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위한 히든 전시
런던의 크리스마스 이벤트 ‘윈터 원더랜드’ 시즌에 맞춰 가족 혹은 연인과 보면 좋은 전시 3편을 추천한다.

전자 빛과 소리로 표현한 하룬 미르자의 작품 ‘A Chamber for Horwitz; Sonakinatography Transcriptions in Surround Sound’.
런던은 모든 시즌이 각각의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특히 겨울이 아름답다. 그중 하이드 파크는 10년째 크리스마스 조명을 입은 놀이기구와 빨간색 2층 버스, 버스커의 신나는 음악을 더한 크리스마스 테마파크 윈터 원더랜드로 변신해 런더너를 낭만적인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올해는 11월 17일부터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을 제외한 2018년 1월 1일까지 시즌 행사가 계속된다. 이에 발맞춰 런던의 갤러리도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보면 좋은 다채로운 전시를 준비했다.

1 댄 그레이엄의 브루털리즘 건축을 반영한 작품 ‘Two V’s Entrance-Way’.
2 1990년대 비디오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코리 아칸젤의 작품 ‘MIG 29 Soviet Fighter Plane and Clouds’.
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인터랙티브 아트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은 리슨 갤러리는 아티스틱한 공간 스토어 스튜디오스(Store Studios)에서 전속 작가 24명의 작품 총 45점을 선보이는 50주년 기념전 < Everything at Once> 를 12월 10일까지 개최한다. 백과사전식 진열로 구성한 기념전일 거라는 추측과 달리 전시명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한 텍스트, 조각, 페인팅, 퍼포먼스와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 총괄 디렉터 앨릭스 로그스데일(Alex Logsdail)은 “요즘은 모든 것이 한 번에 일어난다”는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의 말에서 전시 제목을 착안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논리적이고 선형적인 개념이 아니며 클릭 하나로 공간을 뛰어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현대미술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지난 50년간 150번의 개인전을 열고, 전속 작가만 54명이나 되는 리슨 갤러리에서 전시 작가를 선정하는 것은 물론, 소통도 쉽지 않았지만 주제를 정하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한국 작가 이우환을 비롯해 댄 그레이엄의 브루털리즘 건축을 반영한 파빌리온 작품 ‘Two V’s Entrance-Way’, 아이웨이웨이의 50m 길이의 월페이퍼 설치 작품 ‘Odyssey’, 공간과 시간의 모호한 경계를 담은 애니시 커푸어의 설치 작품 ‘At the Edge of the World II’, LA 아티스트 찬나 호위츠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전자 빛과 소리로 표현한 하룬 미르자의 ‘A Chamber for Horwitz; Sonakinatography Transcriptions in Surround Sound’ 등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작가의 작품 또한 만날 수 있다. 한편 스토어 스튜디오스는 런던 패션 위크와 루이 비통의 전시를 개최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다채로운 장르의 전시 작품뿐 아니라 패션, 음반, 공연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숍이 모여 있어 아이와 함께 오감을 깨우는 문화 체험을 하기에 제격이다.

런던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리는 톰 웨슬먼 전시 전경.
연인과 함께 느끼는 아름다움
앤디 워홀, 로이 릭턴스타인과 함께 미국의 3대 팝아티스트로 널리 알려진 톰 웨슬먼. 강렬한 원색으로 감각적인 주제를 표현한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Great American Nude’ 시리즈는 한국의 컬렉터들도 소장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가고시안 갤러리에서는 벨기에의 알민 레슈 갤러리와 연계해 각각 12월 16일, 1월 13일까지 톰 웨슬먼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연다.
‘Great American Nude’ 시리즈 이후 그가 1963년부터 약 20년간 창작에 몰두한 ‘Bedroom Paintings’ 시리즈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여성의 손이나 가슴 같은 신체 부위를 꽃이나 커튼 끝부분과 나란히 병치시킨 장면이 주를 이룬다. 톰 웨슬먼은 “꽤 오랫동안 크기에 관심을 뒀습니다. 그래서 몸을 클로즈업한 누드를 그리게 됐어요”라고 작품 창작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가고시안 갤러리는 3년 전부터 웨슬먼 전시 준비를 시작했는데, 컬렉터의 소장품뿐 아니라 옥션을 통해서도 수작을 소리 없이 모아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많은 컬렉터가 갤러리의 움직임을 눈치챈 탓에 전시 준비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웨슬먼의 작품이 재조명될 것을 알고 공개를 꺼렸기 때문. 그래서 런던 가고시안 갤러리 세 곳 중 가장 규모가 큰 그로스브너힐(Grosvenor Hill) 지점이 아닌 가장 작은 데이비스 스트리트(Davies Street) 지점에서 열리게 됐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바로 앞에 자리한 알민 레슈 갤러리에서도 웨슬먼의 전시를 만날 수 있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자. 웨슬먼의 누드는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해 더 섹시하고 아름답다. 연인과 함께 손잡고 웨슬먼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사랑의 감정이 더욱 샘솟을지 모른다.

3 역동적인 추상세계를 반영한 김민정 작가의 작품 ‘Cascata’. 4 리드미컬한 컬러의 향연을 보여주는 김민정 작가의 작품 ‘Story’.
고요한 사색에 잠기다
크리스마스의 흥겨운 기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전시도 있다. 런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현대미술 갤러리는 화이트 큐브다. 영국 미술의 빅 스타 데이미언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을 키운 갤러리로도 유명한 그곳에서 2018년 1월 26일부터 3월 10일까지 김민정 작가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 화이트 큐브는 두 차례에 걸친 박서보 작가의 전시로 작품성과 시장성을 확인한 후 제2의 박서보를 물색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술감독 캐서린 코스털은 포스트 단색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2016년부터 세 차례나 한국을 방문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고, 결국 김민정 작가를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캐서린은 김민정 작가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여성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단색화를 계승한 한국의 여성 작가를 찾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그녀는 스승 박서보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물론 수십 년 동안 외국 생활을 했음에도 여전히 한국의 전통 재료 한지를 그을리고 태우는 명상적 작업 방식을 고수합니다. 그를 통해 인간으로서 받은 상처, 여성으로서 겪은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켜 독자적 작품 세계를 구축했죠”라고 답했다.
김민정은 침묵 속에 호흡을 멈춘 채 한지와 먹, 그을음을 이용해 행위의 흔적을 만듦으로써 리드미컬한 추상적 표면을 탄생시키고, 그것은 곧 관람객의 감정적 해소로 이어진다. 올 겨울 엄마와 함께 갤러리를 찾아 가만히 우리의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김은아(독일 RTL 아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