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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열정과 냉정 사이

ARTNOW

전 세계 미술 시장의 현재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경매 현장은 욕망과 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천문학적 금액이 먼저 언급되지만 모든 것의 시작은 미술에 대한 사랑이다. 뉴욕, 런던, 홍콩의 경매 흐름을 읽으면 미술 시장을 보는 안목은 저절로 따라온다.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에피소드까지 곁들인 흥미진진한 경매 이야기.

크리스티 뉴욕에서 열린 옥션 현장. 누가 작품의 새로운 주인이 될지 긴장과 설렘이 오가는 순간이다.

미술 경매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으레 거래되는 미술 작품의 높은 가격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작품에 깃든 예술적 오라에 매혹되기 때문이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의 상호 교감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 느끼면서 미술 경매시장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5월과 6월은 크리스티 뉴욕, 런던, 홍콩에서 인상주의와 현대미술, 전후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 아시아 현대미술 등의 메이저 경매가 가장 숨가쁘게 이루어지는 시기다. 전 세계 주요 컬렉터와 딜러들이 경매의 분위기와 결과에 관심을 보이며 지금의 미술 시장 현황과 향후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 잭슨 폴록의 ‘19번’은 지난 5월 크리스티 뉴욕 옥션에서 5830만 달러에 낙찰됐다.
2 1977년 18만 달러에 팔린 샤임 수틴의 ‘작은 빵장수’는 크리스티 뉴욕 옥션에서 1800만 달러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뉴욕 경매 – 인상주의와 현대미술, 전후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
뉴욕, 런던, 홍콩 중 가장 큰 경매시장은 단연코 뉴욕이다. 지난 5월 뉴욕 경매에선 최고의 작품에 대한 컬렉터들의 열정을 기반으로 총 41개의 경매 신기록을 세웠고 전 세계 36개국에서 구매자가 나왔다. 현 미술 시장이 얼마나 글로벌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인상주의와 현대미술 경매에서는 94%의 낙찰률, 총 1억5800만 달러의 낙찰가를 기록했고 작품 4점이 1000만 달러 이상, 10점이 500만 달러 이상, 36점이 100만 달러 이상의 가격에 낙찰됐다. 1977년 18만 달러에 팔린 수틴의 ‘작은 빵 장수’가 1800만 달러로 최고가를 기록했고, 1991년 77만 달러에 팔린 기록을 보유한 모네의 ‘길’이 516만 달러에 낙찰된 것을 보면 미술사적으로 의미 깊은 작품의 가격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Celebrity Effect,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재단
5월 13일 저녁 6시, 저명한 예술가와 컬렉터, 환경주의자와 스타들이 삼삼오오 록펠러 센터에 있는 크리스티로 모여들었다. 할리우드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재단과 크리스티가 기획한 ‘11th Hour Auction’ 자선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동시대 미술 시장을 이끄는 작가들이 특별히 이 행사를 위해 제작, 기부한 33점의 대작을 출품한 역사적 경매로 총 3880만 달러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행사에서 발생한 수익금은 지구 환경을 지키고 멸종 위기에 처한 생태계의 종을 보호하기 위해 창안한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마치 지구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입찰해달라”는 디캐프리오의 열정적인 요청과 함께 시작, 참가자들이 이에 열광적으로 응답함으로써 많은 작가의 경매 신기록이 나왔고, 그의 오랜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어릴 때부터 인간의 동물 사냥을 보며 ‘더 이상은 이 동물들을 지구에서 보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한 그는 1998년 재단을 설립해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해 애써왔다. 더 늦기 전에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해 크리스티 자선 경매를 통해 기금을 모으기로 했다. 2007년 디캐프리오가 작업한 다큐 필름 ‘11th Hour’를 자선 경매 제목으로 정했는데, 그만큼 우리가 환경 위기의 정점에 있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지구의 생태계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인 지구온난화, 삼림 파괴, 많은 종의 멸종과 해양 생물의 감소로 인류의 미래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지구의 미래를 위해 일조하려는 디캐프리오의 집념과 영향력은 한마디로 대단했다. 그는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와 함께 33명의 유명 작가를 일일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뜻에 동참해주기를 요청했다. 스타로서 영향력을 발휘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 참으로 아름답다.

