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미술의 지속
공공장소에서 모두에게 노출되는 공공 미술의 생명력은 어디까지일까? 공공 미술의 진정한 시작과 지속, 소멸을 말한다.

1 공공 미술품 보존의 좋은 예로 남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오늘 뭐 하고 싶어요?” “잠깐 이렇게 서 있죠. 우리에게 딱 맞는 곳 같지 않아요?” 영화 <소스 코드(Source Code)>(2011년)의 막바지에 등장하는 대화다. 주인공 콜터와 크리스티나는 밀레니엄 파크 주변과 하늘을 경이롭게 비추는 초대형 거울 조형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애니시 커푸어의 완두콩 모양 설치작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2006년)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표면은 거울로 작동, 자신의 색 대신 주변 공간과 풍경을 왜곡해 투영하며 스스로 존재감을 극대화한다. 관람자는 자신의 위치와 시선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작품 표면과 상호작용하며 실시간 왜곡을 즐긴다. 일상과 주변 환경을 바꾸어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불러일으키며 일상 경험을 새롭게 환기하는 공공 미술은 관람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재미있는 경험으로 각인된다.
언제부턴가 공공 미술이라는 용어가 매우 친숙하다. 공공을 위한 미술, 공공 공간에 놓인 미술은 소수보다는 다수를 위한 미술로, 폐쇄되거나 고립된 공간보다는 노출된 공간에 놓인다. 그렇기에 공공 미술 하면 으레 도심을 걷다가 흔히 마주할 수 있는 건물 앞 조각이나 아파트 단지 혹은 광장의 조형물을 떠올린다. 일명 ‘1% 법’으로 불리는 문화예술진흥법은 1960년대 서구권의 ‘건축 속 미술’ 하드웨어 중심의 관념에 그 기초를 둔다. 예술이 뮤지엄 같은 폐쇄된 전시 공간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생산 자금 조성으로 이룩한 양적 성장은 의미가 있다.
이런 공공 미술 작품의 유지·보수를 위한 국내 규정은 매우 단순하다. 공공 미술 분야에서는 유지·보수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공공과의 소통에 진정한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관련 법안을 잠시 살펴보면, “미술 작품 하자 이행은 설치 완료 후 1~2년, 하자 보수 기간은 통상적으로 2년이며 공사 금액의 10%의 이행(하자) 보증보험을 가입하고 증권을 심의 시 제출할 것, 하자 이행 기간 이후엔 건축주가 유지·관리 책임을 부담하고 미술가가 실비 보수할 것”이라는 항목이 전부라고 할 수 있으며, 해외에도 별다른 법은 없다. 해외에선 정해진 보수 기간에는 작가가 관리를 맡고, 이후엔 건축주 혹은 기관이 맡는다. 특히 공공 미술의 경향이 점점 고정 설치물에서 참여형 프로젝트나 이벤트로 이동하면서, 보존 및 보수의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미술평론가이자 교육자 수잰 레이시(Suzanne Lacy)는 새로운 장르의 공공 미술을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대해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각예술”로 정의했다. 영구 설치물 같은 하드웨어로서 작품이 유동하며 우리 삶을 반영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변모한 것이다.

1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 ‘클라우드 게이트’.
2 요제프 보이스의 ‘7000그루의 오크나무’.
요제프 보이스
‘7000그루의 오크나무(7000 Oaks)’(1982년)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는 1982년 6월 19일, ‘제7회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VII)’ 개막 행사의 메인 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 광장에 오크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식수와 더불어 지역 채석장에서 가져온 현무암 기둥을 배치하고 참가자들에게 비용을 기부받아 나무와 현무암 기둥으로 시내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참여를 통해 지속, 확장해나가는 ‘사회적 조각’을 선보이며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삶의 행동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했다.
그는 다음 카셀 도쿠멘타가 열리는 1987년까지 5년 동안 오크나무와 현무암을 계속 심겠다고 밝혔지만 1986년에 사망했다. 그럼 그의 작품은 중단된 걸까? 아니다. 그의 부인과 아들이 사업을 이어받아 시민 모금과 예술재단의 후원으로 1987년 ‘제8회 카셀 도쿠멘타’가 열린 날 7000번째 식수를 마무리했다. 도시의 시민 참여,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도시 전체로 확장된 작품, 자연물을 통해 삭막한 도시를 변화시킨 다양한 행위와 경험은 공공 미술이 지향하는 방향을 제대로 직시하며 지속됐다.

4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한 기둥에 작품을 선보이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네 번째 좌대’.
런던 공공 미술 프로그램
‘네 번째 좌대(The Fourth Plinth in Trafalgar Square)’(2005년~현재)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트래펄가 광장의 기둥에 작품을 선보이는 ‘네 번째 좌대’다. 1999년 시작한 이 사업은 예산 부족으로 150년간 비어 있던 광장의 북서쪽 좌대에 현대미술가를 선정, 작품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다. 처음엔 단지 비어 있는 좌대 활용을 목적으로 작가들에게 임시 전시 공간으로 내주었지만 1999년 마크 월링거(Mark Wallinger), 2000년 빌 우드로(Bill Woodrow), 2001년 레이철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전시가 연속으로 대중의 폭발적 관심을 받자 영국 예술위원회가 본격적인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작가를 선정하고 좌대 전시를 후원, 오늘에 이르렀다. 3개월간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작품 모형 6점을 전시한 다음, 관람객 평가와 심사위원 평점을 종합해 최종 작품을 선정한다. 공공 미술의 진짜 타깃인 대중에게 열려 있는 시스템이다. ‘네 번째 좌대’는 단지 좌대에 작품을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좌대 인근에서 팝업 프로젝트 공간을 운영하고 문화 강좌를 진행하며 시민과 꾸준히 접촉한다. 작품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관람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 미술이다.

