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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점 찍고 도약

LIFESTYLE

지난해 9월 21일, 1년간 공석이던 국립극장 수장 자리에 김철호 극장장이 임명됐다. 국립국악원 대금 연주자로 출발해 청주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상임지휘자, 국립국악원 원장에 이어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단장까지 두루 거치며 현장과 행정 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김철호 극장장. 그의 목표는 임기 중 ‘민족 예술의 발전을 위해’ 설립한 국립극장의 초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그것을 당당히 재현하는 것이다.

국립극장에 처음 가본 건 2004년 연말을 앞둔 한겨울,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심청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미추의 3인방 김성녀, 윤문식, 김종엽이 등장한 <심청전>은 온 가족을 겨냥한 공연인 데다 인기도 많아 어렵게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당시 부모님과 함께 찾은 국립극장 특설 무대는 난방이 약했다. 관람객은 코트 깃을 여미며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심청이 되었다가, 심봉사가 되었다가 하며 울고 웃고 했다. 미추의 손진책 대표가 “새로운 세대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함몰될 것”이라며 2010년 마당놀이 30주년 기념 공연을 끝으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지만, 4년 만에 마당놀이 ‘온다’ 시리즈로 돌아온 국립극장 기획 공연 <심청이 온다>는 첫 출발부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객석 점유율 99%라는 흥행을 기록하며 전통 예술의 부활을 알렸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3개 예술 단체와 공연기획부, 무대예술부, 교육전시부, 운영지원부로 구성된 국립극장은 1950년 개관한 국내 최고의 제작 극장이다. 현 서울시의회 자리에 창설한 뒤 한국전쟁 중 대구 문화극장으로 이전, 1957년에 다시 서울의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을 거쳐 1973년 지금의 장충동 부지에 신축 개관했다. 국립극장은 그간 시대의 부침에도 명맥을 유지하다 2012년 전속 단체 자체 공연으로 무대를 채우고 공연 라인업을 미리 공개하는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을 도입해 완벽히 정착하며 일대 도약을 맞았다. 3개 전속 예술 단체의 자체 제작 공연과 마당놀이, 여우락페스티벌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은 대중을 전통 예술로 흡수하는 동시에 전통 공연 예술의 저변을 확대해나갔다. 개관 70주년을 맞는 2020년에는 현재 리모델링 중인 해오름극장이 재개관할 예정이라 국립극장 제2의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삶에서 잊혀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창작 산실 역할을 이어 온 국립극장의 이 기념비적 시기에 극장을 진두지휘하는 김철호 극장장은 1960년대 국악에 입문한 뒤 지금껏 전통 예술 공연 현장에서 전통의 현대화와 발전적 계승을 추구해온 인물이다. 특히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국립국악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창작악단 창단, 악기연구소 개소, 국악 아카이브 개소 등 성과를 거두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우리나라 유일의 제작 극장이자 대표 문화 예술 서비스 기관인 국립극장이 개관 70주년을 맞아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어떻게 이끌어내고 앞으로 전통 공연 예술의 역사를 어떻게 써나갈지 사뭇 기대된다.

어느덧 하반기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요?개관 70주년이 되는 내년 상반기 중 재개관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미처 예상치 못한 암반 같은 문제가 발생하다 보니 공사가 길어지면서 예산이 부족하게 됐어요. 그 부분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극장장으로서 최근 가장 힘쓰고 있는 부분이죠.

9월이면 부임하신 지 1년이 됩니다. 국립국악원장 등을 지냈지만 이런 대규모 기관 수장에게 요구되는 건 그 이상일 것 같습니다. 지난 1년의 소회가 궁금합니다.국립극장은 일반 공연 예술 단체나 기관과는 다른 면이 있어요. 우선 비교 대상이 없다는 점, 늘 가장 앞서야 하고 가장 훌륭한 공연을 올려야 하는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그렇죠. 사실 제가 부임하기 전 극장장이 1년여 공석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시간 공석인 경우 기관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데, 막상 부임하니 상당히 안정돼 보였어요. 지난 수십 년의 노하우가 집약된 듯했습니다. 국립극장의 특징은 시즌제인데, 극장장 부재 중에도 차질 없이 돌아간 걸 보고 ‘역시 국립극장은 능력과 전통이 탄탄한 예술 기관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국립극장 소속 예술 단체는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으로 각각 예술감독 체제로 움직입니다. 평소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김상덕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편인가요?예술단 운영이나 각 작품에 대한 부분은 예술감독의 예술적 판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것을 존중해야 하고요. 물론 극장이라는 체계 안에 존재하고, 세 단체가 서로 연결된 공동 예술단이기에 독립적인 것과 공유해야 할 것을 협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예술감독 출신이라 누구보다 현장을 잘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예술가의 의지를 존중해주는 부분도 그렇고요. 네, 저도 16년을 연주자로 살았고 예술 제작도 했던 사람이라 예술감독의 뜻과 의지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요. 공연 하나하나에 그분들의 생각과 고민, 철학, 경험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존중하려고 합니다.

