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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의 연출법

LIFESTYLE

스물한 살 때부터 연극 연출을 해온 50세의 연출가 고선웅이 요 근래 빠진 화두.

고선웅은 지금 공연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다. 지난 몇 년간 그가 연출한 연극 <푸르른 날에>, <홍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뮤지컬 <아리랑> 등 많은 작품이 평단과 대중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특히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연출가로 통한다. 연극은 관객이 자연스럽게, 쉽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연극계에서 ‘고선웅표 연극’이라 하면 대사가 빠르고 코믹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며 비움의 미학보단 채움의 미학에 가까운 스타일을 뜻하는데, 그는 이런 걸 관객과의 소통은 물론 배우의 개성을 살리고 자신을 지우는 연출로 승화해 사랑받아왔다. 심지어 지난해엔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폐막식 총연출자로 내정돼 그 재능을 재확인받았다. 연극 연출 30년, 하지만 이제야 진짜 연극을 조금 알게 됐다는 그를 만났다.

지난해 말,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폐막식 총연출자로 내정됐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최근엔 거의 매일 패럴림픽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지금은 작품 제작을 위한 모든 걸 정리하는 단계죠. 회의도 자주 하고 논의할 게 많아요. 개·폐막식을 합치면 대략 2시간쯤 되는데 등장인물도 다양하고, 앞으로 연습할 땐 날씨도 추워질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계산을 잘해야 합니다.

패럴림픽 개막까지 반년 이상 남았는데 벌써부터 부담이 되시는지요? 그것을 꾸리는 큰 틀에 대한 얘기도 궁금합니다.
부담도 되고 설레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 한국 공연 예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거니까요. 한데 개·폐막식 컨셉을 지금 말하긴 어려워요. 아직 한창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거든요. 분명한 것 하나는 중국이나 일본 등 이웃 나라와는 다른 우리만의 색을 보여줄 거란 사실입니다.

그럼 그간의 연출 이야기를 해보죠. 20대의 고선웅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20대엔 생각이 참 많았어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죠. 당시엔 너무 비관적이었기에 어떤 것도 행복한 게 없었어요. 후엔 연극을 해서 좋고, 결혼을 해서 좋고, 아이가 생겨서 좋고, 좋게 보니 다 좋았는데 당시엔 모든 게 비관적이었죠. 특히 제가 대학에 다닐 땐 학생운동이 치열했는데, 운동을 하러 가던 친구들과 달리 저는 늘 극장으로 향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죄의식도 있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연극 연출을 했으니 거의 30년 가까이 연극을 한 셈입니다. 그만큼 주변에서 나온 칭찬도 다양하죠. ‘연극적 놀이성이 극대화된 연출 문법’이란 말도 있고, 연극과 뮤지컬, 오페라, 창극, 극본, 각색 등 ‘경계가 없는 만능 예술가’라는 말도 있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손사래를 치며) 그런 말은 다 좋게 봐주셔서 그런거라고 생각해요. 연극을 업으로 삼다 보니, 그것과 관련된 건 뭐든 집중하며 열심히 표현할 수밖에 없었죠. 경계가 없다는 말도 좋게만 이야기한 거라고 봅니다. 사실 그간 ‘잡가’처럼 조금 잡스럽게 살았을 뿐이죠.

한데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2000년부터 ‘동아연극상 연출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 ‘아름다운 예술인상’ 등 국내 연극계의 굵직한 상은 모두 받았습니다. 심지어 2011년부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상을 받았죠. 솔직히 이쯤 되면 상 받는 게 무감각할 것 같기도 해요. 실제론 어떤가요?
다소 무감각해지긴 했어요.(웃음) 그런데 그건 제 성격 탓이에요. 그동안 받은 어떤 상에도 기분이 업된 적은 없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상이라는 건 받으면 받을수록 부담감이 높아집니다. 결코 편치만은 않죠.

