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잃을 권리
이미 장르화된 ‘교양’을 극복하는 방법엔 뭐가 있을까? 또 요즘같이 불안하고 불안정한 시대를 감내하는 방법은? 전시 기획자 김노암과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가 ‘유동적 현대(liquid modernity)’에 꼭 쥐어야 할 몇 가지에 대해 말했다.
김홍기
경영학을 전공한 후 패션 바이어로 일했다.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로 미술과 패션을 결합한 독창적인 저술 활동과 패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저서로 <옷장 속 인문학>과 <댄디, 오늘을 살다> 등이 있다.
김노암
회화와 미학을 전공했고, 전시 기획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KT&G상상마당의 전시감독과 문화역서울284의 예술감독, 세종문화회관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안 공간 아트스페이스 휴를 운영하고 있다.

김노암이 입은 브라운 터틀넥, 화이트 팬츠, 네이비 스니커즈 모두 Boss Men
‘교양’을 극복하는 방법
김홍기/ 이 땅에서 ‘교양’은 이제 정말 생존 전략 같은 문제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모두가 교양을 외치죠. 그러다 보니 장르화되고 있고요. 근데 교양이란 게 원래 이런 걸까요? 전공이 규정연기를 가르치는 거라면, 교양은 자유연기를 가르치는 거잖아요. 자유연기는 말 그대로 규정의 폭을 넘어 내 안에 있는 어떤 걸 끄집어내 보여주는 거고요.
김노암/ 그건 교양의 주체가 내 ‘안’에 있어야 하는데 ‘밖’에 있어서 그런 걸 거예요. 제가 볼 때 교양이란 완성된 근대인이 갖춰야 될 어떤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예컨대 언어능력과 정치적·경제적 감각, 도덕성, 예술적 감식안 같은 걸 전부 갖추는 걸 뜻하죠. 근데 우리가 지금 그런가요? 모두가 교양이 있네, 마네 하며 서점을 찾지만, 정작 그곳의 서가는 단기적이고 ‘얇은’ 유행을 타는 느낌이에요. ‘개인’보다는 ‘군중’이란 말이 떠오르죠.
김홍기/ 맞아요. 다른 예로 저도 복식사 강의를 하는데, ‘잡학’ 정도로 취급될 때가 있어요. 전 결코 어느 한 시대에 어떤 옷이 있었다고 소개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 시대에 이런 옷이 ‘허용됐다’고 가르치는 게 복식사죠. ‘웨어러블(wearble)’이란 것도 각 시대에 따라 기준이 있었던 것처럼 그걸 가능하게 한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강의하는 거죠. 그런데 강의를 하다 좀 더 거시적인 걸 얘기하면, 다들 ‘뭐지?’ 하는 반응이에요. 그들에겐 복식사가 그냥 대화할 때 양념을 뿌릴 수 있는 정도면 좋다는 거죠.
김노암/ 사실 교양은 가장 근대적인 키워드예요. 근대의 주역인 ‘인텔리’와 ‘라이프스타일’처럼, 다수가 동의하는 ‘상식(common-sense)’ 같은 거죠. 전 교양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백남준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올해가 마침 사망 10주기이기도 하고요. 지난해부터 그를 조명한 글도 여기저기서 나왔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어떤 ‘선생님’들이 쓴 글보다 그를 가장 잘 설명한 글은 백남준 자신이 쓴 글이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그를 가장 명쾌하게 드러내죠. 제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진짜 ‘교양 있는’ 사람이란 거예요. 그런데 실제론 나 자신도 나를 잘 몰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죠. 그래서 항상 나는 나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이를 찾게 되는 거고요.
김홍기/ 심리서나 자기 계발서 같은 책이 유행하는 것도 같은 이치죠.
