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올리브가 품은 향기
“올리브나무는 신이 내린 가장 귀중한 선물이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남긴 말이다. 그의 표현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이 나무에서 얻은 작은 열매로 만든 금빛 오일은 상상 이상으로 조화로운 맛과 향기뿐 아니라 건강까지 선사한다. 여기,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치즈 장인 소영 스캔런이 그 가슴 뛰는 감흥에 대해 전해왔다. 당신과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좀 더 깊숙하고 아름다운 올리브 오일에 대한 이야기다.
1 늦가을 올리브 농장의 추수 모습 2 밝은 녹색에서 자줏빛으로 변하며 익는 올리브
북유럽의 어둡고 찬 공기를 피해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정착한 화가 반 고흐는 올리브나무의 아름다움에 대해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난 올리브나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 잎새들은 세월에 의해 퇴색된 은빛을 띠고 있고, 빛의 각도에 따라 푸른 기운이 돌기도 하고 녹색이나 청동색이 강해지기도 하지. 어떨 땐 자색과 오렌지색이 섞인 황토빛 대지 위 강렬한 햇살 아래 흰색으로 바래기도 해. 올리브 숲에서 그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난 무언가 은밀하고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곤 한다. 이 모든 것은 너무 아름다워서 이 나무들을 그림으로 그리려는 시도나 상상하는 것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렇게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채 1000년 이상을 산다는 올리브나무는 천재 미술가의 경외와 영감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서양의 역사를 통해 신이 선사한 가장 귀한 선물로 여겨왔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경쟁에서 건물과 배를 짓는 견고한 목재로 썼고, 그 열매에서 기름을 얻어 어둠을 밝히는 등잔의 연료로, 음식과 약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올리브나무를 인간에게 선물해 그리스 수도의 수호신이 되었다. 고대인에게 올리브는 단순한 연료나 식자재를 넘어 강인함과 젊음의 상징으로 올림픽 승자의 머리를 장식하는 승리의 관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고, 기독교에서는 평화와 풍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올리브를 문명의 상징으로 삼은 로마제국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영토를 넓혀가면서 올리브나무를 프랑스 남부, 스페인, 포르투갈, 아프리카 북부로 전파했고 올리브 오일을 지중해 음식 문화의 꽃으로 만들었다.
서양 음식 문화에서 오랜 시간 권좌를 지킨 올리브 오일의 중요성은 정치적 힘의 중심이 북유럽으로 이동하면서 동물성 지방을 선호하는 추세에 밀려 지난 1000년간 감소했고, 근래 들어 용매와 열을 가해 콩이나 카놀라 등의 식물에서 값싸게 기름을 추출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표적 식용유로서의 자리를 잃었다. 이 기름에 들어 있는 항산화제가 자외선에 손상된 피부 재생에 효과가 있어 지중해 연안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일광욕을 위한 선탠 오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나는 20년 전 미국 TV에서 방영한 이탈리아 요리 쇼에서 올리브 오일을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불기 시작한 전 세계적 올리브 오일 열풍은 경제적 풍요의 상징인 육류와 동물성 지방의 과다 섭취로 인한 성인병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됐다. 전통적으로 모든 국민이 장수하고 심장 질환이 흔치 않은 지중해 연안 국가의 식습관을 분석한 결과 ‘지중해식 섭생(mediterranean diet)’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났고, 다시 만병통치약의 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전통적 올리브 오일은 가열이나 화학적 처리 없이 단순한 압착에 의해 생산하기 때문에 불포화지방산과 필수지방산의 함량이 높을 뿐 아니라 비타민 A, D, K 등 지용성 비타민과 쓰고 떫은 맛을 내는 폴리페놀로 대표되는 항산화제가 많이 들어 있다. 이런 건강에 좋은 성분은 고혈압과 심장병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 조절에 효과적일뿐더러 암, 당뇨, 관절염 등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올리브는 ‘Olea Europaea’라고 불리는 과일나무다. 전 세계적으로 3000종 이상이 존재하고, 식용 기름 생산을 위해서는 300종 정도를 경작하고 있다.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 아직도 올리브는 지중해 연안에 주로 분포하며, 중국 남부에도 최근에 심기 시작해 그 경작 면적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나무의 종류와 숙성도에 따라 지방 함량은 15~20% 정도고, 다른 견과류에 비해 쉽게 기름을 분리할 수 있다. 또 건조한 기후를 잘 견디는 특성 때문에 글로벌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구 환경에서 식용유 원료로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1 수이순밸리에 위치한 앨버트 카츠의 올리브 농장 2 유기농 인증을 받은 그의 올리브 농장에서 만난 앨버트 카츠 3 앨버트 카츠가 직원과 함꼐 압착 디스크에서 페이스트 상태가 된 올리브를 체크하고 있다. 4 카츠 농장의 새로운 2014 올리브 오일
