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스피드
19세기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남성에게 스피드는 권력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더 이상 속도는 승부처가 아니다. 그럼에도 남자들이 속도에 열광하는 이유는?

영화 <탑건>은 오랫동안 전 세계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하늘에서 활주로로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F-14 전투기 밑으로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전투기 파일럿 재킷을 입은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여자친구는 항공물리학을 강의하는 아름다운 금발 머리의 교관이다. 스피드와 제복 차림의 아름다운 여선생이 주인공인 이 영화. 테스토스테론 폭죽이다. <탑건>의 전투기처럼 남자들의 영화에는 스피드가 주요 매력 포인트로 등장한다. 영화뿐 아니다. 남자의 소비 심리 이면에는 ‘스피드’가 굳건히 자리한다. 오늘날까지 남자들이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온 것, 예를 들면 멋진 스포츠카와 크로노그래프 시계, 스피드 보트와 개인용 제트기 모두 스피드를 상징한다. 여성에게 비싼 그릇이나 가구, 핸드백과 디자이너 드레스가 선사하는 호사로움과는 사뭇 다른 패턴의 사치다. 스피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어떤 과학적 아이디어일 뿐이다. 그런데 그스피드가 어떤 섹시한 여자보다도 남자의 원초적인 무엇을 자극한다. 그 이유는 뭘까? 1821년으로 돌아가보자. 그해 프랑스 마사회 이사 중 한 명인 니콜라 조제프 뤼섹은 더 좋은 경주마 종자를 정밀하게 걸러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 마사회는 말 경주를 통한 오락적 기능을 제공하는 동시에 국가의 핵심 군사 기술을 개발하는 주요 부서였다. 말은 전쟁의 필수 무기였다. 이미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말은 대포를 끌고 군량을 날랐다. 전쟁의 승패는 양국 기마대의 용맹함과 날렵함으로 결판이 났다. 말의 속도와 지구력은 곧 국력이었고, 정밀하게 교배한 말의 씨앗은 오늘날 로켓 기술처럼 엄청난 가격에 팔려나갔다. 프랑스 말의 역량을 높이고 프랑스의 기마대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뤼섹이 일하던 마사회의 임무였다. 그전까지 좋은 말이란 사람과 호흡을 잘 맞추고 병에 잘 걸리지 않으며 포성에도 잘 놀라지 않는 용감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준은 모두 주관적이었다.
19세기는 과학이 크게 발달한 시기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겼다. 19세기 시대정신에 맞춰 니콜라 조제프 뤼섹은 의붓형제인 발명가 니콜라 마티외 뤼섹에게 더 좋은 군마를 선택하는 기준을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다. 그렇게 말의 교배 기준을 수치화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마티외 뤼섹은 전혀 새로운 기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시계를 활용한 것. 그는 시계 초침 속에 정교한 잉크통을 설치했다. 스위치를 누르면 말이 출발한 시간과 도착한 시간에 아주 작은 잉크 한 방울이 시계 표면에 떨어지고, 이 두 점 사이의 거리로 말의 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오늘날 성공한 남자들의 상징인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탄생했다.
이 작은 기계는 시간에 대한 인류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원래 농경시대에는 해가 뜨고 지고 사계절이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것이었다. 둥그런 시간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시간과 직선상으로 경쟁하는 스피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중세기에 제작한 시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프라하 구시청사 외벽에 걸려있는 거대한 천체시계다. 하늘의 별자리와 해와 달이 천천히 돌아가며 날씨에 따라 밤과 낮이 길어졌다 짧아지고 달이 커졌다 작아지는 리듬을 묘사한 우주 모형이다. 이 시계는 절대 우리에게 빨리 달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주 전체의 느린 움직임 속에서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상기시키며 인생은 짧고 사후의 생은 기니 착하게 살고 교회에 와서 사후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 독일의 황제 카를 5세에게는 아끼는 시계가 있었다. 프랑스 에쿠앙 국립 르네상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시계는 소형 배 모형이다. 이 시계는 코스 요리에서 사람들이 앞서 내놓은 음식을 소화시키는 시간에 맞춰 다음 식사를 내갈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한 코스가 끝나고 다음 코스가 나올 때면 배에 장착한 미니 대포가 발포하고 금으로 만든 조그마한 선원들이 움직이며 팡파르를 불었다. 이처럼 중세기와 르네상스 시대의 시계는 자연과 신체의 리듬에 맞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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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원초적인 그 무엇을 품고 있다.