김노암/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요.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르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 일례로 나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았다고 쳐요. 그래서 그가 나에 대해 잘 설명해요. 그럼 ‘안심’이 되어야 하는데 뭔가 불안해. 옛날 같으면 안심이 됐을지 몰라요. 훌륭한 누군가가 써줬을 테니까. 근데 지금은 성이 안 차는 거예요. 아무리 남이 나를 잘 설명해도 그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 시대죠. 100%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김홍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정말 깔끔한 설명이네요.(웃음) 결국 ‘개인의 해체’거죠. 현대엔 그렇게 확고부동한 근대적 개인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다들 미디어에 휩쓸리기 일쑤니까요. 모두가 ‘내가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그걸 잘 취해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들이 결국 얌전한 ‘소비자’가 되어버리죠. 그래서인지 요즘 인문학 강의에선 말씀 잘하는 선생님들이 인기예요.
김노암/ 그런 강의에서 나오는 교양의 가장 부정적 측면이라면,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악의 상태로, 스스로 조소하는 형태가 있어요. 내가 속한 사회 전체를 풍자해버리는 거죠. 한데 풍자라면 자신(풍자의 주체)의 지위가 그(풍자의 대상)보다 내려가야 돼요. 내가 위에 있고, 상대가 밑에 있으면 절대 풍자가 될 수 없죠. 다시 원래 문제로 돌아가서, 이미 장르화된 교양을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전에, 그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저는 옳다고 봐요. 사실 ‘장르화’되었다는 건 부정적 뉘앙스이긴 해도 ‘고도화’되었다는 얘기이기도 하거든요. 불가피하게 (교양이) 장르화되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해야죠. 분명 우회로가 있었겠지만, 그 길을 몇 명이나 찾겠어요. 비슷한 얘기로 한때 한창 ‘융합’이나 ‘크로스오버’, ‘컬래버레이션’ 같은 걸로 요란했잖아요. 얼마나 웃기는 일이 많았나요. 그게 연극과 퍼포먼스, 이벤트, 현대무용 같은 걸 전혀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섞어버린다는 건데, 그게 얼마나 ‘미친 상태’였느냐는 말이죠. 제 말은 오히려 (교양의) 장르화를 고지식하고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장르를 극복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거예요. 장르가 전면화되지 않고 파악도 되지 않으면 어떻게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요?
김홍기/ 각각의 영역이 정체성을 갖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언어를 만든다. 뭐 그런 말씀이신지요.
김노암/ 맞아요. ‘문법’이 있고, ‘상용구’가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교양은 사실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담론보다 상위 개념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장르화’되는 건 맞지만, ‘장르’는 아니니까요. 또 아무리 교양이 ‘장르화’된다고 해도 ‘교양’은 존재하니까요.
김홍기/ 제 생각도 그래요. ‘교양이 있다’는 말엔 사실 ‘교양의 원형질’ 같은 게 존재하죠. 시대마다 조금씩 그 빛깔과 실루엣만 달랐을 뿐, 지금도 볼륨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봐요.
김노암/ 원형은 있어요. 그러니 ‘진짜’ 교양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는 일단 교양이라는 게 ‘당연히’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해야 하죠. 그러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사실 교양이 존재한다는 ‘심증’을 갖고 하는거니까요.
김홍기/ 그럼 역시 (교양의) ‘번역’ 문제가 중요한 거겠군요.
김노암/ 그렇죠. 결국 ‘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죠. 더 많은 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소통이 가능한 기술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필요한 때죠.
김홍기/ 그럼 그건 그렇게 정리하고, 원론적으로 선생님은 교양이란 게 대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김노암/ 우리의 수명이 늘었잖아요.(웃음) 과거엔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다들 금방 죽었으니까요. 근데 우린 그렇게 안 죽을 거예요. 80세는 기본이고 100세를 넘길지도 모르죠. 그러니 고민이 커지는 거예요. 이전엔 문제되지 않던 것이 큰 문제로 돌아오죠. 그래서 이제 그 많은 시간 동안 ‘교양’에 대해 말해야 하는 거예요. 과거엔 귀족처럼 여유 있는 이들만 고민한 문제였는데 말이죠. 참고로 제가 2013년에 문화역서울284에서 ‘여가’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숙제가 되어버렸죠. ‘릴랙스’가 숙제인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옆에서 ‘힘 빼’라고 해도 절대 그 힘이 안 빠져요. 앞으로 우린 여가를 보내는 방식도 공부해야 해요.

