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30년의 발자취
한국 고급차의 대명사 그랜저가 처음 발매된 건 1986년. 딱 30년 전이다. 그랜저 IG의 발매를 앞둔 지금 고급차의 상징, 그랜저의 역사를 돌아봤다.
지금의 현대차를 있게 한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쏘나타다. 쏘나타의 대성공으로 현대는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필연적으로 질적 성장, 즉 고급에 대한 수요가 생긴다. 그랜저는 바로 이 질적 성장에 대한 욕구로 탄생한 모델이다. 당대의 현대차가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과 편의 사양을 집약한 모델이기에 그랜저의 역사는 곧 현대차 기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세대 그랜저(1986년)
‘각 그랜저’라는 단어가 고유명사처럼 쓰일 때가 있었다. 직선을 강조한 디자인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1980년대에 각 그랜저는 부의 상징이었고, 회장님 차였다. 현대차가 의도한 대로 ‘고급차’로 완벽하게 포지셔닝한 차다. 1세대 그랜저는 출시와 동시에 국내 대형차 시장을 평정했고, 큰 인기를 얻었다. 2000cc 수동변속기로 시작했지만 인기에 힘입어 이후 3.6 V6 같은 고배기량 모델도 발매했다. V6 배지가 달린 당시 그랜저의 포스는 지금 수입차 이상이었다.
2세대 그랜저(1992년)
2세대 그랜저의 가장 큰 특징은 유선형 디자인이다. 1세대 그랜저의 각을 깎고 다듬어 외형을 부드럽게 바꿨다. ‘뉴 그랜저’라 불린 2세대 그랜저는 1세대보다 많은 인기를 끌었다. 단종 시까지 15만 대 정도 팔렸다. 물론 그 인기에는 1990년대의 폭발적인 경제성장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고급차에 대한 수요도 늘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ECS(차체 제어 시스템)을 장착했고 처음으로 운전석에 에어백을 적용한 모델이기도 하다.
3세대 그랜저(1998년)
우리가 흔히 그랜저 XG로 기억하는 모델이 3세대 그랜저다. 2세대까지 그랜저는 그야말로 ‘회장님 차’의 느낌이었지만 3세대에 이르러 좀 더 젊은 이미지로 거듭났다. 구매층의 연령도 50대 이상에서 40대로 내려왔다. 현대차로서는 고급차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된 모델이다. 게다가 3세대 그랜저는 현대차가 자력으로 개발한 첫 번째 그랜저다(1·2세대는 미쓰비시가 기술과 설계를 맡았다). 이때부터 그랜저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욕심낼 수 있는 차가 됐다.

4세대 그랜저(2005년)
그랜저 TG로 기억되는 모델이 4세대 그랜저다. 3세대부터 시작한 ‘대중적 고급차’ 전략을 본격화한 모델이다. 이유가 있다. 플래그십 모델 에쿠스가 발매됐기 때문에 그랜저는 좀 더 젊은 세대를 노려야 했다. 그 결과 이전 세대에 비해 덩치를 키웠고, 주행 성능도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중후함의 상징이던 그랜저에 스포티한 면모가 처음 드러난 때다. IMF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후 국민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시기였기에 판매율도 좋았다. 대형차로는 최초로 국내 베스트셀링 카에 올랐을 정도다.
5세대 그랜저(2011년)
HG 그랜저로 불리는 모델. 이때쯤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디자인 철학을 만들었고, YF 쏘나타 같은 패밀리 룩을 형성하며 디자인 완성도를 높였다. 편의 사양도 대폭 늘렸다. 자체 개발한 GDI 엔진은 출력과 토크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이외에도 수많은 편의 사양을 적용했다. 그 결과 출시 첫해에 10만 대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상품성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오히려 쏘나타의 인기를 잠식해버릴 정도가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정도였다.
6세대 그랜저(2016년)
HG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새로운 그랜저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올 12월 출시 예정인 그랜저 IG는 여러모로 막중한 책임을 짊어졌다. 시장점유율이 50%대로 떨어진 현대차의 위상을 회복해야 하고, 그랜저라는 이름의 무게도 짊어져야 한다. 아직 출시 전이긴 하지만 공개한 디자인만 보자면 긍정적이다. 한국 도자기의 우아한 곡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이 사진만 봐도 꽤 탐난다. 새로운 그랜저는 과연 현대차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에디터 이기원(lkw@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