조직을 발전시키려면 외부인의 시선으로 내부를 관찰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극장장님은 국립극장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세요?국립극장이 선보이는 공연 예술의 역사나 수준을 보면 이제 우리가 상대해야 할 관객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 국내 위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국립극장은 한국 최고의 제작 극장입니다. 해외 무대로 눈을 돌려 국제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고 아시아의 대표 제작 극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제적 마케팅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아요. 시즌제가 정착 되었으니 공연 예술의 관계망과 시야를 좀 더 넓혀야 합니다.

2012년 시즌제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신작과 우수 레퍼토리 공연, 국립극장의 기획 제작공연을 연간 단위로 선보이는 시즌 프로그램이죠. 7년이 지난 지금, 시즌제 정착이 관람객 증가로 이어졌나요? 네, 시즌제 이후 관객이 안정적으로 증가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현재는 해오름극장 공사 때문에 공연 수가 적어 관객 증가가 정체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 트렌드를 한국 전통 공연 예술과 접목한 공연을 개발할 예정이라 앞으로 더욱 획기적인 공연을 선보일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전통 공연 예술을 즐기는 세대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뭘까요? 전통 예술이라는 것은 생활의 일부로 우리 삶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제가 태어난 1950년대만 해도 동네마다 농악패가 있었어요. 명절이나 큰 잔치가 있으면 전통 놀이를 즐겼고, 학교 운동회에서 부르는 응원가도 모두 민요였죠. 우리 어머니들도 대부분 한복을 입으셨고요. 그런데 그런 문화가 195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축소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는 그 부분을 빨리 인지해 문화재 보호법을 제정, 유.무형 문화재를 보호했는데 제가 입학한 국악사양성소(국립국악고등학교 전신)도 그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축소될 수밖에 없던 당시 분위기가 궁금합니다.전통문화를 홀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어요. 영어를 할 줄 안다거나 서양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하면 수준 높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죠. 서양 음악 감상실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국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왠지 수준이 낮은 것처럼 보는 시선이 많았어요. 모두 전통문화에 대한 홀대죠.

그런 분위기에서도 국악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요? 제가 초등학생 때 음악반에서 활동했어요. 풍금도 귀할 때인데, 우리 학교엔 피아노가 있었죠. 굉장히 특화된 음악반이었어요. 당시 음악 선생님은 전통음악과 국악에 애정이 많은 분이라 그에 관한 말씀을 상당히 많이 해주셨어요. 향후 우리의 전통음악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중요성에 대해서 늘 강조하셨는데, 그 영향을 받아 저도 국악사양성소로 진학했어요.

공부는 재미있었나요? 적성에 맞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 예체능인데, 저는 전통음악이 재미있더라고요. 초등학교 음악반에서 배우던 것과는 다른, 신세계적 경험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음악이 늘 리듬과 박자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국악은 아닌 거예요. 노래가 스스로 움직이는 느낌이었어요. 깜짝 놀랐죠. ‘이게 뭐지?’, ‘이런 걸 음악이라고 하네?’ 또 무용을 봤는데 웬걸, 그 음악에 그 무용이 잘 맞더라고요. 그렇게 국악을 시작했어요.

1 올해 3월에 열린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Into the Light’ 공연. 연주 시간이 30분에 달하는 다악장 구조의 국악관현악 교향곡 등을 선보였다.
2 현대무용 안무가 김설진과 국립무용단이 협업한 작품 ‘더 룸’. 공간이 기억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초현실주의 무용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3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극인 창극과 중국의 경극이 만나 관객에게 창극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 드레스 리허설 장면.

