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앉기
상상력의 저 끝에 정답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은희경의 소설 속 문장일 것이다. 날카롭게 계산된 그 문장을 읽다 보면 침대에 깡패처럼 뉜 사지를 주섬주섬 끌어당겨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그녀의 치밀한 글을 이렇게 안일하게 소비해도 되나 싶어서. 왠지 겸연쩍고 편치 않아서.

은희경이 돌아왔다. 아니, 그녀는 늘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우리가 돌아왔다고 하는 편이 맞다. 소설을 읽은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한참 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좀 바빴나. 작가의 인생이 곰국처럼 녹아든 소설의 진득한 문장을 소비할 여유가 없었다고 둘러대는 게 덜 미안할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진 않았으나 부지런을 떨었다고 큰소리칠 자신도 없다. 그런 시점에 한강의 소설이 맨 부커상을 탔다. 뉴스와 신문에선 온종일 그 이야기였고, 점심식사엔 별도의 반찬이 필요 없었다. 며칠이 지나 수상의 기쁨이 잠잠해질 즈음 국민 작가 조정래는 <풀꽃도 꽃이다>를 발표했고, 입심 좋은 작가 정유정은 <종의 기원>을, 그리고 인간의 고독과 상처를 주목하는 은희경 작가가 보란 듯 <중국식 룰렛>을 들고 나왔다. 발걸음이 뜸하던 서점가의 소설 섹션에 다시 손님이 찾기 시작했고, 은희경의 신간은 출간 보름 만에 1만5000부가 팔리며 소설의 새로운 부활을 알렸다. 1995년 중편소설 <이중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은희경은 같은 해에 발표한 장편소설 <새의 선물>로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작가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달성한 작가는 그때까지 이문열과 장정일밖에 없었다. 그녀는 <중국식 룰렛>의 서문에서 “책상 앞에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고백했지만 어쩌면 그건 내숭이고 자기방어였다. 1997년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며 여성 작가의 파워를 그녀만큼 가감 없이 그리고 꾸준히 보여준 작가는 없다. 등단 초반엔 감출 수 없는 에너지로, 최근엔 세련되고 시크한 문체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은희경은 이번 <중국식 룰렛>에서, 선택한 고독과 주어진 고독이라는 양날의 검을 찬 채 상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건 어쩌면 그녀의 모습이기도 하다.
신간의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책을 발표하고 요즘엔 좀 한가하신가요? 소설가가 생각보다 굉장히 바쁜 직업이에요. 책을 홍보하러 다니는 건 누가 봐도 바쁜 거죠.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해 혼자 책상 앞에 있을 때가 사실 몸도 마음도 제일 바쁠 때예요. 책 읽어야죠, 구상해야죠, 절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도 확보해야죠. 이제 다시 새 소설을 써야 해서 벌써부터 마음이 좀 분주해요.
‘소설을 쓰는 데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아요. 소설의 집필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단편은 보통 석 달을 잡아요. 한 달은 책을 많이 읽고 구상을 하죠. 다시 한 달은 책상에 붙어 글을 쓰고, 마지막 한 달은 사람들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소설을 마무리해요. 만약 책상 앞에 있을 때 저를 만나자고 했으면 신경질을 냈을 거예요.
아무래도 작업의 흐름이 끊기니까요.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인터뷰하자고 전화해서 “한 시간이면 됩니다” 하는 기자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걸요.
신간을 발표하고 휴가는 다녀오셨어요? 환경재단과 일본의 평화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피스앤그린보트라는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어요. 거기서 강연도 하고 쉬다 왔죠. 기항지가 총 네 곳이었는데, 일본과 중국에 정박했죠. 몇 계단 올라가면 술집, 다시 몇 계단 올라가면 서점,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참 좋았어요.
