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와 보물,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숭례문이 ‘국보 1호’, 흥인지문이 ‘보물 1호’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국보와 보물의 차이에 대해 묻는다면 시원하게 답하는 이가 드물다.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국보와 보물, 그 한 끗 차이에 대하여.
지방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진주의 촉석루
최근 ‘진주의 상징’ 촉석루의 국보 환원 움직임이 거세다. 고려 고종 28년에 건립한 한국 3대 누각인 촉석루는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 폭격으로 불에 타 소실되기 전까지 어엿한 국보 276호였다. 하지만 옛 모습을 잃고 재건했다는 이유로 20년 넘게 일반 건축물로 방치되어오다 지난 1983년 문화재 등급 중 가장 낮은 지방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일각에선 복원 후 국보를 유지한 숭례문처럼 촉석루도 본래의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일고 있다. “1957년 촉석루 복원 당시 작성한 국무회의록을 살펴보면 촉석루 복원에 대해 ‘중건’이나 ‘재건’이 아닌 ‘보수’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1844년 불에 타 중건한 밀양의 영남루는 현재 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2008년 방화로 상당 부분 소실된 숭례문도 재건 후 국보 1호의 지위를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적 가치만 놓고 볼 때 촉석루도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돼야 마땅합니다.” 다년간 촉석루 연구에 매진해온 향토 사학자 추경화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1956년 아쉽게도 국보에서 해제된 촉석루를 보며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지정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어떤 차이가 있을까?
현재 국보는 숭례문을 포함해 314점, 보물은 흥인지문(일명 동대문)을 합쳐 1710점이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유형문화재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보물’로 지정하고, 그중 특별히 뛰어난 것을 골라 ‘국보(國寶)’로 지정하는데 국보는 말 그대로 ‘국가의 보물’이다. 언뜻 보면 국보나 보물이나 거기서 거기 같지만,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이해하기 쉽다. 조선시대 도성의 정문이던 숭례문은 1398년 조선 초기에 건립해 현존 성문 건축물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고, 간결한 다포식 공포로 지어 세련미가 돋보인다. 그에 비해 1869년 조선 말기에 개축한 흥인지문은 과도한 장식과 기교적 여성미가 특징으로, 수차례 개수 공사를 거친 까닭에 19세기 건축물로 분류되고 있다. 흥인지문은 보물 1호로서 충분히 훌륭한 건축물이지만 절제미와 균형미를 갖춘 숭례문보다 한국의 전통 건축 미학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김한옥 사무관은 “흥인지문보다 제작 연대가 500여 년이나 앞선 숭례문은 역사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시대를 대표하거나 보존 가치가 높고 제작 기술이 우수해 그 유례가 드물며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깊은 것을 ‘국보’로 지정합니다”라고 국보와 보물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설명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사실 국가가 문화재 기준을 세우고 국보를 지정하기 시작한 것은 6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국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일제는 1933년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따라 보물을 지정했고, 국보라는 칭호는 일본 문화재에만 붙였다. 그래서 숭례문도 당시에는 보물 1호였다. 광복 후 정부가 1955년 일제가 지정한 보물을 모두 국보로 승격시켰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이듬해에 국보와 보물로 나누고 그중 116점을 선정해 처음 국보를 지정했다. 그렇다면 국보나 보물은 누가 어떻게 지정하는 걸까?
문화재청은 문화재의 보존, 관리, 활용에 관한 사항을 조사, 심의하기 위해 상설 자문 기관인 ‘문화재위원회’를 두고 있다. 문화재청 청장이 위촉한 80여 명의 위원은 2년간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과 해제, 해외 반출, 문화재 발굴 및 평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 문화재 관련 주요 안건에 대해 심의한다.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황금의 신라전> 때문에 문화재위원회에서 뜨거운 논의를 펼친 바 있다. 국보 9점, 보물 12점 등 총 93종 132점을 전시하는 이번 특별전은 한국 고대사인 신라를 테마로 한 첫 해외 전시로 큰 의미가 있다. 그중 핵심 유물인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반출 여부를 두고 위원회 위원들이 머리를 맞댔는데, 해외 전시로 훼손 우려가 있다는 입장과 우리 고유의 독창적 문화를 알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입장, 양측의 의견 대립이 첨예했다. 뉴욕에 가느냐 못 가느냐를 두고 문화재위원회에서 몇 달째 논란이 이어졌지만, 여러 국보 가운데 반가사유상은 예술성이 뛰어난 최고 문화재라는 공통된 결론을 내리고 결국 9월 7일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 ‘보물 1호’ 흥인지문
2 조선시대 도성의 정문이었던 ‘국보1호’ 숭례문
3 강원도 양양에 자리한 낙산사
문화재위원회의 까다로운 절차와 심의를 거쳐 어렵사리 국보나 보물로 지정됐지만 그 가치를 잃고 해제되는 허망한 경우도 종종 있다. 국보 276호로 지정된 ‘귀함별황자총통(龜艦別黃子銃筒)’이 그것.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 장착한 무기인 거북선 총통이 1992년 해군에 의해 한산도 앞바다에서 발굴, 인양됐다. ‘거북선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획기적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발굴 3일 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만장일치로 국보로 지정됐다. 그러나 4년 후 조작 사건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국보에서 해제되고 말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진급에 눈이 먼 해군 대령이 골동품상과 짜고 가짜 총통을 만들어 바다에 몰래 던져놓고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꾸민 것. 우리 문화계에 큰 오점을 남긴 이 사건은 우리 문화재 행정의 문제점과 문화재 지정 관리 체계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대표적 예가 됐다. 현재 국보 274호의 자리는 비어 있는 상태다. 마치 구멍 난 우리 문화재의 현실을 보는 듯해 왠지 씁쓸해진다.
더욱 안타까운 건 어처구니없는 화재로 소실된 건축물. 재건했지만 끝내 그 가치를 상실한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1984년 화마가 휩쓸고 간 보물 163호 쌍봉사 대웅전과 1986년 불에 탄 보물 476호 금산사 대적광전은 뜻하지 않은 재해로 그 지위를 박탈당했다. 2005년 양양 산불로 녹아내린 낙산사도 이듬해 10월 복원했으나 본래의 모습을 잃어 보물 479호에서 해제됐다. 사찰의 한 관계자는 “보물급 문화재가 가득한 사찰은 대부분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화재에 매우 취약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이 소화기 몇 대로 귀중한 문화재를 지키고 있죠. 역사적 배경과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재를 보존해 후세에 전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라며 문화재 지정 이전에 획기적인 문화재 방재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언젠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 문화재청 청장이자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우리 문화재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한 적이 있다. “옛 조상이 만든 물건들을 현재 국보와 보물로 즐기며 배우고 있지만, 정작 100년 후 지정될 국보와 보물은 이 시대에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결코 허투루 넘겨들을 말이 아니다. 국보와 보물의 가치를 아는 것이야말로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고 지켜내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에디터 심민아
사진 제공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