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 겐고의 35년
결핍은 인간에게 영감과 각성을 선물한다. 영감은 인간을 풍요롭게, 각성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이 둘이 바탕을 이룬 것이 구마 겐고의 35년 건축이다
지난 4월 초, 5·18 광주항쟁이 발발한 광주 옛 도청 자리에 세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시아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조망하는 비전포럼이 열렸다. 민족주의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 대학교 명예교수를 비롯해 과학철학분야의 권위자 장하석 케임브리지 대학 석좌교수, 아시아 문화전당을 설계한 우규승 건축가 등 국내외 석학 20여 명이 열띤 강연과 토론을 펼쳤다. 아시아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실천적 전망이 오간 이 포럼은 여러 부대 행사를 함께 준비했다. 건축가 조남호, 황동욱과 함께 현장에서 건축 과정을 선보이는 ‘건축 생산 워크숍’이 그중 하나. 일본의 4세대 건축가로 분류되는 구마 겐고(Kengo Kuma, 62세)도 그 자리에 있었다. 열린 건축, 소통의 건축을 대변하는 건축가로 알려진 만큼 국내외 건축가와 학생들이 함께 참여해 토론하는 그 자리가 구마 겐고에게는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아시아문화전당을 저 위에서 내려다볼 땐 이렇게 큰 공간이 숨어 있는지 몰랐어요. 우규승 건축가와 쭉 둘러봤는데 흥미로운 곳이 많네요. 스틸을 사용해 빛을 조절한 공간은 아주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인 맛이 있어 좋았어요. 이곳이 한국에서는 정치적 역사를 지닌 공간이라고 들었습니다. 프랑스와 일본에 있는 우리 사무소에서도 역사적 장소와 건물이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자리가 더욱 흥미롭네요.”
ⓒMitsumasa Fujitsu
‘나카가와마치 바토 히로시게 미술관’(2010). 건축재료는 모두 현지에서 조달한 것으로 지붕에는 뒷산의 삼나무를, 벽에는 근처 지역의 와시를 사용했다.
일본은 유달리 세계적 건축가를 많이 배출한 나라다. 구마 겐고는 단게 겐조, 마키 후미히코, 안도 다다오 등 세계 건축사에 획을 남긴 이들의 뒤를 잇는 일본의 대표 건축가로 1979년 도쿄 대학교 졸업 후 동 대학원에 진학해 건축가 하라 히로시의 연구실에서 집합주택을 연구했다. 당시 도쿄의 소규모 건축사무소에서는 노출 콘크리트 주택을 유행처럼 찍어내던 시대였다. 남들과 같은 것으로 승부하고 싶지 않은 그는 다양한 소재를 경험하고자 대형 설계 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1985년에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며 현지 건축가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도 했다. 스승 하라 히로시 선생의 “건축가가 되고 싶으면 건축가 근처에 있어라”라는 말을 기억한 까닭이다. 일본의 버블 경제와 그의 귀국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면서 사무실을 열자마자 설계 프로젝트를 맡았고, 1990년 구마 겐고 건축도시설계사무소를 설립해 지금껏 건축가 구마 겐고로, 2009년부터는 도쿄 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며 작업 중이다.
이쯤 되면 구마 겐고가 건축계의 엘리트 코스를 이수했다거나 출세 경로를 밟았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도쿄, 베이징, 상하이, 파리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전 세계에서 2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건축가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순탄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건축가로서 정식 출사표를 던진 데뷔작에서 더없이 쓴맛을 본 장본인이다. 콤페를 통해 당선을 거머쥔 M2 프로젝트(자동차 기업 마쓰다의 프로젝트로 쇼룸을 겸비한 대형 오피스)가 그 쓴맛의 주인공. 벌써 25년 전 일이지만 누구보다 야심차게 준비한 데뷔작이 아닌가. 더구나 건축계는 그가 M2에 담아낸 ‘1980년대의 복고주의적 포스트모던 건축에 대한 판’에 코웃음 치며 오히려 거꾸로 “M2야말로 거품경제의 상징물”이라고 혹평했다. “건축가로서 가장 자존심이 상한 프로젝트였어요. 무엇보다 가장 저를 화나게 한 건 ‘나도 이 건물을 싫어하지만 이 양식을 잘 아는 유럽 건축가들도 이 건물을 싫어할 것이다’라는 주변 선배들의 말이었습니다.”
