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랄한 달파란
달파란은 1990년대 삐삐밴드라는 발칙한 밴드로 경직된 한국 음악 관절에 전기를 찔러 넣었다. 그건 미래에서 온 음악이었다. 21세기 영화음악 감독으로 변신한 달파란의 사운드는 아마도 다음 세기의 예고편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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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영은 돌연변이다. 비늘이 돋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졌다. 이죽거리며 신음하고 의미 없는 가사가 반복된다. 그 혼돈 속에서 달파란의 음악은 탄생한다. 펑크나 일렉트로닉은 수사일 뿐 그는 모든 틀을 찢어발긴다. 1980년대에 몸담은 시나위를 제외하고 그를 묶을 수 있는 장르적 카테고리는 없다. 달파란은 한국 음악계의 이단아다. “안녕하세요”라고 공손히 외쳤지만 저변에 깔린 발칙함은 고매한 음악판에 스크래치를 냈다. 그리고 여전히 선연한 그 틈새에서 한국 음악의 르네상스라는 1990년대와 인디 음악의 부흥기인 2000년대 초반이 탄생했다.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긴 달파란의 작업은 기괴하고 아름답다. 갓 깨어난 봄처럼 부유하다<경성학교> 이죽거리고<거짓말> 혼돈에서 파열한다<곡성>. 달파란은 사운드로 앵글의 빈 공간을 채운다. 낯선 세계로 이끄는 매질이며 서사를 증폭시키는 기폭제인 셈이다. 그리고 모든 사운드는 참신하다. 그 지점은 지난 활동과 닮았다. 달파란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1986년 데뷔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낯선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는 뮤지션 달파란을 만났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20년 전에 당신 공연을 처음 봤다. ‘맙소사’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때 이윤정보다 뒤에서 베이스 치던 당신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주 신경질적인 체형의 베이시스트가 몸을 괴상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해 보였을 거다. 그땐 여자가 보컬인 록 밴드는 거의 없었다. 머리카락과 의상은 전부 형광색이었고 이윤정은 확성기를 들고 무대를 뛰어다녔다. 난 가죽 바지 대신 주로 추리닝을 입었다.
엉뚱하고 잘 노는 동네 형이라 생각했는데, 당신이 벌써 쉰두 살이다. 그런가? 아마 그쯤 됐을 거다. 나이 생각 잘 안 하고 산다.
삐삐밴드 1집 제목이 ‘문화혁명’이었다. 혁명까진 모르겠지만 문화 쇼크는 됐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은 시나위 초기 멤버다. 시나위라면 ‘정통’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밴드 아닌가? 너무 급진적 변화였다. 시나위 멤버들은 고등학교 때 만났다. 당시 신대철은 기타 잘 치는 선수로 유명했다. 그땐 나도 베이스 좀 쳤고.(웃음) 어렸고 음악이면 그저 좋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런데 난 원체 한 우물만 못 파는 성격이다. 다른 것이 하고 싶었다.
삐삐밴드는 음악 컨셉부터 패션, 캐릭터까지 전부 당신이 디자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게 낯설었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었다. H2O라는 밴드를 나와 쉬고 있을 때 일렉트로닉과 펑크를 섞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걸 골자로 자유분방한 음악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마침 이윤정이라는 딱 맞는 친구를 만났다.
두 번째 앨범 <불가능한 작전>은 1집보다 파격적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웠고 편곡도 기발했다. 심지어 타이틀곡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방법’은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일부러 파격적으로 하려 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걸 알아봐준 거지. 운이 좋았다.
그 앨범은 현재 중고나라에서 2만 원에 거래된다. 꽤나 후한 가격이다. 글쎄, 적당한 건가? 가격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잘 팔린다면 다행이다.
당신은 한국 EDM의 조상이다. 요새 EDM은 지구를 지배 중인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내 음악은 EDM이 아니다. 일렉트로닉을 활용하는 것은 같지만 거리가 있다. 그쪽은 댄스 플로가 기반이고 내 작업은 사운드를 만드는 과정이다. 내 음악을 들으며 춤추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권병준(고구마)과 결성한 ‘모조소년’ 1집은 지금 들어도 좋다. 트랙마다 태도가 명확하다고 할까? ‘이 세상에선’에서 속삭이다가 ‘어느 날 오후’에선 건들거린다. 그리고 ‘Stop’에선 취해 비틀거린다. 병준과 함께하는 작업은 즐겁다. 우린 비슷하면서 다르다. 다양한 시도를 좋아하는 것은 같은데 병준이 조금 더 아카데믹하다.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지만 이야기가 잘 통한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언제든 다시 작업할 수 있는 사이다.
2015년엔 삐삐밴드로 싱글과 EP를 냈다. ‘ㅈㄱㅈㄱ’은 너무 반가웠고 ‘Over & Over’에선 당신들의 날 선 감각에 놀랐다. 이렇게 멋진 밴드가 왜 활동이 뜸한 건가? 마침 데뷔 20주년이었다. ‘기념으로 작업 한번 해볼까?’ 해서 시작했다. 아주 즐거웠다. 다들 여전해서 좋았지만 향후 계획은 딱히 없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뭐든 할 수 있을 거다.