참! 술 좋아하시죠? 위스키 좋아하신다는 기사 봤어요. 이번 <중국식 룰렛>도 위스키 이야기잖아요. 술은 다 좋아해요. 친구하고는 맥주를 주로 마시지만 혼자서는 위스키를 마셔요. 위스키는 마흔 넘어 처음 접했어요. 하루 종일 글에 파묻혀 있다가 더 이상 한 글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다해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 거예요. 머리가 계속 깨어 있는 느낌 아세요? 그래서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한 방에 훅 갈 수 있도록. 위스키는 오래 마실 수 없고, 많이 마실 수도 없다는 게 좋아요. 그래서 친해졌어요.
<중국식 룰렛>을 읽고 나서 저도 위스키를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 속 술집은 주인이 품명도, 연산도 안 밝힌 세 종류의 양주를 내오면 손님은 테이스팅을 한 후 그중 한 가지를 골라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어떤 술을 고르든 그 집의 술값은 동일해요. 진정한 술꾼이라면 싼값에 최고급 술을, 뜨내기라면 같은 돈을 내고 싼 술을 먹게 되는 거죠. 그 게임을 통해 1차적으로 행운과 불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가려지는데, 주인공들의 거짓과 진실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결국 행운과 불운의 삶이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아이러니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여운, 아니 여지가 있는 결말이라고 할까요? 뭔가 뒤통수를 잡아끄는 매력이 있어요. 그것이 이번 소설의 전반적인 인기 비결인 것 같고요. 흠, 제 소설로 인해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면 그걸로 좋아요. 잠시 피스앤그린보트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번 크루즈 여행 일정에 제 강연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어요. 크루즈에 오른 손님은 사업가, 회사원, 학생이 대부분이었어요. 강연보다는 차라리 내가 직접 소설을 읽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책을 읽어주면서 ‘이런 문장은 어떤 걸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등등을 설명해줬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죠. 한 사업가가 나중에 저에게 고백을 하더라고요. “소설이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준다는 것에 놀랐다. 같은 일을 다른 식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면서 뭔가 발상의 전환도 되었고, 그 덕분에 늘 내가 머물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라고요.
소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신 거군요. 사람들은 소설이 한낱 이야깃거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틀 안에서 본다면 자칫 소설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틀을 바꾸는 데 필요한 생각의 파괴력을 지닌 장르가 바로 소설이에요. 잘 모르면서 ‘소설은 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소설의 파급력 때문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신 건가요? 그렇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작가가 꿈이었어요. 글솜씨도 있었고 다들 “넌 작가가 될 거야” 했죠.
그런데 왜 서른 중반이 지나 등단하셨어요? 숙제를 풀다 보니까요. 대학을 졸업한 후 남들처럼 직장에 들어갔고, 나이가 차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어요. 사회가 내는 어떤 숙제들 있잖아요. 정답 맞히듯 그렇게 살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문득 ‘내’가 생긴 거예요. ‘나는 왜 맨날 숙제만 하고 있지?’ ‘왜 답만 맞히고 있지?’라는 자문이 들었어요. 남이 낸 숙제에 휘둘리지 않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난생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어요. 그곳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그게 소설가더라고요.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중국식 룰렛>의 리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은희경은 주인공이 제 삶을 회고적으로 요약하면서 무너져내리는 대목을 세상에서 가장 잘 쓰는 소설가 중 하나다”라고.

1995년, 서른일곱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셨습니다. 이후 산사에 틀어박혀 2개월 만에 <새의 선물>을 쓰셨고요. 그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죠. 두 권의 소설을 쓰신 당시 이야기가 궁금해요.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무주 리조트 콘도로 떠났어요. 아이 둘을 두고 난생처음으로 파격적인 행동을 한 거죠. 거기서 한 달간 머물며 <이중주>를 썼고 신춘문예에 응모했어요. 그런데 당선돼도 세상이 바뀌질 않는 거예요. 어디서도 원고 청탁 하나 오지 않았죠. 소설가로 살려면 다시 한 번 뚫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장편소설을 쓰려고 절로 갔어요. 무주 산꼭대기에 있는 절로. 거기서 나온 게 <새의 선물>이에요.