전통적 올리브 오일의 생산 방법은 다음과 같다. 늦가을부터 익기 시작하는 열매는 밝은 녹색에서 자주색으로 색이 변할 때 추수하고 세척을 통해 이물질을 제거한다. 맷돌처럼 생긴 돌판으로 열매를 짓이겨 페이스트를 만들고, ‘Malaxation’이라는 저어주는 과정을 통해 기름 분리를 촉진한다. 그 후 압착 디스크로 옮겨 압착을 통해 액상 부분만 분리한다. 이 액상 부분은 물과 기름의 혼합물로, 전통적으로는 항아리에 담아 밀도 차이에 의해 위에 뜬 기름을 얻는다. 근래 들어서는 대부분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기름의 회수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오일의 품질 또한 많이 향상되었다. 퍼미스(pomace)라고 불리는 남은 고체 부분은 화학물을 이용한 추출에 사용한다. 이렇게 만든 올리브 오일은 ‘Liquid Gold’라는 이름에 걸맞게 저물녘 가을 햇살 같은 녹색을 띤 황금빛으로 빛난다. 올리브 오일의 맛과 향은 품종, 생산지의 자연환경, 경작 방법, 추수 시기, 제조 방법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올리브 오일은 여타 식용유와 달리 와인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하고 복잡한 맛을 지닌다. 그 풍미는 설익은 과일, 갓 베어낸 목초, 아티초크, 셀러리, 후추, 아몬드, 버터, 잘 익은 바나나, 멜론 등에 빗댄 표현이 널리 쓰일 정도로 과일부터 견과류에 이르는 다양한 요소를 아우른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올리브 오일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약간 쌉쌀하고 목이 타는 듯한 강한 맛이 특징이다. 올리브 오일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열매의 숙성도가 높아지고 호두 오일이나 아몬드 오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고소함과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올리브 오일의 품질을 가늠하는 기준은 유리지방산의 함량인데, 산도는 얼마나 많은 양의 자연 상태 지방이 파괴되었나를 나타내므로 그 수치가 낮을수록 높은 품질을 의미한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산도가 0.8% 이하인 가장 신선한 기름으로, 올리브 자체의 풍미와 영양 성분을 최대한 함유한다. 버진 올리브 오일은 약간 낮은 등급으로 2%까지 유기산을 허용하며, 일반 올리브 오일은 이 허용치가 3.3%까지 올라간다. 이보다 낮은 등급의 기름은 가열 혹은 화학 용매를 이용해 지방 성분을 최대한 추출한 것으로 화학적 중화에 의해 산도 자체를 낮출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올리브 오일은 정제된 기름에 약간의 버진 올리브 오일을 섞어 값싸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생산한 제품이다.
올리브 오일이라고 하면 흔히 이탈리아를 연상하지만 전 세계 오일의 43% 이상은 스페인에서 생산하고, 이탈리아 21%, 그리스 12%에 이어 시리아와 포르투갈이 5대 생산국으로 꼽힌다. 실제로 이탈리아 올리브 오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기름을 이탈리아에서 포장만 한 경우가 많아 소비자가 상표를 정확히 읽지 않으면 이를 판단하긴 쉽지 않다.
피에몬테를 제외한 전역에서 올리브 오일을 생산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올리브는 프란토이오(Frantoio), 코레졸로(Correggiolo), 레키노(Leccino), 토콜라나(Toccolana), 타자스카(Taggiasca) 등이고, 종주국답게 30개 지역이 DOP 인증을 받았다. DOP는 올리브나무의 품종과 지역뿐 아니라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의 경우 수확한 열매의 손상을 막기 위해 담는 바구니의 깊이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탈리아 올리브 오일에 비해 우아하고 견과류의 고소함이 많이 느껴지는 프랑스의 대표적 올리브는 피콜린(Picholine), 뤼크(Lucques), 그로산(Grossane), 니옹(Nyon), 니쿠아(Nicois) 등이다. 기름 생산 외에도 이 열매를 짙은 소금물에 담가 쓰고 떫은 맛을 제거한 후 절임을 통해 숙성시켜 올리브 자체로도 많이 소비한다. 올리브 오일의 최대 생산국인 스페인의 대표적 품종은 세비야노(Sevillano), 만사니야(Manzanilla), 아르베키나스(Arbequinas) 등으로 다른 올리브에 비해 수율과 지방 함량이 높아 비교적 낮은 가격의 생산이 가능하다.
오랜 전통을 지녀 각 나라의 역사·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올리브 오일은 객관적으로 어떤 종류가 가장 좋으냐는 질문 자체가 의미 없다. 경작과 오일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이들뿐 아니라 올리브 오일을 많이 접하고 자란 사람에게도 가장 좋은 기름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모두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을 꼽는다. 맛뿐 아니라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선택하는 일반 대중은 진한 풍미를 지닌 올리브 오일을 요리에 사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동양 요리에 올리브 오일을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같은 나라에서 생산한 것이라도 지역에 따라 맛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요리와 같은 지역에서 난 것이 아니면 그 지방 특유의 맛을 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 요리를 위해선 가격이 저렴하고 향이 강하지 않은 일반 오일을 쓰는 것이 현명하고, 가격이 높은 엑스트라 버진 오일은 참기름처럼 양념으로 곁들이는 것이 적합하다.
