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다시 보기
“평전은 한 인생의 서사이자 그 인생이 살다 간 그 시대의 서사이며, 그 시대를 읽는 저자의 관점이기도 하다.
이런 책은 당연히 지금의 ‘나’를 성찰하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30년 넘게 백석을 짝사랑해온 시인 안도현은 최근 <백석 평전>을 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흠모하고(그는 ‘모닥불’이라는 시를 읽고 백석에게 반했다), 책의 서문에 서도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고 고백한 안도현 시인은 오로지 ‘애정’의 보고로서 백석의 삶을 복원했다. 백석이 태어난 평안북도 정주군은 물론 백석의 집안 내력, 오산학교와 일본의 아오야마 학원 재학 시절, 해방 후 북한에서의 생활까지 백석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조리 섭렵해 정리했다. 특히 그는 백석의 시나 산문에 드러난 내용과 그의 실제 행적을 비교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는데, 풍문으로만 떠돌던 백석의 연애담(“첫눈에 백석의 마음을 사로 잡은 이가 박경련이었다. 그녀의 까만 머리는 가르마를 타 정갈하게 보였고, 갸름한 얼굴에는 두 눈이 유난히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게 읽힌다.
한편 <김정희>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 유명한 유홍준 명지대학교 교수가 20여 년간 완당 연구에 몰두해 쓴 책이다(우리가 흔히 아는 김정희의 자는 원춘(元春)이지만 호는 완당, 추사, 예당 등 100여 개에 이른다). 사실 유 교수가 이 책을 내기까지 한국엔 완당의 삶과 학문적.예술적 업적을 아우른 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유 교수는 이 책을 내며 담담히 “세상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 책을 통해 완당의 사대부 집안 이야기부터 중국 연경에서 보낸 청년기,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를 직접 발굴해 고증해낸 출세기, 말년의 과천 시절까지 모두 10개 장으로 구분해 완당의 삶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냈다. 전국 사방팔방에 흩어져 있는 완당의 글씨, 그림, 현판, 편지 등을 수집한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럴듯한 전기 한 권 없는 상황에서 고문헌을 뒤져 완당의 생애를 되살려놓은 건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교수는 책에서 완당이 불교학은 물론 금석학과 고증학, 청조학, 시, 그림을 모두 마스터한 최고의 학자이자 예술가이며, 혀를 내두를 정도의 노력의 대가라고 평했다(완당의 ‘추사체’는 70 평생 벼루 10개의 밑창을 드러내고, 붓 1000자루를 못쓰게 만든 끝에 완성됐다).
반면 <이중섭 평전>은 고은 시인이 소설 형태로 쓴 이중섭 전기다. 고은 시인은 이중섭의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철저한 취재, 그가 살았던 시대상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운‘ 문적 산문’이라 할 만한 특유의 문장으로 이중섭의 생을 복원했다. 특히 그는 이중섭과 함께 온몸으로 그 시대를 살아낸 동료 예술인들(후에 한국 예술계를 빛낸 이름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으며, 이중섭의 생애를 야하다(?)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해 어떤 면이 진실이고 어떤 면이 허구, 혹은 소문에 의한 창작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평균 3~4장꼴로 나뉜 이야기는 영화의 신(scene)처럼 차곡차곡 넘어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이야기의 중심 또한 이중섭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 아닌 그의 삶에 초점을 맞춰 부담감이 없다. 이 책은 예술과 그것을 낳은 예술가의 삶, 그리고 배경이 되는 시대의 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평전계의 모범 답안 같은 존재다.
에디터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