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장인이 존재하는 이유
좀 더 품질 좋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치즈 메이커 소영 스캔런이 <노블레스> 독자를 위해 흥미로운 스토리를 전해왔다. 손놀림 한 번의 작은 정성이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고 믿고, 음식을 만드는 사소한 재료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그 재료가 나는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바로 푸드 아르티장에 관한 이야기다. 앞으로 1년간, 6개의 칼럼을 통해 치즈 장인 소영 스캔런이 만난 전 세계 최고의 푸드 아르티장을 소개한다. 그들의 삶이 빚어낸 기술과 열정의 차이가 우리 식탁에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손으로 다독이고 어루만져 치즈를 만드는 모습
1 산양젖 치즈를 숙성하는 과정 2 숙성시킨 치즈 3 코코아빈으로 초콜릿 바를 만드는 모습 4 복잡한 공정을 거친 수제 초콜릿
원래 과학도였던 내가 치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극히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모든 감각을 이용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점. 18년 전 프랑스 남부 지방을 여행할 때 다양한 수제 치즈를 처음 만났다. 작은 마을마다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는 생산자가 직접 들고 나온 우유, 산양젖, 양젖을 원료로 한 각양각색의 치즈가 가득했다. 그곳에서 우유, 종균, 응고 효소, 소금 등의 단순한 재료를 이용해 돌처럼 단단한 파르메산부터 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카망베르까지 다양한 재질과 풍미의 치즈를 접한 후 이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치즈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우유와 유제품 생산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 소속 유가공생산연구소에서 2년간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 후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안단테 데어리(Andante Dairy)’를 열었다. 그렇게 치즈를 만드는 장인의 삶을 시작한 이래 올여름이면 벌써 16년이 되어간다.
사실 한국에서는 음식 분야의 장인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다. 근대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농업국이던 한국은 양조장이나 방앗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음식 가공을 집 안에서 해왔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곁눈질로 배운 딸이나 며느리는 있지만 그 음식을 대대로 전수해 가업으로 계승하고 전업으로 삼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조선왕조 궁중 음식 보유자인 한복려 씨 같은 전통 한식 장인이 있어 다행이지만, 음식 가공을 전업으로 삼은 장인의 전통 계승은 거의 부재한 실정이다. 그런 반면 서구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장인, 푸드 아르티장의 명맥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지금은 스타 셰프가 넘쳐나고 푸드 아르티장이 만든 음식의 희소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거금을 지불하고서라도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이 줄을 설 정도지만, 사실 옛 서구 사회에서도 셰프나 푸드 아르티장의 사회적 지위는 낮은 편이었다. 수공업 장인 중에서도 푸드 아르티장의 위상이 낮았던 이유는 아마도 음식을 삶의 기본 요소로 여겼다는 점, 생산하는 상품 자체가 쉽게 상한다는 점에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가구 장인이나 목수에 비해 일이 고되고 대가는 적었다. 남다른 소질을 지닌 몇몇 아르티장이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푸드 아르티장의 삶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하고, 스스로 기회가 되면 벗어나고 싶어 하는 힘든 삶의 전형이었다. 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의 삶이 언제나 그러하듯 말이다.
내가 푸드 아르티장으로 살아온 16년 동안 경험한 큰 변화는 아르티장의 이미지가 점차 상업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유명 피자 브랜드 도미노피자에서 메뉴에 ‘아르티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회사의 주가가 10배 이상 오르는 데 기여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일반 소비자에게 아르티장의 이미지를 친숙하게 심어주긴 했지만, 실제 식품 생산 방법과 상관없이 푸드 아르티장의 이미지만 상업적으로 이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도 푸드 아르티장의 이미지가 상업화되고 있지만 훨씬 긍정적인 변화를 거치고 있다. 내 딸이 친구에게 엄마가 치즈 만드는 장인이라고 소개하면 “That’s cool!”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다른 학부모도 나를 ‘육체노동자’로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흥미로운 일을 하게 됐나요?”라고 호기심에 찬 질문을 던지곤 한다. 또 나와 거의 같은 시기에 아르티장으로서 일을 시작한 동료 중 현재 몇백억 가치의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성공한 이도 있다. 최근 푸드 아르티장의 모임에 나갈 때마다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단어도 ‘브랜딩’일 정도다.
안단테 데어리의 농장
요즘은 사용하는 물건뿐 아니라 먹거리 또한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식자재는 농업과 무역의 발달로 제철이라는 개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을뿐더러 전 세계에서 재배하고 가공한 식자재를 지구 반대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또 가업을 잇는 것이 의무라기보다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도 전통을 지키며 하나하나 손으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푸드 아르티장은 어떤 이들일까?