바로 ‘위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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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

프라하 구시청사 외벽의 거대한 천체시계
스피드의 시대가 오기 전 스피드는 남자의 기준이 아니었다. 남자의 기준은 무게였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남자의 최고 덕목으로 ‘무게감(gravitas)’을 꼽았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묵직한 망토를 걸치고 조심스럽게 내딛는 신중한 발걸음은 왕족과 귀족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행진곡을 들어보면 그토록 느린 리듬에 맞춰 사람이 어떻게 행차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질 지경이다. 바흐의 프랑스 무곡 ‘가보트’와 ‘미뉴에트’도 빠른 템포의 EDM 클럽 음악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춤곡으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그 시대의 신사 숙녀는 그 느린 리듬에 몸을 맡겼고 춤을 췄다. 동양 역시 양반은 아무리 바빠도 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고, 행동과 생각 또는 말이 빠른 사람을 ‘촐싹거린다’거나 ‘경망스럽다’라는 말로 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로노그래프의 발명은 시간의 개념을 원형에서 직선으로 바꾸어놓았다. 19세기 의사들은 진맥할 때 맥박이 얼마나 힘차게 뛰는지가 아니라 1분에 몇 번 뛰는지 속도를 측정해 건강 상태를 판단했다. 군인은 대포나 총을 1분에 몇 번 쏠 수 있는지 그 속도를 측정했다. 당시 유럽 경제의 심장인 운송업체들은 기차나 새로운 증기선의 속도를 자랑했다. 말들은 경마장에서 달리는 속도에 따라 얼마나 뛰어난 말인지 평가받았다. 가보트와 미뉴에트 같은 춤은 사라지고 경쾌한 3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왈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지는 기차와 비행기는 세상을 좁게 만들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제국은 세계 반대쪽에 있는 땅을 빼앗아 식민지로 삼고 군대를 파견하고 여행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더 빠른 전함과 전투기로 무장한 나라가 실제로 전쟁에서 쉽게 승리했고, 증기선을 보내 더 많은 자원을 끌어왔다. 더 빠른 생산이 가능한 기계로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세상은 오랫동안 한곳에 정착해 고립된 ‘원주민’과 전 세계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정복하는 ‘제국주의자’로 나뉘고, 스피드는 권력의 상징이자 일종의 종교처럼 숭상되었다.
실제로 영어에서도 ‘스피드’는 새로운 개념이어서 영어로 스피드를 뜻하는 두 단어는 시간이나 움직임과는 관련이 없다. ‘빠르다’는 뜻의 ‘rapid’는 ‘약탈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rapere’에서 나왔고, 그 때문에 ‘speed’는 원래 ‘부자가 되다, 성공하다’를 뜻했다.
‘스피드 문화’의 흥분을 담은 책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쥘 베른(Jules Vernes)의 <80일간의 세계 일주>다. 당시 새로운 기술 문명의 이기인 증기선과 기관차, 열기구를 타고 여행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의 여행 목적은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는 것도, 사색을 하는 것도, 여러 문화권 사람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크로노그래프의 독촉에 따라 정해진 시간 안에 경주마처럼 목적지를 찍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남자들이 선호하는 스피드의 상징은 경주마에서 스포츠카와 전투기로, 용맹한 기마병에서 스포츠 스타로 진화했다. 엔초 페라리부터 오늘날의 달리기 선수인 우사인 볼트까지. 그러나 남자는 단지 스피드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스피드가 가져다 준 권력에 열광한 것이다.
21세기는 3차 산업혁명의 정보화 시대다. 이미 일본과 유럽의 젊은 남자는 스피드를 자랑하는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는다. 아예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는 사람도 늘어 자동차업계의 고민을 가중시킨다. 권력을 상징하던 크로노그래프 대신 자신의 건강과 웰빙을 측정하는 핏비트가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당연한 결과다. 컴퓨터 앞에 앉아 전 세계의 정보를 마음껏 빨아들일 수 있는 지금, 조금 더 빠른 말, 자동차, 비행기는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다. 더 이상 권력의 상징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백 년 후 집에서 VR 안경을 끼고 화성에 다녀올 수 있는 미래인은 어떻게 우리가 그 시끄럽고 냄새 독한 화석연료를 태우며 달리는 위험하고 지저분한 기계를 섹시하게 생각했는지 이해하지 못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피드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원초적인 그 무엇을 품고 있다. 바로 ‘위험성’이다. 서슬 퍼런 사무라이의 칼은 아직도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칼이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해주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명검을 사무실에 걸어놓는다. 마찬가지로 자동차 레이서는 승리의 짜릿함을 맛볼 수도 있지만 불길에 휩싸여 중화상을 입거나 사망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11세기 십자군전쟁을 위해 떠나는 기사에 관한 이야기와 <80일간의 세계 일주>, Formula 1 레이서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모험성이다. 이쯤에서 프랑스 라디오 호스트 라파엘 앙도방의 말이 떠오른다. “남자는 도박과 위험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자는 가장 위험한 도박인 사랑에 목숨을 건다.”
조승연 <이야기 인문학>, <공부 기술>, <그물망 공부법>, <비즈니스 인문학> 등 총 16권의 책을 출간하고 O tvN <비밀 독서단>, MBN <황금알>에 고정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며 지금은 한문과 중국어를 배우면서 동양 언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오리진보카’ 대표로, 세계에 수출할 영어 어휘 학습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조승연(작가) 사진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