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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그대의 머릿속에 씨앗이 자라나게 하는 것

LIFESTYLE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김광호 사무총장은 오늘도 교육에 대해 생각한다. 유네스코와 교육이 대체 무슨 관계냐고 묻는다면, 70여 년 전 기관 설립 이념에서부터 그것과 함께해왔다고 설명하겠다. 교육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게 아니다. 씨앗이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6일, 카스피 연안에 자리한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일대 사건이 터졌다. 유네스코(UNESCO)의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총회에서 조선 최초의 서원인 경북 영주 소수서원을 포함한 전국 9개 서원(경남 함양 남계서원, 경북 경주 옥산서원, 경북 안동 도산서원, 경북 안동 병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문화와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동시에 지닌 ‘기록유산’이 있는데 이 중 ‘한국의 서원’ 9곳은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이란 문화유산 등재 기준 세 번째 항목을 만족시켰다. 이로써 한국은 8월을 기준으로 총 15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김광호 사무총장은 2016년부터 교육과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문화, 국제 협력, 개발 협력 등 유네스코 활동 분야에서 다양한 국내외 사업을 추진해왔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지정하는 일 말고도 이렇게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고? 그렇다. 하지만 많은 이가 잘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유네스코라는 기관 자체가 1945년 거듭된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를 ‘교육’으로 재건한다는 이념으로 창설한 기구라는 사실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 걸까. 바로 국가 간 불신과 불일치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서로 이해한다면 이를 억제할 수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김광호 사무총장은 그래서 오늘도 교육에 대해 생각한다. 30여 년간 교육계에서 일해온 그는 은퇴 후에도 그간 배운 전문 지식을 내세워 지역사회에 봉사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1 유네스코 브릿지 아시아 부탄 프로그램 직업 훈련.
2 지난 7월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 9곳이 지정되어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2011년 1월, 한국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국내 차원의 논의 과정이 시작이었어요. 당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검토와 의견을 거쳐 한국의 서원이 건축과 공간적 가치뿐 아니라 의례와 교육, 학문 등 인문학 측면에서 가치가 상당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죠. 이후 의견을 개진한 뒤 등재 추진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쉽게 진행되진 않았어요.

등재 신청서가 한 차례 ‘반려(defer)’ 판정을 받았죠. 그렇습니다. 2015년 12월과 2016년 3월, 두 차례 진행한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전문가 패널 심사에서 일어난 일이죠. 이에 주관 부서인 문화재청은 2016년 4월, 서원 9곳의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했습니다.

당시 반려 판정을 받은 정확한 이유가 뭐였나요? 서원은 입지상 자연과의 조화가 중요한데, 주변 경관이 문화재 구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거였죠. 더불어 한국 서원과 중국 서원의 차별성에 관한 서술과 연속 유산(serial national property)으로서 각기 떨어진 9개 서원을 선정한 논리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서원 주변의 완충 구역 재정비를 통해 지적 사항을 보완하고, 설립 당시 원형과 의미가 잘 보존된 9개 서원을 중심으로 연속 유산의 신청 논리를 강화해 유네스코에 등재 재신청을 했고, 그게 받아들여진 거죠.

재수 끝에 합격이라, 보통 하나의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나요? 10년쯤 걸립니다.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위한 잠정 목록(tentative lists)을 유네스코에 제출하는 것부터 전문가 심사, 세계유산 총회를 거쳐 해당 유산이 등재되기까지 걸리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죠.

