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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전시한다는 것

LIFESTYLE

건축이 미술관에 들어왔다.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건축전은 필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유명 건축가의 세계관을 실제 건축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오브제로 조명하는 건축전은 미술과 건축의 경계에 관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질문을 던진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정기용의 <그림일기>전에 출품한 목업

프랭크 게리가 설계해 1997년 개관한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전경. Photo by David M. Heald
© SRGF, New York

건축가는 우리 시대의 작가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건축을 예술의 한 장르로 분류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건축물을 ‘작품’으로 감상하는 데에는 여러 복합적 요소를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건축은 건축가가 창조한 단독적 완성체라기보다 고객의 변덕스러운 요청에 따라 최종 완성까지 끊임없는 수정 작업을 거치는 협업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건축을 미술관의 유리 보호막에 가둬 보호해야 하는 연약한 미적 대상으로 치부하려면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공학적 완벽함은 좋은 건축물의 필수 조건 아닌가. 그럼에도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을 하나의 작품처럼 극진히 대접하는 현상은 미술계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 미술관에서는 생사 여부에 상관없이 유명 건축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기 바쁘다. 한국에서도 몇 해 전부터 건축가의 관련 자료를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은 건축 전문 큐레이터 정다영을 영입해 미술관의 기증품 2만여 점으로 건축가 정기용의 회고전 <그림일기>를 개최했다. 생전 정기용의 손길이 닿은 일기장과 같은 그림과 도면, 글, 모형 등의 1차 자료를 그의 건축 세계를 압축한 ‘길’을 테마 삼아 각 섹션에 설치했다. 이 전시는 그해에 열린 가장 훌륭한 전시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미술관의 두 번째 건축전인 이타미 준의 회고전도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 소마미술관의 <건축적인 조각-경계면과 잠재적 사이>,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건축가 그룹 문지방의 ‘신선놀음’, 김수근이 설계한 ‘옛공간’사옥을 개조해 문을 연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등 특정 건축물이나 건축과 미술의 경계에 관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잇따라 개최하면서 일련의 조류를 형성했다. 전문가들은 작년 한 해 한국 미술계의 트렌드 중 하나로 아카이브 중심의 건축전을 꼽았다.

건축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한국의 건축전 열기에 불을 지핀 사건은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일어났다. 렘 콜하스가 총감독을 맡은 전시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미술전에서 전수천, 강익중, 이불 등이 특별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었다. 국제 건축계에서 차세대 거장으로 주목해온 건축가 조민석이 커미셔너를 맡아 배형민, 안창모와 함께 <한반도 오감도>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남북한 건축사 100년을 건축, 사진,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의 예술로 조명한 대단히 의욕적인 전시였다. 3월에는 아르코미술관에서 이 전시의 귀국 보고전이 열릴 예정이라 한동안 건축전의 열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조민석은 지난해 11월에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회고전 형식의 개인전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를 개최했다. 황금사자상의 후광 때문인지, 아니면 플라토가 개관한 이후 처음 열린 건축가 개인전이기 때문인지 각종 매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전시의 구성과 양상은 <한반도 오감도>와 이란성 쌍둥이 같았다. 2003년 설립한 그의 건축설계 사무소 매스스터디스의 활동에 ‘전과 후’라는 시간 개념으로 접근했다. 여기서 ‘전’은 실제 건물을 세우기 전의 상태를 말한다. 적절한 컨셉을 찾는 브레인스토밍, 클라이언트와의 끝없는 협상,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공모전용 설계도 등을 만드는 시간이다. 이 공간에는 1:10~1:50 스케일의 평면과 단면, 목업(mock-up)을 비롯해 각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게 제작한 DIY 블록, 재료 스터디, 인테리어 패키지 등을 빼곡하게 전시했다. ‘후’는 건물이 드디어 세상에 실체를 드러낸 후, 건축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건축주의 용도에 따라 제 삶을 사는 시간이다. 여기에서 건축가는 자식을 시집 장가보낸 부모의 심정이 된다. 전시장에는 건축 사진 전문가 김용관·신경섭·이완 반의 사진, 화가 김혜련의 작품, 그가 설계한 건축이 등장한 영화나 그곳에서 아이가 노는 유튜브 영상, 서현석의 비디오 작품, 건축물을 소개한 출판물 등을 가득 모아두었다. 그의 건축을 이루는 혹은 실제 건축을 대체하는 모든 시각물을 망라한 것이다.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 조민석의 개인전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전경. Photo by 신경섭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전시 <한반도 오감도> 전경

