던 작가들의 작품이 현재에 이르러 동시대 미술 중 가장 영감이 풍부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많은 갤러리에서 돈이 되는 아티스트를 찾는 것과 달리 그는 퀄리티가 받쳐주면 돈은 따라온다고 믿는다. 리손 갤러리 작가 중 현재 시장에서 안정적인 거래를 보이고 있는 대표 작가는 애니시 커푸어다.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지속적으로 후원해온 갤러리의 성향에 부합하는 애니시 커푸어는 오랜 시간 아트 페어에서 리손 갤러리 대표 작가로 나서왔고, 불황기에 접어든 시장에서도 조금씩 가격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커푸어가 판매를 위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 힘쓰지 않고, 대규모 조각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애니시 커푸어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소개해 인기를 끈 스테인리스스틸 작품 ‘큰 나무와 눈’ 같은 대형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려운 작가로 인식되어온 그가 2010년대에 이르러 대중적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갤러리가 작가를 어떻게 프로모션하고 후원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작가는 갤러리의 얼굴이다. 그 갤러리의 현 수준과 비전을 반영한다. 따라서 작가를 발굴할 때 갤러리 오너의 철학이 명확해야 갤러리 고유의 성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갤러리에 의해 발굴되기 전, 작가는 늘 기다리는 존재다.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줄 누군가를. 따라서 작품을 알아봐주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첫 번째 파트너에 대한 감동은 이들이 한 팀을 이루는 데 밑바탕이 된다. 여기에 갤러리의 안목과 취향에 공감하는 컬렉터까지 한자리에 모일 때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팀워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이호숙(효성그룹 아트사업부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