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사는 나라
데이비드 올트메이드는 일찍이 본 적 없는 조각의 신세계를 창조해가고 있다. 기이한 형상의 괴물이 그곳에 산다. 그로테스크한 그 괴물들에는 작가의 ‘만들기’를 향한 원초적이고 순수한 즐거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구보다 정교하고 누구보다 변태적인 손맛의 향연!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작가
Photo by Lance Brewer
2014년 1월 앤드리아 로젠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이후 중간 회고전 성격의 대규모 전시가 토론토, 파리, 룩셈부르크, 몬트리올 등을 순회하고 있다. 같은 작품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전시할 때 어떤 차이를 두나?
미술관의 특수한 건축 환경에 맞춰 작품을 다르게 전시했다. 파리 시립 미술관에서는 좁은 방과 복도에 잘 어울리도록 작품을 선형적으로 배치해 전시를 이야기처럼 구성했다. 몬트리올 현대미술관에서는 관람객이 전시장 한가운데에 서면 작품에 둘러싸일 수 있도록 큰 방에 많은 조각을 설치했다. 그래서 전시실마다 매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1999년과 2000년에 발표한 ‘늑대인간’ 연작에는 작품 세계의 주요 요소가 모두 등장한다. 플렉시글라스의 건축적 구조, 개별 오브제를 위한 무대처럼 만든 입방체 형태의 박스, 유리·거울·나무·크리스털·식물 같은 재료, 거울을 이용해 만든 만화경 이미지, 기이한 생명체의 신체 파편인 늑대인간의 머리까지.
당시 나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스스로 진지한 작가라고 느끼고 있었다. ‘늑대인간’ 연작은 뉴욕에 와서 처음 만든 조각으로, 이후에 내가 만든 모든 작품의 기원이 됐다. 당시만 해도 내가 미래에 무얼 만들지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 작품에 매우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안다.
2003년 당신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적이며, 끔찍하고, 아름다운 작품 ‘세라 올트메이드’를 제작한다.
그땐 작품을 제작할 돈도, 자원도 없었다. 스튜디오가 없어서 침실 바닥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런 환경의 희생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내 누이 세라의 초상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나는 세라의 얼굴 대신 큰 블랙홀을 만들었다. 동생의 사랑스러운 눈과 미소를 만들었다면,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단순하게 재현한 예상 가능하고 지루한 조각이 됐을 것이다. 나는 (얼굴에) 구멍을 파서 완벽히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조각을 완성했다. 그건 전적으로 새로운 오브제였다. 또한 당시에 나는 일종의 초강력 배터리처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장력을 지닌 오브제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이 작품을 만들었을 때 절벽의 가장자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런 스릴을 느끼는 위험한 위치에 선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무제, 에폭시 점토, 회반죽, 유리 눈, 인조 머리카락, 아크릴물감, 석영과 여러 광물, 천, 스테인리스스틸, 31.8×25.4×33cm, 2011
Photo by Jessica Eckert ⓒ David Altmejd

Sarah Altmejd, 회반죽, 아크릴물감, 폴리스티렌, 인공 머리카락, 철선, 체인, 보석, 반짝이, 40.6×17.8×17.8cm, 2003
Photo by Lance Brewer Courtesy of Andrea Rosen Gallery New York ⓒ David Altmejd

The Island, 폴리스티렌, 발포 폼, 에폭시 점토, 젤, 나무, 인공 머리카락, 레진, 석영, 플렉시글라스, 코코넛, 아크릴물감, 철선, 반짝이, 라텍스물감, 489×254×254cm (부분), 2011
Photo by Farzad Owrang Courtesy of The Brant Foundation Art Study Center, Greenwich, CT
ⓒ David Altmejd

