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중 하나라는 가치
취업보다는 창업을 외치는 세상에서 읊조리는 우리라는 가치에 대해.

이상한 여름이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대기는 좀처럼 비를 뿌리지 않았다. 이따금 스콜 같은 소나기가 내리고 저녁이면 더운 바람이 불었다. 볕 한 조각 없이 숨 막히는 날이 지속됐다. 발화점을 향해 치솟다 산화되는 것이 여름인 줄 알았는데, 왠지 영원한 계절에 갇힌 것 같았다. 그런 여름의 금요일 저녁, 친구 A가 결혼했다. 몇 남지 않은 총각이던 녀석은 모 게임 회사 개발자에서 최근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그 타이밍을 사람들은 의뭉스럽게 봤다. “여자가 대단한데?”, “원래 집이 좀 살지 않았어?”, “사업이 잘되나 봐” 같은 말이 식장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가 아는 바로 제수씨는 친구를 응원하지만 미래를 염려하는 평범한 여자였고, A의 본가는 손 벌리기에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리고 사업은 단기 프로젝트를 이제 몇 개 마쳤을 뿐, 아직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역시 결혼은 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미지근한 맥주를 홀짝였다. 친분과 안면이 있는 몇 명이 자리를 채웠다. 덕분에 보는 얼굴, 때문에 마주치는 얼굴은 안부를 묻다 늘 그렇듯이 책망하듯 서로의 미래를 걱정했다. 불똥은 내게도 튀었다. “아직 그거 하고 있어? 그거 몇 살까지 할 수 있겠어”, “너도 장가가려면 돈 벌어야지. 쟤 봐. 독립하니까 바로 결혼하는 거”, “이제 슬슬 네 거 할 생각해. 사십 넘으면 힘들다” 같은 조언을 듣다 마감을 핑계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내내 속이 더부룩했다. 그리고 야속한 소나기가 내렸다.
“사표가 유행이냐?” 몇 달 전 독립 의사를 밝힌 A에게 물었다. “10년, 아니 5년을 생각해도 답이 없어. 젊고 인건비 싼 개발자는 계속 나오지, 연봉 뻔하지, 계속 회사에 남으려면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 정치에서 살아남을 자신도 없어. 몸이 좀 고돼도 프리랜서로 몇 년 구르면 목돈이라도 생기겠지.” 확실히 A의 직종은 수명이 짧았다. 야근과 이직이 잦고 창업 비율이 높았다. 그리고 제수씨와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였다. 만약 결혼이 아니었다면 A의 퇴사는 미뤄졌을까. A만의 일은 아니다. 주위 선배와 동기, 후배들은 하나둘 조직을 떠나고 있다. 이직이나 연봉 협상, 보너스가 안줏거리였던 월급쟁이 동지들이 이젠 개인 사업자나 법인의 대표가 된 것이다. 선배 B도 3년 전 대기업 종합 상사를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남미 지역에 소비재를 판매하던 영업사원이 뜬금없이 축산 유통업을 하겠다며 사직서를 냈다. 선배는 일본에서 와규를 수입해 레스토랑과 고급 유통 채널에 납품한다. “일은 좀 험해도 전망이 밝아. 경기가 안 좋아도 고기는 먹으니까. 출장이 없으니 가족들도 좋아한다. 사는 거 별거 아냐. 그게 제일 중요해.” 셔츠 대신 주머니가 잔뜩 달린 조끼를 입은 선배의 표정은 전보다 밝아 보였다. 신문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후배 C는 내년부터 사장님이 된다. 평소 셈이 빠른 그이기에 결국 자기 사업을 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부서 두 번째가 됐는데, 그 고생을 다 하고 편해지려니 사직서를 냈다. “제 사업을 해야죠. 1인 가구가 꾸준히 늘면서 먹는 패턴도 달라졌거든요. 그 부분을 공략해 쉽게 먹고 트렌디하게 즐길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보려 해요. 맛은 자신 있으니 선배가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C의 처갓집은 반찬 공장을 했다. 대형 마트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납품하던 것을 그는 브랜드로 만들 생각이었다. 오프라인 매장을 시작으로 홈쇼핑과 인터넷 몰, 수출까지 고려하고 있다. 성실한 데다 아이디어가 반짝이던 친구라 금방 자리 잡을 거라 생각한다. 이 밖에 1인 출판사를 차린 후배, 단기 주거 임대업을 하는 동기, 그리고 지금 이 업계(매거진)의 무수한 선후배가 회사를 떠났다. 가족, 성공, 미래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그 수단으로 독립을 택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나만 정체 중인가 싶어 숨이 턱 막혔다.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해가는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졌는데, 넋 놓고 있다가 나이 쉰에 실업자가 되는 건 아닌지 불현듯 무거운 생각이 들어 간담이 서늘해졌다. 비단 나 혼자만의 불안감은 아닐 것이다. 조직을 떠난 그들도 내면 깊은 곳에서 어떤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건 순식간에 무용한 인간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세상이 변했다. 4차 산업혁명이나 로봇, AI를 운운하지 않아도 사람이 하는 일이 점차 줄어간다는 건 매일 눈과 피부로 확인 중이다. 그리고 직업(일)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 30년씩 근속하고 감사패와 갈채를 받으며 은퇴하는 세상은 몇십 년 전에 끝났다. 