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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

LIFESTYLE

<노블레스> 창간 27주년을 맞아 영남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화제의 인물 4명을 만났다. 자신만의 신념을 기반으로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그들의 이야기.

호텔리어가 된 사업가
식품 기업 바르미그룹의 서기수 회장은 지난 2015년 11월 호텔 인터불고 대구를 인수하며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호텔 인터불고 대구를 통해 대구 관광 산업의 도약을 꿈꾸는 그와 나눈 이야기.

호텔 인터불고 대구를 인수하기 전까지 바르미그룹의 서기수 회장은 지역 경제계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기업인과 교류하기보다는 물밑에서 묵묵히 사업을 일구던 그의 행보가 드러난 건 지난 2015년 11월, 대구의 특급 호텔 중 하나인 호텔 인터불고 대구의 인수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다. 칼국수 전문점의 특급 호텔 인수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소개되며 많은 매체의 주목을 받았지만, 2015년 이후 단 한 차례의 인터뷰를 제외하고 모든 인터뷰를 거절해온 그가 <노블레스> 카메라 앞에 섰다.

호텔 인터불고 대구 인수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호텔을 인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희 그룹은 호텔 인수 전, 비즈니스호텔 설립을 계획 중이었습니다. 동남아 진출을 위해 설립한 인바운드 여행사 ‘바르미TNT’를 운영하며 느낀 숙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던 중 주 거래처에서 호텔 인터불고 대구 인수를 추천했고 4개월간 검토 끝에 인수 결정을 내렸습니다. 호텔 사업을 살펴보며 외식업이 호텔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외식 전문 기업으로 성장한 우리 회사가 잘 운영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동안 호텔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호텔은 지금도 진화하는 중입니다. 호텔 경영을 맡은 후 가장 먼저 정비한 분야는 F&B입니다. 외식 전문 기업인 만큼 음식 하나는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프리미엄 한식당 심비디움, 더 뷔페 앳 인터불고 오픈을 위해 총괄 셰프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며 메뉴를 선정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새로운 요리는 제가 직접 맛본 후 결정합니다. 그 외에도 본관 1층 연회장을 리뉴얼했고, VIP를 위한 퍼스트 라운지를 만들었어요. 호텔 투숙객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피트니스센터 아티스 클럽이 올해 초 오픈했고, 오는 10월에는 새로운 별관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기둥만 제외하고 다 바꾼다는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문 호텔 경영인이 아닌데도 그렇게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회장,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누군가 제 직업을 묻는다면 저는 ‘트렌드 연구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음식 트렌드는 결국 소비 트렌드 중 하나예요. 저는 호텔이 아니라 각각의 영업장을 운영한다고 생각합니다. 레스토랑의 장점이 객실의 단점을 보완하는 개념이 아니라 식당은 식당대로, 객실은 객실대로 경쟁력을 갖춰야겠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접근 방식 덕분에 호텔 리뉴얼 초기부터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년 동안 외식 전문 기업으로 성장한 바르미그룹에서 호텔 인수 전부터 관광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의외였습니다. 대구의 관광산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역적 특성상 명소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죠. 긍정적인 부분은 최근 자연 명소를 찾는 여행보다는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테마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구는 최근 도심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대구 근대화 골목 등 근대사와 결합한 다양한 관광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국내 관광객에 국한한다면 대구 관광의 미래가 밝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계로 눈을 돌리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르미그룹의 여행사 바르미TNT는 처음에 바르미그룹의 푸드 프랜차이즈 사업을 동남아 시장에 소개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대구, 경북 지역에 특화된 관광 콘텐츠까지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탐방, 유교 체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콘텐츠가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거죠. 동남아 고객을 유치한다면 대구의 관광산업은 지금보다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관광 모델을 개발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두바이를 방문하는 이유는 바로 부르즈 알 아랍 때문이죠. 전통적 관광산업의 개념에서 호텔은 관광지와의 접근성이 최우선이지만 최근에는 호텔을 관광지처럼 즐기는 것이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호텔을 예로 들긴 했지만 지역을 상징하는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이 탄생한다면 관광 모델로서 더할나위 없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대구의 관광산업은 도심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호텔이 도심에 위치하는 상황에서 호텔 인터불고 대구가 갖춰야 할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위치상 도심에 해당하지만 금호강과 망우당공원 등 자연과 인접해 대구 시민에게는 부도심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저는 외부의 우려와는 반대로 위치가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객실에서 프라이빗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대구의 특급 호텔은 현재까지 우리 호텔이 유일합니다. 패밀리형 리조트를 표방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호텔 대표이사직을 맡은 이후 1년 6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바르미그룹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의 구심점을 필요로 하던 시점에 호텔 인터불고 대구를 통해 그룹의 기반을 다지고 외식업과 프리미엄 관광산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가장 큰 목표는 호텔 리뉴얼입니다. 2018년까지 진행하는데, 올해 사업 중에서는 10월까지 이어질 별관 리뉴얼이 가장 중요합니다. 새로운 별관 객실은 기존 규모보다 2~4배가량 넓어지고 20여 종의 개성 있는 컨셉을 갖춰 저 역시 무척 기대됩니다. 2018년까지 로비 라운지, 본관 3개 층을 개·보수하면 호텔 전체 리뉴얼이 완료됩니다. 2019년부터는 동남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맛과 멋을 알리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창간 27주년을 맞은 <노블레스>를 위한 축하 메시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먼저 <노블레스>창간 2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난 시간 성장해온 것처럼 앞으로 <노블레스>가 승승장구하길 바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노블레스>와 호텔 인터불고 대구가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재생
오래된 폐공장에서 도시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해 문화 재생 사업의 모범 답안으로 떠오른 F1963. 설립부터 지금까지, F1963의 중심에는 강재영이라는 강단(剛斷) 있는 문화 예술 기획자가 있었다.