전후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의 최고가 행진
지난 5월 15일 크리스티 ‘전후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 이브닝 경매에선 총 4억9500만 달러라는 경매 역사상 최고가의 낙찰 결과가 나왔고, 16개의 세계 신기록과 4000만 달러 이상 작품 3점, 1000만 달러 이상 9점, 500만 달러 이상 23점, 100만 달러 이상 59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대가인 폴록과 로드코, 팝아트 작가인 워홀, 릭턴스타인, 바스키아 등의 작품과 유명 컬렉션에서 나온 작품에 대한 열정적인 입찰이 쏟아졌는데, 미술사에 남을 걸작인 폴록의 ‘19번’이 5830만 달러, 릭턴스타인의 ‘꽃모자를 쓴 여인’이 5600만 달러, 바스키아의 ‘마약중독자’가 4880만 달러에 낙찰됐다.

돌아보면 이미 2000년 초·중반에 전후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은 가장 큰 경매 카테고리였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피카소, 모네, 모딜리아니 같은 보다 안정적인 작가의 작품으로 돌아서는 경향을 보여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기록을 경신하며 시장에 나오는 물량도 많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인상주의와 현대미술 걸작은 좋은 작품이 시장에 지속적으로 나오기 힘든 데 비해, 전후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은 보다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경매시장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롭게 부유층으로 떠오른 젊은 컬렉터들의 변화하는 취향과 갈수록 글로벌해지는 미술 시장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1 뇨만 마스리아디의 ‘웹사이트 공격’. 사회 풍자 메시지를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는 그의 작품은 크리스티 홍콩 옥션에서 93만 달러에 낙찰됐다.
2 크리스티 홍콩 옥션에서는 중국의 마티스라 불리는 창위의 ‘서 있는 두 누드’가 치열한 경합 끝에 580만 달러에 낙찰되어 최고가를 기록했다.

런던 경매 – 피터 도이그와 데이미언 허스트의 다른 길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도 전후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표현주의에서 순수 추상으로 막 변모해가던 1909년 칸딘스키 작품 ‘즉흥 3’이 2100만 달러에 낙찰됐는데, 바스키아의 1982년 작품 ‘무제’는 3명의 입찰자가 경쟁해 2890만 달러에 팔렸다. 2002년 11월 필립스에서 165만9000달러에 낙찰된 작품으로, 현대미술사에서 추상회화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거장 칸딘스키의 작품보다 훨씬 높은 작품가를 기록했다. 동시대 미술이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고 또 높은 작품가를 기록하는지, 미술 시장의 현재를 읽을 수 있는 일례다.