더구나 M2는 그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작업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일본에서 떨어져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미국에 가기 전까진 내가 있는 장소, 일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가고 나서 내 고향 일본을 깊이 생각하게 됐다”라고 회상하지 않았나. M2가 동네북으로 전락하고 도쿄의 거품경제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자 도쿄에서 그를 찾는 클라이언트도 싹 사라졌다. 2002년까지 10년동안 도쿄에서 단 한 건의 프로젝트도 진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매도 처음에 맞는 것이 낫다고, 그 덕분에 일‘ 본뿐 아니라 유럽 건축가에게도 인정받는 건축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도쿄에서 프로젝트가 없으니 그때야말로 일본의 지방을 샅샅이 돌아볼 기회였죠.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강연도 하고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도 하게 됐어요.” 도쿄에서 일이 사라진 10년 동안 그는 건축가로서 치명적인 부상도 당했다. 강연회를 준비하던 어느 날, 사용하던 유리 테이블이 두동강 나면서 오른쪽 손목을 하얀 뼈가 보일 정도로 벤 것. 무려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동맥을 제외하고 근육과 신경 모두 절단됐다. 재수술을 받았고,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권유했지만 그는 포기했다. 오른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되면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 “자신감으로 충만한 능동적 자아의 모습에서 멀어지자 부족함으로 가득한 수동적 자아의 모습이 비로소 보였어요. 제 한계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된 거죠. 다치기 전에는 오른손으로 멋지게 스케치하면서 마치 모든 걸 내 맘대로 결정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거든요. 그런데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각이 전환됐죠. 어떤 면에서 그것이 다른 의미의 자유를 준 것 같아요. 컴퓨터 사용이나 글씨 쓰기가 불편한건 아쉽지만 반대로 다른 감각이 더 발달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앞서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녹초가 될 정도로 걷는다. 장소가 들려주는 소리에 홀로 귀 기울이거나 주변을 응시하며 몇 시간 머물다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고 들리기 때문. “장소를 그렇게 둘러보는 이유는 그 건축에 사용할 재료나 물성이 떠오르기 때문이에요. 사무실로 돌아와 스태프들과 둘러앉아 각자 생각한 재료나 소재,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잡담을 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의 방향이 잡혀요. 그래서 저는 잡담을 매우 좋아하죠.”
ⓒTakumi Ota
고치현 유스하라초에 건축한 ‘나무다리 미술관’(2010). 각 공공시설을 연결하는 통로 겸 갤러리로 숙박시설을 포함하고 있다. 구마 겐고는 1990년대부터 20년 이상 유스하라초와 인연을 맺으며 ‘구름 위의 호텔’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만 네 채의 건물을 지었다.
ⓒTakumi Ota
고치현 유스하라초에 건축한 ‘나무다리 미술관’(2010). 각 공공시설을 연결하는 통로 겸 갤러리로 숙박시설을 포함하고 있다. 구마 겐고는 1990년대부터 20년 이상 유스하라초와 인연을 맺으며 ‘구름 위의 호텔’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만 네 채의 건물을 지었다.
편안한 잡담을 위해 그는 직원을 채용할 때도 경력자보다 대졸자를 선호한다. 최근 중소기업에서 대졸자를 기피하고 경력자를 선호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상당히 다른 점. “경력 직원을 뽑으면 아래 직원들은 아무래도 윗사람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요. 경력자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알은척하는 경우가 많고 주변의 의견을 잘 듣지 않으려 하는 경향도 있죠. 한마디로 잡담이 힘들어져요. 전 되도록 모든 직원의 의견을 고루 들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프로젝트 진행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과정이죠. 또한 저희 사무실에서는 설계 회의를 할 때 반드시 모형을 올려놓고 의견을 교환해요. 모형 없는 토론은 추상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요. 모형을 올려놓는 순간 훨씬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죠.”
