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조각가, 유국일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라이브처럼 생생히 재현하는 것에 24년이란 시간을 쓴 유국일은 지금도 소리라는 기록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걸 인생 목표로 둔다.

1993년 홍익대학교 금속공예과를 졸업한 유국일은 스피커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고교 시절부터 음악에 미쳐 살아온 전력과 금속 디자인 전공자로서 그 나름의 절충인 셈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너무 생소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아내 빼곤 모두 반대했어요. 하지만 저는 확신했죠. 그즈음 유명 브랜드의 스피커를 숱하게 뜯어봤는데, 싸구려 부품을 쓰는 곳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훗날 누가 제 스피커를 뜯어봤을 때 절대 부끄럽지 않은 걸 만들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그 후로 24년간 스피커에 미쳐 살았다. 정확하게는 소리, 음반에 녹음된 소리를 라이브처럼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에 꽂혔다. 금속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오랜 시간 심도 있게 음악을 들어온 탓에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구별해내는 능력도 탁월했다. 그래서 그는 애초에 스피커를 만들 때도 나무 대신 금속을 사용했다. ‘원음을 그대로 전달하는’ 스피커의 원래 목적에 적합해서였다. “나무보다는 금속 재질이 스피커 재료로 더 탁월해요. 나무 재질 스피커는 내부의 진동으로 스피커 통이 울려 왜곡된 소리가 합쳐지거든요. 하지만 금속 스피커는 다르죠. 정말 맑고 또랑또랑한 소리가 들려요.”
현재 그는 비행기 동체를 만들 때 쓰는 ‘두랄루민(고력 알루미늄 합금)’으로 스피커를 만든다. 스피커 한 대가 150kg이 넘고, 무거운 건 300kg에 달한다. 그가 이렇게 스피커를 무겁게 만드는 건 스피커 내부 통의 진동을 줄여 더 정확한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저는 본연의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주력해요. 소리는 원음이 가장 아름답거든요. 과장되거나 축소되면 오히려 소리의 매력이 반감되죠. 그래서 저는 그 원음을 고스란히 담아 이동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인터뷰 도중 그는 직접 제작한 스피커로 몇 곡의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처음엔 키스 재럿의 재즈 피아노 연주를 틀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소리가 양쪽의 스피커에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고 2m가량 떨어진, 스피커와 스피커 사이의 빈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묘한 공간감이 느껴졌다. 마치 객석에 앉아 스피커가 오브제로 놓인 무대 위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 그건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흘러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그의 앞에서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듯했다. “진동으로 인한 음의 ‘왜곡(뭉개짐)’을 잡으려고 사력을 다했어요. 저는 이게 안 되면 정말 미칩니다.”

세계적 음향 유닛 회사 아큐톤의 엔지니어들과 함께한 유국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는 ‘마이스터’로 통한다. 또 그는 최상의 스피커를 제작하기 위해 40분 분량에 이르는 베토벤의 ‘황제’ 중 2악장을 최소 100번 이상 청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스피커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은 약 800개다. 이를 수작업으로 조립하는 데만 일주일이 걸린다. 그는 스피커 내부의 통을 디자인할 뿐 아니라, 복잡한 전기회로를 조정해 정확한 소리를 찾는 ‘튜닝’에도 능하다. 고급 휴대용 음향 기기 부문에서 4년 연속 세계 판매량 1위인 아이리버와 손잡고 개발한 고급 스피커 ‘아스텔앤컨(Astell & Kern)’의 음질도 따를 수 없는 튜닝의 결과다. 그는 이렇게 지난 시간 동안 만든 스피커로 관련 기술과 디자인 특허를 40개나 받았다. 또 레드닷, IF 등 세계적 디자인 어워드도 열네 번이나 수상했다. 하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건 아니다. 지금처럼 명성을 얻기 전까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2000년 그는 세계적 음향 유닛 회사 ‘아큐톤(Accuton)’과 기술 협력을 위해 독일에 갔지만, 상품성이 없다며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5년에 걸쳐 집요하게 그들을 찾아갔고 결국 계약을 맺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는데 ‘열정에 감동했다’며 계약을 맺어줬죠. 한데 지금은 그들이 저를 ‘마에스트로’라고 부르며 먼저 찾아요. 제가 독일 스튜디오에 가 튜닝을 하면, 모두 다 뒤에 서서 저를 쳐다보죠. 그럼 저를 지칭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요. ‘골드 이어’라고요.(웃음)”
한편 그의 스피커는 현대미술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금속으로 만든 현대 조각품 같다. 혜성 꼬리를 닮은 디자인부터 달과 해, 별이 있는 우주를 형상화한 디자인도 있다. 하지만 이를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오판하진 말자. 모두 다 기능을 고려한 것이니 말이다. 일례로 혜성의 꼬리를 닮은 스피커는 끝부분이 계단식 논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음의 여운을 살리기 위한 배려고, 최근에 선보인 한 스피커의 겉면 굴곡은 음의 겹침을 걸러주는 디자인이다. 그의 스피커가 기능성을 갖춘 오브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애초부터 외관에만 치중한 스피커를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에 치중하다 보니 무게가 늘어났고, 그 바람을 담아 스피커를 디자인했죠. 단순히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어떻게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스피커를 만들겠어요. 제 스피커엔 소리에 대한 제 바람도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스피커를 제대로 튜닝하기 위한 나름의 철칙도 가지고 있다. 이른 아침 밖에 나가 바람 소리와 새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어폰과 헤드폰 사용도 가급적 삼간다. 자극적인 음악을 듣는 것도 튜닝 작업을 앞두곤 피한다. 요즘도 녹음과 음 튜닝 작업이 그의 하루 일과를 채운다. 본격적인 작업 전날엔 거의 굶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온몸의 구멍을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한번 튜닝 작업에 들어가면 보통 일주일이 걸리는데, 이때 몸무게가 4~5kg이 빠지는 건 일상이다. 소리를 좋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대로 전달하는 작업이 이토록 고되다. 그의 목표는 콘서트홀에서의 감동을 그대로, 악기들의 호흡을 그대로, 가수의 떨림과 흐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녹음된 음원을 원음 그대로 전달하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음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 “재즈면 재즈, 록이면 록, 음악 장르마다 독특한 편향성이 있는데, 제 스피커를 쓰는 이가 특정 음악만 들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음악을 위해 밸런스를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물론 소리를 개량해 전달할 수도, 과장해 전달할 수도 있지만 결코 음악에 제 메시지를 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음을 만든 이가 애써 전달하고자 한 걸 그대로 들려주고 싶은 게 제 평생의 바람이죠.”
한편 오는 1월 31일까지, 서울 성수동의 더페이지갤러리에선 그의 개인전 <유국일의 메탈 스피커: 원음 그대로>가 열린다.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정직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사운드 설치 작품’ 전시인 셈. 그의 신작인 금속 스피커들은 물론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까지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