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읽고 현재를 쓴다
더 이상 완벽히 새로운 무엇을 창조할 순 없다. 과거의 것을 현재로 가져와 지금에 맞게 최적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크리스 반 아쉐. 지난 4월 22일 홍콩에서 선보인 디올 옴므의 2016년 F/W 컬렉션 쇼는 그의 디자인 신념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다. 친숙한 듯 새로웠고, 디올 옴므스러우면서도 가장 그다워서다.
축복과 반란을 주제로 한 빌리 판데르페레의 영상

홍콩에서 열리는 쇼를 위해 아시아와 유럽 각지에서 엄격한 캐스팅을 거쳐 선발한 모델들
연초에 디올 옴므의 파리 본사 관계자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올해 디올 옴므는 많은 이벤트를 계획해 무척 바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행사 중에서도 봄에 홍콩에서 열릴 디올 옴므의 2016년 F/W 컬렉션 쇼를 특히 중요한 프로젝트로 언급했다. 그래서인지 지난 4월 패션쇼 인비테이션을 받은 순간부터 기대가 됐다. 사실 디올 옴므는 탄탄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브랜드. 청담동에 자리한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 지하를 방문해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추구하는 스타일 역시 확고하다. 그래서 디올 옴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행사의 인비테이션은 마치 다양한 남성의 유형 중 하나를 보다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통로 같았다.
소년들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는 스타일링이 돋보인 컬렉션 의상

백스테이지 전경

크리스 반 아쉐와 송중기
디올 옴므의 F/W 컬렉션 쇼는 홍콩에서 제일 큰 규모이자 중국에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쇼 스튜디오(Show Studio)에서 열렸다. 캣워크는 여러 개의 LED 스크린으로 가득 채우고 영화감독 빌리 판데르페레(Willy Vanderperre)가 만든 영상을 상영했다. 오직 디올 옴므의 이번 컬렉션을 위해 제작한 쇼트 필름은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레드 톤으로 구성한 화면에 소년들이 나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모델들이 워킹할 때 실제 모습과 교차되어 분위기가 오묘했다. 또 음악은 일렉트로니카에 크리스 반 아쉐라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비트박스처럼 활용, 모델들이 워킹할 때마다 ‘크리스 반 아쉐!’, ‘크리스 반 아쉐!’라는 가사가 흘러나와 리듬감과 더불어 쇼에 활기를 더했다. 다시 설명하면 시각적으로 모던함을, 청각적으로는 강한 비트의 활동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둘의 하모니가 디올 옴므가 한결같이 지향해온 동시대적 이미지를 설명하는 듯했다. 그럼 행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컬렉션 의상으로 돌아가보자. “이번 컬렉션은 하이브리드라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어요. 지난 추억을 현대로 가져와 지금 상황에 맞게 변형한 거죠. 어린 시절 마음에 품은 관념이나 생각은 그 사람이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테지만 이를 지금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맞게 변화를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하이브리드화입니다.” 크리스 반 아쉐의 설명처럼 익숙하지만 어딘가 색다른 의상이 가득했다. 이를 테면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입어봤음 직한 타탄체크나 페어 아일(일명 다이아몬드) 패턴을 포인트로 사용한 것.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쿠튀르적 자수 장식과 하우스의 아카이브에서 찾은 플라워 장식을 더해 새로움을 부여한 점이 참신했다. 실루엣 역시 볼륨을 강조하거나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두 가지 요소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작업복처럼 통이 넓은 스케이터 팬츠. 상의는 타이트하게, 팬츠는 와이드 피트로 스타일링한 룩은 청년 시절 유행한 팝 스타나 댄스 가수들을 떠올리게 해 과거와 연결 고리를 지닌 컬렉션의 특징을 강조했다. 이 밖에 머플러, 타이, 장갑 등 소품의 스타일링에서도 풋풋한 아이디어가 넘쳤다. 젊음과 패기 그리고 순수함이 넘치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향수를 자극했다. 물론 한결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방식이다.
디올 옴므가 야심차게 진행한 대규모 이벤트인 만큼 현장에는 에이드리언 청, 팬시 호, 황웨이원, 장자후이 등 중화권의 유명인사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배우 송중기도 특별 게스트로 초대됐는데 그 인기가 대단했다. 크리스 반 아쉐가 그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레드와 블랙 컬러로 이뤄진 체크 패턴 슈트를 입고 쇼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끝없이 이어지던 카메라 셔터 소리란! 한류와 디올 옴므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에디터 | 서재희 (jay@noblesse.com)
사진 | 디올 옴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