전형적 푸드 아르티장은 음식 문화가 가장 발달한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는 장인정신을 고취하고 찬양하기 위해 1924년부터 ‘Un des Meilleurs Ouvriers de France(MOF, One of the Best Craftsmen of France)’라는 아르티장 경연 대회를 열어 프랑스 최고의 장인을 선정하고 있다. MOF에서 수상하는 것은 셰프와 푸드 아르티장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의미한다. 한국 미식가에게도 잘 알려진 스타 셰프 폴 보퀴즈나 조엘 로부숑도 MOF에서 수상했다. 유명 셰프 외에 다양한 음식 분야의 장인이 MOF에서 인정받았는데, 이들은 각 식품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해 수공업 전통을 발전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수제 초콜릿 생산의 선두주자 프랑수아 프랄뤼(Franc,ois Pralus)는 페이스트리 메이커로 MOF에서 수상한 오귀스트 프랄뤼(Auguste Pralus)의 아들이다. 그는 유명한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것을 넘어 초콜릿 가공의 영역을 넓혔다. 단순히 봉봉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코코아빈 재배부터 복잡한 공정을 거쳐 초콜릿 완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골동품이 되어버린 옛날 초콜릿 가공 기계를 모아 초콜릿의 풍미를 최고로 살리는 전통 제조 공정을 되살린 것이다. 또 와인의 테루아(terrior) 개념을 도입해 원산지에 따른 독특한 맛과 풍미를 강조한 싱글 오리진 초콜릿(Single Origin Chocolate) 바를 대중화하기도 했다. 특히 아이보리코스트, 시에라리온, 사오토메 등 코코아빈 재배 지역 중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생활환경이 낙후된 곳이 많은데, 이 지역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이끌어낸 것도 그의 공이다. 더 좋은 코코아빈을 재배할 수 있도록 생산자의 생활 여건을 향상시키고 생산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일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푸드 아르티장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왔다. 여권이 신장된 서구에서조차 전문성을 강조하는 아르티장 세계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치즈 문화가 가장 발달한 프랑스에서도 목장주의 아내가 치즈 생산에 참여하는 경우는 있지만 우유와 치즈 생산, 치즈 숙성, 도·소매업까지 모두 남성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내가 치즈업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마리 카트르옴(Marie Quatrehomme)은 대표적 여성 푸드 아르티장이다. 그녀는 교사로 일하다 치즈 가게 주인의 아들과 결혼하면서 치즈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2000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여성 최초로 치즈 분야의 MOF로 인정받았다. 지금은 파리 최고의 치즈 가게로 꼽히는 프로마제리 카트르옴(Fromagerie Quatrehomme)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며 치즈 숙성 기술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있다. 그녀는 숙성 과정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치즈의 맛을 어떻게 다른 차원으로 이끌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녀의 손을 거친 치즈는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에도 납품하고 있다. 프랑스 식품 분야에서 여성의 위상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고 칭송받는 그녀에게 가장 큰 기쁨은 치즈 가게에서 일하며 키운 두 아이 모두 가업을 이어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좋은 미각을 타고난 딸이 자신을 이어 프랑스 최고의 여성 치즈 장인이 될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1, 2 토종 과일인 제철 산딸기와 배 3 올리브 오일 만들기 전 압축한 올리브 4 푸드 아르티장이 만든 신선한 올리브 오일
미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푸드 아르티장을 찾을 수 있다. 요리의 전통이 짧고 패스트푸드의 발원지인 미국에서 21세기에 새로운 푸드 아르티장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아마 이민자들이 이주할 때 들여온 전통문화에 대한 향수와 뭐든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 특유의 낙천주의가 결합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이 이민자이거나 한때는 이민자였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둔 모든 미국인에게 뿌리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문화적 유산을 자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음식이다.
미국 최고의 잼 만드는 장인 준 테일러(June Taylor)는 영국에서 이민 온 후 음식에 관심이 많아 요리사로 일하게 되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미국 내의 영국 음식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무시였다. 영국 음식도 제대로 만들면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좋아하는 어머니의 레시피를 이용해 마멀레이드와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제철 과일의 향을 농축해 보존하는 진정한 의미의 잼을 미국 시장에 처음 선보였고, 잼 만드는 장인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녀가 잼을 만들면서 가장 주력한 부분은 농부와의 협력 관계를 통해 맛과 향이 뛰어남에도 저장성이 나빠 사라져가는 토종 과일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었다. ‘과일을 사랑하는 여자’로 인식될 만큼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의 오래된 과일나무가 있는 정원을 찾아다니며 잊힌 품종을 발굴해냈고, 그 과일로 만든 잼을 통해 ‘잊힌 맛’을 재현하고 있다. 철마다 그녀의 공방은 잘 익은 과일을 들고 찾아오는 과수원 주인과 지인들로 가득하다. 그녀에게 계절은 제철 과일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것으로 시작해 다음 계절의 과일을 받기 시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녀의 공방에 있는 선반은 어머니의 그것처럼 계절의 향기를 담은 병으로 가득 찬다.
