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고귀함이 전하는 유산

FASHION

여행 예술을 구현하는 루이 비통 역사의 심장부, 아니에르 공방.

위쪽 에펠 양식의 구조미가 돋보이는 루이 비통 아니에르 공방 외관.
아래쪽 정원의 평온한 아름다움을 내부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플라워 모티브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아르누보 스타일의 장식이 돋보이는 내부 공간.

Asnières-The Heart of Louis Vuit on
파리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40분가량 이동하면 센강 변에 자리한 루이 비통의 아니에르(Asnieres) 공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가 줄지어 선 거리 사이, 파리 외곽의 이 작은 마을은 루이 비통과 그의 후손이 남긴 살아 있는 유산이다. 공방의 역사는 1854년 메종 설립 후 5년이 지난 18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급속도로 성장하던 하우스에 보다 넓은 제작 거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창립자 루이 비통은 전 세계 고객을 위한 맞춤형 트렁크와 여행 가방을 제작할 새로운 워크숍을 설립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축은 점차 확장되었고, 1880년대에는 에펠 양식의 구조미를 더해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채광이 풍부하고 환기가 잘되는 구조로 설계된 이곳은 센강 변에 인접해 트렁크 제작에 필요한 포플러나무 원목 등의 자재를 손쉽게 운반할 수 있다. 또 파리 생라자르역과 인접한 지리적 장점 덕분에 물류의 효율성까지 확보된다. 1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니에르는 하우스의 상징적 가죽 제품과 클래식 트렁크부터 맞춤형 디지털 장비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한 장인정신을 이어왔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루이 비통의 기술과 미학이 이곳에서 완성된다.
워크숍 안으로 들어서면, 젊은 시절의 루이 비통을 상상해 그린 초상화가 눈에 띈다. 열네 살에 고향을 떠나 2년에 걸친 여정 끝에 파리에 도착한 그는 트렁크메이커이자 패킹 전문가인 무슈 마르샬에게 고용되어 사회와 산업의 변화를 목도하며 미래를 설계했다. 1854년 뇌브 데 카퓌신 거리에 브랜드를 설립하고 매장을 오픈한 그는 전통적 트렁크를 보다 가볍고 견고하게 재디자인하며 혁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다미에 패턴과 정교한 구조는 곧 메종의 정체성을 대변하게 되었다. 1896년에는 아들 조르주 비통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며 모노그램 캔버스를 고안했는데, 네오고딕 양식과 자포니즘의 미감이 결합된 이 디자인은 지금도 하우스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한다.
루이 비통은 당시 제작 공간의 중요성을 인지한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다. 공방 상층부를 가족의 거처로 사용하며 일상과 제작의 경계를 허물었고, 아이들은 정원과 강가에서 놀며 자연스럽게 가업을 접했다. 이후 미술 애호가이자 후원자였던 조르주 루이 비통은 프랑스 아르누보 거장과 협업해 공방을 새롭게 단장했다. 벽돌 패턴과 튀르쿠아즈 유약 처리한 도자기 벽난로, 천장을 따라 흐르는 비취색 몰딩, 그리고 정원으로 시선을 이끄는 플라워 모티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술과 기능이 조화를 이룬 건축미를 드러낸다. 지금도 응접실은 귀빈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가문이 거쳐온 결정적 순간을 조용히 간직하고 있다.

아니에르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14세 무렵 루이 비통의 초상화가 방문객을 반긴다. 초상화 아래에는 모노그램 패턴의 아카이브 트렁크를 배치해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튀르쿠아즈 유약 처리한 도자기 벽난로를 중심에 두고, 천장을 따라 흐르는 비취색 몰딩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한 내부 공간.

루이 비통의 향수 컬렉션과 오브제.

Special Workshop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급 가죽과 은은한 목재 향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트렁크와 특별 주문 제품에 사용할 미루나무와 너도밤나무, 그리고 희귀한 오코메(okoum) 목재를 만날 수 있다. 트렁크에 못을 박는 작업과 재봉틀의 리듬감 있는 소리는 19세기 공방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한 장인의 손길은 매일 조용히 반복된다. 수 세기 동안 전수된 기술이 현재에도 보존 및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작업대 위에서는 고요하고도 세밀한 작업이 이뤄진다. 목공 작업으로 구조를 세우고, 면 캔버스로 보강하는 리빙(ribbing) 과정을 거쳐 외곽에는 섬유나 가죽 테두리인 로진(lozine)을 못으로 고정한다. 이 섬세한 작업은 로지나주(lozinage)라고 칭한다. 잠금장치, 모서리, 브래킷 등 금속 부품의 설치가 이어지고, 내부에는 리본을 교차해 엮은 정교한 말타주 장식이 더해진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에는 각 자물쇠마다 고유의 주문 번호가 새겨져 메종의 레지스터에 기록된다. 1889년 특허받은 ‘멀티플 텀블러 락(Multiple Tumbler Lock)’ 기술 덕분에 고객은 자신만의 열쇠로만 트렁크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소유자가 된다. 현대의 기술도 적극 활용한다. 숙련된 가죽 커팅 전문가의 손끝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결합한 정밀 절단 기술은 고귀한 가죽을 완벽하게 다듬는다. 쿠리에 트렁크, 주얼리 박스, 카지노 트렁크, 칵테일 트렁크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아니에르는 여전히 트렁크의 예술적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트렁크 크기에 맞춰 사용되는 다양한 사이즈의 트렁크 잠금장치.

1889년 특허를 획득한 ‘멀티플 텀블러 락’ 기술 작업.

가죽으로 감싼 트렁크는 내구성을 끌어 올리기 위해 내부에 못을 박는 작업을 거친다. ‘로지나주’라 칭하는 이 작업을 통해 트렁크는 더욱 견고해진다.

트렁크의 기본 구조를 만드는 목공 작업.

Trunk Travel
공방의 마지막 공간에는 루이 비통의 아이코닉한 작품을 전시하는 아니에르 갤러리가 자리한다. 시간 순서 혹은 주제별로 구성된 전시는 하우스의 진화와 혁신의 궤적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아티스틱 디렉터들이 이어온 창의적 대화는 디지털 아트와 고화질 영상으로 재해석되어 세대를 잇는 미적 감각을 드러낸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160년을 이어온 기술적 진보와 끊임없는 실험 정신을 체감할 수 있다. 루이 비통의 커스텀메이드 서비스는 단순한 주문 제작이 아니라 고객과 메종이 함께 상상력을 구현하는 하나의 예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아니에르 공방에서 탄생하는 모든 작품은 유산, 장인정신, 그리고 기술의 융합을 상징한다.

메종의 유산을 조명하는 아카이브 갤러리. 과거와 현재의 아티스틱 디렉터가 이어가는 루이 비통의 유산을 전시한다. 쿠리에 트렁크, 주얼리 박스, 8개의 시계를 담는 박스 세트 등의 흥미로운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독창적 비전으로 재해석한 트렁크를 전시한 아카이브 공간.

버질 아블로가 2021 F/W 루이 비통 남성복 쇼에서 처음 선보인 비행기 형태의 트렁크, 1987년 프랑스의 산업 디자이너 로저 탈롱과 협업한 유로 스타 미니어처 보관을 위한 트렁크.

170년 동안 다양한 변화를 거쳐온 루이 비통의 상징적 트렁크를 전시한 공간.

 

에디터 최원희(wh@noblesse.com)
사진 전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