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온통 푸르렀다
김상윤 조경가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다다랐다. 도무지 간판이 보이질 않아 한참 두리번거리다, 일단 그가 보낸 주소를 따라 콘크리트 건물로 들어섰다. 미심쩍은 마음에 오르던 계단을 도로 내려가기 직전, 김상윤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초록빛 외딴섬, 망원도가 나타났다.

문을 여니 눈앞에 초록빛이 가득했다. 녹색 식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눈을 돌리자 녹색 옷을 입은 김상윤 조경가가 있었다. 식물에 대한 애정으로 그린 컬러마저 좋아하게 됐다는 그는 조경 디자인·시공 스튜디오 에이트리의 공동 대표이자 환경 예술가다. “들어오는 길이 조금 칙칙했죠? 카페 망원도는 섬이나 마찬가지예요. 후배를 도와 인테리어를 맡았고 직접 운영도 하고 있어요. 제가 그린 회화 작품도 곳곳에 걸었어요. 밖은 겨울이지만 망원도는 푸른 식물로 가득해요. 지금도 계속 식물을 추가하고 있거든요. 봄이 되면 지금보다 더 푸르름이 가득할 거예요.”
어릴 적 경상남도 산청의 시골집에 놀러 간 어린 소년은 그곳의 자연 경관에 푹 빠졌다. “청소년기에도 자주 갔어요. 워낙 어린 나이부터 지리산 골짜기에서 자연과 함께 뛰어놀다 보니 자연경관과 식물에 대한 애정이 생겼나 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경학을 전공하게 됐죠. 건축도 좋아했고요. 조경은 영어로 ‘Landscape Architecture’, 즉 경관 건축이에요. 경관을 바라보고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길로 들어섰죠.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다음,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 다니면서 사진과 홀로그램 아트도 공부했어요. 일이 바빠 학업을 마치진 못했지만요.”
그는 대학 시절 만난 박지호 대표와 함께 안양예술공원 골짜기 깊숙한 곳에 에이트리를 열었다. 개인 주택, 기업 사옥, 상업 시설의 정원이나 식물에 관한 프로젝트 전반을 수행하는 에이트리는 최근 연남동의 어라운드 사옥과 이태원의 콜렉티브 카페 디자인에 참여했다. “저는 조경 디자인 회사를, 박지호 대표는 시공사를 다녔어요. 건축도 마찬가지지만 조경은 디자인 단계와 실제 만드는 작업 사이의 괴리가 크거든요. 제가 아무리 디자인을 잘해도 현장에서 구하는 식물 종류나 심는 방식에 따라 모습이 확 바뀌죠. 디자이너가 직접 심지 않으면 방향성이 달라질 때가 많아요. 그런 괴리감을 줄이고 싶어서 박지호 대표와 의기투합해 2011년에 에이트리를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많이 늘었지만 그땐 정원을 디자인하고 직접 시공까지 하는 곳이 지금보다 적었어요. 제가 디자인을, 그가 시공을 주도하지만 현장엔 함께 나가요. 디자이너가 직접 현장에 가서 일하는 걸 원칙으로 시작한 일이니까요.”

김상윤 조경가가 만든 ‘돌, 철, 나무 그리고 나_두 개의 정원’.
요즘 식물과 인테리어의 합성어인 플랜테리어도 유행하지만, 조경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조경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건물 외관의 모든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건축과도 밀접하다. “젊은 건축가 푸하하하 프렌즈(FHHH Friends)와 오래 작업했어요. 조경과 건축은 뗄 수 없는 관계거든요. 처음 땅에 건축물을 세우면 둘 사이가 어색해요. 조경, 즉 식물은 그걸 완충하고 완성해서 건물이 땅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그에 따르면 조경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작은 정원부터 넓은 광장이나 공원까지 포함한다. “광화문광장도 조경가가 만든 거예요. 장소를 다루는 인문학적 개념으로 보면 돼요. 광장을 만들려면 단순히 식물에 대한 지식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이용 행태 등을 알아야 하죠. 조경은 굉장히 포괄적이고 광범위해요. 특히 공원은 공적 공간이잖아요. 개인이 아닌 대중의 취향을 반영해야 하니까 일반적 식물이 많죠. 반대로 정원은 사적 공간으로 오롯이 주인의 성향이 담겨요. 가시가 있는 명자나무와 매자나무는 아파트에 심으면 민원이 들어올 때가 많지만, 두 나무를 좋아하는 개인은 주택 정원에 얼마든지 심을 수 있죠. 보통 정원이 조경에 포함된다고 보는데, 사실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요. 정원은 원예에 가깝거든요. 개별 식물의 생태나 습성에 대해 알아야 하고 디테일한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조경과 정원에 대한 전문 지식을 지닌 그는 한국식 전통 정원을 가장 좋아한다고. 틈날 때마다 전통 정원을 방문할 뿐 아니라, 몇 년간 답사를 다닌 시절도 있다. “서양 정원은 자연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커요. 보통 식물을 가꾸고 키우는 문화죠. 하지만 한국 정원은 자연풍경이 좋은 곳에 자리만 잡아요. 담이나 정자를 세워 경치를 바라보는 거예요. 전통적으로 한국은 자연풍경 자체가 아름다우니 심고 자를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렇다 보니 서양 정원 문화가 더 발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관점이 다를 뿐이에요.”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그와 전통 정원의 생김새가 무척 닮아 보였다. 그는 2011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한국식 전통 정원을 만들어 작가 정원 현상 공모 대상을, 2013년엔 금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코리아가든쇼, 대한민국도시숲 설계공모대전 등에서 연달아 수상하며 실력을 입증한 그임에도 고객의 정원에 디자이너 개인의 철학을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 정원을 만들 때는 이따금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정원을 만든 직후 모습만 보고 상상과 다르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갓 만들었을 때는 새순이 난 상태일 때도 있거든요. 여름에 심으면 잎이 많이 상하기도 하고요.
제 역할은 식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거예요. 시간에 따라 성장하며 풍성해지는 자연의 변화를 염두에 두죠. 그런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퀸마마마켓의 정원을 만들 땐 고객과 마음이 잘 맞았다. 몇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정원을 만들었다. 건물 맞은편에 있는 벚나무를 보고 퀸마마마켓에도 벚나무 터널을 세웠다. 그 이후 새 건물을 짓느라 맞은편 벚나무가 다 잘려나갔지만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정원을 디자인하는 김상윤 대표는 어디서 영감을 받을까? 그는 식물원과 수목원을 수없이 드나들고, 미술관에도 자주 간다.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림을 감상하면서 자극을 받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말년 그림을 좋아해요. 높은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영국 풍경 그림요. 조경가 입장에서 보면 작품에 식물의 순리가 체계적으로 잘 드러나 있어요. 데이비드 호크니가 본능적으로 그렸는지 알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놀랄 때가 많아요.”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보며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기에 그의 대답이 꽤 신선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관심이 식물에 쏠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은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외부 활동이 많이 생겨나길 원하는 그의 바람으로 이어졌다. 만드는 일은 자신이 맡을 테니, 도심에서도 식물을 가까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하지만 요즘 식물의 조형적인 면을 인테리어에 이용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장식적인 면보다는 생육 환경이나 특성을 고려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를 끝내려던 찰나, 그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어요. 조경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넘쳐요”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나도 무척 아쉬웠다. 못 다한 이야기는 그의 정원학 개론 강의를 통해 들어야겠다. 물론 봄을 맞은 망원도의 모습도 눈에 담을 거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김잔듸(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