그동안 내가 만난 이들을 포함한 푸드 아르티장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자신이 사용하는 재료에 대한 병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집착이다. 우리가 원료(raw material)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숙련되지 않은 장인은 형편없는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좋은 재료 없이는 아무리 대단한 장인도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없다.”
푸드 아르티장의 원료는 자연에서 인간의 손으로 길러 거둔 좋은 품질의 농산물, 낙농품, 축산품, 해산물 등이다. 일반 소비자는 아르티장 제품에 대해 가격이 높다고 여길 수 있지만, 원료비가 전체 생산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대량생산 제품에 비해 최소 3~5배에 이른다. 실제로 원료를 구입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기 위해 광고나 홍보 예산은 고려할 수도 없다. 그래서 원료를 재배하는 자연환경과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정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정말 좋은 원료는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생산자와의 긴밀한 관계 없이는 얻을 수 없기에 생산자와 비즈니스 파트너로 일하는 것은 물론 친구와 후원자로서 공존한다. 원료 생산 과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결국 우리를 환경보호자로 전향시켰고, 유기농이나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 자연의 섭리와 달과 우주의 리듬에 따르는 방식) 농법의 지지자로 만들었다. 푸드 아르티장에게 자연은 필요한 원료를 제공하는 기본 터전이고, 다음 세대 장인에게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책임을 강요한다. 또 그동안 공들여 다져온 생산자와의 관계는 사업의 지속성을 위한 최대의 자본이고, 새로 이 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젊은 세대를 격려하고 교육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투자다.
푸드 아르티장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소영 스캔런
푸드 아르티장의 원료는 자연에서 인간의 손으로 길러 거둔 좋은 품질의 농산물, 낙농품, 축산품, 해산물 등이다. 일반 소비자는 아르티장 제품에 대해 가격이 높다고 여길 수 있지만, 원료비가 전체 생산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대량생산 제품에 비해 최소 3~5배에 이른다. 실제로 원료를 구입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기 위해 광고나 홍보 예산은 고려할 수도 없다. 그래서 원료를 재배하는 자연환경과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정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정말 좋은 원료는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생산자와의 긴밀한 관계 없이는 얻을 수 없기에 생산자와 비즈니스 파트너로 일하는 것은 물론 친구와 후원자로서 공존한다. 원료 생산 과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결국 우리를 환경보호자로 전향시켰고, 유기농이나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 자연의 섭리와 달과 우주의 리듬에 따르는 방식) 농법의 지지자로 만들었다. 푸드 아르티장에게 자연은 필요한 원료를 제공하는 기본 터전이고, 다음 세대 장인에게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책임을 강요한다. 또 그동안 공들여 다져온 생산자와의 관계는 사업의 지속성을 위한 최대의 자본이고, 새로 이 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젊은 세대를 격려하고 교육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투자다.
존경받는 푸드 아르티장은 정직함과 열정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이다. 아무리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그 물건을 인정해주고 구입하는 상점 주인과 셰프, 소비자가 없다면 쉽게 상해버려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다. 푸드 아르티장이 만드는 식품은 보존제와 첨가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공장에서 만든 것에 비해 유통기한이 짧아 보관을 위해 손이 많이 간다. 소비자의 눈을 끄는 화려한 포장도 더하지 않아 쉽게 팔리는 제품이 되기 힘들다. 재료의 맛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제조법으로 만들어 언제나 똑같은 맛을 원하는 소비자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 셰프들조차 우리 제품을 재료로 사용하기 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치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만든 대량생산 식품에 비해 ‘원래의 맛’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고, 판매자에게는 맛과 생산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소비자 한 명 한 명에게 전달해야 하는 수고를 요구하기도 한다. 어디서나 쉽게 살 수도 없고, 소비자의 노력 없이는 발견하기도 힘들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스페셜티 상점과 식자재를 존중하는 셰프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납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고의 아르티장이라 칭송받고 푸드 셀레브러티라 불리는 동료들도 이렇게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동체 없이는 사업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푸드 아르티장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정직함과 자부심이다. 거래하는 이들과 소비자에게는 물론 본인이 만드는 제품의 품질에 대한 정직함, 궁극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정직함.
내가 만난 수많은 푸드 아르티장의 또 다른 공통점은 너그러움과 따뜻함이다. 누구보다 높은 기준을 고집스럽게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외곬수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일견 괴팍해 보이지만, 언제나 자신이 만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먹이고 나누고 싶어 하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동료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제일 먼저 와주고, TV 출연은 거부하면서도 자선 행사에는 언제나 시간을 내어 가장 좋은 제품을 들고 온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따뜻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좋은 원료 이상으로 그들의 제품을 맛있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과학자의 길을 버리고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아르티장이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난 그저 직업을 바꾼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그 결심을 통해 내 삶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 자연에서 얻은 원료로 무언가를 만들기에 자연과 늘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일, 우리 삶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되어 있는 일. 그 덕분에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면 주기 힘든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글 소영 스캔런(Soyoung Scan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