불안정한 시대에 꼭 쥐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홍기와 김노암
예술은 정말 ‘출구 전략’일까?
김노암/ 건축가들은 경기가 안 좋을 때 유독 전시를 많이 열어요. 집을 안 지으니까요. 아파트는 건축가가 아닌 건설사가 짓는 거죠. 아파트를 빼면 사실 한국 건축가들이 지을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러니 불황일수록 그들도 ‘짓는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해 전시를 열죠.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도 처음엔 지을 수 없는 것만 설계했어요. 그러다 자국의 발전상을 조형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건축가를 찾던 중국이나 중동 국가의 눈에 띄어 급부상했죠. 사실 그녀의 건축이 안정적으로 보이진 않잖아요.
김홍기/ 그냥 옷 같죠. 직물.
김노암/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같은 조형적 실험이죠. 그녀는 자신의 건축설계가 돈도 많이 들고 짓기 어려워서 전시를 잘 활용했어요. 가구는 물론 필기구 디자인까지 선보였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대체품이 필요했던 거예요.
김홍기/ 그건 사실 패션계도 마찬가지예요. 지난 10여 년간 패션계에서도 이런저런 큰 전시가 열렸잖아요. 문제는 그런 전시가 점점 ‘아웃렛’화되고 있다는 거죠. 기업들이 패션 전시를 점점 수익 창출을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노암/ 그럼요. 마케팅의 새로운 수단이죠.
김홍기/ 사실 패션은 오래전부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꼬시며 ‘예술’에 입회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어요. 예술은 패션이 평생을 꿈꿔온 어떤 것을 이미 가지고 있었거든요. 누가 뭐라고 하든 예술은 항상 그 본질에 ‘영구적’인 것이 존재하죠. 바르바라 핑켄(Barbara Vinken)이라는 패션학자도 이런 얘길 했어요. “현대 패션은 오래전부터 예술이 되길 꿈꿔왔고, 점점 그 경지에 다가서고 있다”고.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패션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들어갈 땐 잠시 인식이 바뀌지만, 그것이 끝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죠. 사람들의 인식도 비슷한 것 같아요. 매해 패션은 S/S와 F/W컬렉션을 만들어야 하고, 그사이에 크루즈 룩과 바캉스 룩 등 ‘유행’ 또는 산발적으로 튀어오르는 한 순간 한 순간의 것을 포착해야 하다 보니 사람들도 그 옷을 입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지, 거기에 어떤 영구적 메시지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죠.
김노암/ 예술을 향한 갈망에 대한 얘기라면 여기저기에 좋은 예가 있죠. 최근 노벨 문학상 문제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 밥 딜런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스스로 시인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음악을 선택한 거라고 말했죠. 그렇게 대중음악과 영화 산업의 히어로들은 예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어 했어요. 예술을 삶의 출구 전략으로 삼는 거죠. 존 레넌과 오노 요코만 해도 그래요.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던 존 레넌도 개념미술을 하는 예술가 오노 요코에게 빠져 헤어나지 못했잖아요. 이런 예만 봐도 인간이 삶에서 예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죠.
김홍기/ 그럼 왜 사람들은 예술을 멋지다고 여길까요?