1 앨버트 카츠 농장에서 만든 카츠 올리브 오일 제품 2 올리브 오일의 향긋함을 더한 램찹
주로 유럽에서 생산한 제품을 사용해온 나에게 가장 좋은 오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앨버트 카츠(Albert Katz)가 생산한 유기농 올리브 오일을 꼽는다. 내가 미국 올리브 오일 생산의 중심지인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지 20년이 되어가고, 내 치즈 공방이 올리브 농장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위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UC 버클리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앨버트는 20여 년 전 작은 올리브 농장을 열었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많아 레스토랑도 운영한 그는 최고의 식자재를 생산하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이탈리아 요리에 많이 쓰는 토스카나 스타일 올리브 오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새크라멘토로 향하는 중간 지점의 수이순밸리(Suisun Vally)에 위치한, 몇 군데밖에 없는 유기농 인증을 받은 그의 농장에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4종류의 올리브나무를 심어놓았다. 올봄의 가뭄 탓에 유난히 빨리 찾아온 추수로 정신이 없는 그를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11월 첫 주에 겨우 얻었다. 적은 양의 올리브를 매일 압착하느라 2주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한 그는 피곤에 지쳐 있었다. 그의 올리브 오일은 각종 국제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내가 함께 일하는 많은 레스토랑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올리브 전문가로 손꼽힌다.
내가 그의 올리브 오일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긴 쉽지 않다. 전문적 평가에 의한 것도 아니고, 그의 명성 때문도 아니다. 그의 올리브 오일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캘리포니아 사람이 다 되었다고 느낀 것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근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난 그의 올리브 오일을 양념으로 쓰거나 요리에 사용하기 위해 냄새를 맡는 순간 이내 행복해진다. 그의 기름에는 내가 살고 있는 땅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고, 내가 사랑하게 된 진한 향기가 있다.
일단 농사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유기농법으로 올리브를 경작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지 묻자, 그는 어려움보다는 유기농의 원칙을 지키려는 고집이 농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심화시켰다고 대답했다. 땅을 갈고 직접 만든 퇴비만 비료로 쓰며 봄이 되면 적당히 가지치기를 하고, 비가 전혀 오지 않는 여름에는 물을 주고, 가을에는 때에 맞춰 추수해 올리브 오일을 빚는다. 그의 삶은 올리브나무와의 동거 그 자체다. 그의 농장에서는 잘 익은 열매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한다. 바구니를 하나씩 멘 일꾼들이 사다리에 올라 잘 익은 열매만 선별해 따고, 나머지는 익기를 기다려 며칠 후 추수 작업을 되풀이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대부분 기계로 수확하는 현실에서 작은 바구니를 메고 열매를 하나하나 따는 손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잊었다. 품종마다 따로 수확한 올리브는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가까이에 위치한 올리브 밀에서 몇 시간 안에 압착, 침전과 블렌딩을 거쳐 최종 제품을 만들어낸다.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라 교육받고 평생을 살아온 그가 생산하는 기름에는 강한 개성은 물론, 요리에도 쉽게 쓸 수 있는 소박함이 있다. 이런 특성은 그가 요리사로 레스토랑을 운영한 경험의 결과다. 향과 맛이 진해 강한 첫인상을 남기는 제품이 프리미엄 시장을 점유하고 있지만, 그는 음식 재료로서 전체적인 맛의 은근한 배경이 될 수 있는 올리브 오일을 원한다. 한 품종에서 짠 기름이 유행하는 최근 경향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그는 4가지 오일을 적당히 섞어 원하는 맛을 만들었을 때 느끼는 희열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의 올리브 오일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비결은 일에 대한 병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심이라고 했다. 땅과 나무, 그를 돕는 일꾼들을 매일 생각하고, 고객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농부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집착’에 있다고 말이다.
경험 많은 지휘자처럼 각 악기의 소리를 적절히 조율하며 창조해내는 하모니와 같은 맛을 지닌 그의 올리브 오일. 내 가슴은 몇 주 후면 맛보게 될 2014년 새 오일(Olio Nuovo)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바위가 많고 건조한 대지에 깊게 뿌리박고 서 있는 올리브나무는 늙은 농부의 모습을 닮았다. 태양과 바람에 주름지고 두꺼워진 피부와 같은 둥치, 오랜 노동으로 마디가 굵어지고 비틀어진 손가락 같은 가지는 농부의 꾸부정한 몸처럼 하늘을 향해 조심스레 뻗어가고 있다. 건강을 위해 올리브 오일을 먹기 시작했지만, 역사와 맛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한층 깊이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37년의 짧은 인생을 살다 간 반 고흐는 프로방스에서 지낸 마지막 2년 동안 가장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 아름다움이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 자체를 힘들게 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올리브나무를 주제로 한 18점의 대작을 남겼다. 정신병으로 불우하게 생을 마친 그에게, 올리브 오일은 그의 창의성을 밝게 태우는 연료가 아니었을까.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글 소영 스캔런(Soyoung Scanlan) 사진 제공 Katz(https://katzfarm.katzandco.com)