단편도 보통 석 달을 준비하는데, 두 달 만에 그렇게 두꺼운 장편소설을 어떻게 쓰셨어요? 더구나 <새의 선물>은 몇 년이 지나 다시 읽어도 한 문장 한 문장 에너지가 넘치고 힘이 많이 들어갔던데요. 당시의 절박함이 그 소설에 담겨 있어요. 그때의 상황을 뚫고 나가야겠다는 그런 것. 그래서 지금의 눈으로 보면 되게 거칠어요. 근데 거칠어서 힘이 있는 거죠. 요새는 소설을 굉장히 정교하게 쓰려 하고 저 스스로 많은 필터링을 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절박함, 에너지는 좀 없어요.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작품에는 작가가 현재 살아가는 인생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어요. 초반에 작품을 쓸 때는 지금의 내 인생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만큼 세상에 대항하려는 의지 같은 게 있었어요. 제 작가적 태도 같은 게 정립되기 전이었죠. 문학적 자의식도 크지 않았고.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점점 작가로서 눈높이가 생겼고, 창작자로서 자의식도 강해졌어요. 글이 좀 더 정교해졌고 섬세한 문제를 다루게 됐죠.
작가로 데뷔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여섯 권의 소설집을 비롯해 총 열세 권의 책을 내셨죠. 선생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주부질하면서 작가 생활한 거’ 정말 대단하세요. 주부와 소설가라는 이중생활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게 가능했던 건 어릴 때부터 독서를 통해 문학적 소양을 쌓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문학적 소양은 단순한 글솜씨를 벗어나 사고의 유연성, 즉 틀을 벗어나는 걸 뜻해요. 주부는 본능적으로 보수적이죠.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 가족을 그 안에서 보호해야 하니까요. 저에게는 주부의 보수성과 그것에 억눌린 사고의 유연성이 함께 존재해요. 그런데 신기한 건, 제 자유로운 사고가 억눌리면 억눌릴수록 굉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는거예요.
가령 모험을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 모험에 대한 상상력이 훨씬 커지는 것처럼 말인가요? 그렇죠. 작가로서 중요한 재능 중 하나가 상상력인데, 그 상상력을 도와주는 것이 독서예요. 사실 직접경험으로 얻는 건 아주 작은 것이에요.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가’는 간접경험에서 나와요.
그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선생님의 소설은 허구성이 크지 않아요. 소설이 지닌 팩트와 허구의 조화를 적절히 이루는 것이야말로 어려운 일 아닌가요? 맞아요. 그게 어려운 문제고 중요한 문제이기도 해요. 소설을 완성하면 먼저 남편에게 보여줘요. 그리고 제일 먼저 묻는 게 바로 “말이 돼?” 이거예요. 주인공의 감정 흐름이나 상황 대처 방식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번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었나요? <별의 눈물>이라는 소설을 보면 40대의 독신 시간강사가 책을 정리하다 이 책이 결국은 자기 허세라는 걸 깨닫는 장면이 나와요. 모든 소설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에서 시작돼요. 그 소설처럼 실제로 전에 책 정리를 하다 ‘왜 이렇게 안 읽은 책이 많지? 앞으로도 안 읽을 거면서 왜 가지고 있지? 책에 둘러싸여 있으면 안심이 되는 이 허세의 정체는 뭘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듯 소설은 제 현실과 일부 맞닿아 있죠. 물론 다른 부분은 허구고요.
소설을 읽다 보면 따라 쓰고 싶은 문장이 많습니다. 베끼고 싶은 욕구도 들고요. 선생님도 혹시 그런 욕구를 느낀 작품이 있나요? 대단하다 싶은 문장이 있어요. 어떤 때는 ‘어? 이거 내가 쓴 문장이랑 너무 비슷하잖아?’ 그럴 때도 있고요.
좋은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메모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메모를 잘 안해요. 대신 그 상황을 아주 상세히 기억하죠. 어디 갔을 때 그때 분위기가 어땠고,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무슨 옷을 입었고 하는 것 말이에요.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잘 기억하죠.