김노암/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 stein Bunde Veblen)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진짜 부자는 본인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또 “본인이 얼마를 쓰는지에도 관심이 없다”고 했죠. 그걸로 그가 어느 정도 부자인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말에 빗대어 말하면 예술은 ‘내 영혼의 품격’ 혹은 ‘내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풍성한지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가 될 수 있어요. 물질적인 게 아니라 진짜 내 영혼의 가치를 드러내는 가장 멋진 무대가 되죠.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진짜 미덕은 ‘누가 그랬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본다’라고 주장하는 것에 있어요. 일급 예술가들은 보통 ‘나는 이렇다’,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하잖아요. 예전에 공부할 땐 ‘나’가 많이 등장하면 나쁜 글이라고 했지만, 대가들은 ‘나’라는 말을 자주 쓰죠.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정한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김홍기/ 맞아요. 패션으론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렵죠. 예술은 한 인간이 끊임없이 지향하고 그리워하는 어떤 지점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패션은 예술에 비하면 아주 광폭한 속도의 산물이죠. 한데 패션계에서 종종 우스갯소리로 내세우는 얘기가 있어요. 오래전 마르크스가 대영제국 도서관으로 <자본론>을 쓰러 다녔잖아요. 그런데 대영제국 도서관은 당시 체스터필드 코트를 입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했죠. 코트를 입은 이만 사람 대우를 받은 거예요. 원고료로 근근이 생활하던 마르크스도 그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겠죠. 그런데 그는 돈이 없어 코를 자주 전당포에 맡겼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코트를 맡긴 날엔 글을 쓰러 도서관에 가지 못했죠. 그래서 복식사가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실은 ‘패션의 산물’이란 얘길 하더라고요. 당시 코트 때문에 마르크스가 돈에 한이 맺혔다고요.(웃음)
김노암/ 재미있네요.
김홍기/ 좀 더 덧붙이자면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당시 가장 중요시한 게 바로 ‘mode of production’이에요. ‘생산방식’이라고 번역하지만, ‘mode’는 패션 용어로도 쓰이잖아요. 실제로 그가 그 옛날 대영제국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게 새 물건도 1년만 지나면 진부하다고 느끼게 되는 계획적 진부함, 그런 것이 만드는 자본주의의 광폭함과 폭력 같은 거였거든요. 전 패션도 그런 관념 속에서 탄생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패션의 산물은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나온 거거든요. 지금도 패션은 여전히 ‘시즌 장사’라고 하잖아요. 제가 디자인한 것 혹은 제 아내가 디자인한 것이 이번 시즌에 안 나가면 다 재고가 되죠. 그럼 그 재고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이루어지나요.
김노암/ 마르크스 얘길 하시니, 재작년에 돌아가신 김수행 교수님이 떠오르네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마르크스 <자본론>을 번역하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연구한 분이죠. 그분은 특히 불황과 공황 경제 전문가였어요.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나는 게 하나 있어요. “공황이라는 건 안 좋은 경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불황과 활황이 번갈아 오는데 공황은 불황과 불황 사이의 호황이 짧아져서 그것이 연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요. 사실 ‘빙하기’가 있으면 ‘간빙기’도 있잖아요.
김홍기/ 저도 늘 그런 생각을 해요. 불황도 결국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요. 실질적으로 불황과 활황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니까요. 그러니 그 안에서 미래를 어떻게 기대하고 조각해나가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된다고요. 왜 이런 말도 하잖아요. 미래란 결국 우리의 현실을 우리의 기대감이 보이도록 만들어내는 것이라고.(웃음)
김노암/ 맞아요. 미래를 위해 지금 끊임없이 선택해야 해요. 그래야 그 (선택의) 결과가 미래에 따라오죠.
김홍기/ 정말 그래요. 불황일수록 비물질(예술)로 돌아간다는 얘기엔 다소 말이 안되는 구석이 있죠. 대중의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선 새 메시지를 찾으려는 열망이 차오르기 마련이고, 그게 가시화되는 게 바로 호황일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은 그 목적을 위해 가장 먼저 달려간 이들 같아요. 아방가르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 같지 않거든요. 우린 ‘전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요.