1945년에 창업한 부산의 향토 기업 고려제강이 2016년 서울의 핵심 부서와 계열사를 부산 신사옥으로 이전하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을 때, F1963의 오픈은 ‘자축의 세리머니’ 그 이상이었다. 1963년에 설립한 고려제강 와이어 공장을 복합 문화 예술 시설로 부산시에 기증한 것 자체도 화제였지만, 낡고 오래된 폐공장이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지난 3월, F1963의 총괄 기획자로 부임한 강재영은 시쳇말로 ‘포클레인으로 땅 고를 때부터’ F1963과 함께해온 이다. F1963 설립 이전에는 고려제강 기념관 ‘키스와이어 뮤지엄(Kiswire Museum)’의 전시 기획을 맡았고, F1963 설립 당시에는 운영 자문 역할을 했으며, F1963의 첫 행사인 ‘2016 부산비엔날레’에도 함께했다.
“2011년부터 이어온 고려제강과의 인연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회장님부터 수위 아저씨까지 고려제강의 많은 이들과 교류해왔습니다. F1963은 고려제강이라는 기업이 부산에서 이루고자 한 사회 공헌적 소명을 어떻게 실천해나갈지 잘 보여주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문화 예술 콘텐츠의 플랫폼으로서 부산 특유의 지역적 정서가 듬뿍 담긴 문화 예술이 이곳에서 꽃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재영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환기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고,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의 첫 회부터 4회까지 전시팀장을 맡았다. 프리랜서로 중국 난징 트리엔날레 공동 큐레이터와 경기도 DMZ 캠프그리브스 문화 재생 전시 기획을 맡는 등 크고 작은 문화 예술 콘텐츠를 기획해왔다. 오랜 중국 유학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후 국내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할 무렵, 고려제강의 기념관 전시 기획 제안을 받아 인연을 맺게 되었다. 국가기관과 기업, 공립 미술관과 사립 미술관 등의 문화 예술 콘텐츠를 두루 기획해본 그녀의 이력은 F1963의 총괄 기획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 되었다.
고려제강과 인연을 맺고 서울과 부산을 오간 지 벌써 7년. 처음에는 그녀 역시 외지인으로서 부산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고 한다. 도시와 사람들 면면에 밴 거칠고 투박한 정서, 특유의 강한 지역성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예술 기획자로서 부산이라는 도시에 잠재된 예술적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도심에서 가까운 거리에 다양한 모습의 바다가 있고,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구도시와 신도시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개방적이고 친화력이 뛰어나 예부터 외부의 문화 예술을 받아들이고 자기화하는 데도 탁월했죠. 문화 예술을 창조하고 소비할 인구수도 350만 명이나 됩니다.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보면, 부산 출신 예술가들은 굉장히 끼도 많고 직접적이며 과감한 면모를 지니고 있어요. 오늘날 부산의 젊은 예술 세대는 서울에 집중된 문화 예술적 콤플렉스마저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비해 ‘부산이 문화 예술 불모지라 예술 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덜한다는 거죠. 앞으로 제가 F1963이라는 공간을 빌려 부산 시민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런 ‘부산성’이 짙게 배어나는 문화 예술입니다.”
9월은 F1963의 총괄 기획자로서 향후 그녀가 제시할 비전을 담아낸 행사로 일정이 꽉차 있다. 부산과 프랑스 작가들이 함께하는 ‘사운드 아트’ 전시부터 오픈 스퀘어 야외 공연 프로그램, Yes24 중고서점 오픈이 예정되어 있다. 부산시와 고려제강, 부산 시민, 즉 관과 기업, 민이 함께 공간의 주체가 되는 융·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는 셈이다.
“F1963은 문화 예술적으로 공공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국가와 부산시가 막대한 지원금을 마련해주었고, 지역의 문화 예술적 특징을 잘 아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공공성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고려제강이라는 성공한 기업의 상업적 노하우까지 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면 격이 떨어질 수 있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공공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정체되고 딱딱해질 수 있는데, F1963은 이 두 성격을 모두 갖췄지만 관과 기업 어느 쪽에도 치우치거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산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문화 예술적 끼가 마음껏 발현되길 바랍니다.”
F1963의 ‘F’에는 팩토리(factory) 외에도 그녀가 이 공간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것이 담겨 있다. 남녀노소 전 세대(family)를 아우르는 품격 있는 문화 예술(fine art) 공간이자 도심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자연(forest)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10년 동안 육중한 철문을 굳게 닫은 채 사람의 발길조차 닿지 않은 폐공장, 그곳에서 나온 나무판자 하나, 와이어 한 줄까지 버리지 않고 정원의 벤치로, 카페의 장식품으로 활용했다는 F1963. 과거 밤낮없이 와이어를 생산하던 폐공장에 강재영이라는 예술 공장장이 불어넣을 문화 예술적 숨결이 기대된다.