여러 악기 중 대금을 선택하신 이유는요? 소리가 멋있었어요. 그때 대금을 가르쳐준 분이 녹성 김성진 선생님으로 대금의 별 같은 분이셨습니다. 소리도 너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인격이 훌륭하셨죠. 그렇게 대금을 전공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국악원에 입단한 뒤에도 선생님과 늘 가까이 지냈어요. 제가 국악을 배우면서 인격을 형성해가고 음악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절대적 영향을 미친 분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김성진 선생님의 어떤 부분이 생각나는지요?성품이 인자하셔서 다른 분들과 감정적으로 다투시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가야 할 길과 가지 않아야 할 길에 대한 소신이 분명했는데, 남에게까지 강요하진 않으셨죠. 또 선생님이 워낙 스타 연주자라 방송 출연이 많으셨는데, 그럴때면 같이 국악 하는 친구들이 종로 뒷골목에서 선생님이 일을 마치기만 기다렸대요. 그때마다 선생님은 그날 받은 출연료로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면서 두루 챙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대신 음악에서는 매우 엄격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옛날 궁중 악사에게 직접 음악을 배운 분이라 탈속적인 부분과 절제, 품격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셨거든요. 조선백자 같은 음악이랄까. 삶 자체도 그러셨고요.

그럼 선생님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요즘 젊은 전통 공연 예술인의 퓨전 작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겠네요.스스로의 대금 예술이 퓨전화 되는 건 허락하지 않으셨겠죠. 그 시대의 정신이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제자들이 지금 시대의 음악과 교류하고 통섭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늘 열린 분이었으니까요. 저 또한 예술가 스스로가 인접 음악으로 통섭 작업을 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한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막아서도 안 되고요. 그건 그 예술가의 길이잖아요. 자기 세계를 아프리카 음악과 결합하든, 재즈와 결합하든 예술가의 영혼이 작동하는 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많은 전통 공연 예술가가 대중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대중의 눈높이를 끌어올리는 품격 있는 대중화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예술을 대중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감각만으로 즐길 수 있는 예술이냐, 아니면 그 이면을 공부해야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이냐 차이일 뿐 대중은 각자 취향대로 즐기면 되죠. 각각의 예술이 지닌 세계와 그 크기는 어떤 다른 예술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차 안에서 늘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일정한 시간이 되면 국악이 흘러나와요. 그럴 때면 늘 귀가 어색하게 반응하는 게 느껴집니다. 매번 같은 패턴으로 듣는 음악인데, 왜 그럴까요? 클래식이 좋게 느껴지는 건, 그 음악에 공감한다는 거예요. 공감한다는 건 즐기고 이해한다는 겁니다. 어릴 적 악기를 배웠든, 학교 수업에서 배웠든, 가족의 영향을 받았든, 분명 어떤 경험이 바탕으로 작용했을 거예요. 아쉬운 건, 이렇듯 현대적인 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국악이 일방적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서양인에게 한국의 전통 음식을 대접하면서 한마디 설명 없이 주면 그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까요? 국악도 마찬가지예요. 전통악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지, 선조들은 음악의 기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미학적 측면에서 국악을 풀어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전통 공연 예술가의 역할이 중요해 보입니다. 음악감상법을 안내하면서 감상자를 잘 꾀어 공연에도 올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해요. 방송도, 교육도, 선생님도 그리고 교과서도 그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서양음악 교육을 받은 대다수 선생님에게 할당하듯 ‘음악 시간 중 일정 시간은 국악으로 채우라’고 하면 어느 누가 재미있게 가르치겠어요. 그래서 교사 교육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학생을 교육하는 데 선생님의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죠. 이런 부분이 재미있게 알려지지 않는 것이 좀 아쉬워요. 전통 공연 예술의 재미와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국립극장도 같이 고민하겠습니다.

대중도 공연 감상 등을 통해 전통 공연 예술을 접한다면 더욱 친밀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미술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한국 음악을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가이드와 기획, 마케팅 등 각 분야에서 고도의 역할이 필요해요.

하반기에 국립극장이 준비하고 있는 공연 중 전통 예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국립창극단에서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변강쇠 점 찍고 옹녀>라는 작품을 공연해요. 해학적이라 누구나 감상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무용단에서는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엘지아트센터에서 ‘회오리’라는 무용을 선보입니다. 현대성을 가미해 젊은 관객이 흥미를 가질 만한 공연이죠.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0월 24일부터 25일까지 달오름에서 3분 관현악을 연주해요. 국악을 짧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관객이 쉽고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세 공연은 꼭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전통 공연 예술에 공감할 수 있는 시작이 될 테니까요.

70이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긴 역사를 포함합니다. 무엇보다 국립극장과 함께 성장하신 입장에서 국립극장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 아래 풍성한 문화 예술을 간직해왔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기가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시아 중에서는 전통 문화 예술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유지, 발전해왔죠. 국립극장은 이러한 전통과 역사가 국민에게 자부심으로 작용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모든 전통 공연 예술이 민족과 국경을 넘어 공동의 인류 문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그 바탕을 공고히 하는 데 힘을 더 쏟으려고 합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