미술과 건축의 콤플렉스
조민석의 전시가 흥미로운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데 있었다. 건축이 어떤 형태로든 미술과 조우했을 때 서로 다른 두 예술 영역이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는 무엇일까? 그것을 돌파하거나 극복하는 방법은 있는가? 혹시 건축을 다룬 전시, 즉 건축전 자체에 그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모든 건축전은 갖가지 자료를 그러모아 정리한 아카이브전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아무리 큰 미술관이라도 실제 건물을 미술관에 가져다 놓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시공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건축전은 한 건축가가 전 세계 곳곳에 세운 건물의 양상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이벤트다. 어떤 광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순간을 목도하는 경험은 짜릿하다.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행사의 주인공은 건축물의 축소판 혹은 실물의 프로토타입인 목업. 건축가의 컨셉이 실현될 미래의 시공간 속에서 허수아비처럼 미니어처 인간이 서 있는 풍경은 기묘한 데자부를 느끼게 한다. 지금 내가 이 전시를 보는 건물의 목업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었던 것일까 하는 엉뚱한 상상 말이다. 건축전의 또 다른 주역은 건축가가 휘갈겨 그렸거나 그의 손글씨가 남은 드로잉이다. 건축물을 스케치한 것이라곤 상상도 못할 만큼 괴이한 선들은 영감의 원천으로 액자에 모신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건축전이 열리고 있을까? 첫째, 건축가의 달라진 위상이 한몫한다. 전 세계의 크고 작은 도시는 제2의 ‘빌바오 효과’를 기대하며 세계적 건축가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이 우뚝 서길 고대한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과 같은 수식어를 단 랜드마크로 우뚝 솟은 도시의 건축물은 SF 영화에 등장할 법한 스펙터클한 풍경을 만들며 고대 유적지를 능가하는 새로운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았다. 건축가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지역 경제 활성화의 일등공신이 됐다. 둘째, 미술과 건축의 접점 때문이다. 자하 하디드,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 헤어초크 & 드 뫼롱 등은 미술을 건축설계의 핵심으로 본다. 그들이 설계한 건물에는 러시아 절대주의와 구성주의, 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퍼포먼스, 페미니즘 미술, 차용 미술 등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미술사학자 할 포스터(Hal Foster)는 저서 <미술-건축 콤플렉스(Art-Architecture Complex)>에서 미술과 건축의 복잡한 관계를 1950년대에 등장한 팝아트부터 추적해간다. 그는 오늘의 문화 지형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거나 공간을 구성하는 프로젝트의 근간은 모두 건축과 미술이 협업하거나 불꽃 튀게 경쟁하면서 형성한 관계에 있다고 지적한다. 예전에 선구적 건축의 필수 요건이 ‘이론’이었다면, 이제는 건축과 미술의 ‘친연성’이 그 자리를 빼앗았다. 셋째, 그 외형 자체로 ‘나는 예술이다’를 선언하는 건축물이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현시와 같은 건축물은 실제로 사용할 공간이라는 점을 간과하거나 그런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괴상한 형태를 자랑한다. 대개 해체주의 건축가의 작품이 그러한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대표적 인물이 프랭크 게리.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그는 건축에 관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건축가’라는 칭송을 받지만, 동시에 세간의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최근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시‘ 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찌그러진 버전’ 같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파편화된 유리 구름 같은 그의 건축물이 차지했다. 개관전에 참여한 내로라하는 현대미술가의 작품은 그의 건축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에두아르도 떼라자스, 밀라노 트리엔날레에 출품한 멕시코 파빌리온, 1968. MoMA의 라틴 아메리카 건축전 출품작

헤어초크 & 드 뫼롱, 아이웨이웨이, 2012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 2012 Iwan Baan

소우 후지모토, 2013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 2013 Jim Stephenson

스밀한 라딕, 2014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 2014 John Offenbach

2015년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의 디자인을 맡은 셀가스카노가 설계한 스페인 무르시아의 강당과 회의실 센터 내부
© Iwan Baan

르코르뷔지에, 인도 찬디가르의 국회의사당 모델, 1964
© MoMA

건축전을 넘어선 건축
미술계 입장에서 ‘예술 작품’이 된 건축을 마주하는 기분은 매우 난처할 것이다. 특히 그것이 미술관인 경우 더욱 그렇다. 유명 건축가가 세상에 던진 괴물 같은 건축물은 작가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상대다. 그곳은 새 프로젝트를 실행할 실험 무대이기도 하지만, 작품보다 더 작품 같은 모양새를 과시하며 작품을 하나의 소품으로 전락시키는, 작품의 개미지옥과 같다. 동시대 작가 중에는 ‘크기가 문제다’라는 명제를 실천하며 건축가와 경쟁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유토피아니즘에 입각해 ‘공공 미술’의 이름으로 건축물을 빼닮은 거대한 조형물을 제작하기 바쁘다. 미술이 된 건축, 혹은 건축이 된 미술의 접점이 할 포스터가 말한 ‘미술-건축 콤플렉스’가 자리하는 곳이다. 여기, 건축과 미술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공존의 활로를 모색하는 모범적 프로젝트가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가 진행하는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은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프랭크 게리를 비롯해 자하 하디드, 대니얼 리베스킨트, 이토 도요와 세실 발몬드,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렘 콜하스, 장 누벨, 알바로 시자, 페터 춤토르, 헤어초크 & 드 뫼롱과 아이웨이웨이,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만만치 않은 실력과 명성을 쌓은 건축가와 예술가가 참여했다. 오는 6월 문을 열 15회 파빌리온의 설계는 스페인 건축사무소 ‘셀가스카노(SelgasCano)’가 맡았다. 이들이 만든 일시적 구조물은 하나의 작품이자 건축 전시장이며, 미술과 건축,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복합적인 플랫폼으로 기능할 것이다.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의 성공적 역사를 되짚어보면 역시 건축가의 재능은 사람이 들어갈 구조물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삼성미술관 플라토, 국립현대미술관, MoMA, 서펜타인 갤러리, 구겐하임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