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에게 바치는 도시 전체의 헌사
파블로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50년째다.

1934년에 제작한 〈Bullfight〉. Collection of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Madrid, Inv. no. 706 (1976.83)
세기를 관통한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사후 50주기를 맞아 ‘Picasso Celebration 1973–2023’이라는 타이틀 아래 바르셀로나, 파리, 뮌헨, 브뤼셀, 뉴욕 등지에서 50여 개의 공식 전시와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그야말로 서구 미술권이 피카소를 주제로 축제를 여는 셈인데, 여기에 피카소의 고향 마드리드가 빠질 수 있을까. 지난해 가을 맙프레 재단(Fundación Mapfre)이 피카소와 훌리오 곤잘레스(Julio González) 두 작가의 우정과 작품을 다룬 전시로 헌사의 운을 띄웠고,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에서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 6월에 시작해 9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프라도 미술관의 《Picasso, El Greco and Analytical Cubism》전으로 서서히 고조된 열기는 완연한 가을에 정점을 찍을 예정.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카사 데 벨라스케스(Casa de Velázquez),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이 합세해 도시 전체가 피카소를 향한 자부심과 기쁨을 환히 드러낸다. 거장을 향한 존경과 사랑을 마드리드를 거니는 걸음걸음 느껴보자.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
《Picasso. The Sacred and the Profane》
10.4 – 024.1.14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은 세계 2위 예술 수집가로 유명한 티센–보르네미사 남작 부자의 컬렉션이 중심인 곳이다. 개인의 방대한 컬렉션에 근간을 둔 미술관답게 주로 스페인 예술을 다루는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이나 프라도 미술관과 달리 유럽 전역에서 온 다양한 작품을 만끽할 수 있는데, 이런 성격은 이번 전시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미술관이 소장한 피카소 작품 8점과 함께 파리 피카소 국립박물관(Musée National Picasso–Paris)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 개인 수집가의 도움으로 공수한 작품 30여 점을 선보이며 엘 그레코(El Greco), 루벤스(Rubens), 들라크루아(Delacroix), 고야(Goya) 등 유럽 미술사를 관통하는 거장을 두루 포함한다. 전시는 피카소가 종교화나 초상화의 전통을 그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작품, 정물과 모자 형상 등 친밀하고 가정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한다. 1930년대에 피카소가 다룬 그리스도의 수난, 투우 그리고 극적 방식으로 표현한 여성 형상이 담긴 작품도 선보인다. 또 피카소의 작품을 다른 거장의 작품과 함께 전시해 과거의 유산이 그에게 미친 영향, 그가 전통을 해석하고 재창조한 방법을 보여준다. 작품을 재해석하려는 순응적이면서도 혁신적인 피카소의 정신은 물론, 역사와 사회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전시다.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Picasso 1906–The Turning Point》
11.15 – 2024.3.4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의 공간 중 하나인 팔라시오 데 크리스털(Palacio de Cristal).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에는 마드리드 3대 미술관 중 하나이자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로 유명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서 25세의 젊은 피카소를 만날 수 있다. 폴 세잔(Paul Cézanne), 에드워드 마네(Édouard Manet)와 함께 현대미술의 시작점으로 거론되는 거장 피카소. ‘전환점’이라는 특별전 제목처럼 그의 작품 활동뿐 아니라 미술사에도 의미 있는 분기점인 1906년을 집중 조명한다. 사실 이전까지 피카소의 1906년 작품은 장미 시대(1905–1907)의 에필로그 혹은 큐비즘의 시작을 알린 〈아비뇽의 처녀들〉의 프롤로그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이번 전시는 당시 작품을 그의 작품 세계의 진화 과정 중 하나로 바라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성을 인정한다. 새로운 감각과 시각의 해석을 향한 강한 열망이 느껴지는 이 작품들을 보면 이전 청색 시대(1901–1904)에 드러난 보헤미안 기질이나 비관주의가 아니라 관능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을 자유롭게 펼쳐낸 것을 알 수 있다. 관람객은 아프리카 영향기(1907–1909), 입체파 시대(1909–1917)까지 그의 화풍이 변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게르니카〉를 볼 수 있는 205번 전시장까지 돌아보고 나면 1906년 25세의 피카소와 1937년 56세의 피카소를 한 장소에서 동시에 만나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카사 데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Invites Pablo Picasso》
10.26 – 2024.2.15

1907년 작품 〈The Harvesters〉.
카사 데 벨라스케스는 1920년에 프랑스와 협력해 예술·문화·대학 교류를 장려하려는 목적으로 설립했으나, 스페인 내전 당시 마드리드 전투(1936년 11월)에 희생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이다. 내전으로 뿔뿔이 흩어진 예술가와 연구원들이 돌아와 재건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1959년 다시금 그 모습을 되찾은 이래 지금도 해마다 다양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 예술가의 실험적 창작활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를 단지 철 지난 옛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구 대상이자 창작의 원료로 바라보는 피카소의 끈질긴 탐구정신을 만날 수 있다. 1895년 당시 14세인 피카소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처음 마주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57년 여름, 다시 그 작품과 벨라스케스의 천재성에 감탄한 피카소는 약 4개월 동안 칩거해 생활하며 이를 분석, 재해석, 재창조한 연작 58점을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이 바로 《Diego Velázquez Invites Pablo Picasso》전의 모티브가 됐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관장 에마뉘엘 기뇽(Emmanuel Guigon)이 전시 기획을 맡아 피카소와 벨라스케스의 정서적 친교를 드러내고, 두 거장의 작품을 ‘시적·미적 여정’의 형식으로 아카이브 사진, 편지, 시청각 자료와 더불어 전시한다.
사실 이번 전시의 성격은 그동안 카사 데 벨라스케스가 선보인 전시나 프로젝트와는 사뭇 다르다. 주최 측은 실험적 전시, 리서치, 담론이 주를 이루는 이벤트로 알려진 이곳에서 “거장의 대작(the master’s masterpiece)을 실질적으로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피카소가 과거를 바라보는 태도, 거기서 비롯한 날카롭고도 집착 어린 도전과 몰두의 정신이 카사 데 벨라스케스가 추구하는 목표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으리라.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글 윤효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