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와 갤러리스트
리안갤러리의 새로운 공간.

리안 대구는 전필준 건축가의 설계로 신관을 개관했다. 알루미늄 외관과 높은 층고가 매력적이다.

리안 서울은 서을호 건축가가 증축해 인왕산 전망의 수려한 풍광을 갖추게 되었다.
세계적 명성의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을 갖는 것은 모든 갤러리스트의 꿈이다.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도 대구와 서울에 갤러리를 운영하며 거장과의 조우를 적극적으로 물색했다. 하지만 그즈음 만난 국내외 미술 관계자는 이구동성으로 거장보다는 젊은 건축가와의 협업을 추천했다. 성장하는 갤러리이니만큼 젊은 건축가와 손잡으면 더욱 멋진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리하여 11년 전 서을호 건축가의 설계로 리안 서울이 문을 열었고, 이번 프리즈 서울 기간에 증축을 완료했다. 역시 같은 기간에 개관한 리안 대구 신관 디자인은 전필준 건축가가 맡아 그만의 비전을 제시했다. 서을호와 전필준, 두 건축가는 각자 맡은 첫 번째 미술 공간 설계였음에도 기능과 미학을 결합한 아름다운 건물을 완성했다. 이로써 리안갤러리는 서울과 대구에 아름다운 전시 공간을 갖춘 기관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리안 대구는 1990년대에 지은 구관을 수장고로 만들기 위한 새 프로젝트에 이미 돌입했다.
두 건축가와 안 대표의 만남은 모두 친분이 깊은 갤러리스트의 추천으로 이루어졌다. 추천 이유가 두 사람 모두 ‘공간을 잘 아는 건축가’라는 것이었다니 흥미롭다. 먼저, 신관을 개관한 대구 리안의 설계 과정 이야기부터 소개하자면, 열정이 넘치는 전필준 건축가와 원하는 바가 확실한 안 대표의 만남은 일사천리로 발전해나갔다.
“서울 갤러리가 위치한 서촌은 한옥이 많은 지역인 데다, 대지가 넓지 않아 주변과 어울리는 기품 있는 디자인의 건물을 원했습니다. 반면 대구 갤러리는 서울 갤러리와 완전히 차별화하고 싶었어요. 특히 높은 층고에 대한 욕심이 컸습니다. 구관이 층고가 높지 않아 전시를 기획할 때 제약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안 대표가 원한 대로 대구 신관 1층 전시장의 최고 높이는 9m에 이른다. 이제는 공간의 제약 없이 마음껏 작품을 골라 전시할 수 있어 갤러리스트로서 감회가 새롭다. 신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인데, 지하 1층과 지상 1·2층은 전시장으로 쓰인다. 3·4층은 VIP 뷰잉룸이다. 건물 안팎에 아름다운 이끼 정원까지 갖추어 금상첨화다.
“신관 자리는 원래 주차장이었습니다. 앞에는 건립 중인 아파트가 있는 낡고 정리가 안 된 지역이었기에, 갤러리 건물 자체가 오브제로 우뚝 서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지가 ㄱ자 모양이라 두 개의 박스를 위아래로 연결하는 콘셉트로 설계를 시작했어요. 갤러리는 작품을 거는 공간이기에 가로의 랜드스케이프 포맷과 세로의 포트레이트 포맷이 서로 직조하는 형상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지요.” 전필준 건축가는 구관이 대구 최초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었던 만큼, 신관도 물성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알루미늄을 선택했다. 주거지역에 자리한 갤러리라 높이 제한이 있어서 1층은 지하로 1.5m를 내려 설계한 것도 신의 한 수다. 그리하여 신관 1층은 9m까지 층고를 확보할 수 있었고, 2층은 가로로 긴 통로 같은 전시 공간으로 완공했다. 지하는 수장고로 쓰거나 전시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동시에 3개의 각기 다른 전시가 열릴 수 있는 것. 지하도 반듯한 직육면체의 화이트 큐브 공간이다. 지금은 리안갤러리 전속 작가 5인의 포스트단색화 전시 <히어 앤 모어(HERE & MORE): 단색조 넘어, 너머로>가 3개 층에서 열리고 있다.
“건물의 가로는 풍광을 흐릿하게 담아내는 평편한 알루미늄을 사용했고, 세로는 수직선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기둥 장식에서 영감을 얻은 효과로, 전체의 수직적 형상이 하나의 기둥처럼 느껴집니다.”

왼쪽 리안 대구의 설계는 미술가 도널드 저드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오른쪽 건축가 전필준은 리안 대구 신관 개관으로 호평을 받았다.