얼마 전 취업 포털 ‘잡코리아’는 20~40대 1170명을 대상으로 ‘평생직장 인식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조사 결과 ‘평생 직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이 넘는 53.4%로 나타났다. 사람들 대부분 이러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일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세태, 100세 시대로 대변되는 장수 사회, 기하급수적 기술의 발전은 거대한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기간제 고용 또는 협력 형태 계약이 미래의 근로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불확실한 현재 가장 안정적인 상수, 혹은 공자님 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자칭 미래학자라는 ‘무당’들의 선동 구호가 사람들을 자극한다. ‘국가와 기업은 이제 당신네 삶을 책임질 수 없다. 사직서를 던진 뒤 세상 밖으로 나가라. 남 밑에서 월급 받지 말고 네 것을 하라. 기발하고 발칙한 아이디어로 제2의 스티브 잡스나 제프 베이조스가 돼라’고 부추긴다. 그래서 모두가 보트 밖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선 되레 조직에 몸담은 것이 팔푼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이제껏 세상을 바꾼 건 소수의 개인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천재성으로 통념을 뒤엎는 구루(guru)는 취업보다는 창업을 통해 탄생했다. 젊은 인력이 기존 플랫폼을 거부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건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세상에서 가치 있거나 쓸모 있는 건 아니다. 이 시대가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조직의 가치와 유용함이다.
지금의 회사란 경직된 사고와 보수적 운영, 상하 복명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러나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사회 초년생은 조직에서 세상을 배운다. 한 해를 꼬박 취업 준비에 바쳤더라도 신입생은 업무에 무용하다. 흔히 말하는 ‘사람 노릇’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업무 파악이나 실무 경험은 물론 실패까지(사업하며 겪는 것에 비하면 보호구를 착용한 상태라 볼 수 있다) 경험할 수 있다. 조직엔 여러 부서가 있다. 상품을 개발하는 R&D 부서와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곳, 제품을 영업하는 곳과 홍보하는 부서, 그리고 돈을 관리하는 곳까지 작은 단위의 사회로 봐도 무방하다. 이런 것들은 시스템에서 겪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야 일의 전체적 윤곽을 파악할 수도, 시스템의 단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체득할 수 있다. 최소한의 예절과 관습을 배울 수 있다. 전화 받는 태도부터 비즈니스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까지, 그러니까 사람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공동’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다. 낯간지러운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회라는 정글에서 공동 목표를 지닌 우리라는 단위가 주는 위안은 상당하다. 조직 전체가 공유하는 ‘핵심 가치(core value)’는 극과 극의 사람도 하나로 묶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게 한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등불처럼 밝혀둘 멘토를 만날 수도 있다. 사회 초년생 때 몇 달을 준비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막내로 참여해 궂은 일도 하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어느 저녁, 서로 어깨를 토닥이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의 사회생활 중 내내 손에 꼽는 값진 경험이었다.
아마도 세상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의 예측처럼, 직업과 고용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어 광야에 홀로 서는 날이 머지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걱정은 금물이다. 당장 닥치지 않은 일을 두고 지레 겁먹거나 순항 중인 배에서 뛰어내릴 필요는 없다. 조직에 속해 있다는 건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앞서 독립한 그들만큼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 그리고 뭔가를 배운다. 인생이 긴 여행이라 치면 훗날 펼쳐질 솔로이스트를 위해 공부하고 대비하는 중이다. 모두 각자 위치에서 건투를 빈다.
에디터 조재국 사진 최익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