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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짓다

LIFESTYLE

서울에 기념비적 건물을 여럿 남기고 최근 다양한 건축상과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건축가 이성관, 그리고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김찬중의 즐겁고 심도 있는 대화.

김찬중 건축가(왼쪽)와 이성관 건축가(오른쪽)

강남의 도심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전원으로 접어든 것 같은 고즈넉한 길을 지나 자곡동에 자리한 탄허기념박물관에 다다랐다. 공기는 차갑지만 따스한 햇살 아래 자리한 건물의 외벽에는 금강경 전문이 새겨져 있고, 녹슨 철기둥 108개가 이어진 출입구를 지나 실내로 들어서자 맑은 햇살이 내리비춘다. 모던하면서도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건물은 이성관 건축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201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 부문 대상, 한국건축가협회상, 김종성건축상, 서울특별시건축상 최우수상,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물 등 각종 건축상을 휩쓸었다. 극찬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전통 사찰의 개념을 깨고 그만의 현대적 해석을 가미했기 때문.
건축가는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남기는 사람일까?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탄허기념박물관을 둘러보며 ‘건축가는 생각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한 르코르뷔지에의 말을 떠올렸고, 이성관 건축가가 공간에 담아낸 철학에 대해 생각했다. 잠시 후 그가 도착했고 곧이어 김찬중 건축가도 문을 열고 들어섰다. 더시스템랩의 대표이자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초빙교수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이성관 건축가가 운영하는 한울건축에서 근무했다. 5년 전 더시스템랩을 설립한 뒤 화제의 작품을 여럿 내놓았고, 지금도 방송국 건물을 짓는 대형 프로젝트와 ‘한라산에 들어설 유일한 화장실’ 같은 도전적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서로의 근황을 묻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건축과 예술, 도시 풍경 등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것. 어떤 공간이 좋은 공간이고 그런 건물을 짓기 위해선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두 건축가의 긴 대화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그들의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

김찬중(이하 김)_ 이성관 선생님은 제 ‘첫 번째 보스’예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첫 직장으로 입사한 곳이 한울건축이었죠.

이성관(이하 이)_ 사실 인연은 그보다 좀 더 길어요. 대학 시절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을 통해 먼저 만났으니까. 내가 심사위원이었는데 나중에 우리 회사에 지원했을 때 포트폴리오를 보고 알게 됐죠. 대학생의 작품이 마치 프로처럼 완성도가 높았던 기억이 납니다.

김_ 그러고 보니 처음 뵌 게 20년이 넘었네요. 돌아보면 당시 한국 건축계에선 건축가가 건설을 하는 사람과는 다른 차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직종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건축이 예술이나 철학, 인문학적 요소가 중요한 학문이라는것을 강조하다 보니 건축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철학적 담론이 중심이 됐죠. 당시 이성관 선생님은 현학적 표현을 쓰지 않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내는 유일한 분이었어요. 이성적 세계관을 가진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울건축에 지원했고, 오늘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다시 만나는 인연으로 이어졌어요. 무엇보다 탄허기념박물관에서 선생님께 직접 건물에 대한 말씀을 들으니 뜻깊네요. 이 작품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_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박물관에 들여야 하는 여러 공간에 비해 주어진 면적이 넓지 않고 높이 제한도 있었죠. 주어진 상황에서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3차원 큐브 안에 탄허 스님의 유지를 반영할 수 있는 전통 사찰의 기능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건물 입구에서 내부까지 동선을 따라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다가가는 시퀀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일상적 영역과 비일상적 영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정화할 수 있도록 장치를 더했죠. 전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믿고 맡겨줬다는 점에서 내게도 큰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에요.

김_ 건축을 하다 보면 건축주의 의견과 부딪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쉽지 않죠.

이_ 내가 원하는 조형적 세계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어요. 거기서 갈등이 생기죠. 건축주의 마음이 바뀌기도 하고.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포함해 불순물이 섞인 그 상태가 건축의 진면목이에요. 조형적 세계는 내 것이더라도 최종적으로 건축주의 손에 넘어가 공간을 사용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죠. 그런 점에서 결국 건축은 순수예술이 될 수는 없어요.

