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오페라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구시의 문화 예술 수준이 높다는 것도, 그곳이 한국 오페라의 본고장이라는 것도 익히 알았지만, 이렇게 체계적이고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했을 줄은.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배선주 대표와 나눈 대화는 놀라움과 감탄의 연속이었다.

열정이 넘치는 직원들과 함께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이끄는 배선주 대표.
한국에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극장과 단체는 많지만 오페라 공연에 최적화된 전용 극장과 자체 프로덕션까지 겸하는 곳은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하다. 2013년 대구시립오페라단, 대구오페라하우스, (사)대구국제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가 모여 재단법인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설립하면서 그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 중심엔 배선주 대표가 있다. (사)대구국제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 수성아트피아, 대구콘서트하우스 등 대구의 내로라하는 예술 기관을 모두 거치며 대구 문화 발전에 힘써온 그는 2015년 대구오페라하우스에 취임, 작년 가을 연임됐다. 그가 온 뒤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직원 복지, 공연 수입, 대구시 지원 등 많은 면에서 성장했다. 무엇보다 신진 성악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다양해졌다. “대구시립오페라단 창단과 대구오페라하우스 건축 당시부터 늘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재단법인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대표로 취임하면서 신진 성악가 육성 사업에 주력했죠. 극장 산하 성악가 트레이닝센터인 오펀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매년 성악가를 2명 이상 베를린 도이치오페라극장과 함부르크오페라극장, 이탈리아 피렌체오페라극장 등에 파견하고, 오페라유니버시아드와 영아티스트페스티벌 등 독보적인 프로그램이 많아요. 작년부터 메세나 사업을 확장, 기업과 젊은 예술가를 연계해 지원하고 내년엔 국제 성악 콩쿠르를 계획 중이에요.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의 스타, 세계적 성악가를 한 명이라도 배출하고 싶습니다.”

2017년 ‘제15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리골레토>의 화려한 무대가 돋보인다.
신진 성악가 양성만큼이나 교육을 통한 오페라의 저변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오페라를 막연히 어렵게 생각하거나 대중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잖아요. 아무런 정보 없이 오페라를 보는 것보단 사전 지식이나 정보를 갖고 보면 좋아요. 대부분 어릴 때부터 오페라를 경험하지 못해 낯설 수밖에 없지만 오페라는 절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오페라를 접할 수 있도록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평생 음악과 더불어 살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노래를 좋아했고, 대학에선 작곡을 전공했다. 아내와 딸도 첼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고. “살면서 여러 장르의 음악을 접했지만 오페라는 아주 월등하고 가장 스케일이 큰 종합예술입니다. 미술, 건축, 의상, 문학, 무용 같은 모든 예술 장르가 담긴 예술의 정점이죠. 연극적 요소도 있습니다. 또 오페라를 처음 본 사람도 아리아를 듣고 눈물을 흘릴 만큼 장면마다 감동이 크죠. 줄거리가 똑같더라도 연출자나 지휘자, 출연자에 따라 공연이 완전히 달라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주변엔 항상 오페라의 아리아가 흐른다. 덕분에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오페라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오페라 네이버’를 통해 이웃 주민에게 할인 혜택을 주고, 대구콘서트하우스와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미술관이 함께하는 멤버십 ‘코코아’도 운영한다. 지역민의 반응도 좋지만 오페라 인구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은 관객 비중의 40%를 차지하는 다른 지역 관객에게도 미친다. 서울에서 SRT를 타고 오페라를 보러 오는 관객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패키지, 주변 호텔과 연계한 서비스 등은 대구오페라하우스 홈페이지(www.daeguoperahous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고자 하는 대구오페라하우스.
하지만 배선주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올해 16회째를 맞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9월 14일~10월 21일)다. 한국 오페라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 <라 트라비아타>를 메인 작품으로 제작하고, 그 밖에 <돈 카를로>와 <일 트로바토레> 같은 전막 오페라와 소오페라, 광장 오페라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축제만큼은 대중성, 예술성, 실험성 있는 작품을 고루 선보이고 싶습니다. 유명 작품도 좋지만 한국에서 그간 보기 어려웠던 작품을 많이 공연하고 싶어요. 작년 축제에선 창작 오페라 <능소화 하늘꽃>을 무대에 올렸어요.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를 소재로 한 창작 오페라 <윤심덕>을 초연할 겁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을 무대의 배경으로 삼아 공연하는 광장 오페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광장 오페라나 창작 오페라, 지난 3월 초에 선보여 화제를 모은 로봇 오페라 같은 실험적 시도 덕분에 대구오페라하우스에는 유독 젊은 관객이 많다. “유럽 객석엔 은발의 관객이 많습니다. 대구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이 많죠.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나 감독도 대구가 여느 지역과는 느낌이 다르다고 해요. 또 대구는 시민의 정서 자체가 문화 예술을 사랑하고 그걸 누릴 줄 아는 도시예요. 박태준과 현제명 등 한국에서 서양음악의 기초를 다진 음악가들 덕분에 대구가 예술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죠. 대구에서 공연한 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쪼개 다시 찾아와요. ‘뫼르비슈 오페레타 페스티벌’ 같은 세계적 페스티벌 관계자도 세계 어느 곳에 가봐도 대구만 한 곳이 없다며 엄지를 치켜세웠을 정도예요. 칭찬을 들을수록 자부심도 생기고 결속력도 강해집니다.”
2016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토스카> 무대에서 그는 대구 시민의 문화 예술 사랑을 몸소 체험했다. “김재형 테너가 아리아를 불렀는데, 관객이 박수를 멈추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아리아를 한 번 더 불렀죠. 이건 해외 유명 오페라에서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에요. 한국에서 이런 광경을 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죠.”

