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어디로 가야 하나
진화하는 예술은 그에 상응하는 공간을 원한다. 이런 외침에 공간은 과연 적절한 응답을 하고 있나?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은 10년에 걸쳐 리모델링했다.
기사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술은 변한다. 비교적 신문물이라 여기던 미디어 아트도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미술은 발전한 기술을 재빨리 흡수해 모습을 바꿨고, 곧 매체를 다양화했다. 이제 장르의 범주화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즉 미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는 질문에 ‘평면’과 ‘입체’로 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반면 같은 질문을 ‘공간’에 한정 지으면 아마 답은 수십 년 전과 비슷하게 나올 것이다. 바로 ‘화이트 큐브(white cube)’다. 회화와 미디어 아트의 매체가 다르듯 각각에 어울리는 공간이 따로 존재할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왠지 공간 하면 화이트 큐브라는 공식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술의 매체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공간은 흰색 벽에 정체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공간의 역사는 미술관과 동시에 시작된다. 18세기, 공공 미술관의 출범을 알리며 등장한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은 공간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품을 빼곡히 걸어놓았다. 공공 미술관을 표방했지만 실제론 귀족 계층 이상만 입장이 가능했기 때문. 말하자면 공간이 작품보다 우위를 점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권위적 공간은 화이트 큐브가 등장한 1936년에 종식됐다. 뉴욕 현대미술관(이하 모마)의 <큐비즘과 추상회화(Cubism and Abstract Art)>에서 흰색 네모 공간이 데뷔전을 치른 것이다. 당시 모마의 첫 디렉터이자 전시 기획자 앨프리드 바(Alfred H. Barr, Jr.)는 흰색 네모 공간에 대해 “작품 그 자체의 시각적 효과만 나타내기 위해 하얀 페인트를 칠했다”고 했는데 이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작품은 박물관 공간을 뒷받침하는 용도로 여겼는데, 화이트 큐브의 등장으로 둘의 관계가 뒤바뀌었으니 말이다.
세간의 화제를 몰고 온 화이트 큐브가 등장한 지 올해로 82년이다. 그러나 그 첫 전시 <큐비즘과 추상회화>를 지금 어느 미술관에 재현해도 차이가 없을 만큼 외형은 달라진 게 없다. 반면, 예술은 상황이 다르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그리고 사운드 아트 등은 기존 매체와 달리 비물질성을 띤다. 고려해야 할 것 또한 많아졌다. 단편적 예로 음향, 활동 반경 등 작품 간격만 신경 쓰면 된 이전과 달리 복잡다단해졌다.
앨프리드 바는 평면과 입체로 한정되는 작품 사이 간격을 띄워 개별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화이트 큐브란 모델을 고안했다. 이런 그가 매체가 범람하는 지금의 아트 신을 고려해 새 공간을 창시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을 휘트니 미술관 뉴미디어 아트 큐레이터 크리스티안 폴(Christiane Paul)의 저서 <뉴미디어 인 더 화이트 큐브 앤 비욘드: 큐레이토리얼(New Media in the White Cube and Beyond: Curatorial)>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책에 “전통적 공간(화이트 큐브)은 특히 뉴미디어 아트에 적합하지 않은 전시 모델을 만든다”고 서술했다. 맥락을 지닌 뉴미디어 아트는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데, 화이트 큐브라는 ‘성스러운(sacred)’ 장소에 들어오면 문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의견이다. 작품의 조력자를 표방하며 등장한 흰 공간은 화이트 큐브라는 고유명사로 고착될 만큼 권력을 가지게 됐다.

1 삼성미술관 리움의 블랙 박스 전경.
2 루브르 박물관에서 과거 미술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 아마도예술공간은 대안 공간이다. 그곳에서 열린 장성은 개인전 < Writing Play > 전경.
공간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 다매체 예술을 화이트 큐브 혼자 소화하기엔 버겁다. 변화의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도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진 않다. 대표적으로 ‘블랙 박스(black box)’와 대안 공간이 있다. 현재 모마, 뉴 뮤지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일부분 차용한 블랙 박스는 단어 그대로 ‘검은’ 공간이다. 주로 공연장에서 사용하던 것을 미술 공간화한 것으로 공연장의 미학을 취한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와 미디어 아트에 걸맞은 곳으로 떠올랐다. 대안 공간은 변화하는 아트 신에 좀 더 유동적으로 대응하고자 시도한 새 공간이다. 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대안 공간은 기존에 없던 공간을 표방하며 본격적으로 탈화이트 큐브 문법을 앞당겼으며 새로운 미술 장르를 포용했다.
공간을 탐색하고자 하는 시도는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드로잉 센터(Drawing Center), 더 키친(The Kitchen), 아티스트 스페이스(Artists Space) 그리고 국내의 아마도예술공간이 대안 공간이란 컨셉 아래 기존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법론과 예술적 실험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맥을 이어가고, 백남준아트센터처럼 다양한 매체에 유연히 대처하고자 가변 공간을 채택하는 곳도 있다.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사진, 건축 등 특정 매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리모델링이나 증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마처럼 공간 자체를 뜯어고치는 사례도 있다(여담이지만, 모마의 글렌 로리(Glenn D. Lowry) 관장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경이로울 것이다”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외에도 화이트 큐브와 블랙 박스의 장점만 취한 그레이 큐브(gray cube), 팝업 갤러리, 게릴라 갤러리, 스트리트 갤러리 또는 인터넷 갤러리와 같은 제3의 공간 그리고 최근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컬러풀한 벽을 다매체 예술에 맞춰 공간이 벌이는 다양한 실험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아트시(Artsy)와의 대담에서 터프츠 대학교(Tufts University) 미술사학과 교수 앤드루 매클럴런(Andrew McClellan)은 “현대미술은 21세기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갤러리에는 작품을 전시할 실용적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많은 공간 실험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화이트 큐브를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게 지금 우리 미술계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공간의 실패라는 진단을 내리긴 아직 이르다. 이들은 80년 화이트 큐브 역사에 비하면 아직 초년생에 불과하다. 또한 공간은 작품만큼 즉각적인 변화를 보이기 힘든 특성이 있다. 리모델링에 10년을 쏟았다는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의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공간 성형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기에 반응 속도가 작품에 비해 다소 느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예술계에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낸 화이트 큐브도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으니 말이다.
우리 눈에 마치 공간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 새로운 방향을 모색 중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이 무수히 교차하겠지만, 유의미한 시도인 것만은 틀림없다. 더 나은 행보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공간이 새 매체에 더 적합한지 식별 가능한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