김_ 공감합니다. 건축가가 바라보는 조형적 완벽함이 예술적으로 가치 있을지는 몰라도 건축이 그것만으로 구현되는 건 아니니까요. 건축가의 조형적 세계에서는 완벽한 세팅이 가능하지만 사용자의 생활 방식과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죠. 건축이 순수예술과 다른 부분을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네요.

이_ 작품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예술적 속성을 찾아볼 수 있지만 건축은 장소의 지배를 철저히 받죠. 음악이나 미술은 보편성이 있어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에 있든, 다른 어디에 있든 전쟁에 대한 불안감 같은 작품 고유의 정서가 바뀌진 않죠. 반면 건축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제약을 받으니 관계의 설정이 중요해요. 내 경우엔 주변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를 찾고, 특정 스타일을 천착하지 않아요. 마치 브랜드처럼 특정 재료를 사용하고 특정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축가도 있지만 저는 정반대죠.

김_ 건축가로서 경력이 쌓이면서 계속 다른 고민을 하게 되는데 저는 20대 때 조급했어요. 뭔가 빨리 결과물을 내고 싶은 욕심과 에너지가 넘쳤죠. 그때 선생님께서 죽기살기로 달려갈 생각을 하기보다는 아주 잘 달릴 수 있는 자전거를 만들라고 조언해주신 게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30대에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실질적 고민이 컸어요. 40대인 지금은 ‘가치’에 대해 고민합니다. 우리 회사에 좋은 건 뭘까, 사회에 좋은 건 뭘까 같은 공공성에 대한 생각까지 하죠. 선생님도 이런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_ 작품에 대한 고민은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것 같아요. 난 별로 까다롭지 않고 일상적으로 좀 손해를 보는 일에도 무심한 편인데, 건축에 관한 한 집착이 커요.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더 잘해보려고 몸부림치는 건 마찬가지죠. 외국 잡지를 보고 여러 작품을 비교하면서 내 수준에 대해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전전했어요. 결국 30대 중반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죠. 그리고 1988년에 귀국해 이듬해에 회사를 설립했는데 개업에 큰 의미를 두기 보다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여전히 모자라는 부분이 보이지만 그건 동기부여가 되니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_ 수십 년간 해오셨으니 확신을 가질 법도 한데,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건축가들의 활동은 어떻게 바라보세요? 예전에 도제식으로 건축 사무소에서 일을 오래 배웠다면 요즘은 일찍 독립하는 건축가가 많죠.

이_ 무르익을 시간이 필요한데 직원들이 경력을 충분히 쌓기 전에 떠나는 일이 반복되면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좋지 않죠. 건축계 전반적으로도 아쉬운 부분이에요.

김_ 다양한 건축가가 나와야 하는데, 이 분야가 디자인만 잘한다고 해서 발붙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느껴요. 종합적 상황 판단력과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 등에 대한 훈련을 쌓은 다음 좋은 작업을 하면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급여가 일반 기업체보다 낮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국 설계 사무소에서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이 섞여 일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종종 보는데, 각자의 영역에서 연륜을 쌓은 이들을 인정해주는 분위기 덕분에 그들이 그렇게 같이 팀을 이룰 수 있는 거겠죠. 선생님 말씀처럼 경험이 많은 스태프들이 남아야 회사의 수준도 높아지는데 말입니다.

이_ 대학 졸업 후 자신과 잘 맞는 사무실에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필요해요.일찍 독립하는 것보다는 뛰어난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으니 10년에서 15년 정도 시간을 투자해 높이 올라간 뒤 수평 이동을 하라고, 그래서 되도록 늦게 하산하라고 말합니다.

김_ 선생님의 작품 중 1994년에 개관한 전쟁기념관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작품은 회사 설립 초반에 하신 작품이죠. 첫 작품을 강력하게 시작하신 것 같아요.