리안 대구는 주택가에 위치해 높이 제한이 있었다. 이에 1층을 1.5m 낮춰 설계해서 층고를 9m까지 높일 수 있었다.
전 건축가는 실내는 실외와 달리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1층은 천장이 높아 상승하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자연광이 2층까지 연결되어 클래식한 전시장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설계 포인트는 ‘건물의 인상’이었다. 건물은 하나의 파사드라기보다는, 여러 번 보았을 때 느낀 이미지가 중첩되어 하나의 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직과 수평의 도형에서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직사각형 큐브의 비례를 바꾸어보며 전체 형상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다음 기능적 부분을 풀어내는 방식입니다. 요소와 요소의 관계가 중요한데, 내적 관계가 바로 서면 시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 건물이지만 결국 올바르게 보이거든요. 이것이 어떤 재료로 마감할 것인가로 이어집니다.”
마이클 웨슬리의 작품은 2년간 조리개를 열고 촬영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첩되는 풍경 사진으로 유명하다. 얼핏 복잡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태양의 궤적은 지극히 단순한 ‘원’일 뿐이며, 건축디자인도 많은 논의를 거쳐 결국 남는 것은 단순한 도형 사이의 관계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타임리스 디자인의 원리다.
“안 대표님이 원한 것은 올바른 전시 공간뿐이었습니다. 나머지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건축가의 몫이지요. 예를 들어 1층에 화장실을 둘지 고민했지만 보다 넓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없앴어요. 3·4층은 집무실이자 VIP 뷰잉룸인데, 잘 정돈된 테라스를 통해 외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전 건축가는 도널드 저드의 작품에서도 설계를 위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미니멀한 형태의 물성을 던져놓음으로써 사물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것이다. 리안 서울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리안 대구는 서울 갤러리와 달리 아파트 단지 인근에 위치해 조금 더 과감해도 좋겠다고 여겼다. “예술과 건축은 상보적 관계입니다. 건축은 기능성을 생각해야 하고, 창작자의 온전한 소유물이 아니라는 차이가 있지만, 건축도 결국 사람이 보고 경험하는 결과물입니다. 건축과 미술은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20세기 미술가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방가르드, 구성주의, 큐비즘을 탄생시켰습니다. 근대건축의 대가 르코르뷔지에도 회화 작품을 많이 남겼고요. 건축과 미술은 많은 공통점이 있으며, 현대에 와서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전 건축가는 리안 대구 신관에 대한 호평에 힘입어 대규모 사립 미술관 설계를 맡았고, 리안 대구 수장고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리안 대구 구관이 유서 깊은 공간이긴 하지만 습기에 취약한 낡은 건물이라 철거 후 새롭게 건축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 구관 프로젝트는 바로 옆 신관과의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신관 건물을 가리거나 압도하면 안 되기에 신중하게 3층 높이로 설계를 완료했다. “신관이 1층 유리 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매혹적이라면, 새로 선보일 수장고는 천장의 톱라이트로 햇살이 들어오는 콘셉트입니다. 수장고 건물이지만 3층은 때로 전시가 가능하도록 디자인했어요. 사립 미술관은 2024년 착공할 예정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공원 옆 부지에 건립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리안 서울을 설계한 서을호 건축가를 만나보자. 그는 11년 전 리안 서울을 디자인했고, 이번에 증축까지 담당하며 오랜 인연을 과시했다. 서을호 건축가는 10여 년 전 안혜령 대표와의 첫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안 대표님은 대지가 작다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리안 서울 부지는 서촌에선 보기 드문 큰 땅이었습니다. 건축가의 좋은 작품은 건축가가 뛰어나다기보다는 건축주의 큰 비전이 돋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안 대표님이 원하는 공간 개념은 처음부터 명확했고, 나머지는 모두 건축가가 제한 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안 대표가 원한 것은 작품이 돋보이는 전시장뿐이었다. 빈 캔버스와 같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니 건축가 입장에서는 몰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젊은 건축가로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이는 여전히 두 사람이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다.
“서을호 건축가의 감각을 믿었습니다. 내가 갤러리스트로서 아무리 공간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전문가는 아니니까, 건축가에게 이것저것 간섭하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건축가와 손을 잡았으면 그를 완전히 믿고 맡겨야 합니다. 이는 리안 대구 건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 대표는 심지어 공사 기간에 갤러리를 한 번도 찾지 않아 건축가가 더욱 집중해 작업에 몰두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자연 채광으로 작품이 돋보이는 리안 대구 2층 전시실 전경.

