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황덕호의 재즈 이야기
그 누구보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을 그 어느 때보다 재즈가 잘 어울리는 계절에 만났다. 재즈 평론가 황덕호가 말하는 음악을, 그리고 재즈를 재미있게 듣는 방법.

점심시간에 작업실에서 만난 황덕호는 오후 3시에 여의도 라디오 방송국에서 재즈 프로그램 녹음이, 5시엔 광화문에서 재즈 모임이 있다고 했다. 그는 올여름 <그 남자의 재즈 일기> 개정판과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공저)을 출간했다. 16년째 진행 중인 라디오 프로그램 <재즈 수첩>과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학과 재즈사 강의, 최근 박차를 가한 재즈 에세이 번역 작업 등 그의 스케줄은 재즈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DJ, 작가, 평론가 등 수식어 중 그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재즈 애호가’다.
그가 재즈 애호가가 된 사연은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 감상이 유일한 취미던 학창 시절, 팝이나 록과 달리 즉흥연주와 현란한 기교로 이루어진 재즈라는 신기한 장르에 끌렸다. 수입 음반을 구하기 힘들던 시기라 미군 공급용 음반을 어렵사리 손에 넣거나 오리지널 판을 복사한 불법 레코드를 구입할 정도로 재즈에 열광하다 보니 사회학을 전공하고도 졸업 후 음반 회사 마케팅팀에 들어가게 됐다. 그때가 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후 우리나라가 문화 융성기에 돌입했을 즈음이다. 많은 규제가 풀리고 해외 음반 시장이 열리면서 그동안 볼 수 없던 앨범도 CD로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 5년 동안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음반 사는데 소비할 만큼 그는 그것을 탐구하고 정보를 얻는 것이 좋았다. 새로운 음반, 그동안 본 적 없는 음반, 소장가치 있는 음반 등이 모여 수만 장이 됐고, 틈틈이 <객석>, <음악동아>, <스테레오뮤직> 등 문화 예술 잡지에 음반 리뷰를 기고하기도 했다. 얼마 후에는 재즈 애호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과 하루키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화제가 되면서 9시 뉴스에서 특집으로 다룰 만큼 국내에 처음으로 재즈 열풍이 불었다. 하루 종일 재즈와 관련된 글을 쓴 날도 있을 정도로 그에게 엄청난 원고 의뢰가 들어온 것도 그때다. 음반이 좋아 음악에 빠진 그는 수많은 곡을 디지털 음원으로 듣는 것보다 단 몇 곡이라도 앨범에 적힌 가사를 따라 부르고 만든 사람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하던 그때가 지금보다 음악이 풍요롭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그 남자의 재즈 일기>는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2년에 완성한 650페이지 분량의 소설로 재즈 입문자인 주인공이 점차 재즈의 매력에 빠지는 과정을 그렸다. 책에 소개한 수많은 재즈 음반을 찾아 듣고 인물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든 재즈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읽기 쉬운 일기 형식을 빌렸다. 그런데 음반이 사라져가고 재즈가 음반 시장에서 꼴등 순위를 다투는 이 시대에 절판된 지 7년이 된 책을 다시 낸 이유는 뭘까? “음악을 꼼꼼히 듣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오락거리인지 알리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조차 생소하던 주인공이 재즈 감상에 재미를 붙인 것처럼 역사, 장르, 인물을 이해하고 나면 그 이상의 깨달음과 가치를 얻을 수 있거든요.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것과 그리 다를 게 없어요.”
그가 말하는 올바른 재즈 감상법은 재즈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즉흥연주를 이해하고, 배경음악으로서가 아니라 오롯이 재즈와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다. “재즈는 대중적 인기를 끌려고 만든 음악이 아니라 악기를 잘 다루는 뮤지션끼리 즉흥연주를 즐기려고 만든 음악이에요. 동일한 악보라도 연주자가 폭발시키는 기량에 따라 감흥이 달라지죠. 여러 악기가 등장하는 재즈를 감상하면서 어떤 게 베이스인지, 기타인지, 트럼펫인지, 색소폰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건 이중창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요.”
이처럼 재즈는 즉흥적으로 다양한 악기가 섞이고, 가사도 불분명하고,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 없는 탓에 입문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장르다. 하지만 그는 재즈 팬들은 오히려 독창적 변주로 어디서 소리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긴장감을 즐긴다고 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재즈 감상에 재미를 붙이는 방법을 소개하기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와 처음 만난 이야기를 덧붙였다. 하루키는 중학생때 ‘아트 블레이키 앤 더 재즈 메신저스’의 일본 공연에서 재즈를 처음 접했다. 맹렬하게 쏟아지는 음계와 갑자기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사운드에 충격을 받은 하루키는 자신을 호기심과 혼란 속에 빠뜨린 그 소리를 찾아 레코드 가게를 배회하다 결국 음반을 구하고 오늘날 훌륭한 재즈 팬이 됐다. 이 스토리는 황덕호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재즈 입문 첫 단계와 흡사하다. “진정한 재즈 감상은 마음에 울림을 주는 첫 재즈 음반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해요. 음악에 대한 객관적 정보는 물론, 그 곡과 나 사이에 선명한 추억이 쌓이겠죠. 귀에 익숙한 빌 에번스나 키스 재럿, 보보 스텐손의 앨범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 장이라도 음반을 손에 쥐고 반복해 감상하다 보면 그와 비슷하거나 혹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음반을 찾아 나서게 되고, 재즈에 재미를 붙이게 되는 것은 물론 완벽히 이해하게 될 거예요.” 그는 한때 음향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재즈 페스티벌이나 재즈의 기본 요소를 무시한 일부 상업적 재즈 시장에 불만을 품은 적도 있다. 비판하는 글을 쓰고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좀 더 먼 미래를 위해 계획을 수정하려 한다. 트럼펫 연주자 윈턴 마설리스가 쓴 에세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든지,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루이 암스트롱이나 찰리 파커의 전기를 쓰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이 재즈를 즐길 수 있도록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믿는다.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