1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지난 4월에 선보인 <나비 부인>의 한 장면.
2 2017년 ‘제15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관객의 사랑을 받은 <아이다> 공연 장면.
하지만 배선주 대표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페라뿐 아니라 미술에도 관심을 두고 예술 전반의 성장을 꿈꾼다. 2년 전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선 부대 행사로 지역 미술 작가의 작품을 대구오페라하우스에 걸어 판매를 도모하는 의미 깊은 자리도 마련했다. “당시 대구의 유명 화랑과 함께 복도에 갤러리를 만들었어요. 제가 전문적 아트 컬렉터는 아니지만 작품을 어울리는 공간에 적절하게 배치하는 걸 즐겨요. 오페라하우스도 그래요. 관객은 공연 시작 전부터 공연장에 와 있거든요. 그 시간이 무료하지 않도록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전시했어요. 최근엔 귀빈실을 갤러리로 꾸몄습니다. 작품 판매 액의 일부는 오페라 후원금으로 쓰입니다. 방문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아트 컬렉터이자 오페라 후원자가 되는 거죠. 작품은 대구오페라하우스 자문 기구의 추천을 받아 선정하고, 정기적으로 교체해요. 저도 전국의 미술관이나 카페를 다니며 공부하고, 좋은 콘텐츠를 접목할 수 있도록 식견을 키웁니다.”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콘텐츠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 이제는 하드웨어를 보강하고자 한다. “처음 설립했을 때보다 오페라 인구가 늘어 공간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관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극장 전용 카페, 무엇보다 소극장은 꼭 필요해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로서 많은 일을 해냈음에도 전속 오페라 오케스트라, 합창단, 발레단을 만들어 확실히 자리 잡고 싶다는 그의 각오가 놀랍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내년 한국과 헝가리의 수교 30주년을 맞아 창작 작품을 교환할 예정이다. 시민을 위한 대규모 야외 오페라도 몇 년 안에 만날 수 있을 듯하다. 그가 향하는 길,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가는 길이 곧 한국 오페라가 나아가야 할 행보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김잔듸(인물) 사진 제공 대구오페라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