직원 채용 방법도 독특하다. 오전 10시에 과제를 던져주고 오후 10시에 마감한다. 그 도면으로 면접을 실시해 최종 선발한다. 시험 시간이 상상이상으로 길다 보니 도중에 도망가는 지원자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뽑힌 직원들은 프로젝트 진행 중 어려움을 맞닥뜨려도 포기하는 일이 적고 독립 후에도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는다고. “독립하는 직원들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랑 똑같은 거 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예요. 새로 시작하는 건축가에게 주어진 특권이 바로 자유니까요.” 그것은 구마 겐고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돌아와 건축사무소를 연 당시는 산업화가 정점을 찍던 20세기 말, 콘크리트 건축이 그야말로 각광을 받던 때다. 완벽에 가까운 노출 콘크리트 작업으로 알려진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압도적 존재감을 뽐내며 일본 전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구마 겐고는 자서전 <나, 건축가 구마 겐고>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었으며 두말할 필요 없이 멋져서 학생 대부분은 그 뒤를 좇았다. 오히려 나는 그 멋진 부분을 뛰어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출 콘크리트를 안도 씨 이상으로 깨끗하고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노출 콘크리트를 한다고 해도 안도 씨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가 이렇게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해도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성장의 시대에 딱 들어맞는 건축이었다. 그러나 다가올 21세기는 소통의 시대였다. 건축도 변화하는 것이 맞았다. 무엇보다 구마 겐고는 콘크리트로 지으면 건물이 커진다는 사실에 반감이 있었다. 생명을 지닌 어느 누구도 스케일이 큰 상대 앞에선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공간에서는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기 힘들다. 그에게 건축의 기본 역할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이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구마 겐고는 콘크리트처럼 20세기를 규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대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연적 재료에 집중했다. 돌, 나무, 종이, 패브릭…. 그것은 약한 건축의 상징이다. 시간이 지나면 썩을 수도, 부서질 수도, 찢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만 연결되면 콘크리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러운 힘이 나온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닮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가 추구하는 ‘장소의 건축’에서는 기하학적 유닛의 연결과 반복이 이어진 독특한 패턴의 파사트와 동양적 선을 강조한 목재 사용이 두드러진다. 거기에선 자연이 주는 온화한 압도감이 느껴진다. “콘크리트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굳고 완성되는 반면, 목조 건축은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집니다. 보수를 하지 않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보수만 잘하면 콘크리트보다 훨씬 수명이 긴 것이 나무입니다. 그리고 나무, 패브릭 같은 부드러운 재료는 조금만 달리 배치해도 전체적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저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죠.”
ⓒDaici Ano
미술관 사이에 운하가 흐르는 독특한 장소에 설계된 ‘나가사키 현 미술관’(2005). 양 옆으로 갤러리동과 미술관동이 구분되어 있다. 갤러리동 일부와 옥상을 잔디로 덮어 옆 공원과 연결된 느낌을 주었다. 밝은 낮 동안의 경관도 인상적이지만 야경 일루미네이션이 특히 아름답다.
‘기로잔 전망대’, ‘구름 위의 호텔’, ‘워터/글라스’, ‘나가사키 현 미술관’, ‘산토리 미술관’ 등 자연주의적 건축을 표방한 건축물 중 유독 인기가 많은 건 일본 다자이후텐만구 신사 앞에 있는 스타벅스다. 구마 겐고는 이 프로젝트에도 나무를 사용했다. 독특한 점은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아닌 건물의 신축 프로젝트, 즉 건물의 구조체에 나무를 사용한 것. 4개의 나무를 깎고 엮어서 구조체의 한 세트로 만든 후 이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 건축물은 완공된 후 관광 명소로 크게 주목받았고, 이 프로젝트로 구마 겐고는 스타벅스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 강연초청까지 받았다. 목조 건축으로 이목을 모은 또 하나의 작품은 2002년, 최초의 해외 프로젝트인 대나무 만리장성 저택 ‘Commune by the Great Wall’이다. 베이징의 개발업자 부부가 아시아의 대표적 건축가 12명을 선정해 진행한 프로젝트로,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컨템퍼러리 스타일의 빌라를 설계하는 작업이었다. 국내에서는 승효상 건축가가 클럽하우스를 디자인하며 크게 회자되기도 했는데, 구마 겐고 역시 이 작업에 함께했다.