이번엔 질문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유네스코에 관한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입니다. 유네스코는 유엔 전문 기구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압니다. 한데 정작 ‘세계유산’ 말고는 사람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간 ‘유네스코’뒤에 늘 ‘세계유산’이란 단어가 따라다닌 탓이겠죠. 하지만 국내외 여러 활동을 찾아보니 ‘교육 사업’이 세계유산을 포함한 ‘문화사업’ 비중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흔히 ‘유네스코’ 하면 세계유산을 먼저 떠올립니다. 간혹 유니세프와 유네스코를 헷갈리는 분도 있죠. 유니세프(UNICEF)가 유엔아동기금으로서 전 세계에서 기금을 모아 아동을 지원한다면, 유네스코는 교육과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 분야 내 국제 협력을 통해 평화를 실현하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입니다. 이런 유네스코의 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교육’ 분야죠. ‘세계유산’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1945년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세계를 ‘교육’으로 재건한다는 이념으로 창설한 기관이 유네스코입니다. 유네스코는 현재 2015년 유엔이 채택한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 중 네 번째 목표인 ‘포용적이며 형평성 있는 교육 보장’을 달성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다양한 교육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교육 사업이 있나요? 세계 전역에서 시행하는 인권교육부터 소녀 교육, 성 평등 교육, 교사 역량 강화, 교육 지표 개발 등이 모두 유네스코가 기여하는 분야죠. 이 밖에도 AI와 물 안보, 쓰나미 공동 대응, 해양, 언론의 자유, 문화 다양성, 체육 등 유네스코가 지원하는 교육 사업은 다양해요.

1 세계 교육 회의에 참여한 김광호 사무총장.
2 제39차 유네스코 총회 전경.

사실 인터뷰를 하기 전, 사무총장님의 개인 이력을 살피면서도 유네스코가 결코 세계유산으로 대표되는 문화 사업에만 치중하진 않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사무총장님만 해도 지금 자리에 오르기까지 국립국제교육원 원장이나 충청북도교육청 부교육감, 한국교육개발원 책임전문원 등 교육 기관에서 오래 일하셨으니까요. 한데 유네스코와는 어떻게 연이 닿은 건가요? 1994~1995년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 전문관으로 태국 방콕에서 2년간 근무한 것이 계기였어요. 이후 교육계에 몸담은 전체의 절반을 국제 교육 협력 업무를 봤죠.

맞아요. 유난히 개발도상국의 인적 자원 개발(ODA)에 관심이 많으셨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교육 분야에서 오래 몸담았기에 개발도상국의 원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직무를 수행하며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 자주 갔는데, 청소년이나 여성, 지역의 생활수준이 너무 열악했죠. 그때 교육을 통해 일어선 우리의 경험으로 세계에 봉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전한 대표적 사례가 한국이니까요. 그 발전의 기저에도 교육이 있었죠. 한국전쟁 직후 서울 대방동에 인쇄 공장을 세워 교과서를 발간한 것도 유네스코였어요.

“교육은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씨앗이 자라나게 한다”는 칼릴 지브란의 말이 떠오릅니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교육만큼 확실한 활동도 없죠. 실제로 해외 원정 사업은 교육 사업의 비중이 커요. 여전히 세계 인구의 15%가 넘는 7억5000여 명이 읽고 쓰지 못하는 데다 많은 여성과 소녀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죠. 어머니가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아동 사망률을 15% 낮출 수 있다는 통계도 있어요. 저는 교육의 힘을 믿습니다. 교육을 통해 기회가 더 많이 생기고, 시각도 훨씬 넓어지죠. 현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도 이 같은 교육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혹시 북한도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고 있나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2006년 교과서를 인쇄할 수 있는 윤전기와 종이를 북한에 지원했지만, 대북 제재 이후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주요 활동 내용을 보니 ‘교육’과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 ‘국제 협력’, ‘개발 협력’ 등 카테고리가 다양하더군요. 그러다 자연스레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인간상’이란 게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인간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에 평화를 구축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교육과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국제 협력을 통해 유네스코가 이루려는 지점이죠. 이는 유네스코 헌장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위원회도 이를 열심히 지원하고 있고요.

다른 나라 위원회와 우리 위원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사실 ‘국가위원회’라는 건 유엔 체제에서 유네스코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예요. 또 많은 국가위원회가 보통 교육부와 외교부 등 정부 부처에 소속되어 유네스코 본부와의 연락사무소 역할에 치중하죠. 하지만 한국위원회는 달라요. 직접적으로 국내에서 사업을 수행해요.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위원회의 역량 강화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리딩하는 국가위원회로서 유네스코 사무국에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유럽국가위원회 네트워크 등과도 적극 협력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하기 전 한국위원회 사무실을 둘러보며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 꽤 많은 인원이 근무하는 것 같더군요. 당연히 사업분야도 다양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파견 나온 공무원까지 합쳐 한국위원회에서 일하는 직원만 110명 정도 됩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도 크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가위원회 중 하나예요.