 

여성 과학자로 살기
포스텍 박문정 교수는 현재 한국 과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한림원 주관 ‘젊은 과학자상’, ‘한국을 빛낼 젊은 과학자 30인’ 등 국내 과학계의 굵직한 상을 휩쓴 그녀는 지난 1월 미국 물리학회가 선정한 세계적 권위의 딜런 메달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며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자리매김했다.

늦었지만 딜런 메달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딜런 메달을 수상하게 된 ‘탄화수소계 전해질막 나노 구조와 전하 수송의 상관관계’의 내용이 무척 궁금한데, <노블레스>독자를 위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학부생을 상대로 쉽게 설명할 때 밀폐된 공간의 방귀를 예로 들어요.(웃음) 일반적으로 기체는 1초에 약 500m 이동합니다. 메탄가스인 방귀 역시 이론상 1초가 지나면 바로 냄새가 느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죠. 왜냐하면 기체는 직선 운동이 아니라 무작위 운동을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우리의 코에 닿기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돌아옵니다. 모든 전지는 양극과 음극, 전해질로 구성되어 있고 전류는 두 전극 사이의 전자 흐름과 전해질 내 이온의 흐름에 의해 생깁니다. 이온 역시 무작위 운동을 하죠. 전해질 내 이온의 무작위 운동은 전지의 효용 면에서 볼 때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제가 한 연구는 고분자 전해질 분리 막을 이온이 움직일 수 있는 지름길로 만들어 전지의 효용을 높이는 일이에요. 이 연구는 모든 전기화학 시스템에 적용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이 이론을 토대로 리튬 배터리를 만든다면 제조 가격은 5분의 1 수준으로 줄고, 용량은 4배 이상 높일 수 있죠.