다른 책도 많이 읽으세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 쓸까 봐 남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는 분도 봤습니다. 저는 남의 작품을 안 읽는다는 작가를 딱 한 명 봤어요. 그것도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배울 점이 없어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을 제외한 다른 선후배들은 굉장히 책을 많이 읽어요. 저도 그렇고요. 전 영향을 받는 게 바로 공부라고 생각해요. 한 예로 제가 어떤 문제로 여기까지 생각을 했는데, 다른 작가는 같은 문제로 저기까지 생각을 발전시킨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다시 그 작가가 끝낸 그 지점에서 새롭게 생각을 진행하거든요. 서로 영향을 주면서 사유가 진화한다고 생각해요.
독서는 작가에게도 여전히 굉장한 공부군요. 현재형 공부죠. 이제 와서 독서를 통해 문장이나 사건 구성을 배우진 않지만 모든 예술이 그렇듯 현재의 예술에는 동시대의 질문이 들어 있어요. 동시대의 감수성이 있고. 더구나 문학은 다른 예술과 달리 언어로 하는 거예요. 언어는 누구나 사용하는 도구죠. 그래서 엄청 빠른 속도로 낡아요. 지금 현재의 문장, 지금 현재의 책, 이건 금방 과거가 돼요. 10년이 다르게 변하죠. 그래서 책 속의 비유를 보면 그 작가의 나이를 대략 알 수 있어요.
트렌드를 좇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현재형 언어로 동시대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거죠. 예전에는 언어가 100년 단위, 그 이상으로 천천히 변해왔어요. 지금은 30년 전에 쓴 소설만 봐도 어법이 달라요. 낡은 언어라는 건 분명 존재하죠.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예전에 ‘정보를 전달하다’라고 표현했다면 지금은 ‘정보를 공유한다’고 하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바로 그런 걸 따라간다는 건 아니에요. 언어의 변화를 민감하게 바라본다는 뜻이죠.
소설을 쓸 때 시작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늘 제목을 정하고 기사를 쓰는 편이라 제목이 정해지지 않으면 글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죠. 선생님도 그러신가요? 일종의 사다리인 셈이죠. 저는 첫 부분을 쓰고서 나중에 버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게 없으면 진짜 문장이 나오지 않죠. 내가 진짜로 시작하려는 이야기까지 가는 사다리예요.
제6회 혼불문학상 심사위원도 하셨는데, 본인의 소설을 쓸 때와 다른 사람의 소설을 심사할 때의 기준이 같은가요? 꼭 그렇진 않아요. 심사위원 각자 모두 달라요. 어떤 심사위원은 자기와 비슷한 스타일의 글을 쓰는 작가를 별로라고 생각하죠. 그 스타일에서 이미 눈이 높아졌기 때문에 그런 걸 서툴게 다루는 걸 싫어하는 거예요. 반대로 어떤 심사위원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다루기만 해도 호감을 갖고 보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일단 새로운 해석을 좋아해요. 뻔한 이야기를 매끈하게 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죠. 완성도보다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에 점수를 많이 주는 편입니다.
차기작으로 1970년대 말 여대생 기숙사에 대한 이야기를 쓰신다고 들었어요. 성장소설이 될 텐데, <새의 선물>과는 많이 다른 방식이겠죠? 성장소설 더하기 연애소설이에요. <새의 선물>이 ‘우리가 왜 세상의 잣대에 맞춰야 해?’라는 문제 제기이자 단언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우리는 이 주어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와 같은 모색의 부분이 훨씬 많죠. 길을 찾는다고 할까요?
그런 내용을 동시대적 언어로 표현하려면 많은 리서치가 필요하시겠어요. 저는 소설을 쓰기 위해 리서치는 하지 않아요. 소설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미 답을 정해놓고 인터뷰이에게 내가 원하는 답을 듣는 건 의미가 없거든요. 차라리 더 많은 일을 경험하고 관찰하고 책을 읽고 사유와 감수성의 폭을 넓히는 데 시간을 쏟는 편이에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글은 누구나 사용 가능한 ‘언어’로 쓰는 것이다 보니 주변에 “나도 글을 좀 잘 쓰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그런데 왜 소설을 안 읽죠?(웃음)
에디터 |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에디터 | 김잔듸 장소 협조 | 사랑해북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