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찬가
찬 바람은 모두에게 똑같이 불 텐데, 한 컷의 사진 속에 담긴 겨울은 어찌 이리 다른 그림일까? 유난히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다 겁을 주지만, 겨울이 만들어낼 새로운 이야기 때문에라도 우리의 겨울은 어디쯤 왔나, 기다려본다.
하얀 눈 아래 덮인 슬픔
해발 8125m, 파키스탄의 고봉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의 낭가는 힌두어로 ‘벌거벗은(naked)’, 파르바트는 ‘산(mountain)’을 의미합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바위만 있는 산이 벌거벗은 것처럼 보인 걸까요. 눈앞에 낭가파르바트의 수문장, 루팔 벽이 수직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높이 8000m급 14개 봉우리 중에서도 3600m 높이에 위치한 베이스캠프와의 고도차가 무려 4500m나 됩니다. 그래서 에베레스트 남서벽, 안나푸르나 남벽과 더불어 가장 오르기 힘든 등반 코스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양옆으로 뻗은 산 아래 드넓은 초지가 있어 산악인 사이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베이스캠프라는 평을 얻었지만 낭가파르바트의 별명을 들으면 이내 오싹함을 느낍니다. 이곳의 별명은 ‘Killer Mountain’, 즉 죽음의 산입니다. 1895년 영국 산악인 앨버트 프레드릭 머메리가 가장 먼저 등반을 시도했지만 가이드와 함께 산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낭가파르바트는 독일인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1934년과 1937년, 눈사태로 연달아 26명의 산악대원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8000m 이상의 고봉 14좌를 모두 정복한 산악계의 거인, 라인홀트 메스너도 1970년에 동생인 권터 메스너를 이곳에서 잃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장소입니다. 2009년, 14좌 완등을 시도하며 촉망받던 여성 산악인 고미영 씨의 영혼 또한 낭가파르바트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낭가파르바트에는 어쩌면 이렇게 슬픈 이야기가 가득할까요?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 앞에서 한국의 패러글라이딩 원정대원이 히말라야의 하늘길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새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붉은 패러글라이더가 유난히 돋보입니다. 더 이상 낭가파르바트에서 보낸 겨울을 슬프지 않고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낭가파르바트의 바위는 슬픔을 벗고 희망을 입을 때가 왔습니다.
이훈구(사진작가, 사진집 <히말라야 유랑> 저자)
아침은 붉지 않았다
쓸쓸한 초겨울, 하늘이 흐립니다. 이곳은 경북 의성읍 비봉리 산골 마을입니다. 마당에 서면 손끝과 귓불로 차가운 기운이 차오릅니다. 새벽부터 흐리던 하늘이 이내 흰 눈을 땅에 내려놓습니다. 외롭다고 느낄 때 오는 가슴의 냉골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외롭게 해볼 만도 합니다. 뚝 떨어져나와 쓸쓸하여 울먹여도 볼 일입니다. 모여 사는 날들이 낡고 바래서 서로에게 무디어지고 냉담해질 때 다시 한 번 삶을 되짚어보게 됩니다. 꽉 들어찬 순대 속같이 빡빡한 일상 속으로 밀어넣지 않아도 되는 곳이 제가 사는 곳입니다. 계절의 한 귀퉁이를 파먹고 있는 겨울의 갈증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편안한 빈 풍경을 즐기게 합니다. 눈보라 속에서 나뭇가지들은 우수수 지난 시간을 쏟아놓듯 울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초겨울 숲에는 흰 눈이 쌓이고 안간힘이라도 쓰듯 시간을 붙잡고 있습니다. 잎을 떨군 마른 가지들은 흰 붕대를 감싼 듯 하얗고 숲으로 가는 마을 입구의 예배당 종탑에도 새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습니다. 가지에 쌓이는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설해목 소리가 멀리서 정적을 깨뜨리며 빈 하늘로 울려 퍼집니다. 익숙해진 풍경 속에 우리도 풍경이 되어갑니다. 숲에서 만난 것들은 잊기 좋은 짧은 만남이지만 돌아서면 기억하기 좋은 오래된 만남입니다.