이번엔 나라 밖 이야기에 대한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2011년 많은 논란의 여지를 안은 채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에 가입했고, 심기가 불편해진 미국과 이스라엘이 몇 년간 유네스코에 엄포를 놓다 결국 2017년 나란히 탈퇴했죠. 이후 정치적 문제의 대립으로 유네스코가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도 많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유네스코는 정부 간 기구로서 항상 국제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미국의 탈퇴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미국은 1980년대 초 ‘신국제정보질서운동(NWIO)을 둘러싸고 제3세계권과 갈등을 빚으며 유네스코를 떠났다가 문화 다양성 협약 채택이 본격화되던 2003년 다시 유네스코에 돌아왔죠. 물론 팔레스타인 가입 이후 유네스코 정규 예산의 4분의 1에 가까운 분담금을 내던 미국이 탈퇴함으로써 겪게 된 재정적 어려움은 적지 않았어요.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잖아요. 현재 유네스코는 고유 이념의 효율적 확산을 위한 조직 개편이나 사업의 우선순위 조정, 업무 메커니즘 개선 등을 통해 전략적 전환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현재 일본도 우리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저지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국제사회가 이렇게 냉엄하죠. 유네스코가 이 문제를 두고 어떤 결단을 내릴지, 또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합니다. 방금 유네스코도 정치화를 피할 수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한데 사실 일본의 ‘위안부’ 기록물 등재 저지와 분담금 납부 거부야말로 회원국이 지양해야 할 ‘나쁜 정치화’의 대표적 예라고 생각합니다. 자국의 이익을 무리하게 사업에 반영하고, 나아가 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사업의 근본적 지향점과 가치에 대한 관심은 차치하고, 조직의 예산 문제와 결부하는 행위는 정말 손가락질받을 만합니다. 유네스코는 이런 ‘지나친 정치화’ 문제를 매우 경계하고 있어요. 현재 유네스코는 기록유산 제도개편에 대한 회원국과 전문가의 협의를 거쳐 사업 개편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한국은 1950년 6월 14일 유네스코에 가입해 55번째 유네스코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가입 후 11일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내년이면 유네스코에 가입한 지 70주년이됩니다. 현재 준비하는 기념행사가 있나요?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일인 6월 14일을 전후로 유네스코와 관련한 내 . 외빈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치를 예정입니다. 행사와 함께 포럼을 개최해 지난 70년의 역사를 되짚고 앞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도 마련할 계획이고요. 또 내년 6월엔 한 달 동안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한국 유네스코 가입 70주년 기념 특별전>을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3년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 가장 중요시하는 현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국내엔 생각보다 유네스코 관련 네트워크가 많습니다. 널리 알려진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 . 자연 . 복합)이나 기록유산, 무형유산 외에도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등이 있고, 전국 560여 개의 유네스코 학교, 34개의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 도시, 8개의 창의 도시가 있습니다. 또 다수의 고등교육기관이 유네스코 석좌 및 고등교육기관간 네트워크를 돕는 유니트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국가위원회로서 이 같은 유네스코의 국내 활동 증진과 국민의 유네스코 활동 참여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한국위원회에 몸담으며 펼친 활동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까도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유네스코는 유엔의 ‘지속가능 발전 목표’ 중 네 번째인 양질의 교육 목표 달성을 주도하는 기구예요. 이 목표를 달성하고자 국제적 차원의 전략적 가이드를 제공하고, 의견 조정 및 홍보 등을 수행하는 ‘지속 가능 발전 목표-교육 2030 운영위원회(Steering Committee)’라는 기관이 존재합니다. 전 세계 지역별 유네스코 회원국 대표와 국제기구 관계자, 시민사회 대표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죠. 한국은 중국, 일본, 필리핀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로 참가하는데, 그 운영위원회에 한국 대표로 제가 참여하고 있어요. 이 회의에서 한국의 사례를 공유하고 의견을 적극 제시하며 국제적 차원에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지난 30여 년간 사회와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리며 행복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봉사는 꼭 국내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쌓은 경험과 전문 지식으로 도와줄 곳이 얼마든지 있죠. 저는 이전부터 은퇴 후 지역에 봉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에디터 이영균(프리랜서)
사진 JK(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