작가가 ‘모든 작업의 기원’이라 말하는 초기 ‘늑대인간’. 왼쪽 ‘Second Werewolf’(2000년), 오른쪽 ‘First Werewolf’(1999년)
Photo by Richard-Max Tremblay Courtesy of Galerie de l’UQAM ⓒ David Altmejd
‘늑대인간’에 이어 ‘The University 1·2’, ‘The Lovers’, ‘The Outside, The Inside and The Praying Mantis’ 등 건축적 구조가 작품의 기반이 된 작품도 등장했다. 개별 작품을 무대 위 주인공처럼 전시하는 이런 플랫폼 형식의 작품은 어떤 의도로 제작했는가?
‘거인(영웅)’ 연작을 시작하면서 더는 플랫폼 같은 복합적 대좌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나는 ‘거인’의 몸에 모든 것이 포함되길 바랐다. 그래서 작은 사물과 크리스털을 거인의 몸에 넣어 작품으로 제시했는데, 그 몸이 점차 그들 자신의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전시장의 바닥, 천장, 벽면까지 모든 공간을 사용했다. 다른 인터뷰에서 당신의 작품은 설치미술과는 다르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작품을 전시하는 데 특별한 원칙이 있는가?
작품이 관람객과 동적인 관계를 형성하거나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가끔 설치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나는 내 조각이 자족적이라고 주장했다. 개별 작품이 하나의 몸으로서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거인’의 몸에 당신이 전시 공간을 전유하는 방식이 응축돼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맞다. 그들 몸의 내부 건축은 외부의 다른 작품과 매우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복잡한 거울은 공간을 무한하게 만든다.
늑대인간, 거인 외에 보디빌더, 새인간, 관찰자 등이 등장한다. 그들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조력자다. 그들은 내가 공간과 힘과 물질의 다른 측면을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나는 늑대인간을 에너지로 가득한 장력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라고 여긴다. 만약 조각에 그런 힘이 필요하다면, 늑대인간의 몸을 초강력 에너지 발전기로 사용할 수 있다. 거인은 내가 조각가로서 흥미를 느끼는 공간에 관한 탐구를, 그 안에서 하기에 충분할 만큼 크다. 보디빌더는 스스로 형태를 만드는 힘을 지닌 인물이다. 그들을 만드는 것이 즐겁다. 어쩌면 그들 자신이 만드는 일을 내가 도와준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웃음)
한 다큐멘터리에서 ‘머리’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했다. 당신은 다른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드로잉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머리를 만든다. 이 ‘머리’를 제작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머리는 테이블에 올려놓고 내 손으로 쉽게 다룰 수 있는 완벽한 크기의 오브제다. 나는 지속적으로 머리를 제작하면서 재료, 질감, 색에 관한 실험을 해왔다. 거대한 조각을 만들 때마다 몇 개의 머리를 제작할 때와 같은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에 나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머리’ 연작을 만들고 있다. 그건 내 취향에 가깝거나 더욱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머리가 어느 정도 완성된 것처럼 느껴지면, 나는 그 머리의 위아래를 뒤집어 눈을 중심으로 새로운 얼굴을 만든다. 새 얼굴은 재미있거나 괴상한 효과를 주기 위해 대단히 직감적으로 만든다. 마침내 두 얼굴과 두 정체성을 지닌 가역적 얼굴이 완성된다. 한 쌍의 같은 눈으로 만든 매우 다른 2개의 정체성은 정신분열증처럼 엄청나게 복잡하고 ‘늑대인간’처럼 활기가 넘친다.
‘거인’을 제작하면서 작품의 사이즈에 관한 문제가 더 중요해졌다. 눈높이에 맞춘 비슷한 크기의 ‘머리’를 제작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 필요할 것 같다. 작품의 ‘사이즈’는 어떻게 결정하나?
내 작품의 최대 크기는 스튜디오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웃음) 가장 작은 사이즈는 머리다. 나는 그 둘 사이를 오가는 것을 즐긴다. 조각가로서 둘 다 중요하며, 내게 서로 다른 측면을 제공한다. 작은 오브제를 만들 때는 내 안의 물신숭배적 면모가 깨어난다. 때때로 내겐 이렇게 완벽한 통제하에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큰 조각을 만들 때는 내가 그 안에 들어가야 하고, 내 몸이 그 안에 머물 수 있다. 내가 작품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수긍해야 한다. 그 안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손에 쥘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좋다.
생물학을 오랫동안 공부했다. 이런 이론적 배경이 작품의 제작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 복잡성에 매혹되었다. 세계의 복잡함은 우연에 의한 돌연변이의 연속이 만들어낸 아주 긴 역사의 산물이다. 이런 생각은 생물학이 내게 가르쳐준 한 가지다. 나는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갈 때 생물학의 이런 모델을 염두에 둔다. 만약 내가 조각을 작업할 때 2개의 물질을 우연히 혼합해 흥미로운 효과를 얻었다면, 그다음 작품에서는 두 물질을 고립시키고 또 다른 효과를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진화론적’인 모델이다.
비례, 균형, 덩어리, 질감 등 조각의 전통적 어휘를 활용하는 작업 방식은 조각의 선구자들과 닮았다. 근대 작가 중 특히 친밀감을 느끼는 조각가가 있나?
최근 로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피고 있다.
작품에 어떤 이야기를 부여할 때 특별한 논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조각을 만들 때는 특별한 이야기를 상상하지 않는다. 조각 그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여러 요소를 혼합해 작품이 점차 이야기를 창조해가도록 하는 게 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 그 이야기는 오직 ‘잠재적’ 상태로만 남아 있다.(웃음)
The Flux and The Puddle, 플렉시글라스, 석영, 폴리스티렌, 폴리우레탄 폼, 에폭시 점토, 젤, 레진, 인공 머리카락, 옷, 가죽신, 실, 거울, 회반죽, 아크릴물감, 라텍스물감, 철선, 유리 눈, 시퀸, 세라믹, 조화, 인공 나뭇가지, 접착제, 가정용 거위털, 철, 코코넛, 버랩, 형광빛을 포함한 조명 시스템, 펠트펜, 나무, 커피 찌꺼기, 327.66×640.08×713.74cm, 2014
Photo by James Ewing
Courtesy of Andrea Rosen Gallery, New York 使 David Altmejd

