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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OW

성장하는 시장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와 과감한 야심으로 가득한 아트 자카르타 2024

이여름 작가의 작품을 전시 중인 비트리 갤러리 부스 전경. 대형 작품 ‘아이스크림 속 인생’ 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아트 자카르타 2024가 열린 자카르타 국제 엑스포 외부 전경.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탠리와 인도네시아 PVC 파이프 제조 기업 비닐론 그룹의 협업 작품 ‘Hydrogrid, Hydration’.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열린 아트 페어는 물경 380개가 넘는다. 1년 365일보다 많은 개수. 이 많은 아트 페어 중 실제로 찾아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세계적으로 미술 시장이 침체된 최근 1~2년간은 아트 페어 관람이 그리 흥미롭지만은 않은 시기. 전시보다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아트 페어에선 침체기일수록 수익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안전’한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페어의 규모가 커질수록, 참신한 자극을 주는 작품을 발견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아이러니. 하지만 아트 자카르타 2024는 확실히 달랐다.
올해 14회째인 아트 자카르타는 지난 2017년 인도네시아 출신 사업가이자 열정적 컬렉터인 톰 탄디오(Tom Tandio)가 총괄 디렉터를 맡은 뒤 야심 찬 행보를 이어오며 고유한 매력을 해마다 더해가고 있다. 과거에는 리츠칼튼 호텔 내부에서 페어를 진행했지만, 2019년부터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로 옮겨 규모를 대폭 키웠고, 작년부터는 과거 공항 부지에 세운 자카르타 국제 엑스포(JIEXPO)에서 개최하고 있다.
페어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한가운데에 자리한 인도네시아 작가 4명의 ‘스폿(Spot)’ 설치 작품. 아트 바젤 홍콩의 ‘인카운터(Encounters)’ 섹터가 떠오르는, 페어를 위해 새로 제작한 장소 특정적 대규모 설치 작품이다. 그중 이완 유수프(Iwan Yusuf)의 ‘Air Pasang’과 샤이풀 가리발디(Syaiful Garibaldi)의 ‘Antara Muara’는 지역의 환경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지반침하와 해수면 상승으로 피해를 입은 자바섬 서부 해안에서 모은 폐자재를 쌓아 올린 ‘Antara Muara’와 로프와 어망을 마치 거미줄처럼 엮어 천장에서 늘어뜨리고 색색의 해양 쓰레기를 덧붙인 ‘Air Pasang’이 독특한 대조를 이루며 ‘우리가 버린 것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편 서류 파일 더미 위에 2개의 인물상을 마치 목말을 탄 것처럼 쌓아 올린 티스나 산자야(Tisna Sanjaya)의 ‘Ganjel’은 올해 새롭게 선출된 인도네시아의 대통령과 부통령을 소재로 한 작품. 전임 대통령의 젊은 장남을 이례적으로 법까지 고쳐가며 부통령이 되도록 도운 인도네시아 정치계를 풍자했다. 설치 작품 주변의 스피커에서는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새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죽음을 알린다는 뻐꾸기 소리라는 게 작가의 설명.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뜻이죠.” 도무지 거침이 없다.

욕야카르타 출신 아티스트, 유디 술리스툐와 물리야나가 함께 제작한 ‘Ship without an Ocean’을 선보인 갤러리 젠1 부스.

유화수, 크리스 미소, 이우림 작가의 작품을 출품한 부산의 신진 갤러리 이젤리 부스.

인도네시아의 39개 갤러리를 포함해 세계 12개국에서 참가한 총 73개 갤러리의 부스 중 페어가 열린 첫날 즉각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입구 부분에 철창을 설치해놓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A+ 워크스 오브 아트’ 부스였다. 마치 감옥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으니 신기할 수밖에. 부스 디자인과 내부에 설치한 작품은 모두 싱가포르의 아티스트 컬렉티브 버티컬 서브머린(Vertical Submarin)의 작업으로, 수감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철창 사이를 넓게 벌려 웃음을 유발한 주성치 영화의 감옥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다양한 컬러의 털실로 짠 산호초 위에 골판지와 합판으로 만든 거대한 군함을 설치한 갤러리 젠1(Galeri Zen1)의 부스는 관람객이 모여들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포토 스폿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발리를 기반으로 하는 갤러리 젠1처럼, 아티스트 스튜디오가 집결해 있는 욕야카르타와 반둥 등 인도네시아 지역 갤러리 부스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안의 작품이 현대미술의 트렌드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하긴 어렵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다채로웠고, 무엇보다 작품에서 엿보이는 활기찬 에너지와 넘치는 야심이 드물게 즐거운 페어 관람 경험을 선사했다.
아트 페어로서 아트 자카르타의 가장 큰 특색이라면 기업 또는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협업한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 섹션의 이름부터 하이라이트(Highlight)다. 인도네시아 지역 기업은 물론 BMW 미니, 돌체앤가바나, 스메그, 조니워커, 스탠리 등 글로벌 브랜드가 기획 단계부터 아티스트와 긴밀하게 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러한 하이라이트 섹션에선 관람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이 주를 이뤘는데, 그중에서도 샤워 부스에 노래방을 설치한 ‘Naked Tone’ 안에서 스스럼없이 노래를 신청하고 춤을 추며 즐기는 관람객의 모습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글로벌 욕실용품 브랜드 로카가 스튜디오 디스/플레이(This/Play)와 함께 선보인 작품. 아트 자카르타의 총괄 디렉터 톰 탄디오는 하이라이트 섹션에 대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업들이 협업의 경험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예술과 아티스트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아트 자카르타를 벗어나서도 이런 협업을 적극적으로 이어가 궁극적으로 기업 단위의 예술품 수집이 이뤄지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페어가 열린 3일 동안 총 3만8000여 명의 관람객이 아트 자카르타 현장을 찾았다. 행사의 규모, 참가 갤러리 수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는 수치다. 물론 아트 바젤, 프리즈 등 메이저 아트 페어와 아트 자카르타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고, 참가 갤러리 리스트에서 글로벌 메가갤러리의 이름을 찾아볼 수도 없다. 이는 이웃 나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ART SG와도 현격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아트 자카르타에서는 다른 어떤 아트 페어에서도 보지 못한, 지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미술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활기차고, 거침없고, 야심만만한.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아트 자카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