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선택
지난달 백화점 한 매장 쇼윈도에 걸려 있는 재킷 하나에 시선이 멈췄다. 악어가죽에 각종 메탈 장식을 더해 그 자체로 강한 존재감을 뽐내던 필립 플레인의 라이더 재킷. 호기심에 들춰본 가격표의 1억 5000만 원이라는 숫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순간, 작년 에르메스에서 선보인 1억여 원의 악어가죽 티셔츠도 떠올랐다. 이처럼 최근 ‘극단’의 선택을 하는 패션 브랜드의 행보가 눈에 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Gucci 2 Dior 3 Louis Vuitton 4 Celine
1년에 두 번 뉴욕, 밀라노, 파리 등지에서는 ‘패션 축제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컬렉션이 열린다. 그 후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 SPA 브랜드 아닐까. 시즌 트렌드를 재빠르게 파악해 접근 가능한 가격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는 SPA 브랜드의 발 빠른 행보는 놀랍기까지 하다. 그 덕분에 대중은 낮은 가격에 유행을 즐기며 패션을 더욱 가깝게 누릴 수 있지만 한편에서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SPA 브랜드의 영민한 행동이 돋보이는 요즘, 이제 그들과 차별화할 특별한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극단’이다. 그것이야말로 아무나, 특히 SPA 브랜드에서는 감히 모방할 수 없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듬뿍 담을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최고급, 초호화 소재로 궁극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올에서는 이번 시즌 소재 자체로 충분히 고급스러운 파이손에 일일이 손으로 강렬한 컬러를 입힌 멀티 컬러 핸드페인트 파이손 제품을 선보였다. 구찌는 2014년 S/S 시즌 소개한 누보 숄더백을 가방 몸체는 물론 프린지 디테일까지 글로시한 파이손 소재로 장식해 강렬함을 선사했다. 빛에 따라 다른 느낌을 전하도록 메탈릭하게 처리한 양가죽을 패치워크해 만든 3.1 필립 림의 레더 모터크로스 재킷은 또 어떤가. 모두 가격도 가격이지만 ‘가짜(fake)’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기품을 뿜어낸다.
1 Burberry Prorsum 2 Balenciaga 3 Hermes
또 하나는 패스트 패션이라는 별명을 지닌 SPA 브랜드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손맛, 장인정신으로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에 따른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이엔드 브랜드만이 선보일 수 있는 강점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보테가 베네타는 모노클(monocle)에서 영감을 받아 둥근 모양의 록 크리스털로 포인트를 준 놋 클러치를 선보였는데, 크리스털을 단순히 붙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그림자 효과를 주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해 세심한 표현에 집중했다. 이름부터 화려한 루이 비통의 디바 백과 프리마돈나 백은 각각 의상 컬렉션에 사용한 트위드·비즈·시퀸·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장식, 또 송치 위에 비즈·시퀸·카보숑 컷 크리스털 장식 엠브로이더리를 가미해 장인정신의 절정을 보여줬다. 레이스와 스톤을 믹스해 손맛의 진수가 느껴지는 버버리 프로섬의 트렌치코트나 얇은 가죽 끈을 위빙해 만든 발렌시아가의 의상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발렌시아가 의상은 단순히 가죽을 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꼰 가죽과 가죽을 또 다른 가죽으로 이어 재킷 하나를 만드는 데만 자그마치 240m에 달하는 가죽 끈을 사용했다고(재킷 가격이 5000만 원대에 달할 정도).
마지막으로 유니크함의 끝으로 승부한다. 아이덴티티가 확실해 감히 흉내 낼 엄두조차 못 낼 디자인과 디테일을 선보이는 것. 셀린느의 흥미로운 샌들과 슬링백 부티가 좋은 예다. 특히 조형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굽의 슬링백은 누구라도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이다.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에 ‘이미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SPA 브랜드의 저돌적인 공세에도 우아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아니 오히려 그 품격을 높이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극단이라는 전략. 하이엔드 브랜드이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인다.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