이_ 전쟁기념관은 내 젊음을 앗아간 작품이죠.(웃음) 첫사랑 같기도 하고. 사실 공모에 출품할 때 큰 기대 없이 6개 수상 분야 중 이름만 올려도 귀국 신고 정도는 되겠다 생각했는데 덜컥 당선이 됐어요. 연락을 받고는 20초간 멍하니 아무 대답도 못한 것 같아요. 기쁘다기보다는 내가 병을 얻거나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젊은 나이에 굉장히 부담이 컸고 4년 6개월 동안 시공하고 감리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어요. 처음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굉장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김_ 요즘은 심사를 많이 하시잖아요. 최근에는 세종시 국립박물관단지 마스터플랜 국제 공모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는데 출품작들을 보신 소감은 어떤가요?

이_ 세종시 문화벨트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간이 국립박물관단지의 조성 목적이에요. 국제 현상 공모를 했는데 좋은 안이 제법 들어왔습니다. 부지 면적이 매우 넓기 때문에 쉽지 않은 프로젝트예요. 단계적으로 조성한다는 점을 고려해 주변 시설과 잘 연계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면서 심사했어요. 캐나다의 ‘Office OU’와 한국 ‘정림건축’의 마스터플랜을 최종 당선작으로 뽑았죠.

김_ 도시 풍경을 보면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속도를 건축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라이프스타일이 유독 빨리 바뀌는 나라죠. 앞으로 한국 사람들도 평생 살거나 소유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집을 좀 더 캐주얼하게 생각하고, 주거에 대한 인식도 바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희망적으로 보고 있어요.

이_ 200~300년 전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는 도시를 계속 개발해왔기 때문에 옷이 작아져 버리고 다시 사는 것처럼 건축물을 새로 지었죠.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건물을 부수고 짓는 과정에서 가치관이 결여됐다는 건 아쉽죠. 아파트를 주거 환경으로 보기보다는 돈으로 환산 가능한 현물로 여기면 흉물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앞으로 바뀔 거라고 봐요.

김_ 선생님은 매력적인 프로젝트라도 원칙상 절대 하지 않는 작업이 있나요?

이_ 그런 건 없어요. 배우에 비유해 말하면 난 성스러운 역할부터 극악무도한 역할까지 다 소화하고 싶어요. 예전에 ‘휴먼 스케일로 지은 건물은 친근감을 준다’고 배웠죠. 어느 날 딱 그런 크기의 친근감 있는 목조 건물을 봤는데, 사형 집행장이란 걸 알게 된 뒤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특정한 용도에 편견을 갖고 아예 작업하지 않는 경우는 없고, 건축물과 사람을 독립적으로 보는 편이에요.

김_ 그렇다면 좋은 집은 뭘까요? 저 또한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긴 합니다만.

이_ 건축에서도 주택 설계가 제일 어려워요. 공공장소처럼 사람이 머물렀다 떠나는 곳이 아니라 실제 생활공간이니까. 사용자에게 구석구석 노출돼 적나라하게 평가를 받는 것이 주거 공간이죠. 주택도 누군가에겐 잘 맞고 또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런 호환성이 중요해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편리함을 주는 게 좋은 집이 아닐까요. 사람 없이 건축물만 두고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좋은 집은 결국 좋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김_ 이번에 독일에 다녀왔는데 새로운 건물도 많이 생겼지만 20년 전 모습 그대로인 가게도 많더군요. 그 느낌 그대로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어요. 우리는 너무 매끈하고 화려한 건물을 많이 짓는데 몇 년 지나면 금방 지저분해질 게 예상되죠. 시간이 지나도 유지할 수 있는 톤 앤 매너를 갖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_ 그래요. 시간개념이 없는 것, 유행을 뛰어넘는 것 또한 건축에 필요한 하나의 덕목이겠죠. 그래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마다 원점에서 출발하고 싶고,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있다 해도 그것의 2탄, 3탄이 아니라 늘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