The Eye, 나무와 거울, 328.93×549.91×367.03cm, 2008.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설치 장면
Photo by Tom Powel Courtesy of Andrea Rosen Gallery, New York ⓒ David Altmejd

Le Spectre et la Main, 플렉시글라스, 코코넛 껍데기, 에폭시 점토, 실, 레진, 철선, 말털, 아크릴물감, 접착제, 실 틀, 315.6×683.3×248.9cm, 2012
Photo by Guy L’Heureux ⓒ David Altmejd

2014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룩셈부르크의 무담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전경
Photo by Remi Villaggi / Mudam Luxembourg ⓒ David Altmejd

무제 2(Bodybuilders), 회반죽, MDF, 폴리스티렌, 발포 폼, 라텍스물감, 236.22×91.44×162.56cm(부분), 2011
Courtesy of Andrea Rosen Gallery, New York ⓒ David Altmejd

스튜디오에서 천장에 뒤집혀 고정된 형태의 ‘보디빌더’ 연작을 제작 중인 작가
Photo by Lance Brewer ⓒ David Altmejd
당신이 만든 거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작품 ‘The Flux and The Puddle’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편의 오페라나 교향곡처럼 드라마틱하고 야심찬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몇 년 동안 작업한 플렉시글라스 박스 연작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고 복잡하게 만들려고 했다. 또한 내 실천의 한 챕터를 끝내고 싶었다. 이 작품에 조각가로서 내가 해온 모든 것(캐릭터, 물질, 색깔, 아이디어 등)을 포함시킨 이유다. 복잡하고 정교하면서 살아 있다고 느낄 만큼 긴장으로 가득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면서 이전 작품과의 관계를 고려하나? 일종의 가계도 같은 것 말이다.
매번 조각을 만들 때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럼 나는 그 아이디어를 새로운 조각으로 분리해놓는다. 맞다. 거의 모든 작업은 이전에 제작한 작품과 이어진다.
당신은 재료에 특정한 의미 혹은 역할을 부여한다. 가령 금줄은 ‘에너지 순환’의 기능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재료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금 당장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재료는 회반죽이다. 행위의 기억을 고정하기에 완벽한 물질이다.
기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가능성’, ‘변신’, ‘에너지’, ‘영원성’이다. 심령술사나 마술사, 물리학자의 그것과 닮았다.(웃음) 당신이 말하는 ‘영원히 회전하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작품의 자기 충족적 긴장과 분위기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보이지 않는 (종교적이거나 미신적인) 영적 세계에 관한 것인가?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내게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은 같다. 나는 내 작품이 살아 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한때 팔딱거린 것처럼 말이다.
“신은 디테일에 머문다”라는 말이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디테일의 향연은 당신의 작품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점차 잊히는 손의 감각,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본능적이고 순수한 쾌락, 수공예적 정교함의 전통, 그리고 그것이 촉발하는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런 디테일을 오직 감각에만 의존해 작업하는가? 작업의 흐름을 만들 때 감정이나 에너지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궁금하다.
아름다운 코멘트를 해줘서 고맙다. 나는 한편으로 매우 지성적이다. 작품을 지적인 프레임에 놓고 계속 생각하고, 그것을 즐긴다. 한번 확신이 들면, 디테일에 내가 완전히 흡수되게 한다. 그리고 내 감각에 귀를 기울인다. 가끔 나는 뒤로 물러나 작품을 더 큰 프로젝트로서 고민한다. 그렇게 하면서, 유머를 더하거나 사이즈를 줄이거나 새 물질을 첨가하는 등 작품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 다시 작업으로 돌아오면, 그것은 감각에 대한 모든 것이 된다.
결국 당신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존재의 아름다움’이다.
데이비드 올트메이드
1974년 캐나다 몬트리올 출생. 퀘백 대학교와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캐나다관의 대표 작가로 참여했으며, 2009년 소베이(Sobey) 미술상을 받았다. 2015년 룩셈부르크, 파리, 몬트리올 등에서 회고전을 개최했다. 앤드리아 로젠, 스튜어트 쉐이브, 재비에 후프켄스 갤러리에 소속돼 있으며,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