상을 받은 것과는 별개로 따로 이루고 싶은 소망 같은 것이 있나요?
있어요. 요샌 이런 생각을 해요. 앞으로 상보다는 단 한 명이라도 세상에 나의 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나를 좋아해 상을 주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는 평화주의자예요. 그렇게 됐죠. 그래서 누가 제 작품을 싫어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요. 연극이라는 게 애초에 여럿이 수많은 날을 준비해 무대에 올리는 건데, 연출자로서 나쁜 평을 받으면 모두에게 미안하고 속상해지잖아요.

30년 가까이 무대 위에서 부대껴온 연출가답지 않게 다소 나약한 면인 것 같은데요?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공연을 한번 올릴 때마다 큰돈이 들고, 품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누구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그래서 해가 갈수록 주변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는 거고요. 전 연극이 개인의 취향이나 어떤 사고방식 때문에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걸 원치 않아요.

고선웅표 연극 키워드 중 ‘쉬운 연극’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런데 그렇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요?
20~30대에만 해도 꽤 치열하게 연극을 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2010년부터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으로 4년간 일한 경험이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 매주, 매달 순회공연을 하며 많은 걸 느꼈죠. 특히 연극에 관심이 없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연하며 그동안 너무 폼을 잡은 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연극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연극은 선과 악이 분명해야 하고, 무엇보다 쉬워야 하죠. 또 연극이란 장르가 관객에 의해 완성된다는 점에서, 보통 사람의 도덕관념과 보편적 메시지가 깔려 있어야 하고요. ‘내가 하고 싶은 연극’을 지양하게 된 계기도 그때인 것 같아요. ‘절충’이 생명이죠.

젊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하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사실 젊을 땐 하나하나 계산하며 연극을 했어요. 조금 더 앉아, 더 당겨, 좀 더 뒤로 가서 턱 받치고 있으라고 일일이 주문했죠. 그런데 그게 틀렸다는 얘기예요. 배우가 더 자유로워야 하는데, 내가 그들을 묶어버린 거죠. 그게 반복되면 배우도 작업하면서 행복하지 않거든요. 망가지고 생명력이 소멸되죠. 사실 철이 들면 ‘이건 이래야 한다’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무엇이든 절대적인 건 없죠.

한데 원래 이렇게 온화한 스타일의 연출을 하셨나요?
인지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절충한다’, ‘긍정적인’, ‘사랑’ 같은 단어가 여러 번 나왔어요. 제가 몇 년 전부터 줄곧 해온 말이 ‘긍정’입니다. 전 사실 ‘사랑’과 ‘긍정’ 예찬론자예요. 세상엔 사랑할 게 많죠. 그런데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면 남을 사랑할 수 없어요. 나와 남은 같으니까요. ‘남’이라는 글자는 ‘나’라는 글자 아래에 ‘(네모) 상자’를 둔 거잖아요. 남을 잘 보면 내가 보여요. 그래서 누군가를 ‘나쁘다’고 비난해선 안 되죠. 나쁜 놈을 보고 분노하는 것 역시 그 나쁜 놈에게서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런 감정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어떤 ‘돌파구’ 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나요?
경제적으로든 뭐로든 실패를 맛보고 그 끝에 문득 깨달은 ‘사랑’ 같은 거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마음의) 품이 넓어지면서 저 역시 좋은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한 해에만 3~5편의 작품을 올리고 있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진 않나요?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지치고 고통스러운 만큼은 아니에요. 즐겁고 보람된 일이죠. 제가 올리는 연극엔 보통 수십 명이 참여하거든요. 많을 때는 100명이 넘죠. 그들이 땀 흘리며 연습해 일용할 양식을 얻는 개런티를 받고요. 하지만 제가 작품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그 때문에 그걸 이끄는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수 있는 고선웅표 작품으로 어떤 게 있나요?
7월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재작년에 초연한 창작 뮤지컬 <아리랑>을 다시 올립니다. 2015년보다 무대와 이야기 구성에 더 신경 썼죠. 10월엔 LG아트센터에서 연극 <라빠르망>을 공연합니다. 그게 끝나면 12월엔 뮤지컬 <광화문연가>(대본)가 예정돼 있고요. 패럴림픽 준비는 틈틈이 하게 될 것 같아요.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