정통부터 파격, 솔로부터 프로젝트 밴드, 프로듀서부터 영화음악 감독까지 당신은 이 보수적인 한국 음악판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봤다. 그런가?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고 싶은 작업이 잔뜩 쌓였다. 요새는 음악도 종종 듣는데, ‘이런 식으로 하고들 있구나’ 싶으면서 욕심이 생긴다. 시간이 아쉽다. 조금 더 실험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 가령 앰비언트 같은 장르로 솔로 앨범을 낸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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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입문 과정이 궁금하다. 당신같이 기괴한 뮤지션이 어떻게 영화음악 감독이 됐나? 1990년대 후반에 장선우 감독이 찾아왔다. 대뜸 영화음악을 해보라고 제안했는데 그게 <나쁜 영화>였다. 영화 문법이나 사회적으로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영화 자체가 재미있었다. 나랑 어울린다 싶었고.(웃음)
<나쁜 영화>의 음악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멜로디는 휘발되고 이질적 사운드만 남는다. 그땐 영화음악 같은 거 잘 몰랐다. 그냥 느낌 그대로, 하고 싶은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런데 다행히 장선우 감독이 좋아했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 20년이 됐다. 이젠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 감독이다. 그렇게 거창한 건 잘 모르겠다. 이제 조금 영화음악에 대해 알겠다는 기분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국 영화음악은 체계가 없었다. 한두 편씩 하다 보니 이게 또 발동이 걸렸다.(웃음) 복숭아라고 방준석, 장영규, 이병우 음악감독이랑 어울리는 그룹이 있다. 일종의 영화음악 스터디인 셈인데 한창 토론과 작업에 열을 올렸다. 그때 그 시간이 도움이 됐다.
영화음악 작업은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OST는 개인 작업과 다르다. 하고 싶은 것보단 영화를 증폭시키는 데 집중해야 하는 작업 아닌가? 맞다. 스코어는 영화와 함께 가야 한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요샌 음악의 비중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영화 전체의 5분의 4 수준으로 커졌다. 흐름에 맞아야 하고 감독의 의도를 파악해야 해서 영상을 수백 번 본다. 보통 1차 편집본이 오면 작업을 시작한다. 기간은 1~2개월이지만 구상하는 시간은 더욱 길다.
<거짓말>을 다시 봤다. 들었다고 해야 하나. 영화에 흐르는 뽕짝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더라. 초반부터 끝까지 묘한 긴장감과 촌스러움으로 영화를 끌고 나간다. <휘파람 별>이라는 솔로 앨범이 있다. 한국 뽕짝 멜로디를 샘플링으로 사용한 작업인데 장선우 감독이 비슷한 느낌을 원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영화음악은 스코어링이라기보다 이미지만 갖고 음악을 만들었다. 완성된 음악을 넘기면 거기서 믹스해 쓰는 수준이었으니… <거짓말>에선 스코어링을 해보고 싶었다.
근래엔 대형 제작사, 유명 감독과 함께하는 작업이 많다. 그런데도 자신의 색은 잃지 않는다. 자기 색은 지켜야 한다. 그건 생명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영화음악 작업은 규모에 상관없이 긴장감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은 전보다 덜하다. 대형 제작사나 유명 감독과 작업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다. 이제는 일이 됐다고 해야 하나.
<암살>에선 현악을 많이 썼다. 그래선지 클래식한 느낌이 강하다. 클래식한 영화음악, 그런 느낌을 가져갔다. 그렇지만 절대 부드럽지는 않다. 일부러 촌스럽게 만든 부분도 있고 중간중간 뚫고 나오는 뾰족함도 있다.
<곡성>으로 37회 청룡영화상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소감 한 줄, 사진 한 장 없더라. 시상식에 안 갔다. 몇 년 전부터 노미네이트는 자주 됐다. 매번 안 주길래 이번에도 ‘당연히 못 받겠지’ 생각했다. 상에 큰 욕심도 없고…. 그런데 전화가 왔더라. 상 탔다고.
<곡성>의 작업 과정은 상상이 안 된다. 창작자 입장에서도 난감했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무릎을 쳤다. 절묘하게 괴랄했다. 아직까지도 한국 영화 OST는 멜로디 위주다. 자꾸 외국 이야기를 해서 뭣하지만 그들은 멜로디보다 사운드로 소리를 채운다. 이걸 해야 하는데, 해보고 싶은데 하다 <곡성>을 만났다. 서사가 지닌 에너지나 나홍진 감독이 그린 이미지, 그런 게 내 의도랑 잘 맞았다. 그런데 <곡성>은 좀 난감한 부분이 있었다.(웃음) 영화가 중간에 지연돼서 시간을 오래 끌었다. 그래야 한 영화다.
초기에 나홍진 감독과 상의한 사운드는 어떤 형태였나? 구체적인 부분은 우리 쪽에서 제시하길 바랐다. 전체적으론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두꺼운 느낌? 그런 질감을 원했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사운드가 중간중간 뚫고 나오는. 타악기도 많이 썼다. 스트링을 가지고 주법을 달리했고 다이코 같은 악기도 사용했다.
개인적으론 <경성학교> OST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초반 평화로운 느낌의 잔잔함과 후반 클라이맥스에서의 파열음은 간극이 상당하다. 아주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나랑 잘 맞았다. 이혜영 감독도 그런 전개를 원했다.
이젠 실험이나 도전 같은 것이 부담스럽지 않나? 3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았다. 여전히 재미있다. 호기심이 많고 지루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당분간 이런 작업을 이어갈 것 같다. 아쉬운 건 몇 년 동안 일에 치여 개인 작업을 못한 것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하고 싶은 음악이 잔뜩 쌓여 있다.
올해 예정된 활동은 어떤 것이 있나? 영화 몇 편을 논의 중인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지난해와 비슷하지 않을까. 뭐, 도중에 발동이 걸리면 프로젝트 앨범이나 개인 작업을 할 수도 있고. 나도 잘 모르겠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박정민 헤어 & 메이크업 김환 스타일링 김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