초겨울의 산책은 나뭇가지의 길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는 검은 겨울이 있습니다. 발등에 12월의 눈이 쌓이고 있습니다. 지나간 뒤는 늘 아쉽고 다가올 앞은 설렘으로 살아갑니다. 등 뒤의 숲에서 수런거리던 바람이 스쳐 지나갑니다. 제 몸속에는 무수한 겨울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에는 꽁꽁 언 동치미 국물에 만 메밀국수를 안주로 찬 소주나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덕희(사진작가, 사진집 <바다로부터 숲에게로> 저자)
두 번의 크리스마스
첫 번째 사진은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놀이공원에 놀러 갔을 때가 중학교 시절로 기억되니 정말 오랜만에 가본 것이었습니다. 일 때문에 간 것이라 예전만큼 기대가 되거나 신이 나진 않았습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으니.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놀이공원의 메인 스트리트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광장에 설치한 높이 16m, 폭 48m의 벽면에 환한 빛을 쏘면서 환상적인 레이저 쇼가 시작됐습니다. 그 순간 놀이공원은 파리의 거리로 변신했고, 화려한 불꽃놀이의 피날레까지 감상하니 시큰둥하던 제 기분도 어느새 감미로운 크리스마스 무드에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천사가 저를 위로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한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는 싱가포르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더운 나라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는 참 생소했습니다. 흥겨운 캐럴이 흘러나오고 나름대로 신경 쓴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과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사람들까지 있었지만 무언가 하나 빠진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날, 신기하게도 오차드 로드 끝자락에 위치한 탕린 몰 앞에 흰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현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싱가포르의 대표적 연말 행사인 ‘크리스마스 인 더 트로픽스(Christmas in the Tropics)’ 기간에 매년 인공으로 만든 버블 스노를 뿌린다고 했습니다. 비누 거품으로 만든 눈이라니! 무더운 싱가포르에서 만난 하얀 눈은 누가 봐도 로맨틱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쉽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면서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완성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올까요?
오충근(여행 사진 전문가)
굿바이, 산타클로스
2012년 겨울, 핀란드의 로바니에미(Rovaniemi)로 크리스마스 판타지를 찾아 떠났습니다. 이름마저 예쁜 로바니에미는 어린이들이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고 믿는 산타클로스 마을이 있는 곳입니다. 신비주의의 대명사 산타클로스가 있다니, 떠나기 전부터 어릴 적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면서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흰 눈을 맞으며 김포 벌판을 걸어다니고 새벽 송가를 부르던 기억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마치 스위치를 올린 듯 창가에 따뜻한 불이 켜지고, 꽁꽁 언 몸을 녹이려 나눠 마시던 뜨거운 생강차가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 저는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지만 애타게 기다리진 않았습니다. 로바니에미에서 진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오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핀란드 북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사미족이 ‘여우가 꼬리로 바위를 치면서 만드는 불’이라고 믿는 오로라를 보길 간절히 원했지만, 30년을 기다려온 저에게 오로라 감상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산타클로스를 보지 않고도 믿던 때가 좋았고, 오로라는 사미족의 전설로 상상할 때 더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 시급을 받고 일하는 산타 할아버지와의 만남, 보지 못한 오로라에 대한 아쉬움 등 만감이 교차하면서 로바니에미에서의 마지막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저를 창밖의 푸른 새벽빛이 불렀습니다. 홀로 새벽 길을 걸으며 애틋함을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내가 믿던 존재, 오랜 기다림, 그 모든 것이 애틋하게 다가왔습니다. “존재하는 것들 모두 애틋하다”고 말한 전경린의 마음이 이러했을까요?
전재호(사진작가)
에디터 고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