교수님의 연구 중 신경계와 연결된 고분자 액추에이터, 즉 인공 근육 연구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 별개로 존재하던 과학 분야가 융합해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현시점에 실험과 관련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 편인가요?
제가 오랜 시간 실험을 하면서 얻은 결과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은 이미 있던 것이거나 특별한 게 없다는 거예요. 훌륭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아이디어보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후 꾸준히 면담을 하고 실험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봅니다. 그 과정에서 우연찮게 발견하는 현상이 아이디어를 던져주거든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위대한 발견, ‘세렌디피티’는 그렇게 탄생했죠.

교수님도 세렌디피티를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네, 저도 꽤 많은 편이에요. 제가 연구한 연료 전지를 예로 들어볼게요. 연료전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산화탄소가 차가운 전극에 달라붙는 피독 현상이에요. 이상적으로는 100℃ 이상에서 작동하게 설계해야 하는데 연료전지 내에는 물을 기반으로 한 전해질이 들어 있어 100℃가 넘으면 물이 증발해버립니다. 제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휴가를 갔을 때 제너럴셔먼트리라고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를 볼 기회가 있었어요. 무심코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이렇게 더운 날씨에 나무가 말라 죽지 않는 이유는 뭘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한국에 돌아와 나무 속에는 아주 가는 모세관이 있어 더운 날씨에도 물이 증발하지 않고 줄기 끝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모세관을 얼마나 줄여야 100℃ 이상에서 물이 최소한으로 증발할지 계산해보니 정확히 2.5nm였습니다. 결국 모세관과 닮은 나노 채널을 연료전지에 적용해 전도도를 10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었죠.

딜런 메달 수상 후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인터뷰와 강연 제의가 무척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사실 연구만 생각한다면 강연을 거절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대중 강연을 통해 과학을 알리고 아이들을 과학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교육자로서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과학관 강연은 중요한 학회가 없는 이상 꼭 참석하는 편입니다. 진지하게 강연을 듣는 학생틀을 보면서 저 역시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10년 전에 비하면 과학고등학교의 수가 2배 이상 증가했지만 특정 학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대학에서는 순수 과학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타깝게도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조차 자신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3~4년 전만 해도 의과전문 대학원이나 약학대학원 진학을 위해 포스텍에 오는 학생의 비중이 꽤 높았어요. 그들의 선택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건 아직까지도 비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이 도처에 자리하기 때문이죠. 의대 졸업생과 화학 박사 이수자의 대우만 비교해봐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과학자는 힘든 직업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의 그런 인식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노벨상 수상이죠. 정부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BK21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 교육에 대규모 지원을 이어왔습니다. 열악한 현실 때문에 과학 인재들이 결국에는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문제였죠. 피겨의 불모지라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김연아 선수의 성공이 ‘김연아 키즈’를 탄생시킨 것처럼 노벨상 수상자를 통해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이 과학자라는 직업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를 살펴보면 시대를 앞서간, 그러니까 당시에는 전혀 뜬금없다고 생각하던 분야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른바 ‘풀뿌리 연구’, 단기간에 진행하는 연구로는 노벨상 수상은 불가능해요. 과학계에서는 10년 이상의 연구 정도는 되어야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정책상 우리나라에서 10년 이상 이어온 연구 과제는 손가락에 꼽는 수준입니다. 장기 과제가 주어져도 실적 압박이 심해 초기 의도와 달리 중간에 변질되는 경우도 있죠.

과학자의 연구 주도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물론 장기 과제 육성을 위해서는 과학자의 양심이 뒷받침되어야죠. 가까운 일본의 제 또래 과학자들은 장기 연구를 진행하며 3년 동안 논문이 없어도 그 부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그동안 결과만 찾지 못했을 뿐 사실 무척 열심히 연구해왔거든요. 지원처에서도 믿고… 그 사람들 역시 그걸 알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에 자부심을 느끼죠.

양심의 절대적 기준이 없으니 어렵네요. 평소 학생들에게 과학자의 양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나요?
그렇죠. 어려운 얘기예요. 학생들에게는 늘 과학자의 양심에 대해 강조해요. 저희가 하는 모든 연구가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하는 거니까요. 간혹 나태한 학생에게는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할 기회를 찾았으면 최선을 다하라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죠.

최근 3년간 여성 과학자로서 눈부신 행보를 보여주셨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과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카오스 재단과 함께 강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를 비롯해 노벨상 후보로 알려진 하버드의 김필립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한 강연인데, 제가 연구하는 인공 근육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물론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연구도 성공적으로 마쳐야겠죠. 지금은 과학자와 교육자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디자인
예술의 경지에 오른 디자인은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품과 제품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 왕현민은 아트 퍼니처를 만드는 작가다.