5 마이클 라코위츠의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마이클 라코위츠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The Invisible Enemy Should Not Exist)’(2018년)
트래펄가 광장은 런던을 대표하는 장소다. 19세기 유럽 대륙을 제패한 후 마지막 남은 적국 영국을 박살내기 위해 침공한 나폴레옹을 막아낸 트래펄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려 조성한 곳이다. 중앙의 넬슨 동상을 중심으로 광장의 각 모서리에 영국 영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북동쪽의 조지 4세, 남동쪽의 찰스 제임스 네이피어 장군, 남서쪽의 헨리 해블록 장군 동상에 이은 나머지 하나, 북서쪽에는 현재 이색적인 작품이 놓여 있다. 사람의 얼굴과 새의 날개, 황소의 몸체가 한데 어우러진 기이한 조각상, 마이클 라코위츠(Michael Rakowitz)의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다. ‘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의 올해 선정작이다.
작품 외형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의 신 라마수(Lamassu)에서 유래했다. 라마수는 현재 이라크 지역 인근에 4000여 년 전 자리 잡은 아시리아 제국에서 왕궁과 도시를 지키던 수호신이다. 아시리아인은 라마수 조각상을 도시와 왕궁 입구에 세웠다. 마이클 라코위츠는 이라크 모술 지역에서 기원전 700년경부터 2015년 다에시(Daesh) 또는 ISIS라고 불리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가 파괴하기 전까지 자리를 굳건히 지킨 라마수 조각상을 재현했다.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처럼 문화 파괴로 소실된 문화재 7000여 점을 재생하는 프로젝트다. 중동에서 가져온 재활용 포장인 이라크산 대추야자 캔을 재료로 사용, 전쟁으로 사라진 지역의 과거를 기록한다. 열두 번째 작품인 그의 라마수 조각상은 비록 프로젝트가 끝나면 좌대에서 사라지지만, 런던의 시민과 방문객 스스로 다에시의 야만적 파괴 행위를 비판하고 라마수를 보호한다는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6 황지해의 작품 ‘슈즈 트리’ 앞 설명판.
황지해
‘슈즈 트리’(2017년)
그간 국내 미술 장식품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로 기획의 부재를 들 수 있다. 특히 작품의 운영, 즉 소프트웨어가 대단히 부실하고 약했다. 서울로7017 개장과 함께 서울역 한쪽에 설치한 작품 ‘슈즈 트리’가 단적인 예다. 이 작품은 대중에게 공개된 직후 많은 비난에 직면했다. 사람들의 반발, 예컨대 보기 흉하다거나 냄새가 난다는 문제 제기 이전에 짚어봐야 할 지점은 이 작품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 ‘슈즈 트리’에는 시각적인 1차원적 코드 이면에 생태적 메시지와 유머 같은 의미 있는 요소가 존재한다. 하지만 작품이 정말 시민 가까이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지점에는 미처 닿지 못했다. 시민이 현장에서 작품을 보고 이 작품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작품의 캡션이나 설명판을 보는 것이다. 당시 작품 앞에 놓인 설명판을 보고 기겁한 경험이 떠오른다. 작품의 설명판에 쓰인 글은 말만 한글이지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개념어 범벅에 비문투성이였다. 오늘의 미술은 단지 작품의 완성과 설치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의미와 지속성에 공공 미술의 진짜 생명력이 있다. 누구의 공감도 얻을 수 없다면, 관람자의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공공 미술은 설치돼 있다 해도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공공 미술은 계속 변화를 거쳐왔다. 그 외연은 지속적으로 확장돼 시작 지점보다 많은 영역을 포괄한다. 공공 미술의 성공 지점은 지속성과 이를 위한 기획에 있다. 독일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처럼 단지 책정된 예산 집행을 영구 작품 설치에만 국한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지속하면서 시민을 그 장으로 끌어들이고 살펴야 한다. 미술의 세계를 일방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그들의 삶으로 가져와 대화하고 주고받아야 한다. 공공 미술의 생명력은 미술과 사회, 작품과 대중의 거리를 줄이고 소통하는 데 있다. 점차 그 의미가 강조된다. 그런데 물리적 거리를 줄여 접촉 기회만 넓혔을 뿐, 그 외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작품은 기준 미달이다. 작가는 공공 미술이라는 판 위에 서서 내면의 작품 세계와 더불어 장소와 사회, 구성원의 세계를 겹쳐야 한다. 또 시스템은 그러한 흐름을 지속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작가와 대중, 작품과 관람자 간의 접촉 기회를 늘려야 한다. 창작, 제작, 생산과 이해, 소통, 지속이 함께 어우러지는 기획 말이다. 작품이 영구적이어야 한다는 가치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유동하는 관계와 상황에 대한 맥락과 의미의 탐구로 틈을 메워야 하며, 그 주체로 작가와 함께 관람자가 있다. 공공 미술은 여전히 많은 곳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바다 건너 작품들과 비교하며 변화한다. 우리 앞에 설 공공 미술은 그 터전에 사는 사람과 그곳을 찾는 사람에게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작품 앞에 선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우리에게 딱 맞는 곳 같지 않아요?”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글 허대찬(디자인학·문화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