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완벽하게 계획한 여행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모험이 이끌어가는 여행, 사람과 맺는 관계가 주인공이라 믿는 김남희의 여행은 늘 새롭고 풍요롭다.

김남희 작가를 만나기 전, 그녀가 쓴 책과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사실 매달 인터뷰를 하는 내겐 주인공이 달라질 뿐, 인터뷰를 하는 행위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일기장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진솔한 책 덕분일까.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한 편안함과 새로운 인터뷰이를 만나는 기대감이 공존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인터뷰를 진행할 카페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자 그녀는 이미 구석 테이블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온화한 미소로 화답했다.
6년 동안 터키 대사관에 다니다 13년 전 서른넷의 나이에 세계 일주를 떠난 그녀는 지금은 약 80개국을 여행하고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길 위에서 읽는 시> 등을 펴낸 도보 여행가가 됐다. “여행을 떠난 이유는 행복하고 싶어서예요. 마냥 어리다고 말할 수 없는 서른네 살이지만 저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어요. ‘인생은 한 번뿐인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걸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세상을 돌며 저만의 정답을 찾아보자 했죠.”
그녀에게 여행은 행복을 찾는 과정이자 다른 사람을 돕는 이타적 행위다. 티베트 난민을 위한 탁아소 건립, 모로코 소년원 도서관 책 지원,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이즈 환자 교육 단체 은코시 헤이븐에 교복을 보내기 위해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 또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문학동네와 함께 시리아 난민을 돕는 스토리 펀딩도 진행했다. “저는 특별히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세계를 여행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아이들을 만났고, 돕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어요. 2006년 3주간 시리아를 여행했는데 사람들이 무척 따뜻했어요. 길을 물으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자신의 오렌지를 나눠줄 정도로 친절한 사람들이었죠. 우연히 지난해에 도움을 요청하는 시리아 소녀의 트위터를 봤고, 그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 싶어서 스토리펀딩을 시작했어요.”
6개월간 진행한 스토리펀딩의 결과를 묻자 “목표치의 50% 정도만 달성해 결과가 썩 좋진 않았어요. 처음 시작할 땐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몇백 명인데 200명 정도야 쉽게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거든요. 결과를 받고 처음엔 실망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친구이자 제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지구상의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선의를 베푼 사람들의 마음이 감사하게 다가왔어요. 저야 시리아를 여행하고, 현지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지만 100명의 사람은 대부분 그런 경험이 없는데도 제 프로젝트에 동참해준 거잖아요. ‘100명밖에 못 모았어’가 아니라 ‘100명이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함께해줬어’로 점차 마음이 바뀌었어요.”
여행이 누군가를 돕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여행은 삶을 즐기는 수단이며 더 나아가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여행은 ‘어딜 가느냐’가 아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나라, 한 도시를 가더라도 그 여행이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내 안의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경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6월 김남희 작가가 다녀온 이탈리아 베니스.
그 말을 들었음에도 그녀가 손에 꼽는 여행지를 듣고 싶었다. “저는 여행하는 모든 나라와 사랑에 빠지는 편이에요. 그래서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가 가장 인상 깊고, 지금 여행하고 있다면 그 나라가 의미 있는 곳이에요. 그래도 저만의 여행 스타일을 말하자면 여행의 변수가 많아 모험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호해요. 티베트, 부탄, 네팔, 인도가 제겐 그런 곳이죠.”
모험을 즐긴다는 것은,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여행지를 받아들인다는 뜻일지 모른다. “여행을 하다 보니 점점 계획을 세우는 일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의도대로 풀리는 여행은 지루하고 재미도 없고요.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간다면 대략적으로 토스카나와 시칠리아라는 지역만 정할 뿐이지 구체적인 장소를 정하진 않아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준비해요.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찾아본다거나 그 지역 출신 작가가 쓴 소설을 읽는 방식으로 여행지를 떠올리죠.” 모두 같은 관광 명소를 찾고, 음식을 먹으며 인증샷을 찍는 여행에 식상해졌다면 귀 기울여도 좋을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여행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2011년 남미 여행 중 3개월간 텐트와 캠핑 장비를 메고 걷다 찾아온 육체적 피로는 물론 그동안 한국인을 만나지 못해 외로움에 시달렸다. 또 부에노스아이레스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오늘은 어려운 일을 겪어도 내일은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떠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강도를 만나 돈을 뺏기면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 당장 집에 가고 싶겠죠. 하지만 그 일이 우리의 여행을 장악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여행은 이미 끝났어’라는 낙담이 아니라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제 경험상 실제로도 그랬고요.”
수많은 세상을 보며 깨달은 한 가지는 무엇인지 묻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세상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우린 인생을 살아가는 데 당연히 꿈이 있어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죠. 자신이 속 한 세계가 전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는 여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세계를 가진다고 할 때, 그들이 속한 물질적 세계는 좁지만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를 합치면 우주보다 넓을지 모른다고. 13년간 다양하고 넉넉한 마음을 마주한 그녀는 올 하반기 부탄과 태국을 거쳐 다시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연말쯤엔 산티아고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책으로 펴낼 것이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잔듸(인물) 장소 협조 라카페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