소니, 에르메스, BMW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가 이곳에서 런칭 행사를 하고 르네 젤위거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곳을 다녀갔다지만 구마 겐고가 그곳을 설계할 당시엔 도처가 난관이었다. 예산은 지나치게 적었고 시공 기술은 형편없었다. 서양에서 유행하는 건축 스타일을 아무렇지 않게 복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의 인식도 그에겐 낯설었다. 하지만 여기에 무릎 꿇을 그가 아니었다. 장소에 맞는 독특한 재료와 현지의 장인을 찾아내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건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유를 갖고 생각을 달리하자 대나무라는 소재가 눈에 들어왔다. 현지의 시공업자를 어르고 달래 시간이 지나도 대나무가 썩지 않는 시공 방법을 가르쳤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중국인을 통솔하기 위해 도쿄 사무실에 있던 스태프를 베이징으로 보내 매일 직접 클라이언트를 상대하게 했다. 스태프가 매의 눈으로 현장을 누비니 중국인도 설렁설렁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완성한 대나무집 ‘Commune by the Great Wall’은 12명 건축가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 됐다. 그의 건축은 이렇듯 장소에 쉽게 녹아든다. 제주도에 돌무덤 형태로 지은 제주볼(Jeju Ball) 프로젝트, 안양예술공원에 설치한 작은 파빌리온 프로젝트 페이퍼 스네이크(Paper Snake), NHN 춘천 연수원도 마찬가지. 화산섬인 제주에 가장 흔한 현무암을 사용해 외부 파사트를 완성하고 볼 형태로 쌓아 올린 빌라촌 제주볼은 외부의 풍경과 거의 하나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종이를 테마로 한 안양예술공원의 페이퍼 스네이크도 그렇다. 한국이 종이 문화가 발전한 나라라는 점을 감안, 그는 가볍고 강할 뿐 아니라 빛을 투과하는 허니컴페이퍼라는 재료를 사용해 산속의 쉼터를 완벽히 구현해냈다.
ⓒEdward Caruso
오모테산도에 있는 ‘써니힐’. 펑리수(말린 망고나 파인애플을 등을 넣어 노릇하게 구운 대만의 대표 전통과자)를 파는 카페로 구조체 역할을 하고 있는 외벽의 목재들이 마치 파인애플을 상징하는 듯 하다. 내부 인테리어에도 나무를 사용한 덕분에 은은한 나무향이 실내에 가득하다.
그가 최근 흥미를 보이는 건 사람이 걷는 환경과 그 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교통수단이다. “지금 일본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기차역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역’이라는 곳은 이동을 위한 장소인 것 같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 고향에 돌아왔구나’ 하는 ‘정착’, ‘머묾’의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집에 비유하면 거실의 느낌이죠.”
이번에도 그는 도시와 장소에서 재료를 찾았다. “도쿄 미나토 구의 시나가와는 에도 시대에 에도와 교토를 잇는 국도 개념인 도카이도의 역참지(공공 업무 수행을 위한 교통통신기관)로 호황을 누린 곳입니다. 그래서 시나가와 역 설계에는 전통적 느낌의 목재를 주로 사용할 예정이에요. 한지로 만든 창호 느낌이 나도록 투명한 지붕도 구상 중입니다. 다른 한 곳은 시부야 역인데, 시부야는 젊은이의 거리예요. 화려하고 활기차죠. 그곳에는 LED 전광판 등을 활용한 조명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세계 일주 티켓을 끊어 출장을 다닐 정도로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말레이시아,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십 개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지만 다실 디자인, 무대 디자인, 세트 디자인 등 다양한 컬래버레이션도 소홀히 하지 않는 구마 겐고. 우리의 삶과 닮은 자연적 소재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비로소 인간은 편안해질 수 있다고 믿는 그를 보며 무게를 뺀 건축의 무한한 무게감을, 그 뒤에 숨은 솔직한 한 건축가의 모습을 발견한다.
“건축물이 완성됐을 때 사람들이 하는 험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완성됐을 때 극찬을 받는 건축물은 이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새로운 건물은 도시에서 이물질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_<나, 건축가 구마 겐고> 중에서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