나의 찬란한 미래 무기
김노암/ 전 ‘미래’의 다른 말이 ‘불확실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결코 불안을 뜻하진 않죠. 사실 모든 게 너무 ‘안정’ 상태여도 불안합니다.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보통 안정된 가정의 중년 남성이 바람을 피우죠. 안정된 집안의 여성이 가출하고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만 봐도 불안과 안정의 관계, 불확실성과 확실성의 관계를 수시로 넘나들어요. 미래가 찬란하다고 여기면 좋겠죠. 어둡다고 생각하면 괴롭고요.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하느냐 하는 것이 미래를 담보한다고 봐요.
김홍기/ 그럼 선생님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 무엇을 기획하실 건지요?
김노암/ 미술 기획 얘길 하자면 언젠가 패션모델이 기획의 주체가 되는 전시를 열어보고 싶어요. 패션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모델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디자이너와 의상 등을 꼽게 하고, 이런저런 얘길 듣는 거죠. 그간 사실 우린 패션 디자이너나 산업, 경영인들의 입장에서 패션을 다뤄왔잖아요. 모델의 담론은 늘 한결같았죠. “판타스틱해요”, “선생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같은. 그런데 거기에도 실은 뭔가가 있을 거라는 얘기죠. 모델에게도 분명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언어가 있을 거예요. 그런 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 전시를 열면 재미있겠다고 예전부터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홍상수 감독의 전시를 여는 거예요. 팀 버턴 같은 마니악한 감독도 전시를 열고 성공했는데, 홍상수 감독이라고 못할 건 없다고 봐요. 단, 그의 전시라면 기존 미술 기획의 어법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가야겠죠. 홍 감독의 평균 영화 제작비가 1억 원 정도라고 하는데, 그 제작비를 지원하고 영화를 찍게 해 모든 과정을 전시 요소로 쓰는 겁니다. 영화 제작부터 전시까지 대략 2억5000만 원 정도 들 텐데, 그건 여기저기서 끌어와야겠죠. 장소 대여료나 기획료 빼고요.(웃음)
김홍기/ 그분의 이름으로 지금 협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웃음)
김노암/ 쉽지 않겠죠. 하지만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 전시를 기획할 때도 유명 작가를 데려오면 실패는 하지 않겠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 그런 것이 전부 결핍된 상태에서 그걸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겁니다.
김홍기/ 기대되네요.(웃음) 저는 패션 쪽 전시를 연다면 ‘미래의 옷’에 관한 얘길해보고 싶어요. 패션의 미래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전시를 통해 ‘인간은 미래에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같은 근원적 고민을 해보는 거죠. 지금 우리가 ‘웨어러블’하다고 느끼는 감각도 미래엔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거든요. 이건 사실 최근 라스베이거스 전자제품 박람회(CES)에 다녀왔을 때 떠올린 생각이에요. 이미 거기에선 ‘아이언맨’이 입는 것 같은 옷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미래는 우리가 ‘이렇게 될 거야’라고 스케치하고, 그걸 따르면 차츰 현실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제 생각이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미래엔 아마 ‘우븐(wvoen)’을 입는 이와 아닌 이로 나뉠 겁니다. 고도화된 기능성을 추구하는 집단과 한 줌의 감성을 추구하며 우븐에 담긴 미학을 찾으려 애쓰는 집단으로요.
김노암/ 그 또한 전시로 열기엔 돈이 많이 들겠는데요?(웃음)
김홍기/ 많이 들겠죠. 하지만 정말 ‘미래의 옷’으로 전시를 하게 되면 옷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의외로 그런 제품 개발을 시도하는 사람이 꽤 있거든요. 유명 디자이너들은 늘 옷을 다 팔아버리니 한 벌도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하지만 ‘미래’라는 기술을 입혀놓은 옷은 아직은 잘 팔리지 않으니 구하긴 수월하겠죠. 전 요즘 이렇게 미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어요.
김노암/ 생물학적으로 아주 건강하시네요.(웃음)
김홍기/ 기술이 그렇게 발전하고 있으니까요.(웃음)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 장소 협조 아트먼트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