서을호 건축가가 11년 전 개관 당시 증축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기초가 튼튼한 건물이라 오히려 한 층을 증축하면서 건물의 비례가 더 좋아졌다.
“건축가도 작가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건축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건축가는 작가와 달리 시공사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기에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가 더 까다롭습니다.” 서을호 건축가에게 ‘미술과 건축’이라는 주제는 더욱 특별하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명망 있는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했다. 부친은 서세옥 화백이고, 서도호 작가가 형이다. 모친은 아름지기의 고문으로 활동했고, 부인도 건축가다. 이들 가족은 지난해에 리만머핀 서울 그룹전에 모두 함께해 작품을 선보였고, 서도호와 서을호 형제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공동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25평 집을 짓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집이 아니라 작품을 만든 것이지요. 이렇듯 미술과 건축은 우리 삶에 녹아 있습니다. 좋은 작품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최종적으로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인데, 이는 작가와 건축가의 공통점입니다. 건축가가 시공자를 만나 끊임없이 논의하고 고민하는 행위는 작가의 창작에 동반되는 고통과 동병상련이지요.”
조만간 그가 리안갤러리 VIP를 위해 ‘미술과 건축’에 관한 강연을 할 예정이라니 흥미롭다. 아마도 결론은 ‘미술과 건축에 경계는 없다’로 귀결될 듯하다. 그는 장르 간 경계는 작가와 건축가가 만든다고 보고 있다.
리안 서울 증축은 단순히 한 층을 높이는 것으로 마무리한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층에 변화를 가져왔다. 1층은 전시실로 확장했고, 2층은 아카이브이자 큐레이터 룸이 되었다. 새로 생긴 3층은 과거 2층에서 바라보던 풍광과는 완전히 다른 조망을 선사한다. 이곳에 앉은 VIP는 스스로 캔버스가 되어 자연을 함께 담게 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인왕산과 북악산의 수려한 전망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변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 그는 공사가 진행 중일 때, 매일 밤 아무도 없는 갤러리 3층에 올라가곤 했다고 한다. 집도 갤러리에서 멀지 않았기에 거의 매일 방문해 창조적 영감을 흡수했다.
“한 층을 증축했을 뿐이지만 건물의 비례가 더욱 좋아졌습니다. 11년 전 미래의 증축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리안갤러리가 빠르게 성장하리라는 것은 느꼈습니다. 11년 전 설계 당시부터 오래 지속되는 건축을 하겠다는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증축으로 인한 위험성은 적었어요. 유화를 그릴 때 바탕부터 제대로 칠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건물의 외관은 흔치 않은 재료인 샌드스톤 계열 돌로 마감했는데, 이는 한옥이나 고궁 마당에서 볼 수 있는 화강암 왕사(굵은 모래)로 만든 것이다. “서촌이 원래 칠궁이 있던 자리이니만큼, 과시하는 건물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타임리스한 갤러리를 짓고자 했어요.”
그리고 미술 공간은 전시에 따라 인위적 조명과 변화무쌍한 요구를 수용해야 하기에 빛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아무리 고가의 조명이라고 해도 햇살의 아름다움을 능가하지는 못하기에 자연 채광을 끌어들여 산뜻함을 강조했다.
안 대표는 이 건물을 진심으로 아끼기 때문에 전시 포스터 하나를 붙일 때에도 항상 심혈을 기울여왔다. 전문가를 불러 건물을 훼손하거나 바람에 펄럭이지 않게 플래카드를 붙였다. 갤러리 건축은 관람객과 컬렉터의 첫인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던가! 국제적 갤러리라면 많은 이들이 방문해 때로는 파티를 여는 것이 관례인데, 이제 넓고 아름다운 공간을 갖추어 서울과 대구 갤러리에서 모두 파티가 가능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 건축가는 갤러리는 벽에 그림을 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인생을 건다고 했다.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가도, 기업도 그런 비전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갤러리에서 중요한 점은 건축이 아니기도 하다. 스스로 가꾸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고가의 옷을 입어도 멋져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갤러리도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큐레이팅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리안은 단순한 개인 갤러리라기보다는 우리나라 미술계를 이끄는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떤 작품을 설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건축가로서 관심이 높았다.
두 건축가의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다. 서을호 건축가는 미술관, 상업 공간 같은 건축 장르 분류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설계하는 모든 공간이 문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물론 공공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건축주의 니즈를 반영해 플랫폼을 만들고 그 안에 그들의 삶을 넣는 것은 모든 건축의 역할이다. 전필준 건축가도 같은 생각을 한다. 그는 결국 ‘건축은 집을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이 사는 집 그리고 작품을 전시하는 집 모두 넓은 의미에서 보면 집이다.
건축의 수명은 수백 년에 이르기에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게 융통성을 갖추면서 사랑받을 수 있는 좋은 형태의 건축을 만들겠다는 것도 두 건축가의 공통된 꿈이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아름다운 건축을 완성한 갤러리스트와 건축가 덕에 우리나라 문화계에 작은 파도가 일고 있다. 미술과 건축의 아름다운 결합이 주목받는 이유는 감동을 두 배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위쪽 건물을 증축하면서 전체적 레노베이션을 단행했다.
오른쪽 인왕산과 북악산 전망이 감탄을 자아내는 3층 VIP 뷰잉룸.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사진 김제원(인물), 이종근(리안갤러리 서울), Joel Moritz, 노경(리안갤러리 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