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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듣는 영화

LIFESTYLE

영화가 끝난 후 극장 밖으로 나와도 귓가에 맴돌고 입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 OST를 찾아 듣게 만드는 영화, 음악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1 벨기에 영화 <브로큰 서클>은 전자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블루그래스 뮤직을 들려준다.
2 <마지막 4중주>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곡을 향한 오마주와도 같다.
3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 주제가상을 수상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OST ‘Let It Go’

한동안 유튜브에서 영화 클라이맥스 장면에 흐르는 배경음악을 지운 영상이 유행하면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배우는 열연을 펼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밋밋하고, 분명 인상 깊게 본 영화인데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영화에서 영화음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작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개봉했거나 현재 상영 중인 작품, 개봉 예정인 영화의 리스트를 살펴보면 특히 영화음악이 강세인 작품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만약 2014년 말, 올해의 OST를 뽑는다면 이변이 없는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겨울 왕국> 타이틀곡 ‘Let It Go’일 것이다. 지난 1월 중순에 개봉해 국내에서만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패러디 영상이 매일 올라온다. 주인공 엘사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당당히 맞서며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부르는 이 곡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효력을 발휘한다.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 주제가상 수상은 당연하다 싶을 정도다. OST와 영화가 완벽한 궁합을 이룬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7월에 개봉한 영화 <마지막 4중주>는 지금까지도 OST가 꾸준히 판매될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현악4중주단 ‘푸가’의 리더인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단원에게 닥친 위기와 관계의 변화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리더 피터는 갈등을 겪는 단원에게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하자고 제안하며 다시 한 번 화합을 도모한다. 영화의 원제 ‘A Late Quartet’은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곡을 뜻한다. 이는 베토벤이 죽기 직전까지 매달린 곡으로 푸가의 마지막 공연을 위해 선택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활동 중인 ‘브렌타노 현악4중주단’이 연주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 공연 실황이 수록되어 있어 영화가 주는 감동만큼 OST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벨기에 영화 <브로큰 서클>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타투이스트 엘리제와 블루그래스 뮤지션이자 농부인 디디에가 운명처럼 만나 사랑하고, 갑자기 닥친 시련을 버텨나가는 과정을 찬찬히 그려낸 작품이다. <브로큰 서클>은 한국 관객에게 낯설 수도 있는 ‘블루그래스’ 뮤직이 영화 전체에 흐른다. 블루그래스는 1940년대 미국 뮤지션 빌 먼로(영화 속에서 디디에가 동경하는 뮤지션으로 언급하기도 했다)가 결성한 블루그래스 보이스 그룹에서 유래했다. 전자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5현 악기 밴조를 중심으로 만돌린, 바이올린 등 스트링 악기로만 연주하며 미국 컨트리 뮤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앨범에서 가장 감미로운 러브송 ‘If I Needed You’는 남녀 주인공이 감정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을 때 함께 부르는데, 노래와 대비되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브로큰 서클>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내면을 대변하는 가사의 곡이 차례로 등장해 보는 이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한다. 남녀 주인공을 맡은 배우 요한 헬덴베르그와 벨 베턴스가 직접 노래했으며 영화에 등장한 ‘브로큰 서클 브레이크다운 밴드’는 실제로 공연도 다니며 올해 상반기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브로큰 서클>을 보고 나면 과연 사랑의 이름으로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인생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아날로그 감성의 블루그래스 뮤직은 영화가 주는 아픈 여운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는다.

1 코언 형제가 만든 음악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주연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포크송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2 <미 앤 유> OST는 뮤즈, 아케이드 파이어, 데이비드 보위 등 전설적인 뮤지션의 노래로 가득하다.

블루그래스 뮤직에 이어 통기타의 아날로그 사운드에 위로받고 싶다면 <인사이드 르윈>이 제격이다. 음악이 전혀 나오지 않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든 코언 형제의 최신작 <인사이드 르윈>은 무슨 일을 해도 운이 따르지 않아 밑바닥 인생을 사는 포크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의 7일간 여정을 담은 영화다. 밥 딜런, 조앤 바에즈 등에게 영향을 끼친 포크 뮤지션 데이브 반 롱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코언 형제는 실제로 연주와 노래가 가능한 배우를 찾아 어릴 적 클래식 기타를 친 오스카 아이삭을 주인공 르윈으로 캐스팅했고, 인기 뮤지션이자 영화배우 저스틴 팀버레이크, 배우 캐리 멀리건도 영화 속에서 ‘Five Hundred Miles’를 함께 부른다. ‘베스트 포크송 100’ 음반에 나올 법한 인기 포크송이 다양하게 등장해 보는 내내 작은 라이브 클럽의 바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르윈이 한 클럽 주인 앞에서 오디션을 보며 부르는 ‘The Death of Queen Jane’, 엔딩 크레딧을 통해 최초로 공개하는 밥 딜런의 ‘Farewell’(미발표 스튜디오 버전) 등 OST에 담긴 14곡의 포크송은 들을수록 귀에 감긴다. <인사이드 르윈>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 르윈이 웃는 모습은 한 번도 볼 수 없다. 처음에는 안쓰럽지만 끝으로 갈수록 우리 모두 어쩌면 르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시려올 때, 그 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영화 시작과 끝에서 그가 부르는 ‘Fare Thee Well’이었다.

세 번의 사고로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10년 만에 휠체어를 타고 현장에 복귀하게 만든 작품 <미 앤 유>는 처음부터 ‘음악 성장 영화’라는 표어를 달고 등장했다. 이탈리아의 인기 작가 니콜로 아만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 앤 유>는 세상과 소통하길 두려워하고 자기 안에 갇혀버린 열네 살 소년 로렌조가 우연한 기회에 자유로운 예술가 기질이 강한 이복 누나 올리비아와 일주일을 함께 보내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스토리에 강렬한 록 밴드의 사운드를 더했다. OST에 이름을 올린 뮤지션 리스트는 웬만한 록 페스티벌 게스트를 가뿐히 넘어선다. 뮤즈의 ‘Sing for Absolution’, 더 큐어의 ‘Boys Don’t Cry’, 아케이드 파이어의 ‘Rebellion(Lies)’, 데이비드 보위가 부른 ‘Space Oddity’의 이탈리아 버전 ‘Ragazzo Solo, Ragazza Sola’(외로운 소년, 외로운 소녀라는 뜻)까지 영화 속 로렌조의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곡은 예민한 사춘기 소년의 감정 변화를 더욱 풍부하게 표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삽입곡이든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창작곡이든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 전달하려는 감성을 120% 살릴 수 있는 OST는 그 자체로 빛을 발한다. 언제 어디서 불현듯 다시 들어도 눈앞에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고 그때 느낀 감정을 다시금 불러오기 때문이다. 좋은 OST는 영화만 기대하고 간 관객에게 예상 밖에 주어진 깜짝 선물과도 같다. 물론 영화 장면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영화음악만 남는다면 감독에게는 불행이겠지만.

에디터 고현경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