지난 6월 런던 크리스티의 전후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 경매에서 피터 도이그의 ‘방파제’는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감정가 1100만 달러에 한 전화 응찰자에게 낙찰됐다. 1994년 뉴욕 개빈 브라운 갤러리에서 열린 피터 도이그의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매우 어둡고 시적인 작품으로, 당시 캐나다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첼시까지 작가가 직접 운전해 가져간 것. 약 4000파운드, 한화로 700만 원 정도에 현 소유주가 구입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도이그는 당대 영국의 yBa 작가들이 개념미술이나 설치 작업에 몰두할 때 회화에 집중했다. 사진·엽서·잡지·영화 등에서 영감을 얻은 이미지를 기억 속에서 재조립하는데, 물감을 층층이 덧칠하고 표면을 걷어내는 과정의 예측 불가능한 성질로 인해 매우 자발적인 회화가 탄생하게 된다. 그렇게 완성한 이미지는 실재가 아닌 상상 속 풍경화다.
“나는 실제 공간이 아닌 채색된 공간을 창조하려 한다. 그런 이유로 내 회화에는 실재의 어떤 시간이나 장소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기억 속 풍경은 추상과 절묘하게 융합되어 꿈같은 새로운 풍경을 창조해낸다. 과거 거장의 그림처럼 고전적이면서 낭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에 반해 데이미언 허스트의 나비 그림 ‘감정이 풍부한’은 감정가 65만~85만 파운드에 나왔는데 낙찰되지 못했다. 허스트의 경우 올해 10월 10일부터 내년 1월 22일까지 카타르 박물관에서 스폿 페인팅, 포르말린 용액으로 처리한 동물,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같은 아이콘적 작품을 포함해 25년간의 궤적을 보여주는 전시가 예정되어 있어 아직 영향력이 막강하다. 하지만 데이미언 허스트는 데뷔 때부터 이슈를 몰고 다니며 기발한 마케팅을 하고 미술 시장에 직접 개입해온 탓에 그 천재성과 작품의 깊이에 비해 시장의 부침이 심하다. 반면 도이그는 조용히 작품에 열중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결국 시장에서 인정받고 그의 작품을 사기 위해 컬렉터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보면 진정한 작가의 길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홍콩 경매 – 문화 대국을 향한 중국의 갈망과 동남아시아의 추격
중국의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00년대 초 중국 경제가 부흥하기 시작할 때 이미 자국 문화의 가치가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카소나 워홀의 최고 작품가가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데 비해 중국 대가들의 작품은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당시 불과 몇 년 사이에 중국 대가들의 작품가가 피카소나 워홀의 그것과 비슷해질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중국 미술 시장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자국 미술 작품의 가치를 높여 국제 경매시장에서 다시 구매하는 등 중국 컬렉터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크리스티에서 뉴욕과 런던 다음으로 큰 경매시장인 홍콩은 자국의 경제 호황에 힘입어 전 세계의 경매 허브로 부상했다. 지난 5월 25일 홍콩 크리스티에서 열린 ‘아시아 20세기와 동시대 미술’ 이브닝 경매는 총 5300만 달러의 낙찰가 기록을 세웠다. 중국의 마티스라 불리는 창위의 ‘서 있는 두 누드’가 치열한 경합 끝에 580만 달러에 낙찰되어 최고가를 기록했다. 창위는 서양 미술 1세대 작가로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동양 수묵화의 매력과 서양화의 미학을 결합하려 했다. 주로 정물, 동물, 여인 누드를 주제로 단순하면서 우아한 선을 사용하고 균형 잡힌 구도와 색채 사이의 긴장감을 잘 표현했다. 유럽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유럽의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의 컬렉터들이 홍콩 크리스티의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에 그의 작품을 출품하고 중국인이 이를 다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미술의 열기도 대단해 지난 몇 년간 가장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동시대 동남아시아 작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국제 미술 시장에 진입한 이는 1973년생인 인도네시아 작가 뇨만 마스리아디다.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해 현대사회를 강렬하게 풍자한 그의 작품 ‘웹사이트 공격’은 이번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93만 달러에 낙찰됐다.

한국 미술의 저력
그동안 크리스티 홍콩 경매는 강형구, 김동유, 홍경택, 최소영 등 많은 한국의 스타 작가를 배출했다. 빽빽하게 들어찬 형형색색의 연필과 볼펜이 빚어내는 시각적 아름다움이 매우 강렬한 홍경택의 작품 ‘연필’은 2008년 홍콩 경매에서 한국 최고가인 약 7억7000만 원대에 팔려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임에도 외국의 컬렉터들이 자신의 안목과 취향대로 응찰, 높은 가격에 낙찰된 것. 한국 미술의 세계시장 진입에 희망의 불을 밝힌 것 같아 매우 기쁘고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작품이 지난 5월 크리스티 경매에 다시 나왔을 때 2008년의 경매 낙찰가가 작품에 매력을 느낀 많은 해외 컬렉터의 경쟁적 입찰에 의해 이루어진 만큼 이전 가격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경매가 시작되자 아시아와 유럽의 컬렉터들이 서면, 온라인, 전화 등을 통해 치열한 입찰 경합을 벌였고, 결국 전화 응찰자에게 한화로 9억7000만 원대에 낙찰되어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국 미술의 저력을 보여줬다.

한국 미술은 중국과 일본 미술보다 다양한 기법과 소재, 주제로 외국 컬렉터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아시아 미술이 국제 미술 시장에 진입하는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중국, 일본처럼 하나의 통합적 이미지가 컬렉터들에게 어필한 반면 앞으로는 복잡한 현대인의 삶을 다채로운 이미지로 풀어내는 한국 현대미술이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 9월에도 뉴욕 크리스티에서 한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앞으로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시장에 활발히 진입하기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자부심과 관심이 절실하다. 또한 건전한 미술 시장의 육성과 작품 구입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뒷받침된다면 우리 예술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릴 날도 그리 머지않을 것이다.

에디터 고현경
배혜경(크리스티 코리아 소장) 사진 제공 크리스티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