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경성대학교의 산업공예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왕현민 작가는 부산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전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2010년 졸업 작품전을 통해 처음으로 아트 퍼니처를 선보였습니다. 건물의 골조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직선, 딱딱함이라는 물성을 지닌 나무를 통해 곡선의 움직임을 표현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작은 나무 스틱을 골조라 생각하고 벤치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1Curved Cilynder, 2017   2Wave ‘0’, 2017

나무 스틱의 길이를 조절해 구조적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을 연결해 입체적 곡선을 만들어낸 작품은 마치 도형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다. “먼저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스케치합니다. 주로 기본적 입체 도형에서 출발하는데 제 머릿속에 있는 작품은 대부분 평면 위에 올린 단편적인 모습이죠. 그 후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품을 다듬어요. 작품 내에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의외의 모양이 탄생하기도 하죠.” 이쯤 되면 가구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그의 작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갤러리, 혹은 그의 작품이 있는 그 어디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상상력을 총동원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와 달리 그는 작품을 통해 어떤 개념을 설명하기보다는 외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식을 택했다. “작품의 의미에 비중을 두고 작업하는 편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골조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표현 수단일 뿐이고 구조의 안정적인 상태를 표현하려고 해요. 제가 봤을 때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을 느끼는 모양을 찾아내는 과정이죠.” 초기작은 기능보다는 표현에 중점을 두고 만든 탓에 작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나무 스틱을 많이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앉아보니 스틱의 뾰족한 부분이 거슬리더군요. 제 작품이 마냥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가구로서 기능은 갖춰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스틱의 양 끝을 둥글게 다듬고 연결 구조 등 몇 가지 문제점을 보완해 지금의 형태를 완성했습니다.” 그는 나무 스틱을 볼트로 연결하는 기존 작업 방식에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스틱을 X자로 교차 연결하고, 볼트 대신 리벳을 사용해 작업 효율을 높였다. 나무 두께가 3mm에서 7mm로 증가하며 작품은 더욱 견고해졌다. ‘Polygen Bench’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한 그의 대표작이다. 원통형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Polygen Bench’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그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디자인과 순수 미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 대구미술관의 〈dna〉전, 부산디자인페스티벌 등 짧은 시간 다양한 그룹전과 디자인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지역 문화계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며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작품을 뒤덮고 있는 검은색의 등장. 국립한글박물관과 LA 한국 문화원이 세종대왕 탄생 620주년을 맞아 기획한 <소리ⅹ글자: 한글 디자인>전을 준비하며 얻은 결과물로 앞뒤로 교차된 스틱이 각도에 따라 다양한 굵기의 선을 만들어내며 모던한 느낌을 자아낸다. “한글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던 중 서예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검은색을 사용했어요. 하나의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개의 육각형 패턴을 이어 붙이듯 제 작품은 겉보기에는 단순한 도형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스틱으로 만든 패턴이 무수히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나뭇결을 살렸을 때는 빛이 반사되어 보이지 않던 선들이 검은색을 사용하니 잘 보이더군요.” 특히 인당아트홀 입구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설치 작품은 거대한 붓으로 공간에 수묵화를 그린 듯 위치에 따라 농담(濃淡)을 달리하는 패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트 퍼니처가 생소한 만큼 실제로 작업을 하는 작가 역시 국내에 몇 명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직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좋은 작품으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올해 말까지 왕현민 작가는 개인전과 그룹전을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낼 예정이다. 오는 11월에는 프랑스 문화원에서 여섯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고 12월에는 도쿄 아자부주반 갤러리에서 열리는 기획전과 2017 공예트렌드페어에 참여한다. 주목받는 신진 작가들이 그러하듯, 앞으로 그의 작품을 만날 기회는 많아질 것이다. 어디선가 작품을 만날 관람객을 위해 마지막으로 그가 덧붙였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순수하게 작품을 바라봐주세요. 작품의 낯설지 않은 외형, 그 속의 숨은 구조를 통해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에디터 박현정(hjpark@noblesse.com), 손지혜(프리랜서)
사진 공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